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우정 그리고 오디오
참으로 부지런히 사는 친구가 있다. 고딩 시절에 만났으니 우정의 세월도 어느덧 40년 다 되어간다. 그 친구가 낮에는 회사에 다니고 저녁에는 사회인 야구 선수로 활동하고 주말에는 고향집에 가서 농사를 짓는다. 그렇게 바쁘게 사는 친구가 내가 어려운 상황에 처하자 먼 길을 오가며 나를 도와주었다. 덕분에 나도 포기하지 않고 용기를 낼 수 있었다.
그가 보여준 진득한 우정에 대해 약간이나마 보답을 하고 싶었다. 뭐가 좋을까 고민을 좀 해봤는데, 열심히 살아온 그 친구에게 조금은 릴렉스한 시간이 필요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이라도 음악을 들으며 여유를 즐겨보면 또다른 활력소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마침 그 친구의 와이프가 클래식음악을 좋아한다고 하니 둘이서 함께 음악을 즐길 수 있도록 오디오 한 세트를 마련해 주기로 했다.
그런데, 그렇게 오디오를 한 세트 구성하는 것이 쉽지 않는 과정이 되고 말았다. 친구가 부담스러움을 느끼지 않는 선에서 한 세트를 마련해야 하겠는데, 그렇다고 해서 사운드에 대한 수준을 너무 낮출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오디오를 조금 안다는 나의 자존심이 그걸 허락하지 않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그것이 단순한 선물이기보다는 진정으로 음악을 즐기고 부부가 함께 시간을 공유하는 매개체가 될 수 있기를 바랬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이유로 인해 제법 많은 탐색과 노력을 기울였고 그 결과로 실속 있는 오디오 한 세트를 갖출 수 있었다.
스피커 : 다인오디오 오디언스 42
사실 중고품을 저렴하게 구입하기는 했지만 상태가 좋지는 않았다. 이 스피커를 구입하러 판매자 집에 방문해서 보니 양쪽 트위터 모두가 많이 찌그러져 있고 좌우 스피커의 음색도 다른 것이 좌우밸런스가 전혀 맞지 않았다.
판매자는 스피커의 소리가 정상적이지 않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듯했다. 판매자가 과거에 하이엔드 오디오기기 회사 대표였고 오디오평론가로도 활동했다고 하던데, 이 정도를 감지하지 못할까 의구심이 들기도 했지만, 문제가 있는 걸 알면서 속여서 팔려는 사람은 아닌 것 같았고 판매가도 합리적이라 생각되었기에 여차하면 트위터를 교체할 생각으로 일단 구입해서 집으로 가져왔다.
상태가 좋지 않았음에도 이 스피커를 선뜻 구입한 것은 Dynaudio 15W75 우퍼의 소리에 대한 기억 때문이었다. 나는 스펜더 HL3/5A와 하베스 HL5를 수년간 사용했었고 여러 종류의 로하스 스피커를 들어보았다. 로하스 스피커 중에서 내게 가장 좋은 소리로 기억되는 것이 하베스 HL5/12A였는데, 여기에 사용된 우퍼 유닛이 Dynaudio 15W75이다. (물론 HL5/12A에 사용된 15W75는 BBC 특주 모델이기는 하다) 5인치라는 작은 사이즈의 우퍼가 저역이 60hz 이하까지 내려가면서 탄력있는 중저역을 들려준다. 다인오디오 오디언스 42는 이 우퍼를 채용한 스피커 중에서 가장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는 제품이다. 그래서, 트위터 상태가 좋지 않았지만 이 우퍼의 가능성을 믿고 구입해 보기로 한 것이다.
이 스피커를 집으로 가져와서 앰프에 연결하고 들어보니 역시나 좌우 스피커의 음색이 다른 것이 확연했다. 특히나 음악소리가 고역대로 올라가면 한 쪽 스피커의 소리가 작게 들리는 것이 좌우 밸런스가 전혀 맞지 않았다.
찌그러진 트위터 때문일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양쪽 트위터를 모두 떼어내서 분해를 해 보았다. 그런데, 콘지가 찌그러진 것도 문제지만 고역의 소리가 작게 나는 트위터의 경우 페로플루이드 용액이 밖으로 나와 콘지와 자석에 끈적이게 묻어 있었다. 여기저기 번진 페로플루이드 용액을 깨끗이 닦아내고 찌그러진 콘지를 적당히 편 후에 다시 조립했다. 그리고나서, 다시 소리를 들어보니 좌우 음색차이가 없어졌고 밸런스도 잘 맞았다. 이후 일주일을 계속해서 들어본 결과 트위터를 교체하지 않아도 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리고, 제법 무게가 나가는 스탠드를 구입해서 이 스피커를 받혀 주었다.
이렇게 해서 제 소리를 찾은 다인 오디언스 42 스피커는 작은 크기에도 불구하고 거실을 가득 채우는 위력을 발휘하였다. 그것도 아주 괜찮은 음질로… 구입한 중고가격을 고려하면 내가 경험해봤던 스피커 중에서 가성비 최강이라고 평할 수 있겠다.
앰프 : 인켈 AX-7030G
이 앰프는 내가 직접 개조한 것으로 순정품 AX-7030에 비하면 두어 단계 윗급이라 할 만큼 괜찮은 소리를 내준다. 개조시 프리/파워 분리가 가능한 구조로 만들었지만 오디오 경험이 거의 없는 친구 입장에서는 일단 인티앰프로 사용하는게 좋을 것 같아서 프리아웃/파워인 단자를 인터케이블로 연결했다. 그리고, 가지고 있던 네오텍의 OFC 스피커케이블에 스피커쪽만 바나나단자를 장착해서 앰프와 스피커를 연결했다.
혹시나 이 글을 보고 비슷한 구성을 하려는 분들을 위해 첨언을 하자면, 거의 비슷한 시스템 구성을 하더라도 순정품 인켈 AX-7030 앰프로는 이 정도의 사운드를 얻을 수 없다는 것이다.
DAC : SMSL M500 Mk2
극강의 가성비로 잘 알려진 SMSL M500의 후속작으로 블루투스 수신 기능이 추가된 모델이다. 운이 좋게도 거의 신품 수준의 중고를 구입할 수 있었다.
SMSL은 가성비가 우수한 DAC로 잘 알려져 있는 중국 오디오 브랜드인데, 가성비와 음질 모두 괜찮은 DAC를 찾는 애호가라면 ES9038Pro를 채용하면서도 400달러 이하에 구입할 수 있는 SU-9, SU-9n 정도를 눈여겨 보면 좋을 것이다. M500 Mk2도 ES9038Pro를 채용하고 있고 SU-9에는 없는 헤드폰앰프가 추가되어 있다. 소리는 근소한 차이로 SU-9이 조금 나은 것 같다.
DAC와 앰프 사이는 오디오플러스의 보급형 인터케이블로 연결하고 컴퓨터와 DAC 사이는 5미터 길이의 USB 케이블로 연결했다.
DAC의 전원케이블로는 내가 OFC선재로 만든 파워케이블을 연결했다. 처음에는 번들 파워케이블을 연결했었는데, 혹시나 하고 비교해서 들어보라고 했더니 친구 와이프가 대번에 소리 차이를 알아보는 바람에 OFC선재 파워케이블까지 덤으로 선물하고 말았다.
소스기기 : 노트북컴퓨터소프트웨어 : foobar2000 + foobar2000 controller
라즈베리파이를 이용한 네트워크플레이어를 마련해 주고 싶었지만, 반도체 수급 문제 여파인지 라즈베리파이를 구입하기가 어려워졌다. 마침 친구에게 오래된 노트북 컴퓨터가 한대 있기에 그걸로 PC-FI 구성을 해 보기로 했다.
FM방송을 통해서도 클래식음악을 들을 수 있도록 KBS Kong을 설치했다. 음악플레이어로는 foobar2000을 설치했고 WASAPI 설정을 하였다. 그리고, 원격제어가 가능하도록 foobar2000 controller 앱을 스마트폰에 설치했는데, Foobar2000 controller를 통해 리모컨처럼 컴퓨터에 있는 foobar2000을 실행할 수 있기 때문에 편리하다.
이렇게 구성한 기기를 우리 집에서 한 달 정도 운용하면서 검증을 마친 이후에 친구 와이프의 생일에 즈음하여 그쪽 집으로 옮겨서 설치를 해 주었다.
설치를 마치고 나서 제일 먼저 감상한 음악은 친구가 가장 좋아한다는 드보르작의 신세계 교향곡 4악장이었다. 혹시나 소리가 안 좋으면 어떡하나 걱정을 했는데, 첫 소리가 나오자마자 그것이 기우임을 알 수 있었다. 공간이 넓어서 그런지 우리집에서 테스트할 때보다 소리가 더 좋았다. 이런 저런 음악을 들어보면서 이 친구 부부가 음악을 즐기기에 괜찮은 정도는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곡으로 친구가 요청한 김광석의 노래를 틀었더니 친구가 하는 말이 가관이다.
“광석이 형이 바로 저기에 있네!”
이렇게 모든 과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와이프와 함께 음악을 즐기며 행복한 미소를 띠고 있는 친구의 얼굴이 그려졌다.
고맙다 친구야.
제목
손만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