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페이지로 시작페이지로
즐겨찾기추가 즐겨찾기추가
로그인 회원가입 | 아이디찾기 | 비밀번호찾기 | 장바구니 모바일모드
홈으로 와싸다닷컴 자유자료실 상세보기

트위터로 보내기 미투데이로 보내기 요즘으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퀼테킨의 비문과 무쿠리
자유자료실 > 상세보기 | 2019-08-01 22:40:16
추천수 0
조회수   1,111

bbs_img

글쓴이

양원석 [가입일자 : ]

제목

퀼테킨의 비문과 무쿠리
내용
 




kergek : bolmus : yoγu?ï : sïγït?ï : öŋre : kün : toγusïqta138 : Böküli : ?ölüg el : Tabγa? : Tüpüt : Apar : Purum : Qïrqïz : Ü? Qurïqan : Otuz Tatar : Qïta?  : Tatabi : bun?a : budun : kelipen : sïγïtamïs : yoγulamïs : antïγ : külüg : qaγan : ermis : anta kisre : inisi : qaγan :

 

They (the lords) thus passed away (lit.: 'flied away to Tengri'). As mourners and laments there came from the east, the representatives of the people of the Böküli ?ölüg (Korea), Tabγa? (Chinese), Avar, Rome, Kirgiz, Uc-Quriqan, Otuz-Tatar, Qitaŋ and Tatabi, this many people came and mourned and lamented. So famous kagans were they. Then the younger brothers became kagans,
 

위 번역문은 유명한 퀼테긴 비문의 동면 4행의 룬문자로 씌여진 old-turkic을 옮긴 것으로, 카자흐스탄 정부 Language committee of ministery of culture and information의 웹사이트(http://irq.kaznpu.kz/?lang=e&mod=1&tid=1&oid=15&m=1)에 전문의 번역이 있다. 카자흐스탄을 비롯해서, 고대 투르크계 민족의 후손이 세운 여러 국가들은 퀼테긴 비문이 비록 현재의 몽골공화국 내에 있지만, 자신들의 조상들이 남긴 최초의 공식적인 문자기록으로서 소중히 여기서, 몽골정부와 공동으로 유적의 보호와 문화적 역사적 가치를 알리는 작업에 힘쓰고 있다. 한국인에게 이 비문은 Böküli라는 단어가 고구려를 언급한 것으로 알려져, 주목받았다.
 

퀼테긴비문은 19세기말에 러시아 고고학 조사단에 의해 빌게카간의 비문과 함께 몽골의 Orokhon지역에서 발견되어 , 일찍이 유럽의 여러 동양학 연구자들이 해석에 노력을 기울였고, 그중에서 특히 선구적인 업적으로 널리 인정받는 것은 1893년에 발표된 덴마크의 Vilhelm. Thomsen의 해석이다.  톰센은 <게르만어의 핀란드 라프어에 대한 영향>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고, 코펜하겐 대학의 교수로 재직한  뛰어난 언어학자로서, 게르만과 노르만계통의 여러 언어에 정통함을 물론, 러시아어, 핀란드어, 아랍어, 산스크리트어도 구사가능한 인물로서, 처음 그가 old turkic에 대한 해석의 단서를 발견한 것은 퀼테긴비문의 한쪽에 씌여진 한문 번역을 다시 프랑스어로 重譯한 논문과 비교분석에 의해서이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듯이, 톰센 자신은 중국 고전 한문과 동아시아 역사적 배경에 대해서는 지식이 부족했기에, old turkic의 음운학이나 형태론에 대한 성과와는 달리, 비문 자체의 해석에는 불완전한 부분이 있었다.

그 중에서 Böküli : ?ölüg el 과 관련된 해석의 역사를 살펴 보기로 하자. Böküli : ?ölüg el 에서 'el'의 의미는 초기부터 비교적 대다수 학자가 동의하는 해석이 있었다. 즉, el은 독립된 군주(왕)이 통치하는 정치적 조직(단위)라는 의미로 영어의 realm과 상통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el은 다른 고유명사와 합해져서, "XX국"혹은 "XX인"의 의미를 나타내는 것이다.  그리고, 투르크어에는 몽골어에서 차용된 ?öl이라는 단어가 있고, 이 단어의 의미는 "황량한 땅"이라는 의미가 있으므로, ?öl과 ?ölüg가 비록 형태상 차이가 있었지만, 다른 힌트를 갖기 어려웠던 연구자들은 "황량한 땅의 뵈퀼리국" 정도로 해석하는 데 만족해야만 했다. 즉, ?ölüg el 을 독립된 국가를 표기하는 데 쓰인 단어로 보기보다는 뵈퀼리라는 국가를 수식하는 의미로 해석한 것이다. 이것은 Böküli : ?ölüg el  이후에 다른 수식없이 나열된 다른 국가나 부족집단과 비교해 볼 때, 약간 어색한 해석이라 아니할 수 없다. 즉,  Tabγa? 는 북중국에 위치한 정권 혹은 국가를(이 시기는 당왕조), Tüpüt 는 티벳(토번)을 가리키며, 이하의 Apar(유연), Purum(비잔틴제국) 등이 아무런 수식없이 나열된 것과 대비되는 해석이다.
 

Böküli 의 실체에 대해서는 톰센은 미확정인 상태로 남겨 놓았고, 그 후에도 오랫동안, 중국 역사서에 보이지 않은 미지의 국가로 여겨져 왔다. 이후, 소그드어 연구자 Henning과 중국학자 岑仲勉 등은, 1) 고구려에서 莫離支가 왕명으로 쓰였고, 왕명이 국호로 사용되는 것은 고대에 흔히 있는 일로서, 고대투르크어의 支는 선비족의 眞이나 몽고족의 赤과 마찬가지의 뜻으로서, 막리지는 莫離인을 통치하는 왕이라는 의미라는 것이다. 그리고, 막리의 m과 뵈퀼리의 b는 서로 통용될 수 있는 것이다. 2) 당왕조 때 편찬된 <梵語雜名>에 고구려를 畝俱理로서 <Mukuri>로 표시한 예가 있고, 3) 돈황 막고굴에서 발견된 티벳어 문서 중에 고구려를 Mug-lig로 표시한 것이 있으므로, Böküli의 실체는 고구려라고 하였고, 이 학설은 현재는 거의 정설로 받아 들여지고 있다.
 

이제 남은 의문은 ?ölüg el 과 관련된 것이다. 앞서 ?ölüg el이  Böküli 를 수식하는 단어로 쓰였다고 보기에는 뒤에 수식없이 나열된 다른 국가나 종족명에 비추어, 어색한 해석이라고 하였다. 또 하나, ?ölüg가 몽골어에서 차용한 ?öl가 유사한 형태라고 하지만, ?öl이라는 단어는 15세기가 되어서야 비로소, 처음으로 몽골어에서 차용되어 투르크어에 나타나기 시작한다. 그러므로 이는 1) 비문이 건립된 8세기와 상당한 연대상의 차이가 있을 뿐아니라, 2)형태상 차이가 있고, 3) ?öl은 황량한 땅이라는 의미의 명사로서 이것이 소유격의 형용어구로 전용되기 어렵다는 점을 고려하면, "황량한 땅의"라는 의미로 쓰였다기 보다는 뒤의 el과 결합해서, 독립된 하나의 정치단위를 지칭한다고 보는 것이 낫다고 G. Clauson 이 지적하였다.
 

이러한 관점에 근거해서, G. Clauson,은 비문에서 처음 시작부분이 동쪽의 나라 고구려부터, 중간의 당, 서쪽의 토번의 순서로 언급하고 있으므로, ?ölüg el 은 방위적으로 볼 때, 고구려의 서쪽, 당의 동쪽에 위치한, 혹은 한반도상의 어떤 국가를 지칭하는 게 아닐까하는 의견을 내놓았다(아마도, 카자흐스탄 문화정보부 웹사이트의 영문 번역 Böküli : ?ölüg - The Korean Peninsula North State (Pekche, Kogurio)  이 견해를 취하는 것으로 보인다). 반면, 중국의 연구자 芮傳明은 자신의 의견으로는 티벳 뒤부터 Apar(유연- 현재의 몽골북부 스텝지역) , Purum(비잔틴제국), Qïrqïz(키르키즈) 등 동서남북의 방향이 일정하지 않게, 언급하고 있으므로, ?ölüg el 이 반드시, 고구려와 당 사이에 위치하거나, 한반도의 국가로 해석할 필요가 없다고 하면서, <魏書>,<北濟書>,<隨書> 등에 나타났던 선비족의 일파인 叱利氏를  ?ölüg el 의 후보로 주장하였다.

叱利가 ?ölüg와 대응할 수 있는 이유로 든 것은 고대 투르크어의 ?가 일종의 앞천장소리로서, ch와 유사한 음가를 지녔기에, 叱利의 음가(chi lie)와 유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el이 일종의 독립된 정치단위를 지칭한다는 점과, 같이 나열된 고구려, 당왕조, 토번, 유연, 비잔틴 등의 집단의 명성과 영향력을 비교해 볼 때, 후돌궐시기 이미 그 영향력이 사라진 선비족, 그것도 독립된 정권을 이룩한 적도 없었고, 서부대인 등의 고위관직을 받은 기록밖에 없는 叱利氏를  Böküli 다음에 쪽빛투르크와 같이 자존심 강한 집단이 그들의 영웅을 기리는 비문에 언급한다는 것은  격에 맞지 않는 일이고, 叱의 中古音( 質韻, 第三等, tþh˜et: 칼그렌, tþh˜et: 王力, tþhiIt: 鄭張尙芳 )이 과연, 투르크어의 ?ölüg로 대응될 수 있는 지도 물론 말끔히 해결되기 어려운 문제이다.

퀼테긴비문에 동면 4행에 언급된 국가나 종족이 Clauson의 생각과 같이, 방향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면, 일반적인 중국사서의 편찬자가 外夷傳을 서술할 때처럼, 쪽빛투르크(Kök Turk- Kök은 藍色 즉, 한국어의 '쪽빛'에 대응하는 것이 아닐까?)가 보는 정치적 중요성이나 친근감에 따라서, 배열한 것일 수도 있다. 그 점에서, 나는 신라가 ?ölüg el의 후보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신라에 대한 일본서기의 표기는 시라기(しらぎ)는 비록 첫자음에서 뵈퀼리-모쿠리처럼 ?와는 다르지만, 뒤에 l,g의 음가도 있고, 고대 한국어에서 ch음이 부재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가능성이 큰 대응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신라도 투르크 처럼 kagan이 통치하는 국가이고, 5세기 신라고분과 같은 고고학적 자료로 볼 때, 투르크와 마찬가지로, 고대 흉노계통에서 크게 영향을 받은 집단임은 부정할 수 없다. 비록, 역사적 기록에는 명확히 나와 있지 않지만, 신라도 당의 견제를 넘어서, 투르크제국과 어떤 형태로든 교류를 하고 있었을 수도 있다. 앞으로,  ?ölüg el에 대해서, 좀 더 진전된 연구결과가 나오길 희망하며, 간단한 검토를 마친다.


이 글은 대부분 중국학자 예전명 <고대돌궐비문연구1998>, 긍세민 <덴마크학자 톰센과 고대돌궐문의 해독 2006>,카자흐스탄 문화정보부 언어위원회 웹사이트 내용을 참조한 것임을 밝힌다.

 
추천스크랩소스보기 목록
  • 광고문의 결제관련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