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기에 시작된 자유교회의 전통이 근대사회에 이르러 기독교의 중요한 한 축을 형성할 수 있게 된 것은 17세기 영국에서 시작된 침례교(Baptists)에 의해서였다.
첫 번째 침례교회는 당시의 대표적인 분리주의교회들 중의 하나로 존 로빈슨이 목회하였던 게인스보로교회의 한 무리에서 비롯되었다. 1607년경에 그 교회는 평화적 분리를 하였는데, 새로 분리된 스크루비교회는 로빈슨이 주도하였고 남은 게인스보로교회는 그 교회에 나중에 가입했던 존 스미스가 주도하였다. 이 두 교회는 비슷한 시기에 박해를 피하여 네덜란드로 이주를 하게 되었는데 첫 번째 침례교회는 스미스의 무리들이 암스테르담에서 '신자의 교회'를 설립하면서 시작되었다.
그들은 유아세례가 아니라
자발적 신앙고백을 근거로 하는 신자의 침례를 통하여 새로운 교회를 세웠다.
영국 땅에서의 최초의 침례교회는 1612년경에 이들 중에서 토마스 헬위스와
그의 일행이 다시 영국으로 돌아가서 런던에 설립한 교회였다.
이 교회는 나중에 '일반침례교회'로 알려졌는데
그것은 그들이 그리스도의 피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흘려졌다고 믿는
'일반속죄론'을 받아들였기 때문이었다.
침례교의 또 하나의 시작은 헨리 제이콥이라는
반(半)분리주의 청교도가 세운 JLJ 교회에서 비롯되었다.1) 1616년에 설립된 이 교회는 아직 침례교회가 아니었고 국교회로부터 완전히 분리되지 않았던 독립회중교회였다. 1630년대에 이 교회로부터 몇 차례의 분리의 사건들이 있었는데, 그 중에 1638년에 존 스필스베리를 중심으로 분리해 나간 무리들이 구체적으로 유아세례를 반대하고 신자의 침례를 주장하면서 새로운 교회를 설립한 것이 또 다른 침례교의 시작이 되었다.
이 무리는 당시 영국 청교도의 칼빈주의적 성향에 따라
그리스도의 피는 특별히 택자를 위해서만 흘려졌다고 믿는
'특수속죄론'을 주장하였기 때문에 '특수침례교'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영국의 일반침례교와 특수침례교는 1891년에 통합하기까지 각각 독립적으로 발전하였으며, 신학적으로 칼빈주의와 아르미니우스 주의의 뚜렷한 차이점을 가지고 있었다. 두 교단은 박해가 극심했던 17세기에는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다가 1689년의 '종교관용령' 이후부터 18세기 전반부까지 내부적 진통을 겪으면서 쇠퇴하는 위기에 처하였다. 반전이 일어난 것은 웨슬리의 부흥운동에 자극을 받으면서였다. 특히 영국 침례교는 1792년에 설립된 '침례교 선교회'와 윌리엄 캐리의 활약으로 근대 개신교 선교운동의 기폭제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1891년의 양교단의 통합은 신학적 차이를 극복한 쾌거였다.
미국의 침례교는 주로 영국에서 건너온 침례교도들에 의하여 세워졌는데 최초의 침례교회는 1639년에 로저 윌리엄스가 설립한 로드아일랜드의 프로비던스 교회였다. 18세기 초까지 미국의 침례교는 식민지 곳곳에 산발적으로 세워진 독립된 소수의 지역교회들에 불과하였으나, 18세기의 대각성운동 이후 회중교회에서 넘어온 자들에 의하여 남부와 북부에서 급속도로 성장하였고 1800년경에는 신대륙에서 가장 큰 교단이 되기도 하였다. 1814년에는 해외선교를 목적으로 하는 전국 단위의 총회가 형성되었으나 다른 교단과 마찬가지로 노예제도에 대한 찬반 갈등으로 1845년에 남침례교와 북침례교로 분열하였다.
두 교단은 지금까지 독립적으로 발전해 왔는데, 20세기에 들어와서 남침례교는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루어 미국에서 단일 개신교 교단으로는 최대의 교단을 형성하기에 이르렀다. 유럽대륙에서 침례교는 19세기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본격적으로 설립되기 시작했는데, 영국과 미국의 침례교회들의 선교활동과 함께 '대륙 침례교의 아버지'라고 일컬어지는 요한 온켄과 함부르크 침례교회의 헌신적 선교사역의 결과에 기인하였다.
한국에서는 19세기 말부터 말콤 펜윅이라는 독립 선교사에 의하여 처음으로 침례교가 시작되었으며,
미국의 장로교회는 영국과 스코틀랜드를 비롯한 유럽의 각 나라에서 이민 온 자들에 의하여 시작되었는데, 주로 중부 식민지에서 발전하였다. 그리고 19세기 초에는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교단 중 하나가 되었지만, 신학적 노선과 노예제도를 둘러싼 갈등으로 남북 장로교로 나뉘고 말았다. 그들은 여러 차례 통합을 위한 노력을 하였으나 120여 년 뒤인 1983년에 이르러 드디어 '미합중국 장로교회(PCUSA)'로 통합하게 되었다.
한국의 장로교는 1885년 미국 북장로교의 선교사 언더우드의 도착으로 시작되었는데
그 직후에 호주 장로교, 남장로교, 캐나다 장로교에서도
각각 선교사들을 파송함에 따라 서로간의 선교적 마찰이 생기게 되었다. 이를 해결하는 방안으로 '선교사공의회'를 조직(1893)하고 선교구역을 분할하였다.
이 네 선교부는 결국 1907년 평양 장대현교회에 함께 모여서 '독노회'를 설립하면서 단일교단을 형성하였고 오늘날 한국 장로교회의 기틀을 마련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