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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 자와 남은 자
자유게시판 > 상세보기 | 2018-12-16 21:42:01
추천수 2
조회수   1,194

제목

간 자와 남은 자

글쓴이

조영석 [가입일자 : 2005-08-19]
내용

1. 오늘 친구 부인 삼우재 날이다. 인생이라는 것이 이렇다.


그러니까 벌써 6개월이 지났다. 친구 부인이 간암 말기였다. 그동안 요양차 양평에 있었다. 3개월 있었나? 비용은 한 달 기준 300만원. 기타 비용까지 하면 과장급 한 달 월급이 통째로 날아간 것이다.


 


2. 근 보름 전 친구한테서 전화가 왔다. 병원에서 앞으로 보름을 넘기기 어렵겠다고 하네. 일산 암센터에서 인천 국제성모병원으로 옮겼다. 친구는 아마 자신의 분신과 같았던 부인을 마지막이라도 깨끗한 곳에 있게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3. 친구 부부가 인천 부평성모병원에 일차 진료차 온 적이 있다. 그때 보고 이제껏 친구 부인을 보지 못했다. 친구 부인이 양평에 있을 때 우리 부부는 생각했다. 친구 부인이 암에 걸린 모습을 차마 볼 수 없었고환자가 반겨할지 어떨지 모르니 병문안은 가지 말자.


 


4. 그러나 만약 지금이라도 보지 못하면 다시는 친구 부인을 보지 못하고 보낼 것 같아서 우리 부부는 어려운 결정을 했다.


 


5. 부인은 항암치료 때문에 머리카락은 다 빠졌다고 했다. 암 치료가 의미가 없어 중단했더니 머리카락이 미리 정도자랐다. 얼마나 힘든 투병생활을 했는지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으니.. 머리카락은 온통 하얗게 세었다. 복수가 차면 빼낼 수 있다지만 다리에 물이 차면 피와 살이 섞여 있어 물을 빼낼 수 있는 방법이 없단다. 다리는 코끼리 다리처럼 부어 있었다. 우리를 잘 알아보지 못한 것 같았다. 부인의 얼굴과 몸짓에는 이미 사신이 내려 앉아 있었다.


 


6. 그 와중에 우리가 왔다고, 아니 누가 왔다고 일어나 앉으려했다. 웃는 것인지 고통에 찡그린 것인지 알 수 없는 희미한 웃음이 스쳐갔다. 아니면 왜 나만 이런 고통을 받는 것인지 운명에 대한 저주의 웃음처럼 보이기도 했다.


 


7. 부인은 통통한 편이었고, 수수한 얼굴이지만 조금 예쁜 편이었고, 무엇보다 명랑 쾌활한 편이었다. 말도 조리 있게 잘해 부인과 대화를 하면 즐거움이 있었다. 최근 몇 년간 복지시설이나 도서관에서 노후 복지에 대한 강의도 하고 다녔다.


 


8. 부인은 친정 아버지를 고혈압으로 잃었고, 친정 어머니를 간암으로 잃었다. 오빠도 간암으로 벌써 고인이 되었다. 이제 자신이 간암으로 쓰러지고 있었다. 어머니는 B형 간염 보균자였고, 오빠도 자신도 B형 간염 보균자였다. 그리고 셋이 모두 같은 병명으로 앞서거니 뒷서거니.


 


9. 친구는 강의를 했던 사람이고, 부인은 선거에서 지기는 했지만 지역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친구가 강의를 그만 두자 부부는 인천 송도유원지 인근에서 태능갈비집이라는 제법 큰 가든을 운영했다. 여기서부터 부부는 가지 않는 길, 그러니까 서서히 고난의 길이 시작되었다.


 


10. 식당을 해 본적이 없는 부부가 그 큰 식당을 운영했으니 시련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을 것이다. 화는 혼자 다니지 않는다고 하더니 구제역이 같이 왔다. 결국 큰 빚을 지게 되었고, 식당을 정리했다. 부부는 파산했고, 빚 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둘다 신용회복위원회의 신용회복 절차에 들어갔다.



인천 동암역 인근에 15평 남짓하는 식당을 했으나 역시 그의 불운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결국 친구는 부인에게 식당을 맡기고 자신은 송도 매립지 공사현장에 나가기 시작했다. 평생 강의만 했던 사람이. 샌님같은 사람이. 그곳은 내 아들이 여름방학 때 등이 벗겨질 정도로 고생했던 곳이기도 했다. 낮에는 나가 공사판에서 일하고 저녁에는 들어와 부인의 일을 거들었다.


 


11. 친구는 다행히 공사현장에서 전기 기술을 배워 다른 사람들보다는 조금 더 일당을 받았다. 부부는 열심히 일했고, 조금씩 빚을 갚아나갔다. 그리고 이제 부인의 빚은 다 갚았고, 친구의 빚도 거의 다 끝나가고 있었다. 이제 몇 달 후면 그 지긋지긋했던 빚도 다 청산하고 이제부터는 온전히 저축할 수 있는 희망이 보였다. 

 


12. 그리고 부인은 간암 말기가 되었다. 살만하면 죽는다는 옛 이야기를 증명이라도 하려고 했던 것일까. 왜 하필 친구 부인이 이것을 다시 증명해야 했는가.


 


13.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다음 주 수요일이 고비라고 하네. 수요일 아침 다시 전화가 왔다. 오늘 아침 갔네.


 


14. ----------


 


15. 저녁에 집 사람과 같이 장례식장에 갔다. 나는 멀거니 먼데를 쳐다보고 집 사람은 연신 눈물을 닦아냈다.


 


16. 발인일, 새벽같이 일어나 장례식장으로 갔다. 도착했을 때는 벌써 화장중이었다.


 


000


화장중


 


전광판에 그렇게 떴다. .



20곳의 전광판이 동시에 떳다.



000

화장 중


사방은 울음소리도 뒤덮혀 있다. 육신은 불꽃 속으로 사라지고 영혼만 맴돌고 있었다.


 


잘 가시오. 결혼도 안 시킨 두 딸을 두고 뭐가 급해서 그리도 빨리 가오.


남겨진 내 친구는 어떻하고..


 


17. 삼우재를 지내고 친구의 두 딸을 불러 세웠다. 고생했다. 너희가 엄마와 같이 산 세월보다 아빠가 엄마와 같이 산 세월이 더 길었다. 너희들은 결혼하면 떠나가겠지만 아빠는 혼자 남는다. 아빠에게 잘 해 줘라. 내가 말 안해도 알아서 잘 하겠지만...


 


18. 두 딸을 보내고 친구와 이야기를 나눴다. 이제 어떻게 할 것인지. 친구와 두 딸은 부인과 엄마의 병 구완을 위해 모두 직장을 그만 두었다. 한 사람의 병자는 온 가족의 희생을 받고도 부족해 기어이 갔다. 친구는 실업 급여를 신청했다.


 


19. 친구에게 실없는 농담을 건넨다. 돈이라도 있으면 재혼이라도 할 건데, 돈도 없고 어떻게 할거나. 하긴 돈이 있어도 두 딸 때문에 안 되겠다. 자네가 재혼하면 딸들은 아빠가 엄마를 배신했다고 생각할 테니. 그러니 여자를 만나거든 재혼은 하지 말고 친구처럼만 지내라. 친구는 나에게 묻는다. 벌써 그런 소리를..


 


20. 전에 들었던 법륜 스님의 말을 해줬다. 한 여인이 스님에게 물었다. 남동생이 먼저 갔는데 지금도 가슴이 많이 아프다. 꿈에서라도 한 번 꼭 보고 싶은데 꿈에도 나타나지 않는다. 어떻게 해야할까. 스님은 답한다. 누나가 자꾸 남동생을 생각하면 남동생의 혼이 가야할 곳에 가지 못하고 이승을 떠돈다. 좋은 곳으로 가야 옳으냐 아니면 누나 때문에 가야할 곳을 가지 못하고 떠도는게 옳으냐. 그 여인도, 나도 깨달음을 얻는다. 친구도 깨달음을 얻었다.


 


21. 내침 김에 더 말했다. 망자는 자신의 스케줄에 따라 인생을 살다 갔다. 자네도 자네 인생의 스케줄이 있으니 너무 망자에 매이지 말게. 사는 동네가 다르니 사는 방법도 달라야 하겠지.. 어느 TV는 말한다. 부인이 죽은 후 남편은 수 십년을 매일 묘지에 찾아가 꽃을 놓고, 집에 부인의 영정 사진을 걸어 놓고 향을 피운다. 혹자는 이를 남편의 정절이라고 우러러 보지만 부인이 망자가 된 후 그에게는 자신의 삶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자네, 울고 싶을 때 울고, 웃고 싶을 때 웃어도 된다네.


 


22. 지금은 경황이 없겠지만 조금 지나면 사무치게 그리울 것이네. 그때 주저 말고 전화하게. 달려감세.


 


23. 친구는 내가 잘 간수할 테니, 먼 길 잘 떠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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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호 2018-12-16 22:48:25
답글

몇년전 스스로 삶의 끈을 놓아버린 친구넘이 생각납니다..
이번 기일엔 못가봤는데.......
십수년전 위암으로 먼저 간 여동생도 생각나네요.
다리부종이 오고 며칠 안되어.........

조영석 2018-12-16 23:02:57

    을쉰의 여동생 분...
그러셨다고 했지요...

다리 부종은 그런게 있다는 걸 처음 알았습니다.

허환 2018-12-16 22:57:42
답글

언제 어찌 될지 모르면서..

너무 앞만보고 살다 가기에는 우리의 인생이 너무 아까운 것 같습니다...

조영석 2018-12-16 23:03:28

    정말 열심히 살았는데

열심히 산다는 것이 다 좋은 것은 아니더군요.

yws213@empal.com 2018-12-17 00:36:37
답글

문득 글 중에 결혼의 동행과 아픔 혹은 이별도 모르는, 경험해 본 적도 없을 법륜에게 그 경험을 묻는 근거가 뭘까 하고요?
그걸 생각해 봤을까요?
경험치가 없는데 다 안다면 그는 어떤 존재일른지 생각해 본 걸까요?
의아해서 남깁니다.
세상사는 데 가장 큰 이치는 내가 몸소 겪고 알고 치르는 과제라고 생각하기에....,
답이 있다면 왜 그들은 내려 놓으라고 할까요??

조영석 2018-12-17 10:48:14

    그것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그의 생각에 공감합니다. 그래서 마음이 편해지면 그런 거지요.

박병주 2018-12-17 08:43:01
답글

겨울은 아버님과 여동생이 떠난 게절이어서
멍하니 하늘을 바라봅니다.
이번에 아버님 기일 다녀오니 담날 눈이 내렸더군요~.
그리움을 먹고 살면서
점점 더 아버님과 여동생 곁으로 다가가고 있음을 느낍니다.
ㅠ ㅠ

조영석 2018-12-17 10:49:50

    저는 여름 초입에 아버지를 잃었습니다.

제가 가장 힘들었을 때 돌아가셔서 지금도 가슴이 아픕니다.

여동생을 먼저 잃으셨으니 정말 가슴이 아프겠네요. 에휴..

전성일 2018-12-17 11:38:03
답글

20여년전에 보낸 친구를 가끔 떠올리며 (먼저 간)그 녀석과 남은 나와 어떤 차이가 있나..하는 생각을 가끔 합니다.

더 살고 있는 거 외는....

조영석 2018-12-17 15:22:13

    에고, 그런 생각 마세요.
그래도 이승에 구르는 것이 더 낫지요.

김창욱 2018-12-17 13:47:21
답글

영석님 잘 계셨는지요.^^

제 아버님도 간암으로 57세에 별세,저는 간염에서 간경화로 십수년 살다가 6년전 간염,간경화 두개다 완치.

형제간 셋이 다 간염보균자,막내는 7년전 간암 수술하고 잘 살고 있고,제일 친한 친구 두놈 간염 보균자 인데 술을 즐기더니만

40대에 둘다 일찍 가버리고...해서 간염이나 간암이란 단어가 나오면 남일 같지가 읺네요.

아! 간(肝)과 근육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인체에서 간은 오행으로 목(木)인데 근육도 목에 해당 합니다.

제가 중학교 때 부터 근육운동이 취미라 약40여년간 역기를 들었었네요,그 덕분에 간이 혼자 해야 할일을

근육이 절반 정도 맡아서 해주었기에 간염과 간경화가 완치가 되었습니다.

간염을 보균하고 계신분이나 간에 대한 질환을 앓고 계신분은 무리하지 않는 범위내에서 근육을 키우도록 노력하시기 바랍니다.

세브란스병원 의사선생님이 발표하신 논문에도 보니 간경화나 간염보균자가 근육이 줄어들면 간이 더욱 나빠진다는

논문을 본 적이 있다능~~~

조영석 2018-12-17 15:24:32

    예, 잘 계셨지요?

무척이나 오랜만입니다.

간과 근육 관계는 처음 들어 보네요.

그나마 완치 되어서 다행입니다.

저도 근육 만들고 싶은데 에고........

이민재 2018-12-17 13:55:48
답글

인생은 망망대해, 그 어느 누가 (무엇으로) 설명한 들 모두 다 부질없는 것이겠지요. 그저 이 땅에 남겨진 자들은 오로지 (자신의 주어진 길을 가야 하고) 견디고 견디며 한치 앞도 모르는 길을 가야 할 뿐...

저는 조상 중에 할아버지와 아버지, 그리고 외숙 두 분, 이모님, 큰 자형 등, 친한 학교 동창 그리고 그 외 지인들을 떠나 보냈는데 언젠가는 저도 그들이 갔던 길을 홀로 담담하게 가야겠지요. 그 곳이 어디인지는 전혀 가늠할 수는 없지만...

조영석 2018-12-17 15:26:25

    그래야 겠지요.

남은 자는 남은 자대로 살아가니 하니.

남겨진 친구를 보니 인생관이 조금 바뀐 것 같습니다.

뭔가 좀더 적극적으로 살아야겠다고 생각하네요.

노명호 2018-12-17 18:13:26
답글

인생이 참 별것 아니라는 생각이 드네요... 세상사 사랑도,재물도,모두 욕심 같군요 어차피 떠난다고 하는것은 변함이 없으니까요...ㅊㅊ 12월 저물어 가는 한해의 끝자락에서 다시한번 인생을 생각하게 하여 주시는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조영석 2018-12-17 20:31:12

    인생이라는 것이 어떻게도 정의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6월부터 시작된 대장정이 이제 막을 내린 거지요.

누구는 길게 누구는 짧게..

신이 내린 형벌 혹은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정훈 2018-12-18 06:53:28
답글

남의일 같지 않고, 가슴이 먹먹합니다!
저도 아버지를 일찍 암으로 보내 드린지가 언젠지 기억도 까마득하네요~~
어제 날짜로 회사생활 마무리를 했는데, 이제는 갈날이 언제가 될지도 헤아리게 됩니다!
영석님 친구부인도 갈길 잘 가시겠지요...
남편님이 헌신적으로 돌봤으니 말입니다!

조영석 2018-12-18 23:26:59

    예, 친구는 부인에 대해서는 여한이 없을 겁니다.

헌신적으로 간호했지요.

회사 정년 퇴직하셨으면 생각이 복잡하시겠네요.

이제 새로운 인생이라고 생각해야지요.

김준남 2018-12-19 11:45:18
답글

눈가가 촉촉해집니다.

올초에 떠나신 아버지 생각에 더 그런것 같습니다.
영석님도 올해 큰일을 치루셨군요. 늦게나마 위로 드립니다.

친구분은 좋은 친구가 있어 그나마 다행입니다.

조영석 2018-12-20 18:51:25

    준남 님 감사합니다.

제 생각인지 모르지만 이런 경우에는 딸보는 친구가 더 낫다 싶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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