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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돌프 히틀러, 사바테안 프랑키스트
시사종교 > 상세보기 | 2015-08-05 19:5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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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3,253

제목

아돌프 히틀러, 사바테안 프랑키스트

글쓴이

곽영철 [가입일자 : 2001-05-31]
내용

할머니 마리아 쉬클그루버

 

로스차일드 왕국의 시조 Meyer Amchel Rothscild (로스차일드 1세대)는 그의 다섯 아들들을 각각 유럽의 금융 중심지 5군데로 보내 전 유럽에 대한 장악을 시도했습니다. 런던으로 보낸 아들은 네이썬 마이어 로스차일드(Nathan Meyer Rothschild)이며, 비엔나로 보낸 아들은 살로몬 마이어 폰 로스차일드(Salomon Meyer von Rothschild, 1774-1855, 로스차일드 2세대)입니다.

비엔나의 살로몬(솔로몬)에게는 Anselm Salomon von Rothschild (Baron Rothschild, 1803-1874, 3세대)라는 아들이 있었습니다. 어느날 이들의 집에서 일하던 가정부 마리아 안나 쉬클그루버(Maria Anna Schicklgruber, 1795-1847)가 임신을 하게 되고 사생아를 낳았습니다. 이 아이는 알로이스 쉬클그루버(Alois Schicklgruber, 1837-1903)입니다.

아버지 알로이스 쉬클그루버 : 살로몬 마이어 로스차일드 또는 안셀름 살로몬 로스차일드의 사생아

가정부가 임신을 하자 길거리로 내쫓았다는 설과, 아기가 12살이 될 때까지 하인이었던 19세 유대인 청년 프랑켄베르거의 이름으로 생활비를 지원했다는 설이 있습니다. 물론 아기의 친부가 프랑켄베르거라는 설도 있습니다. 하지만 오소독스 랍비 마빈 안텔만(Marvin Antelman)은 "프랑켄베르거 친부설"이 진실을 감추려는 의도에서 뿌려진 루머라고 보고 있습니다.

침례시 마리아가 친부의 이름을 밝히질 않아 알로이스(Alois)는 사생아로 기록되고, 아버지 대신 어머니의 이름을 따와 알로이스 쉬클그루버(Alois Schicklgruber)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알로이스가 5살이 되었을 때, 마리아 쉬클그루버는 3살 연상의 동네 청년 요한 게오르그 히들러(Johann Georg Hidler)와 결혼하고, 후일 나치 제국은 두 사람이 아이를 먼저 낳고 나중에 결혼했다고 주장하면서, 요한 게오르그 히들러를 알로이스의 친아버지이자 아돌프 히틀러의 친할아버지로 공식 발표합니다.

친모 클라라 

성장한 알로이스 쉬클그루버는 상처와 이혼 끝에 3번째로 자신의 조카 클라라 푈즐(Clara Polzl)과 결혼하면서, 양부 히들러의 이름을 살짝 고쳐 알로이스 하틀러(Alois Hitler)로 개명합니다. 또는 장모의 처녀적 이름을 빌려왔다는 설도 있습니다. 쉬클그루버를 히틀러로 고치는 바람에, 알로이스의 친부는 누구인지 매우 알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어릴 적 사망한 아이들을 제외하고 알로이스 히틀러와 클라라 푈즐 사이의 자녀는 구스타프, 아돌프, 폴라 3명입니다. 아돌프 히틀러는 독일인이 아니라 오스트리아인입니다.

만약 알로이스 히틀러가 로스차일드 가문의 사생아가 맞다면, 아돌프 히틀러는 살로몬 마이어 로스차일드 또는 안셀름 살로몬 로스차일드의 손자가 됩니다.

독일계 유대인 Robin de Ruiter에 의하면, 아돌프 히틀러의 친모 클라라 푈즐은 Strones 유대 가문의 Pollack과 Decker의 후손인 사바테안 프랑키스트 유대인(Sabbatean Frankist Jews)입니다. 어머니가 유대인이어야 유대인으로 인정받는 전통이 있습니다.

친부 아브라함

1974년부터 2004년까지 30년 동안 미국 데이얀 랍비 대법원장을 지낸 저명한 오소독스 랍비 마빈 S. 안텔만(Marvin S. Antelman)은 2차 대전에서 일가족 60여명을 잃고 충격을 받은 후 그 원인을 알아보기 위해 현대사를 집중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나치의 배후를 밝혀낸 마빈 안텔만은 나치와 함께 홀로코스트를 일으킨 유대인 프랑키스트 전범 헨리 키신저, 시몬 페레스, 이츠하크 라빈을 파문하였습니다.

"히틀러의 부모 알로이스 쉬클그루버와 클라라 푈즐 모두 주류 유대교에서 가짜 메시아로 간주되는 제이콥 프랑크(Jacob Frank)와 사바타이 츠비(Sabbatai Tzvi, 또는 샤바타이 제비 Shabbatai Zevi)의 가르침에 기반한 사바티안 프랑키스트 운동에 관련되어 있다. 히틀러의 부모는 이 운동의 종교 의식에 최소한 한 번 이상 참석했다. 회원들간의 섹스와 관련된 의식이다. 이 의식은 '티샤 비브(Tisha B'Av)' 또는 'Av의 9번째 날'로 알려진 휴일에 개최된다."

"유대교에서 티샤 비브는 첫번째와 두번째 신전의 파괴를 추모하는 유대 달력상 가장 어두운 날이다. 유대인들은 단식과 기도를 하며 장엄한 이 날을 지낸다. 그러나 사바테안 프랑키스트들은 기쁨과 섹스로 축하한다. 이 날은 사바테아니즘의 창시자 사바타이 츠비의 생일이기 때문이다. 탈무드에 의하면 메시아는 티샤 비브에 탄생한다."

"사바타이는 17세기 주류 유대 사회에서 메시아로 인정받았으며, 그의 명성은 약 18년간 지속되었다. 사바타이 츠비의 이슬람 개종에도 불구하고 그의 메시아적 임무에 근거하고 있는 프랑키스트파는 이 날을 근친상간과 불륜의 성교 의식으로 축하한다."

"아돌프 히틀러는 1888년 7월 20일 비엔나에서 열린 프랑키스트들의 'Av의 9번째 날' 축하 의식에서 수태되었다. 히틀러는 9개월 후, 1889년 4월 20일에 태어났다. 아돌프 히틀러의 생물학적 아버지는 1888년 7월 20일의 그 의식에 참석하였다. 그는 헝가리의 유대인 거부이며, 1861년에 태어났고 1928년 9월 21일에 사망했다. 그는 뉴욕에서 사망했으며, 첫 이름은 '아브라함'이다."

"맹세를 하고 증언을 듣는 과정에서, 아브라함의 후손 중 하나는 미국의 오소독스 유대 사회에서 매우 유명한 인물이기 때문에 그들이 당황하도록 하지 않기 위해서, 친부의 성을 공개하지 않을 것을 약속하였다."

"히틀러가 세계 무대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도록 만든 건, 그의 '양부' 알로이스 쉬클그루버의 친부의 친척들(로스차일드 가문)이었다. 아브라함의 전체 이름을 공개하는 건 히틀러가 누구였고 그가 불러온 세계의 참사를 이해하는 데 큰 의미는 없다. 히틀러와 로스차일드 간의 관계가 프리메이슨 일루미나티의 핵심인 사바테안 프랑키스트들의 목적과 수법의 모든 것을 설명해 준다는 것을 현명한 독자들이라면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을 것이다."

Rabbi Marvin S. Antelman, To Eliminate The Opiate Volume 2, 207p

Sabbateans Satanism NaZis and Zionism.avi

 

 


이스라엘은 볼셰비키 국가

 

아돌프 히틀러가 프랑켄베르거라는 이름의 유대인으로부터 비롯된 유대 혈통을 가지고 있다는 들썩거림이 있다. 프랑켄베르거는 히틀러의 외할머니 마리아 안나 쉬클그루버(1795-1847)와 관계를 가진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뉴욕의 유명한 변호사 제롤드 모굴라스는 이 이론을 옹호하는 "토르케마다 재판관"이라는 책을 쓰기도 했다. 그러나 여기에는 진실이 없다.

히틀러는 사바테안 프랑키스트 클라라 푈즐과 한 사바티안 프랑키스트(1861. 9. 21-1928)간의 불륜 관계에서 태어났다. 프랑키스트 사바티안들은
'Av의 9번째 날'에 제식을 가졌다. 유대인들에게는 첫번째와 두번째 신전의 파괴를 기념하는 단식의 날이다. 이날 밤, 사바티안들은 비밀히 근친상간과 불륜의 밤을 보낸다. 그러나, 그날 밤 클라라가 인위적인 임신을 하였다는 꾸준한 루머가 있다.

유대 달력은 음력이기 때문에, 1888년
'Av의 9번째 날'은 7월이나 8월이다. 히틀러의 수태일로 예상되는 1888년 'Av의 9번째 날'을 달력에서 찾아보면 1888년 7월 20일에 떨어진다. 히틀러의 탄생일인 1889년 4월 20일로부터 대략 9개월 전이다.

히틀러가 유대 혈통을 가지고 있다는 주장을 다룬 1933년 뉴욕 타임스 기사는 히틀러 외할머니의 Strones 가문에 유대인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주장을 견지하고 있다. 1850년대 비엔나에 살던 스트로네스 가문은 유대교에서 카톨릭으로 개종하였다. 랍비 법원의 증언에 의하면, 히틀러의 친부 뿐만이 아니라 그의 외증조 할아버지 즉 클라라의 외할아버지 또한 사바테안이다. 클라라의 어머니는 그녀의 아버지가 혼외로 낳은 자식이다.

이츠하크 라빈의 모친 Rosa "the Red" Cohen은 레닌 시절의 소비에트 관료였으며, 정치적 암살의
'Narodni Volya' 정책을 옹호하는 이스라엘 공산주의자들의 카리스마적 지도자였다. 라빈은 반공산주의자 유대인 동료들을 냉혹하게 살해하였다.

폴란드의 이단
'붉은 카발라' 사바테안 프랑키스트들은 부부교환의 제식을 벌였다. 1756년 시완(Sivan) 20일 유럽의 랍비 대법원은 "이 여자들은 창녀들이며, 그들의 자녀들은 다음 10세대 동안 사생아들이다"라는 판결과 함께 그들을 파문하였다.

마이어로 이름지어진 두 유대인, 즉 가스실과 화장시설 개발자인 카톨릭 신학자 요제프 마이어 교수와 유대인들을 증오하는 살리 마이어는
'젊은 시온주의 운동' Shomer Hatzair 의 공산주의자 동료 Nathan Schwalb 와 함께 나치에게 살해당할 12만 유대인들에 대한 구조 임무를 무산시켰다.

1845년, 사바테안 프랑키스트 제카리아 프랑켈이 설립한
'보수 운동(Conservative)'에는 더러운 비밀들이 있다. Solomon Shechter 의 랍비(스승)였던 사바테안 프랑키스트 공산주의 혁명가 아돌프 젤리네크와 그의 비엔나 Bet Midrash 동료들, 오스트리아 반유대주의당은 히틀러의 멘토였다.

스탈린은 반유대주의를 조장했고, 1939년 히틀러와 불가침 조약을 맺었다. 이것은 유대인 공산주의자들을 극도로 화나게 하였다. 스탈린의 암살단은 이디시어로 발간되는 뉴욕의 공산주의 신문 프라이하이트를 간판으로 이용하였고, 결국 트로츠키를 암살하였다


Edwin Canham, 세계 평화 재단, 엘마 루이스, Farakhan, CFR, 유엔 설립자 앨저 히스, 일본 적군파, 팔레스타인 해방기구는 서로 깊은 관계를 갖고 있다.

 

외교협회 CFR은 히틀러를 지원했고, 헤즈볼라 및 다른 테러리스트를 북돋웠다.

'뉴 에이지' 이교도들의 도움으로 고르바초프 재단은 21세기 종교적 근본주의자들을 시작으로 하는 세계 인구 1/4의 제거를 계획하였다.

Rabbi Marvin Antelman - The Sabbatean-Frankists

 

 

여왕의 삼촌

 

벤자민 풀포드에 의하면, 아돌프 히틀러는 엘리자베스 2세의 삼촌입니다. 왕실에는 히틀러를 포함하여 수많은 사생아가 있으며, 이 후손들은 신분을 감추고 주로 정보 기관 요원으로 활약하면서 뉴 월드 오더 구축을 위해 뛰고 있다 합니다.

 

에드워드 8세 '윈저 공작'의 사생아 에밀리 엘리자베스 캐더린 죠세핀 매리 윈저-크래그에 의하면, 엘리자베스 여왕의 아버지 조지 6세는 아돌프 히틀러의 이복 형제이다. (기존에 알려진 아버지라는 루머는 거짓이다).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히틀러는 에드워드 8세보다 5년 일찍 1889년에 태어났다. 빅토리아 여왕이 좋아했던 조지(5세)가 23살때였고, 메리 테크(조지 3세의 증손녀)와 결혼하기 훨씬 전이었다. 히틀러는 바바리아에서 장자로 성장했고, 이상주의자 카이저 빌헬름은 그와 접촉하고 있었다. 윈저 공작은 1937년 독일에서 그의 형을 처음으로 만났다. 그러나, 나는 히틀러가 1920년대 영국이 심은 첩자라는 것을 증명하는 서류를 갖고 있다. 때문에 그는 아마도 월리스 심슨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녀는 덧붙인다. "에드워드 8세 윈저 공작은 내쫓겼고, 희생양이 되었고, 파산했고, 망명했다. 그리고 다시 보지 않을 놈이 되었다. 그는 모르고 있었지만, 그의 부인은 그의 아버지 조지 5세가 심어 놓은 MI5 요원이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계속한다. "에드워드 8세(그녀의 아버지)는 그가 좋아하는 연인과의 결혼이 허락되지 않았다. 오로지 왕족만이 허락되었다. 때문에, 당연히도, 검은 정보 요원은 대단히 매력적이었다. 단지 결혼 가능한 여성들로부터 고립되어 있었기 때문이다모든 이야기는 아버지가 잉글랜드에서 쫓겨나기 전에 거주하던 왕궁 근처의 왕립 기록물 보관소의 윈저 도서관에 기록되어 있다."

코케인 중독자 불량배 조지 5세에 의해서 카이저 빌헬름은 망명했고, 짜르 니콜라스는 살해당했다. 히틀러의 출생 비밀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모두 사촌이다!

이 정보들은 히틀러가 로스차일드 남작이라는 오스트리아 의회 조사단과 히틀러 주변 인물들의 증언과는 대치된다. 영국 기관들은 즉각 증거가 사라지기 전 윈저-크래그 여사의 주장을 확인하기 위해 왕립 기록물 보관소를 점검했다. 엘리자베스 여왕의 한 사촌은 이렇게 말한다. "여러 여성과 희롱거리는 것은 왕의 특권이며여기서 태어나는 아이들은 남아프리카로 보내진다."

"남아프리카 아우트와니크 산맥의 나이즈나 숲에 가면 '조지'라고 불리는 곳이 있다. 거기에는 '렉스 가문'이라고 있다. 남아프리카의 힐리빌리(산악 지대 주민, 산골 촌놈들)이다. 이들이 세계에서 가장 왕족에 가까운 혈통을 가지고 있으며, 가장 우수한 대학으로 보내진다."

Queen Elizabeth is Hitler's Niece says King Edward's daughter

Uncovered film shows Queen Elizabeth II rehearsing Nazi salute as a child (VIDEO) ? RT UK

 



라이오넬 네이썬 로스차일드의 손자

영국 역사가 그렉 할렛에 의하면, 히틀러는 나치즘을 독일에 심기 위하여, 독일과 오소독스 유대인들을 동시에 파괴하기 위하여, 시온주의가 나치즘을 극복하는 모습을 연출하기 위하여, 이스라엘을 세울 명분을 만들기 위하여, '사바테안 유대인들의 손아귀에 있는' 영국 왕실이 심은 첩자입니다. 나치의 유대인 학살은 독일에게 씻을 수 없는 죄를 안겨 독일을 제압하기 위하여, 시온주의에 반대하는 유대인들을 제거하기 위하여, 유대인에 대한 동정심을 유발하기 위하여, 예루살렘을 탈취하기 위하여 이루어졌습니다.

 

"프리메이슨리(MI6, 007 제임스 본드)란 영국 왕실의 닌자 조직이다. 왕실을 보호하고, 혈통을 관리하는 것이 그 임무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큰 거짓말이 하나 있다. 현재 왕실은 가짜이다. 왕실의 가장 큰 채권자인 로스차일드는 빅토리아 여왕과도 관계를 가질 수 있는 권한을 얻었다. 그들은 마약을 먹여 여왕의 정상적인 생활을 방해했으며, 여왕은 40년 동안 왕궁을 벗어나지 않은 은둔자였다. 여왕은 수많은 남성들과의 엽색 행각에 집중했고, 혼의로 아이 9명을 출산했다."

"빅토리아 여왕과 라이오넬 네이썬 로스차일드 사이의 아들이 에드워드 7세이며, 정통성이 없는 그가 왕위를 물려받았다. 20세기 모든 비극은 에드워드 7세의 작품이다. 에드워드 7세의 사생아가 윈스턴 처칠이며, 엘리자베스 2세는 처칠의 딸이다."

"라이오넬 네이썬 로스차일드의 또 다른 사생아가 알로이스 히틀러이며, 알로이스의 아들이 아돌프 히틀러이다. 아돌프 히틀러는 라이오넬 네이썬 로스차일드의 손자인 켄트 공작(Duke of Kent)이며, 엘리자베스 2세의 친부 처칠과는 사촌간이다. 엘리자베스 2세와 에블린 로스차일드에게는 삼촌이 된다."

"아돌프 히틀러와 그의 제자인 알폰소 로스차일드의 아들 죠세프 스탈린은 타비스톡 연구소에서 정밀 훈련을 받은 후에 각각 독일과 러시아에 심어졌다. 영국의 핵심 군사 정보를 독일에 넘겨준 건 에드워드 8세 윈저 공작의 연인 월리스 심슨 부인이며, 왕실은 독일군의 런던 폭격을 원했다. 히틀러의 영국 여권에는 유대인으로 기록되어 있다."

Hitler was a British Agent
Hitler British Agent
The Abdication of ‘Queen’ Elizabeth II
Hitler Was A Rothschild - Ο Αδ?λφο? Χιτλερ ηταν ενα? Ρ?τσιλντ


 

 



영국 첩자

독일계 유대인 역사가 Robin de Ruiter : 히틀러는 타비스톡 연구소(Tavistock Institute)의 전신인 영국 군사 심리전 학교에서 1911년 1월부터 1913년 5월까지 특수 훈련을 받았다. 히틀러는 이 학교에서 19세기 모세스 헤스와 티어도어 허즐에 의해 다듬어진 세계 정복 계획 임무를 부여받았다.

히틀러의 이복형 알로이스 히틀러 주니어와 결혼한
Bridget Dowling 은 그녀의 회고록 "리버풀의 히틀러들"에서 자신의 부부와 히틀러는 1912년 11월부터 1913년 4월까지 리버풀에서 함께 살았다고 기술하고 있다.

히틀러가 유대인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어차피 나치의 사상을 만들어 낸 알프레드 로젠버그는 라트비아 유대인이다. 랍비 Wooton에 의하면 나치즘은 탈무드 유대교이다. 나치의 인종법은 사실 유대인의 인종법이다. "선택받은 민족"이라는 이스라엘의 주장은 나치의 "순수한 아리안 인종"이라는 논리와 그 기원이 같다. 동전의 양면이다.

게다가 나치와 볼셰비키의 고위직은 대부분 유대인이다. 공산주의와 마찬가지로 나치즘은 유대인 운동이며, 모든 자금은 유대인들이 지원했다.

1-2차 대전은 유대인들이 각각 영국인, 미국인, 러시아인, 독일인의 가면을 쓰고 이스라엘을 만들기 위해서, 러시아와 독일을 파괴하기 위해서, 세계 인구를 줄이기 위해서, 뉴 월드 오더를 이루기 위해서 만든 전쟁이다. 러시아와 독일은 자신을 파괴하려는 적들을 위해 싸웠다.

아랍 테러리스트들도 아랍을 파괴하려는 적들을 위해 싸운다. 이스라엘인들은 유대인을 멸종하기 위한 시오니즘을 격렬히 지지한다. "러시아가 공격받는 이유는 볼셰비즘을 버리고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유대 자본 앞잡이

히틀러는 로스차일드가 보낸 유대인 타이프라이터를 썼다. 1924년 란트스베르크 감옥에서 집필한 그의 자서전 "나의 투쟁(Mein Kampf)"은 루돌프 헤스와 에밀 모리스가 대작한 것이다. 히틀러는 국제 유대 자본가들에 반대하는 척 시늉을 했지만, 사실은 그들의 앞잡이이다. - Hitler Used Rothschild Banker's Typewriter


"여타 나치 고위층들과 마찬가지로 히틀러 또한 크립토 유대인이며 동성애자였다." - 헨리 매코우, Hitler Was a Godsend to Israel

 

 



히틀러의 DNA


영국 언론 Daily Mail의 2010. 8. 24일자 기사 "Hitler was descended from Jews and Africans" DNA tests reveal 에 의하면, 아돌프 히틀러는 유대 혈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최근의 DNA 조사에 의하면, 아돌프 히틀러는 아프리카 혈통임에 동시에 유대인일 수 있다. 이 나치 지도자의 친척들에게서 채취한 샘플들은 그가 멸종시키려 했던 "열등한 인종"과 생물학적으로 연결된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올해 초, 벨기에 언론인 장 파울 뮬더와 역사학자 마르크 베미렌은 총통의 친척 39명의 DNA를 추적하였다. 총통의 비밀 사촌으로 밝혀진 한 오스트리아 농부도 이 조사에 포함되었다. 이 농부는 'Norbert H'로 불리고 있다.

벨기에 매거진 
Knack는 이들에게서 채취한 타액 샘플이 아마도 히틀러가 원하지 않았을 법한 조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강력하게 보여준다고 보도했다. '하플로그룹 E1b1b1' (Y-DNA)으로 불리는 염색체는 독일과 서유럽에서는 매우 드문 것이다. 베미렌은 이 염색체가 보통 모로코의 베르베르족, 알제리아, 리비아, 튀니지아와 함께 아쉬케나지 유대인과 세파르디 유대인에게서 발견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뮬더는 Knack에 다음과 같이 기고했다"히틀러는 그가 경멸했던 사람들과 연결되는 것으로 가정할 수 있다."

대략 아쉬케나지 염색체의 18-20%와 세파르디 염색체의 8.6-30%를 차지하는 '하플로그룹 E1b1b1'는 유대인 기본 혈통 중의 하나이다. 히틀러의 북아프리카 기원에 대한 가능성에 동의했던 유전학자 로니 데코르트는 "이것은 놀라운 결과"라고 말했다. 그는 이 결과에 대해서 반대자들이나 지지자들 각각에서 나올 반응을 예상하기는 어렵다고 덧붙였다. Knack은 매우 엄격한 환경에서 이루어진 DNA 검사였다고 밝혔다.


히틀러의 유전자 '하플로그룹 E1b1b1'는 모로코의 베르베르족에게서 흔히 발견된다


'하플로그룹 E1b1b1'?는 모로코, 스페인, 포르투갈에서 세파르디로 불리는 유대인에게서 흔히 발견된다


히틀러의 유대 혈통에 대한 학자들의 주장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히틀러의 아버지 "알로이스" "마리아 쉬클그루버"라고 불리는 가정부와 "프랑켄베르거"로 불리는 19살 유대 청년 사이의 사생아로 알려져 왔다. 만약 이 추측이 맞다면, 홀로코스트를 일으킨 히틀러는 1/4 유대인이다.

히틀러의 조카 윌리엄 패트릭 히틀러(윌리엄 패트릭 스튜어트 휴스턴으로 개명)는 알로이스 히틀러의 부모 문제와 관련하여 그의 삼촌을 협박했다고 보고되고 있다. 히틀러로부터 조사를 의뢰받은 개인 변호사 한스 프랑크는 2차 대전 발발 직전 그 같은 주장은 아무 근거가 없다고 발표하였다.

루뱅 카톨릭 대학의 로니 데코르트는 덧붙였다
"히틀러는 이 같은 결과에 기뻐하지 않을 것이다. 인종과 혈통이 중심적인 나치의 개념에 비유해 보았을 때, 이것은 놀랍다. 혈통에 대한 히틀러의 우려는 정당하지 않았다고 볼 수 없다. 그는 분명히 순수하지도 않고 아리안도 아니다."


히틀러의 조카 손자 미국인 알렉산더 스튜어트 휴스턴(윌리엄 패트릭 히틀러의 아들)
DNA도 채취되었다. 뮬더는 그가 사용한 냅킨을 떨어뜨릴 때까지 7일 동안 추적하였는데, 이 냅킨이 그와 히틀러의 오스트리아 사촌간의 관계를 보여주며, 히틀러의 불구대천지 원수와도 연결되고 있다고 하였다.

이스라엘 언론 하레츠의 2010년 8월 24일자 기사 DNA-tests-reveal-Hitler-s-Jewish-and-African-roots 역시 아돌프 히틀러의 유대 혈통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이번 주 벨기에에서 발표된 새로운 발견에 의하면, 아돌프 히틀러는 그의 "아리안" 동포들보다는 그가 멸종시키려 했던 "열등한 인종"에 더 가까울 수 있다. 플라망語 잡지 Knack이 실시한 연구에서 언론인 장 파울 뮬더는 총통의 고향 오스트리아와 미국에 살고있는 그의 친척들을 추적하였다.

유전학자 로니 데코르트는 Knack과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연구의 결과는 놀랍다. 그러나 히틀러는 기쁘지 않을 것이다."


유전학자들은 하플로그룹으로 불리는 염색체 그룹을 인종을 정의하는 "유전 지문"으로 인식하고 있다. 뮬더에 의하면, 아돌프 히틀러의 지배적 유전자 하플로그룹 E1b1b1는 서유럽에서는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리스와 시실리25% 정도에서는 매우 강하다. 이 유전자는 아프리카에서 온 것이 분명하다. 북아프리카의 50-80% 정도는 이 유전자를 가지고 있으며, 특히 모로코, 알제리아, 튀니지아, 소말리아의 베르베르족에게서 만연한 것이다.

데코르트는 이렇게 말한다. "더욱 놀라운 것은, 히틀러의 유전자 중 2번째로 지배적인 하플로그룹은 아쉬케나지 유대인에게 가장 일반적인 것이다. 혈통과 인종을 극단적으로 우선시했던 나치의 관점에서 본다면 이것은 매우 놀라운 것이다."


Knack은 히틀러가 자살하였다고 알려진 베를린 벙커에서 회수한 피에 젗은 천에 쌓여 있는 한 남성의 턱뼈를 공개해 줄 것을 러시아 정부에 요청하기로 하였다. 이 턱뼈는 "나치 수퍼맨" 창조를 꿈꾸었던 총통의 것으로 믿어지고 있다.

데코르트는 이렇게 말했다. "현대 과학에서 더 이상의 종족은 없다. 이 같은 유형의 수퍼맨과 순수성을 완벽히 하려던 나치의 번식 프로그램은 완전한 조작이다."

샤바타이 츠비의 환생

루뱅 카톨릭 대학의 유전학자 로니 데코르트에 의하면,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와 아돌프 히틀러는 아쉬케나지와 세파르디 유대인에게서 발견되는 'Y-DNA 하플로그룹 E1b1b1'에 속한다. 독일인과 서유럽에서는 거의 발견되지 않는 것이다. 사바타이 츠비는 1626년 '티샤 (Tisha B'Av)' 또는 'Av의 9번째 날'에 태어났다. 탈무드에 의하면, 이 날은 메시아가 탄생하는 날이다.

사바타이 츠비는 그리스
Patras에 살던 Romaniotes 유대인이다. 그가 살던 Patras는 유럽에서 '하플로그룹 E1b1b1'가 가장 강하게 나타나는 곳이다. 로니 데코르트에 의하면, 이 유전자는 사바타이 츠비가 살고 있던 그리스 뿐만 아니라 시실리에서도 발견된다.

 

사바타이 츠비의 어머니 이름은 '클라라'였다. 아돌프 히틀러의 어머니도 '클라라'이다.

 


하플로그룹 E1b1b1 유럽 지도            


클로즈업                        


 
그리스 파트라스


유럽과 러시아 정복에 나선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홀로코스트의 아돌프 히틀러, 아르메니아인 대학살을 일으킨 터키 건국의 아버지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 뉴 월드 오더의 주역 로스차일드 가문 모두 사바타이 츠비의 후손으로 의심되고 있다.

Was Hitler Related To Shabbatai Tzvi?
Hitler Had Jewish DNA




에바 브라운

총통과 그의 연인 에바 브라운(Eva Braun)이 자살한 것으로 알려진 베를린 벙커에서 여성의 빗솔이 발견되었다. 이 빗솔에서 나온 머리카락은 에바 브라운의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이 머리카락의 DNA 검사 결과는 놀랍다. 그녀가 인지하고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조사 결과에 의하면 그녀는
아쉬케나지 유대인이다.

조카 윌리엄 패트릭 히틀러

아돌프 히틀러의 이복형 알로이스 히틀러 쥬니어와 브리짓 다울링 사이에서 태어난 총통의 조카 윌리엄 패트릭 히틀러는 1933년 아돌프 히틀러가 총통이 된 후, 삼촌이 마련해준 자리에 불만을 품고 삼촌의 출생 비밀을 폭로하겠다고 위협했다. 2차 대전 발발 직전 1938년, 미국 잡지 'LOOK'에 "내가 삼촌을 싫어하는 이유"라는 글을 쓰기도 했다. 짭짤한 소득을 올린 윌리엄 패트릭 히틀러는, 전쟁 발발 직전 미국으로 이민해 버렸다.  

2차 대전 발발 직전, 어머니 브리짓 다울링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한 윌리엄 패트릭 히틀러는,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소원을 올려 과거를 지우고 미해군에 자원하였다. 입대 수속을 하는 그에게 한 병무청 직원이 "히틀러! 만나서 반갑습니다. 저는 헤스(루돌프 헤스의 가족 누군가)라고 합니다."라고 했다는 일화가 있다. 전쟁이 끝나고 해군을 떠난 뒤, 히틀러라는 성을 '스튜어트 휴스턴'으로 개명하였다. 그의 아들 '알렉산더 스튜어트 휴스턴'은 DNA 검사에서 유대인으로 판명되었다.


히틀러의 조카 손자 알렉산더 스튜어트 휴스턴의 DNA 검사 결과 유대인으로 판명되었다


이복 누나 안젤라 히틀러

히틀러의 이복 누나 안젤라 히틀러(Angela Hitler)는 2차 대전 발발 이전, 유대인만 일할 수 있는 멘사 유대인 학교(Mensa Academia Judaica) 기숙사감으로 일한 적이 있다.Sabbateans Satanism NaZis and Zionism.avi

카트린 히믈러

툴레 협회게쉬타포, 친위대 수장, 홀로코스트 기획자, S.S. Circle of Friends를 조직하여 월 스트리트 자금을 지원받았던 나치 핵심 중의 핵심 '홀로코스트의 상징' 하인리히 히믈러의 조카 손녀 카트린 히믈러는, 후일 이스라엘 국적의 유대인과 결혼했다. 그러나 이스라엘 법에 의하면, 이스라엘 국적의 유대인과 비유대인의 결혼은 금지되어 있다.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

친위대장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는 히브리어를 유창하게 구사했으며, 18회의 팔레스타인 출장을 통해서 후일 이스라엘 총리가 된 데이비드 벤-구리온 등의 시오니스트들과 홀로코스트에 대한 구체적인 실행 계획을 협의하였다.

"충분히 큰 거짓말을 꾸준히 계속해서 반복하면, 사람들은 결국 믿게 된다." - 요세프 괴벨스

"충히 자주 반복되는 거짓말은 자연스럽게 진실이 된다." - 블라디미르 레닌

"적을 조종는 가장 최선의 방법은 우리가 직접 이끄는 것이다." - 블라디미르 레닌

"적어도 우리 조직 중의 하나는 우리와는 정반대의 극상성을 가진 것으로 보일 것이다. 우리의 진정한 적들은 이 가짜 적을 자신의 심장에 받아 들일 것이며, 우리에게 그들의 카드를 내보일 것이다." - 시온의 장로들의 의정서 12.11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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