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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혼돈에서 잠깨우는 일러스트, 두 장!!
자유자료실 > 상세보기 | 2019-11-19 11:34:09
추천수 1
조회수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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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양원석 [가입일자 : ]

제목

역사의 혼돈에서 잠깨우는 일러스트, 두 장!!
내용






북미 캐나다에 프랑스가 신불란서로 들어선 뒤에 캐나다와 북미동부에 배포되던
프랑스자 신문의 1면입니다.
포트 아서가 seul에 있다고 적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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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동환 2019-11-20 07:25:44
답글

부사로, '단독으로, 홀로' 라는 뜻입니다!!! 1904년 9월 25일 일당 백!!!

임동환 2019-11-20 21:04:33

    원석님! 1~2번 사진기준으로 착오가 있는 듯하여, 덧글 씁니다. 이 신문은 '카나다 프랑세'에서 발행되지는 않고, 파리에서 발행되던 신문이구요, 러일전쟁 당시(1904.2.8~1905.9.5) 내전과 혁명의 와중에 러일 전쟁이 터져, 발트함대가 대서양- 남아프리카-인도양을 거쳐 대한해협(혹은 동해)의 긴 항해(적국이었던 영국과 일본 탓에 수에즈 운하를 통과 하지 못함=영일동맹)끝에 여순항(당시 이름이 Port Arthur 이며, 블라디보스톡항은 여름에만 사용하여, 연중 사용가능한 부동항인 포트 아르투르항으로 도착함)을 일본으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해 작전을 편 것입니다. 러시아 레드베데프 대위가 일당백으로 일본군을 무찌르는 장면을 커리커츄어로, 빠리 편집국에서 그린 것입니다. 당시에는 러시아에 통신사가 없어서, 프랑스의 국영 Havas(아바스) 통신사(현재 AFP 의 전신)와의 협약에 따라, 1904.5.29 발트함대의 패전 소식을 뻬쩨스부르크에 타전한 내용입니다. 이를 1904.9.25 일요일, '르 쁘띠 빠리지엥' 일요판으로 게재한 내용입니다!

2번사진이 '일당백! 메드베데프 대위!' 선정적 제목이지만 200년이상 세계 최강의 해군인 발트함대의 몰락을 패전 1년전에 예견한 기사입니다.

임동환 2019-11-20 21:10:57
답글

정정: 러시아 레베디에프 대위

yws213@empal.com 2019-11-20 22:57:50

    동환님, 댓글과 관심 고맙습니다.
이름만 파리지엔이지 프랑스 전역에 배포되던 신문이랍니다.
발행했다고 적은 내용은 없지 않나요? 배포라고 적었는데요?? ^^
아울러 핵심은 seul 그리고 port arthur 입니다.

임동환 2019-11-21 16:35:27
답글

예, 이 신문은 빠리에서 발행되는 '전국 일간지' 맞습니다. 현재는 폐간됨! 당시에는 배로 1달 걸려 카나다 프랑세(케벡)에 송달 됐다고 하고요, 2번사진 캡션이 일당 백(Un contre Cent!) 몰려오는 일본군과 맞서, 여순항 진지(돈대라고하나요~)를 홀로(seul) 지키는 레베디에프 대위! 이래야 맞을 듯합니다. 일전에 원석님 올리신 글에 프랑스어를 쓰신 걸 제가 봤습니다. 그래서 혹시 전공하셨나~ 궁금했습니다.

열강들이 여순항을 Port Arthur 라고 네이밍한 것도 중국인들은 수치스럽게, 생각해야할터~~~
원석님의 좋은 글, 항상 고맙게 생각합니다.

참고한 책은,
Michel B. Palmer, Des petits journaux aux grandes agences, Paris, Aubier, 1983 프랑스 언론사 학위논문
Cl.Bellanger et al., Histoire generale de la presse francaise, Paris. Puf, 1969~1976 통권 5 중 4권 참조.
두번째 책(거의 사전 수준임)의 18~19세기 언론사(史) 저자가 '언론사' 담당, 제 은사 중 1인이었습니다!!! Pierre Albert

yws213@empal.com 2019-11-21 23:33:04
답글

제가 조선왕조실록이나 다른 서양의 조선에 대한 기록사서를 바탕으로 얻는 정보를 토대로 추론하는 바는 이렇습니다.
왜놈들은 늘 조선을 공략할 생각이 아니고 청으로 진격하는 것이니 길을 터달라고 했었지요.
허나 천자국에게 제후국이 제후국 간의 문제이니 참견치 말라고 한 것은 이치에도 맞지 않는 엄청 중대한 문제였다는 거지요.

조선은 군체제가 상비군이아었습니다.
유사시에만 주변 제후국에서 징발하는 체제였습니다.
상시군을 소유하는 것은 주변의 제후국에게는 엄청난 위협적 요소로 작용하고, 태종 이방원의 태평성대 이후로 200년 간 지구와 대조선 주변에는 전쟁이 발발하지 않았으니 말입니다.
이런 상비군 체제의 약점을 노리며 간을 보듯주변 제후국(봉국)들은 일련의 모의(요란)를 마련하고 요와 란을 일으키며 천자국 대조선을 슬슬 건드리며 대조선 침탈의 밀약을 돌림 노래하듯이 이끌어 펼쳐 나갑니다.
그것이 끊임 없이 이어져서 현재까지 당도하고 있다고 봅니다.
15개 제후국 중에 일본놈들이 책사로서 제일 선두에 나서고, 영국과 프랑스, 스페인이 자금을 조달합니다. 네덜란드는 군사고문을 보내어 그 기틀을 마련합니다. 그 중에 항해 일정에 문제가 생겨서 일이 꼬여서 걸린 것이 벨테브레나 하멜이라고 봅니다.

yws213@empal.com 2019-11-23 02:00:21
답글

https://www.hankyung.com/life/article/2019092413231


와다 교수는 “러일전쟁은 일본이 조선을 지배하고 정복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러시아와 맞닥뜨려 전쟁으로 몰아간 뒤 러시아로부터 ‘조선을 일본의 것으로 한다’는 점을 인정하게 했다”며 “전쟁 직후 일본은 대한제국을 말살하고 조선 전역을 식민지배했다”고 설명했다.

와다 교수는 이 책에서 ‘러시아는 전쟁을 원하지 않았다’는 사실(史實)을 새롭게 밝혀냈다. 베조라브조프 등 러시아 내 개전파도 실제론 전쟁을 회피하고 싶어 했다는 내용이 담긴 의견서를 그가 러시아에서 직접 찾아 확인했다. 이 책은 “전쟁은 일본이 용의주도하게 계획한 범죄였다”는 점을 사료를 통해 제시한다. 그는 “일본이 만주·조선 문제를 두고 전쟁을 피하고 싶어 러시아와 협상했지만 소통의 오해로 전쟁에 이르게 됐다는 기존 일본 학계 설명과 실제 러시아 사료를 통한 연구 결과는 달랐다”고 설명했다. 당시 일본 정부가 대(對)러시아 전략을 결정하는 과정에 영향을 미친 오야마 이와오 육군 총사령관 의견서와 고무라 주타로 외무상 의견서 모두 ‘러시아가 협상에 응하지 않고 거부할 것이기에 전쟁해야 한다’며 만주·조선 문제 해결을 위한 협상에 앞서 전쟁 야욕을 먼저 드러냈다는 점이 책을 통해 밝혀졌다. 오야마 의견서엔 ‘만일 불행하게 개전에 이른다 해도 저들(러시아)의 군비는 현재 여전히 결점을 지니고 있다. 대항하기 충분하다’며 러일전쟁 호기론(好機論)을 주장하고 있다.


일본 내 전후 민주주의자이자 지한파 지식인인 와다 교수는 그동안 일본 정부의 전후 처리에 비판적 시각을 보이며 일제 식민지배와 화해 문제 해결을 위해 앞장서 왔다. 그는 이 책이 어떻게 기억되길 바랄까. “일본으로선 러시아 시각을 많이 다루고 있어 피하고 싶은 책일 겁니다. 그래서인지 전쟁 당사자였던 러시아에서도 꼭 이 책이 출간돼 20세기 초 동아시아 운명을 가른 러일전쟁에 대한 올바른 논의가 이뤄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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