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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는 런던과 뉴욕의 창조물
시사종교 > 상세보기 | 2015-08-05 19:43:19
추천수 33
조회수   4,501

제목

나치는 런던과 뉴욕의 창조물

글쓴이

곽영철 [가입일자 : 2001-05-31]
내용


 

The Nazis were Sabbatean Frankist Jews

대부분의 나치 고위층은 아쉬케나지 유대인(카자르) 또는 1/2 (Half Jews) 또는 1/4 (Quarter Jews)의 유대 혈통을 가지고 있으며, 혈통을 감추고 있는 크립토 유대인(Crypto Jews)들입니다. 크립토 유대인이란 '복장 도착자' 또는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인 척 하는 사람'입니다. 혈통을 감추고 지내면서 주변 사람들에게는 마치 가장 독실한 크리스쳔인 것처럼 비춰지지만, 실제로는 몰래 기독교를 파괴하는 역할을 맡고 있는 유대인들입니다. 가장 충성하는 애국자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자신이 사는 나라를 파괴하는 작업을 하고 있는 유대인들을 말합니다.
 

암호로 해석되는 크립토(Crypto)의 실제 의미는 겉으로 주장하는 것과는 정반대의 효과를 노리고 있다는 뜻입니다. 시오니즘이란 가장 유대인들을 위하는 신앙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유대인들을 파괴하기 위한 크립토 신앙입니다. 이슬람 근본주의 와하비즘/살라피즘은 가장 무슬림을 위하는 신앙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이슬람을 파괴하기 위한 크립토 신앙입니다. 마찬가지로 나치즘이란 마치 가장 독일을 위한 이데올로기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독일을 파괴하기 위한 크립토 이데올로기입니다. 시오니즘이 유대인에 대한 비밀 전쟁인 것과 마찬가지로, 나치즘은 게르만에 대한 주데오 앵글로 색슨 프리메이슨의 비밀 전쟁입니다.

"나치에 유대인들이 숨어 들었다"거나 또는 "나치의 인종 정책은 모순이었다"가 아니라, 크립토 유대인들이 나치를 만들었습니다. 나치는 아쉬케나지 시오니스트 유대인(Ashkenazi Zionist Jews)들이며, 뉴 월드 오더 글로벌리스트들(New World Order Globalists)을 위해 일하는 루시퍼리안 프리메이슨(Luciferian Freemason) 조직입니다. 나치의 핵심부에는 사바티안 프랑키스트(Sabbatean Frankists)들이 있습니다. Top Nazis are Crypto Jews!


사바티안 프랑키스트
크립토 유대인 나치

직                        책

아돌프 히틀러

Adolf Hitler

총통 Reichschancelor, likely Queens uncle. 여왕은 히틀러를 삼촌으로 불렀음. 로스차일드 남작 또는 유럽 왕족의 일원 클라렌스 공작. 런던 폭격시 버킹엄궁이 무사했던 이유는 왕궁에는 폭탄이 떨어지지 않도록 신경써달라는 여왕의 전화 때문이었음. 나치의 런던 폭격은 연합군의 베를린 폭격이 마치 나치의 공격에 대한 복수인 것처럼 비춰지도록 하기 위하여 기획되었음. 

마틴 보어만

Martin Bormann

부총통. 소비에트 스파이. 나치 탈출망 구축. Nazi Owned Corporations Control French Economy - How Germany Rose From Nazi Ashes-2

루돌프 헤스

Rudolf Hess

장관, 실질적 나치 설립자, true architect of NAZI regime, his representatives the Reichsminister, 세계 시오니스트 기구 설립자 모세스 헤스의 조카

헤르만 괴링

Hermann Goering

the Reichsmarshall 게쉬타포, 공군 총장, 총통 후보

그레고르 슈트라세

Gregor Strasser

나치당 대표 the Reichsleader of the NSDAP

죠세프 괴벨스

Josef Goebbels

선전부 장관 Reich Minister of Propaganda, mastermind, "충분히 큰 거짓말을 꾸준히 반복하면 사람들은 결국 믿게 된다."

알프레드 로젠버그

Alfred Rosenberg

툴리 소사이어티, 나치 철학 정립자 propagandist, 나치 철학의 아버지 the father of the Nazi philosophy, half Jew, 라트비아 유대인

한스 프랑크

Hans Frank

히틀러의 개인 변호사 Hitler’s attorney, half Jews, 폴란드 총독

하인리히 히믈러

Heinrich Himmler

툴리 소사이어티. 게쉬타포. 공포 정치. SS 친위대 창설. 홀로코스트 기획 chief organiser of Holocaust. S.S. Circle of Friends 조직. 예수회. 몰타의 기사단. 히믈러의 딸 Gudrun Burwitz는 전후 독일 정보부 BND에서 근무. Himmlers Daughter Gudrun Burwitz Worked for Germanys Intelligence Service in 1960s 참조. 히믈러의 조카 손녀 카트린 히믈러(Katrin Himmler)는 후일 이스라엘 국적의 유대인과 결혼. 그러나 이스라엘 법에 의하면, 이스라엘 국적의 유대인과 이민족의 결혼은 금지되어 있다. 

요아힘 폰 리벤트롭

Joachim von Ribbentrop

장관 Reichsminister, 이스라엘 초대 대통령 하임 바이즈만(Chaim Weizmann) 절친

von Keudell

야전 사령관 field commanders Globocnik, 유대인 파괴자 the Jewish destructor

에른하르트 밀히

Erhard Milch

육군 원수 Field Marshal, a father of blitzkrieg, 맹공격의 아버지

헬무트 뷜버그

Helmut Wilberg

육군 원수 Field Marshal, a father of blitzkrieg, 맹공격의 아버지

Jordan and Wilhelm Hube

친위대장 the great SS leaders

von Keudell II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

Reinhard Heydrich

친위대장 the great SS-Leaders, Iron Heart, 예루살렘에서 데이비드 벤 구리온과 홀로코스트 일정 협의

Erich von dem Bach-Zelewski

 

라인하르트 겔렌

Reinhard Gehlen

나치 첩보국 아브베어 Abwehr (독일 국방군 최고 사령부 OKW의 해외 첩보국, 방첩국) 수장, 예수회 소속 몰타의 기사단(knights of Malta). 미국 정보부 CIA 설립. 독일 정보부 BND 설립. 이스라엘 정보부 Mossad 설립.

에리히 폰 만쉬타인

Erich Von Manstein

나치 정보부장

빌헬름 카나리스

Wilhelm Canaris

정보부장, 애버렐 하리만이 심은 첩자

아돌프 아이히만

Adolf Eichmann

친위대장 (SS, Schutzstaffel)

멘델스존

Mendelssohn

 

Wittgenstein

 

막스 폰 오펜하이머

Max von Oppenheimer

독일 정보부, 은행가, 로스차일드 카르텔

막스 워버그

Max Warburg

미 연방 준비 은행 설립자, 로스차일드 수하, 일루미나티 최고위급, 1차 대전 당시 독일 정보부장

얄(할)마 샤크트

Hjalmar Schacht

독일 재무 장관, 로스차일드 요원, 스위스 은행 설립자 co-founder of the BIS in Basel, 영국 은행 총재 몬타구 노만과 함께 나치당 설립

Otto Jeidels

 

오토 슈코르체니

Otto Skorzeny

나치 탈출망 ODESSA, ratline 구축, 얄마 샤크트 사위, Hitler’s star commando, 유럽에서 가장 위험한 인물, CIA의 Palladin Group 을 통해 전세계 테러리스트 암살단 그룹 무슬림 브러더후드, 야세르 아라파트, NATO의 글라디오, 남아메리카 콘도르 작전에 동원되었던 죽음의 암살단 Death Squad 등을 육성. 스페인에서 호화로운 여생을 보냄

제이콥 골드슈미츠

Jacob Goldschmidt

 

에른스트 하인리히 하인켈

Ernst Heinrich Heinckel

항공기 제작업자 aircraft manufacturer

필립공

Prince Philip

엘리자베스 2세 남편 

버나드 왕자

Prince Bernhard

네덜란드 여왕 베아트리체의 남편. SS 친위대 장교. 빌더버그 설립. 유럽 연합 설립. 유럽 중앙 은행 설립.

에바 브라운

Eva Braun

아쉬케나지 유대인. DNA tests show Eva Braun associated with Ashkenazi Jews

하인리히 호프만

Heinrich Hoffman

총통 개인 사진사. 에바 브라운을 히틀러에게 소개

Dr. Morell

히틀러 주치의

기타

개인 요리사, 운전사, 타이프라이터 등등 

 

Dietrich Bronder, Bronder-Before Hitler Came (211p. 1975 현재 출판금지)

Sabbatean-Frankist Roots of the Nazis
The Nazis Were Frankist (Crypto-) Jews 
Lenni Brenner - Zionism & The Third Reich

 

 

 

 

 

런던과 뉴욕의 창조물 

 

볼셰비키 혁명과 마찬가지로 나치당은 씨티 오브 런던과 월 스트리트에 의해 창조되었습니다. 미국의 경제 공황을 만든 것과 같은 방법을 사용하여, 1929년 마르크화를 폭락시키고 경제 공황을 일으켜 독일을 붕괴시킨 다음, 히틀러를 부상시켜 나치의 집권을 실현합니다. 경제 공황이 없었다면 히틀러의 집권은 불가능했습니다. 미국, 영국, 독일의 경제 공황은 2차 대전을 위해 만들어진 것입니다. 1차 대전은 영국과 프랑스의 경쟁자로 떠오른 독일, 러시아, 오토만 제국을 주저앉히기 위해 계획되었으며, 나치당은 1차 대전의 연장이었던 2차 대전을 위해 창조되었습니다.

 

나치 스폰서 그룹

나치  후원자

내                              용

Hugo Stinnes

 

Adolph [sic] Kirdorf

 

석탄 연합

Coal owners association

회장: Kirdorf, 유럽 연합의 기원

Emil Kirdorf

 

프릿츠 티센

Fritz Thyssen

몰타의 기사단 The Knights of Malta, United Steelworks (later German Steel Trust; 독일 철강 조합), a German Jew, 외견상 최대 나치 후원자, 애버렐 하리만이 개발한 런던과 뉴욕 자금 수령 창구, 친위대와 돌격대 육성 자금 지원, 일제 강점기의 대표적 친일 기업인 박흥식에 해당

프리드리히 플릭

Friedrich Flick

IG Farben & German Steel Trust 공동 소유자, 프릿츠 티센 & 하인리히 히믈러 친구, 친위대/돌격대 자금 지원, S.S. Circle of Friends 회원

쿠르트 폰 쉬뢰더

Kurt von Schroeder

I.T.T 자금을 하인리히 히믈러의 친위대에게 전달, S.S. Circle of Friends 회원

J. 헨리 쉬뢰더 은행

몬타구 노만이 나치 독일 지원의 주요한 도구로 이용했던 쿠르트 폰 슈뢰더의 런던 은행, 초대 CIA 국장 앨런 덜레스가 행장

Bank voor Handel en Scheepvaart (BHS)

프리츠 티센의 네덜란드 은행 

Putzi Hanfstaengl

프랭클린 루스벨트 친구, 히틀러와 앵글로 아메리칸 지배 계급 연결 창구

Ignaz Trebitsch-Lincoln

= Moses Pinkeles, 히틀러의 최초 지원자 중 하나

Emil Georg von Stauss

a principal Nazi Party fundraiser, a business associate of the Rothschilds

막스 워버그 
M
ax Warburg

I.G. Farben 회장, 1차 대전 당시 독일 정보부장, 일루미나티 최고위급, 연방 준비 은행 소유자중의 한 명

막스 폰 오펜하이머

Max von Oppenheimer

13 families 중의 하나. 일루미나티 최고위급

독일 은행

The Deutsch Bank

로스차일드의 중앙 은행

얄마 샤크트

Hjalmar Schacht

히틀러의 재무 장관. 로스차일드 앞잡이. 스위스 은행 BIS 공동 설립자. 몬타구 노만과 함께 나치 재무 계획 총괄. S.S. Circle of Friends 회원. 나치 탈출망 구축. 나치가 약탈한 자산들을 아르헨티나로 빼돌렸으나 에비타가 가로챔

스위스 은행

BIS: Bank for International Settlements

나치 은행. 로스차일드 소유의 일루미나티 은행. 세계 모든 중앙 은행의 중앙 은행 Rothschilds central bank of the central banks. 독일로부터 1차 대전 전쟁 배상금을 수금하기 위하여 설립. 설립 직후 나치가 운영. 유대인과 유럽인으로부터 강탈한 재화와 금 운영. 바티칸 자금 관리. 스위스와는 무관한 자치 구역. CIA 자금 창구

영국 은행

The Bank of England

로스차일드 소유의 중앙 은행. 1815년 네이썬 마이어 로스차일드가 인수. 국제 금융 카르텔의 나치 육성 창구

몬타구 노르만

Montagu Collet Norman

영국 은행 총재 (1920-1944). 로스차일드 수하. 브라운 브러더스 파트너. 그의 할아버지는 남북 전쟁 당시 브라운 브러더스 사장이었음. 나치 재무 계획 작성. 영국측 나치 지원 핵심 인물

윈스턴 처칠

Winston Churchill

영국 수상. 로스차일드 수하. 33도 프리메이슨. 처칠과 히틀러는 매우 친한 메이슨 동료. 베를린 폭격과 탄저균 살포로 독일인 몰살 기도. 모겐쏘 계획 참조

로스차일드

Rothchilds

IG Farben, Royal Dutch Shell 소유. 일루미나티 결성 가문. 영국 왕실에 이은 일루미나티 최고봉. 영국 은행, 스위스 은행, 연방 준비 은행, 유럽 중앙 은행 등 대부분의 세계 중앙 은행 소유. 프랑스 혁명, 나폴레옹 전쟁, 미국 남북 전쟁, 볼셰비키 혁명, 1-2차 세계대전, 이스라엘 건국 등 모든 전쟁의 배후, 동인도 회사 소유자. 쉬프, 워버그, 오펜하이머, 하리만, 록펠러, 모건 모두 로스차일드가 키운 수족 세력

애버렐 하리만

Averell Harriman

Holland-American Trading Corporation & Seamless Steel Equipment Corporation 소유자. E. 롤랜드 하리만의 아들. 브라운 브러더스 하리만 회장. 월 스트리트의 나치 지원 지휘. 주 소련 미국 대사 하리만이 스탈린을 대신해서 실질적으로 소련의 2차 대전 지휘. 나치 정보부장 빌헬름 카나리스를 통해 독일군 작전 지휘. 스컬 & 본스. 우생학 Eugenics 시작. 일루미나티 필그림 소사이어티 (최고위급)

조지 허버트 워커

George Herbert Walker

Silesian-American Corporation 소유자. 프레스콧 부쉬 장인. 월 스트리트의 나치 지원 라인

프레스콧 부쉬

Prescott Bush

몰타의 기사단, Brown Brothers Harriman 은행 수석 파트너. Union Banking Corporation of New York 파트너. 월 스트리트 나치 지원 라인. "죽음의 상인들" 사무엘 부쉬 아들, 조지 H. W. 부쉬 아버지. Skull & Bones 회원.

E. 롤랜드 하리만

E. Roland "Bunny" Harriman

뉴욕 유니언 뱅킹 회장 Union Banking Corporation of New York, 미국의 나치 자금 지원 라인, 일루미나티 최고위급

록펠러

Rockefellers

Standard Oil (현재 엑슨 모빌) 소유. I.G Farben 소유. 일루미나티 최고위급, 볼셰비키 최대 지원자 중 하나

연방 준비 은행

Federal Reserve

로스차일드의 중앙 은행, 1913년 일루미나티 은행 12개를 모아 설립, 실질적 미국 연방 정부 소유자

폴 워버그

Paul Warburg

chairman of Federal Reserve 연방 준비 은행 초대 회장, 로스차일드 오른팔, I.G Farben 운영

Charles E. Mitchell

  

월터 티글

Walter Teagle

뉴욕 연방 준비 은행, 맨해튼 은행, Standard Oil of New Jersey

제이콥 쉬프

Jacob Schiff

Kuhn, Loeb and Company, 로스차일드 오른팔, 일본을 지원하여 러-일 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도록 한 인물, 볼셰비키 혁명 최대 지원자

H.A. 메츠

H.A. Metz

 

T.W. 라몬트

T.W. Lamont

 

빌헬름 쿠노

Wilhelm Cuno

함부르크 아메리카 라인 사장

함부르크 아메리카 라인

Hamburg-Amerika Line

미국과 유럽을 연결하는 증기 여객선 회사. 나치/미국 연결 라인. 나치 자금 세탁 라인. 월 스트리트 자금 전달 통로

알버트 뵈글러

Albert Voegler

독일 철강 조합 German Steel Trust 사장, 프릿츠 티센 수하

제네럴 일렉트릭

General Electric

 

칼 보쉬

Carl Bosch

National City Bank

록펠러 은행

체이스 맨해튼 은행

Chase and Manhattan Banks

 

프랭클린 D. 루스벨트

Frankin D. Roosevelt

미국 대통령, 로스차일드 수하

존 포스터 덜레스

John Foster Dulles

I.G. Farben 대표, 아이젠하워의 국무장관, 2차 대전을 만들기 위해서 베르사이유 조약에서 가혹한 전쟁 배상금 독일에 부과, 아돌프 히틀러의 법령에 의거 독일 채무 구조 조정, CFR 창립 멤버, 록펠러 인척, 33도 프리메이슨, 템플러 기사, 유엔 헌장 초안자, 아돌프 히틀러와 일루미나티 연결 라인

앨런 덜레스

Allen Welsh Dulles

I.G. Farben 대표, MI6 휘하 미 전략 사무국 OSS & 초대 CIA 국장, 나치 정보부장 라인하르트 겔렌을 고용하여 CIA 구축, 프레스콧 부쉬를 상원 의원으로 만듬, 33도 프리메이슨, 템플러 기사, 록펠러 인척, CFR 창립 회원, 록펠러 재단 이사장, 카네기 기부 재단 이사장, 몬타구 노만이 나치 지원의 주요 창구로 이용했던 런던의 J. 헨리 쉬뢰더 은행장, 아돌프 히틀러와 일루미나티 연결 라인

I.G. Farben

히틀러의 군수 공장. 나치 독일 대부분의 무기 생산. Wunderwaffe (Wonder weapons) & 신경 가스 Zyklon-B 생산. 강제 수용소 운영. 전후 본사가 CIA 사무실로 활용됨. 현재 바이엘. 로스차일드, 워버그, 록펠러 소유의 유대인 기업. 스탠다드 오일과 사실상 하나의 기업. I.G. Farben의 제3제국(Third Reich) 계획은 나치의 패전으로 인해 현재의 유럽 연합으로 수정.

빌헬름 케플러

Wilhelm Keppler

I.G. Farben 회장. S.S. Circle of Friends 회원. 케플러 기금 창시자

프릿츠 크라네푸스 
Fritz Kranefuss

On Aufsichrat of BRABAG, S.S. Circle of Friends 회원

에밀 하인리히 마이어

Emil Heinrich Meyer

I.T.T. 독일 자회사 중역. Standard/Mix & Genest/Lorenz. A.E.G. 중역. S.S. Circle of Friends 회원

스탠다드 오일

Standard Oil

록펠러의 석유 기업 (현재 엑슨 모빌), 독일에 가솔린 공급, 스탠다드 오일이 없었다면 독일 공군기는 비행 불가

에밀 헬프리히
Emil Helffrich

DAPAG 회장 (94% owned by Standard Oil of New Jersey). S.S. Circle of Friends 회원

I.T.T

쿠르트 폰 슈뢰더를 통하여 하인리히 히믈러의 친위대 자금 지원

듀퐁

DuPonts

Illuminati 13 가문의 일원. GM-Opel 소유. 타이거 탱크와 팬저 탱크 생산

지멘스

Siemens

 

보스

Boss

Hugo Boss, SS 유니폼 디자인, 강제 수용소와 홀로코스트

IBM

강제 수용소와 홀로코스트, 최종 처리될 유대인 명단 작성

헨리 포드

Henry Ford & Edsel B. Ford

포드 자동차, 강제 수용소와 홀로코스트

J.P. Morgan

The Chase National Bank of New York. 강제 수용소와 홀로코스트

코닥

Kodak

강제 수용소와 홀로코스트

환타

Fanta

강제 수용소와 홀로코스트

바티칸

Vatican

일루미나티 산실 예수회가 점령, 나치 탈출망 구축, 뉘렘베르크 재판 조작, 현재 바티칸 2, 1823년부터 바티칸 자금은 로스차일드가 관리, 예수회 장군 검은 교황이 서열 2위 하얀 교황보다 우위에 있음

뉴욕 타임스

New York Times

600만 유대인 희생 선동, 미국내 반나치 운동 통제, 유대인의 성전 선포’ 후에는 전쟁 선동, 나치 신문

기타 다수  

 

 

씨티 오브 런던과 월 스트리트가 나치 정권 수립

 

1950년, Robert H. Williams의 보고서 "Williams Intelligence Summary" : "뉘렘베르크 재판에서 에리히 루덴도르프 장군의 미망인은, 기독교 세계에 대한 음모에 있어서 Paul Warburg의 아들 James P. Warburg가 맡은 역할과 함께, 그녀의 남편이 히틀러와 틀어진 이유를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1929년, 미국의 파워 써클은 James P. Warburg에게 독일을 혁명으로 이끄는 과정에서 그들이 온전히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적당한 인물을 물색해 보라는 임무를 맡겼다. 곧이어 워버그는 히틀러와 계약을 맺었고, 1932년 1월 30일까지 2천 7백만 달러를 주었다. 얼마 후 다시 7백만 달러를 전달했다. 이 자금은 그를 총통의 자리에 올려 놓았다."

막스 워버그와 막스 오펜하이머는 2차 대전을 치룰 수 있을 만큼 충분한 독일 경제를 만들기 위하여 그의 전재산을 독일에 투자하였습니다.


Wall Street and the Rise of Hitler
Antony Sutton - Wall Street, Communism & Nazism

The Rothschilds (Sabbatean-Frankists) put Hitler in power, pt 1 of 2
The Rothschilds (Sabbatean-Frankists) put Hitler in power, pt 2 of 2
Why The Rothschilds Invented Nazism - Eustace Mullins

Cabalist Bankers Funded Hitler Via Wehrmacht
Was Hitler an Illuminati Agent?

Swiss Nazi Bank: BIS, Bank for International Settlements, Bank f. Internationalen Zahlungsausgleich
Bank for International Settlements: Federal Reserve"s Central Bank
Eustace Mullins - Adolf Hitler & the Central Banks

The International Banking Cartel (I)

The International Banking Cartel (II)
The International Banking Cartel (III)


The Bank For International Settlements (BIS) Part 1
The Bank For International Settlements (BIS) Part 2

The Bank For International Settlements (BIS) Part 3

Hjalmar Schacht, Hitler"s Banker & The BIS in Basel
Hjalmar Schacht & Sukarno, part 2 
The BIS in Basel & Nazi Germany

Bilderberg Group: The Secret Rulers of the World
Nazi-Zionist Roots of Al-Qaeda
The Morgenthau plan
Churchill wanted to exterminate the entire German people

 

록펠러맨 히틀러 Why Rockefeller's Standard Oil was Axis ally of Hitler & Nazis  

 

 



 

영국 은행과 연방 준비 은행의 히틀러


역사상 가장 거대한 대학살이 시작된 것은 70년 전이다. 2차 대전의 발발 책임에 대해 소비에트 연합과 나치 독일의 역할을 동등하게 평가한 OSCE 의회의 최근 결의안은, 이 결의안이 붕괴한 러시아 경제의 일정 부분으로부터 자본을 강탈해가려는 실용적 의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제외하더라도, 러시아를 소련의 계승자로 악마화하려는 것 뿐만 아니라, 이 전쟁의 해석에 대한 개정을 요구하려는 러시아의 권한을 사전에 박탈하기 위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의도된 것이다.

그러나 만약 전쟁의 책임 문제를 진정으로 따져본다면, 우리는 먼저 다음과 같은 중요한 질문들에 답할 필요가 있다. "누가 나치의 집권을 도왔는가? 누가 그들을 세계적 대재앙으로 몰아갔는가?" 전쟁 발발 이전 독일의 전체 역사는, 경제 공황을 창조함으로써 그들에게 필요한 정책이 실행될 수 있었으며, 그로 인해 전세계가 모두 함께 대재앙으로 빨려 들어갔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서방의 전후 개발 전략을 규정지은 가장 중요한 구조물은, 영국과 미국의 중앙 금융 기관, 즉 두 나라의 중앙 은행, 영국 은행과 연방 준비 은행이다. 그리고 이 두 은행 산하 IMF, World Bank, IBRD 등의 금융 기관과, WTO를 비롯한 각종 국제 기구들이 여기에 포함된다. 그들의 계획은 독일 금융 시스템에 대한 절대적 통제권을 얻음으로써, 중앙 유럽의 정치적 절차들*을 통제하는 것이다.


*중앙 유럽의 정치적 절차들이란 나치의 유럽 생활권 레벤스라움(Lebensraum, 식민지)을 실현시키는 것이다. 단일 의회, 단일 정부, 단일 사법부, 단일 국기, 단일 국가(國歌), 단일 화폐, 단일 언어, 단일 문화의 유러피안 초국가(European Super State)이다. I.G Farben 회의실에서 수립되었던 나치의 3제국 계획은 현재의 유럽 연합으로 수정되었다. 유럽 연합은 위장한 IMF이다.

따라서 유럽 국가들의 화폐 발행권과 정치, 경제, 군사 주권을 빼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러한 목적에서 유럽 중앙 은행, 유로, 유럽 의회, NATO가 창조되었다. 그 다음, 이 국가 연합을 유럽 합중국 USE (United States of Europe)라는 단일 국가로 발전시킨다. 50개국을 하나로 묶어 미합중국 주식 회사 USA (The United States, Inc.)를 창조한 것처럼, 유럽을 하나로 묶는 초수퍼 국가를 창조하는 것이다. 이 주식 회사는 워싱턴이 매우 쉽게 조종할 수 있다. 유럽 전체가 단일 국가가 되어 글로벌리스트의 식민지가 되는 것이다.

 
히틀러가 없었다면 유엔과 유럽 연합의 창조는 불가능했다. 유럽 연합은 처음부터
CIA 프로젝트였다.

이 전략을 실행하기 위해서다음의 단계들을 실행하는 것이 필요했다.

스테이지 1, 1919~1924, 독일 경제에 대한 미국 자본의 거대 규모 집중 투자

스테이지 2, 1924~1929, 독일 금융 시스템에 대한 통제 확보 및 국가사회주의에 대한 재정 지원

스테이지 3, 1929~1933, 경제 금융 위기 창조를 통한 나치당 집권 확보

스테이지 4, 1933~1939, 나치 정부에 대한 재정 협조 및 새로운 세계 대전의 준비를 목적으로 하는 나치의 해외 팽창주의 정책 적극 지원
 

스테이지 1, 독일 경제에 대한 미국 자본의 거대 규모 집중 투자

첫째 단계에서, 미국 자본의 유럽 유입을 가능하게 해준 주요 지렛대는 1차 대전의 전쟁 채무와 그와 관련된 독일의 전쟁 배상금이었다. 미국이 1차 대전에 공식 참전한 이후, 연방 준비 은행은 동맹국들(주로 영국과 프랑스)에게 차관 88억 달러를 제공했다. 전쟁 빚의 총합은 1919-1921년 미국 정부의 빚을 포함해서 110억 달러가 넘고 있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채무국들은 독일로부터 극단적으로 천문학적인 액수의 배상금을 받아내 그들의 변제에 사용하려 했다. 이것은 독일 자본의 해외 유출과 그에 분노한 납세 거부를 야기시켰다. (독일 경제는 철저히 유린되었다. 도저히 갚을 수 없는 배상금을 부과한 베르사이유 조약은 독일 재정을 파괴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독일인들은 여객선 루지타니아 침몰 사건 조작과 밸푸어 선언을 통해 미국을 끌어들인 유대인들 때문에 패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여기에서 반유대 감정이 일어났고, 히틀러는 이것을 이용했다).  

독일 정부의 예산 결손은, 오로지 무담보 마르크 채권의 대량 발행에 의해서만 충당 가능했다. 결과는 통화 붕괴였다. 1923년의 대공황은 578%의 인플레이션을 일으켰으며, 배상금은 4조 2천억 마르크로 올라갔다. 독일 산업가들은 배상금 지급 의무와 관련된 일체의 행동들을 공개적으로 중지하기 시작했으며, 이것은 결국 유명한 "루르 위기"를 야기시켰다. 1923년 프랑스와 벨기에가 라인강 지류 루르강 유역 석탄, 광업, 공업 중심지를 점령한 사건이다.

주도권 장악을 노리던 앵글로-아메리칸 지배 계급들은 프랑스가 모험의 미끼를 물기 바랐으며, 그들 스스로에게 문제 해결 능력이 없다는 것이 증명될 때까지 기다렸다. 미 국무장관 휴즈는 이렇게 말했었다. "유럽이 우리의 제안을 수용할 때까지 충분히 기다리는 것이 필요합니다."

신프로젝트는 영국 은행 총재 몬타구 노르만의 감독 하에, J.P Morgan & Co.에 의해 철저하게 준비되었다. 몬타구 노르만의 아이디어 핵심에는 드레스덴 은행 총재 얄마 샤크트가 있었다. 1922 3월, 얄마 샤크트는 존 포스터 덜레스의 제안에 따라 이 프로젝트를 공식화했다덜레스는 J.P Morgan에게 프로젝트를 제안하는 메모를 건냈고, 다시 J.P 모건은 얄마 샤크트, 몬타구 노르만, 바이마르 공화국의 마지막 통치자들에게 추천했다, 1923년 12월, 얄마 샤크트는 제국 은행(독일 중앙 은행) 총재가 되었고, 앵글로-아메리칸과 독일 양측의 자본 써클 연결에 핵심적으로 역할했다.

존 포스터 덜레스는 우드로우 윌슨 미국 대통령이 보낸 파리 평화 조약 법률 고문으로, 독일에게 천문학적 배상금을 요구한 베르사이유 조약의 실무자이다. 나치 기업들과 부쉬 가문의 국제 변호사. 프레스콧 부쉬와 함께 뉴욕 유니언 뱅킹을 통해 나치 자금 지원. 아이젠하워의 국무장관. NATO, SATO 설립자. 이승만에게 38선의 도발을 주문함으로써 김일성의 공격을 이끌어냈다. 1953 이란 쿠데타와 1954 과테말라 쿠데타도 설계했다.

1924년 여름, 도스 플랜으로 알려진 프로젝트가 런던 컨퍼런스에서 채택되었다. 이 계획안의 명칭은 모건 그룹의 미국인 은행가 찰스 도스가 위원장이었던 도스 위원회의 이름을 따 정해졌다. 도스는 배상금을 절반으로 줄일 것을 요구했고, 그 근원에 대한 문제를 해결했다. 1925년 도스는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그의 주임무는 미국 자본에 우호적인 투자 환경을 만드는 것이었으며, 그것은 오로지 독일 마르크의 안정화에 의해서만 가능했다

이 목적을 위해 도스 플랜은 독일에게 2억 달러의 대규모 차관을 제공했다. 그 절반은 J.P 모건이 제공했다. 앵글로-아메리칸 은행들은 독일의 금융 거래에 대한 통제권 뿐만 아니라, 정부의 예산 배정 또한 통제할 수 있었고, 통화의 흐름과 독일 신용 시스템의 상당 부분까지 그들의 의도대로 통제할 수 있게 되었다. 1924 8, 구마르크는 새로운 안정적 재무 상황하에 신마르크로 대체되었다. G.D Preparta 는 이렇게 말했었다. "바이마르 공화국은 세계 역사상 가장 멋진 그림의 경제 원조를 받아낼 준비를 갖추었다. 그러나 오히려 이것은 역사상 가장 쓰디 쓴 수확을 이끌어냈다." 그것은 독일의 금융 혈맥에 무제한 흘러들어온 아메리칸의 혈액이다.

이 원조의 결과는 얼마 지나지 않아 즉각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것은 소위 수상한 바이마르 써클에 의해 형성된 연합국들의 전쟁 빚을 독일의 연간 전쟁 배상금이 감당할 것이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배상금 명목으로 지불된 독일의 금은 어딘가로 팔렸고, 저당잡혔고, 미국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이 금은 원조의 형태로 다시 독일로 돌아왔다. 독일은 다시 영국과 프랑스에게 주었고, 결국 미국의 전쟁 빚 상환에 사용되었다. 이제 이자를 붙여, 다시 독일로 보내졌다. 결국 모든 독일인들은 빚에 허덕이게 되었다. 그리고 만약 월 스트리트가 그들의 차관을 취소한다면, 독일이 완전한 파산의 낭떠러지로 떨어질 것은 분명했다.

둘째, 지급을 확실히 하기 위해 공식 신용장이 발행되긴 했지만, 그것은 사실상 독일의 군산 잠재력을 복원하는 것이었다. 사실은 미국 자본이 능동적으로 독일 경제와 결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독일인들은 기업의 지분으로 차관을 받았다는 것이다.

스테이지 2, 독일 금융 시스템에 대한 통제 확보 및 국가 사회주의에 대한 재정 지원

1924~1929, 독일 산업에 투자된 해외 자본의 총합은 거의 630억 골드 마르크(300억 마르크는 차관)에 달했으며, 지불된 전쟁 배상금은 100억 마르크였다. 70%는 미국 은행들로부터 제공되었고, 그 대부분은 J.P 모건의 은행들이었다. 결과적으로 1929 독일 경제는 세계 2위를 기록했다. 그러나 그것은 대부분 미국의 거대 금융-산업 그룹들의 수중에 있었다. (마찬가지로 일본 경제가 세계 2위를 기록한 것은 중국 공격을 위해 양성된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1930, 독일 전쟁 기계의 주요 조달자 I.G. Farben (록펠러-워버그-하리만)은 히틀러 선거 캠페인 예산의 45%를 지원했다. 이 기업은 록펠러의 Standard Oil 통제하에 있었다. 1933AEG 지분 30%를 가지고 있었던 모건의 General Electric은 독일의 라디오와 전기 산업을 통제했다. 모건은 역시 독일의 전화 사업 지분 40%를 가지고 있던 통신 회사 ITT를 통해 Siemens 를 통제했다.

게다가 그들은 항공기 제작사 Focke-Wulf 지분 30%를 가지고 있었다. 듀퐁 가문의 GM은 타이거 탱크와 팬저 탱크를 생산한 전차 제작사 Opel 에 대한 통제권을 확보했다. 역사가 브래드포드 스넬은 이렇게 썼다. "GM이 없었다면, 나치는 폴란드와 러시아를 침략하지 못했을 것이다." 헨리 포드는 폭스바겐 지분 100%를 통제했다.

미국은 쾰른의 Ford 공장과 뤼셀샤임의 Opel-GM 공장을 통해서 독일의 민수 및 군수용 차량을 공급했다. 헨리 포드는 유명한 반유대주의자였고, 나치 지지자였다. 히틀러 역시 포드의 팬이었다. 포드는 반유대주의를 조장했고, 2차 대전은 그에게 막대한 이윤을 안겨주었다. 스스로를 민주주의의 아스날이라고 부르던 Ford GM 최소 1942년까지는 공개적으로 미군 뿐만 아니라 파시 아스날이었다.  

1926, 록펠러 은행 딜런 리드가 참여하면서 I.G. Farben에 이은 두번째 규모의 독점 산업 체제가 탄생했다. 프릿츠 티센, 프리드리히 플릭, Wolff, Feglera 등이 이끌었던 철강 기업 Vereinigte Stahlwerke (United Steelworks 합동 제강)이다. 독일의 군산 복합체와 아메리칸의 협력 관계는 매우 깊었고 또 지배적이었기 때문에, 1933년 독일 산업의 주요 부문과 독일 은행, 드레스덴 은행, 도나트 은행 등 거대 은행들은 미국 자본의 지배하에 있었다.

동시에 앵글로-아메리칸들의 계획에 중대한 역할을 하기로 의도된 정치적 힘이 준비되었다. 나치당과 히틀러 개인에 대한 자금 지원을 말하는 것이다. 전 독일 의장 하인리히 브루닝이 1923년 그의 회고록에서 기술한 것처럼, 히틀러는 해외로부터 거액을 받았다. 그 자금들이 어디로 흘러갔는지는 알 수 없지만, 스위스와 스웨덴 은행들을 통해 받았다는 것은 알 수 있다. 1922년 뮌헨에서 미국 대사관 무관 트루만 스미쓰가 히틀러를 만난 사실도 알려져 있다. 트루만 스미쓰는 워싱턴의 국방 정보국 DIA 본부에 상세한 보고서를 제출했고, 히틀러를 높게 평가했다.

애초에 히틀러가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절친이었던 에른스트 한프스에게 소개된 것은 스미쓰가 가입하고 있던 친교 써클을 통해서였다. 한프스탱글이 히틀러를 정치 무대로 올리는 중요 역할을 했고, 중요한 재정적 지원을 했으며, 영국의 주요 인사들을 연결시켜 주었다.

히틀러는 정치적으로 준비되어 있었다. 그러나 독일의 번영이 재개된 반면, 그의 나치당은 정치의 중심에 서질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경제 위기의 시작과 함께 상황이 극적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스테이지 3, 경제 금융 위기 창조를 통한 나치당 집권 확보

1929년 가을, 연방 준비 은행에 의해 미국 증권 시장이 붕괴된 후, 앵글로-아메리칸 금융 써클의 스테이지 3 전략이 시작되었다. (1차 대공황은 연방 준비 은행법 통과와 1차 대전을 위해서, 2차 대공황은 나치 집권과 2차 대전을 위해서 기획되었다).

중앙 유럽의 금융 위기와 경제 침체의 결과로, 연방 준비 은행과 J.P 모건은 독일에 대한 차관 공급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1920년대 내내 베르사이유 조약에 의해 붕괴된 독일 경제에 엄청나게 투자했던 앵글로-아메리칸들이, 1929년 갑자기 모든 것을 철수하면서 다시 경제 위기가 일어난다.

1931 9, 영국은 금본위제를 폐지했고, 고의적으로 국제 금융 거래 시스템을 파괴했다. 그들은 바이마르 공화국에 대한 재정적 산소 공급을 완전히 차단했다.  

그러나 독일의 경제 기적은 나치로부터 일어났다. 1930 9, I.G Farben 프릿츠 티센의 막대한 기부의 결과로 Kirdorf 의 정당은 6 4십만 표를 얻었고, 2당이 되었다. 그 다음, 해외로부터 자비로운 투자가 쏟아졌다. 독일 산업과 해외 투자가들의 연결점에는 얄마 샤크트가 있었다. (나치당의 경제 이데올로기는 신자유주의이다. 산업, 금융, 물류 등 경제에 대한 국가의 통제를 최소화하는 것만이 공산주의의 확장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국제 금융 자본과 싸우는 것처럼 속이기 위해 국가 사회주의라는 구호를 사용했지만, 오히려 나치는 국제 금융 자본이 만든 조직이다. 그들은 강제 수용소의 공짜 노예 노동이라는 국가의 개입을 통해 거대한 부를 쌓았다).

1932 1 4, 몬타구 노르만, 아돌프 히틀러, 프릿츠 폰 파펜간의 회담이 열렸다. 이 회담에서 나치당에 대한 비밀 지원 협약이 결정되었다. 자서전 저작자들은 언급하기 꺼려하는 부분이지만, 이 회담에는 미국의 정책 결정자들과 덜레스 형제도 참석했다.

1933 1 14, 히틀러, 쉬뢰더, 폰 파펜, 케플러의 회의가 열렸고, 히틀러의 계획은 완전한 승인을 받았다. 모든 권력을 나치당에게 쥐어주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며칠 후 1 30, 히틀러는 총통이 되었다
스테이지 4가 시작된 것이다.

스테이지 4, 나치 정부에 대한 재정 지원 및 새로운 세계 대전의 준비를 목적으로 하는 해외 팽창주의 적극 지원

신정부에 대한 앵글로-아메리칸 지배 서클의 태도는 매우 동정적이었다. 연합국과 전쟁 빚과의 상관성에 대한 자연스러운 의문을 불러일으키는 독일의 전쟁 배상금 납부를 히틀러가 거부했을 때, 영국이나 프랑스 누구도 변제를 요구하지 않았다.

게다가 1933년 미국 방문 이후 얄마 샤크트가 제국 은행 총재로 재임명되었다. 샤크트가 미국 대통령과 월 스트리트 은행가들을 만난 후, 미국은 10억 달러의 대출을 지원했다. 6, 런던에서 몬타구 노르만을 만난 얄마 샤크트는 영국 은행의 20억 달러 신규 대출 뿐만 아니라, 기존 채무의 차감과 상환 중지를 얻어냈다. 따라서 나치는 그의 전 정부들이 얻지 못한 것들을 쉽게 얻어낼 수 있었다

1934년 여름, 영국은 제3제국에 대한 그들의 정책 근간이 될 "앵글로-게르만 이전 협정"을 체결했다. 결국 30년대 말미, 독일은 잉글랜드의 주요 무역 파트너가 되었다. 영국에 있는 쉬뢰더 은행이 독일의 주요 에이전트였고, 1936쿠르트 슈뢰더의 뉴욕 지사는 록펠러와 함께 쉬뢰더 & 록펠러 투자 은행을 설립했다. Time〉지는 이 은행을 베를린-로마간 경제 프로파간다의 축이라고 불렀다. 히틀러 스스로 인정했듯이, 그의 4개년 경제 개발 계획은 해외 자금 차입에 기반한 것이었으며, 이것은 결코 그에게 그 어떤 자그마한 경보도 울려주지 못했다.

1934 8스탠다드 오일의 독일 지사는 73만 에이커의 대지를 획득했고, 나치에게 석유를 공급하기 위한 거대한 정유 시설을 지었다. (유럽에서 스탠다드 오일의 이익은 홀로코스트 설계자 아돌프 아이히만에 의해서 대변되었다). 동시에  독일은 비밀리에 미국으로부터 항공기 제작에 사용될 최신 장비를 받았다. 이 장비들은 독일 항공기들의 제작을 시작했다.

독일은 Pratt and Whitney, Douglas, Curtis Wright 등 미국 기업들로부터 다수의 국방 기술 특허를 전수받았고, 이 미국 기술은 유명한 독일 전투기 Junkers-87 슈투카를 탄생시켰다. 1941 2차 대전이 한창일 때, 미국의 독일 투자는 4 7 5백만 달러에 달했다. 스탠다드 오일 1 2천만 달러, GM 3 5백만 달러, ITT 3천만 달러, Ford 1 7 5십만 달러였다.

나치당 집권 이후, 독일 경제가 기적적 회복을 이룬 것처럼 보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나치의 성공은 앵글로-아메리칸과 나치 비즈니스 써클간의 매우 가까운 재정적, 경제적 협조가 그 배경이었고, 1930년대 유화 정책이 2차 대전을 이끌어냈다.  

오늘날
 세계의 금융 엘리트들은 
' 월드 오더'로의 전환을 이끌어 내기 위한 '대공황 2' 계획을 시작했다. 우리에게는 인류에 대한 이들의 범죄를 파악하는 것이 급선무가 것이다.

 

Yuri Rubtsov, Hitler was financed by the Federal Reserve and the Bank of England, Yuri Rubtsov is a doctor of historical sciences, academician of the Russian Academy of military sciences, and member of the International Association of historians of World War 2

 

 

 

 

 

The British created Hitler

 

나치는 영국에 의해 창조되었습니다. 사우론은 런던에 있습니다. 나치당은 영국 왕실, 네덜란드 왕실, 벨기에 왕실, 유대인 거부 등 유로크라트 지배 엘리트들의 창조물입니다. 친나치 행적으로 유명했으며 히틀러와도 이복 형제설이 돌았던 영국왕 에드워드 8세는 나치의 배후임을 감추기 위해 ’심슨 부인과의 로맨스’를 연출해야 했습니다. 그가 왕위에 있다면 모든 것이 그들의 공작이라는 사실이 들통날 것이 분명했기 때문에, 어린 딸에게 양위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엘리자베스 2세라는 타이틀에는 엘리자베스 1세가 시작한 뉴 월드 오더 구축 작업을 끝내라는 뜻이 담겨 있을 수도 있습니다.

 

심지어 BBC조차도 왕실과 나치의 관련성을 보도하고 있는데, 런던과 워싱턴의 공작에 의해 히틀러가 권력을 탈취하자 에드워드 8세는 독일을 방문해 히틀러와 많은 나치 고위직을 만났으며, 초기 형태의 강제 수용소들을 둘러 보기도 했습니다. 강제 수용소를 가장 먼저 운영한 나라는 영국입니다. 2차 대전 직전이었던 1937년, 윈저 공작으로 내려앉은 에드워드 8세는 뮌헨을 방문해 히틀러를 독려했습니다. 영국을 철저히 폭격하라고 주문하기도 했습니다. 영국이 항복한다면 다시 왕위에 오를 수 있다고 계산했습니다.

 

역사학자 Karina Urbach에 의하면, 에드워드 8세는 독일에게 런던 폭격을 요구했습니다. 히틀러를 좋아하지도 않았고 대륙의 지배를 원하지도 않았던 영국인들을 혼줄내기 위해, 영국의 참전 명분을 만들기 위해, 연합국의 독일 폭격을 유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나치가 런던을 폭격할 때 버킹엄궁이 무사했던 이유는 히틀러에게 걸려왔던 전화 한 통이었습니다. "삼촌, 왕궁에 폭탄이 떨어지지 않도록 신경써 주세요."

 

전 연방대법원 판사 Dale의 글 The Great American Adventure 는 영국과 나치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처칠과 히틀러는 매우 친한 메이슨 동료였으며, 엘리자베스 여왕은 히틀러를 삼촌으로 불렀다. 히틀러의 실제 이름은 로스차일드 남작이며, 유럽 왕족의 일원인 클라렌스 공작이었다. 나치의 런던 폭격에도 불구하고 여왕의 왕궁이 무사했던 이유를 궁금해했던 적은 없는가? 여왕과 처칠의 비밀을 폭로하려던 언론인 2명은 기소나 재판없이 33년 동안 구금되었다."

 


1937년, 에드워드 8세와 심슨 부부 히틀러 예방

 


7살 엘리자베스에게 "하일 히틀러"를 가르치는 에드워드 8세, "삼촌께 경례! 삼촌께서 큰 일을 해주실 거야."

 

히틀러와 대부분의 주요 나치들에 대해서 이제 조금씩 그 실체가 드러나고 있습니다. ’나치 독일’이라는 표현은 사실 ’나치 영국’이라고 해야 맞습니다. 라이벌로 떠오른 독일을 무너뜨리려면, 전쟁의 책임을 뒤집어쓰고 패전으로 이끌 지도자가 필요했습니다. 독일의 패전은 총통 아돌프 히틀러와 부총통 마틴 보어만의 책임이 가장 큽니다. 제임스 본드 요원 크리스토퍼 크라이튼과 이안 플레밍이 마틴 보어만에게 작전을 주문했습니다. 윈스턴 처칠은 크라이튼 요원에게 "자신의 사후 치명적이지 않은 선에서 일정 사실들을 공개해도 좋다"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크라이튼의 주장에 의하면, 1945년 5월 1일 베를린에서 마틴 보어만을 탈출시킨 것은 그와 이안 플레밍이었으며, 피고 공석으로 진행된 뉘렘베르크 재판에서 일반 방청객으로 위장한 보어만은 자신에게 사형 선고가 언도되는 장면을 방청석에서 지켜보았습니다.

 

히틀러를 ’영국의 요원’이라고 말하는 작가 그레그 할레트에 의하면, MI6의 지휘자는 필립공이며 MI5의 지휘자는 프린스 찰스입니다. 영국 정보부는 왕실 조직입니다. 1913년, 독일군에 입대한 후 전령으로 근무하던 히틀러는 1차 대전 기간중 2번이나 영국군에 붙잡혔지만, 영국 정보부의 지시에 따라 매번 석방되었습니다. 히틀러와 나치당의 노력으로 앵글로 색슨은 유럽을 식민지화하는 작업에 성공했습니다. 나치를 제압하는 모양새를 취하면서 유럽을 장악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현재의 유럽 연합과 NATO입니다. 영국 왕실과 로스차일드 가문은 합쳐져 사실상 한 가문이며, 영국 은행과 연방 준비 은행 등 세계 대부분의 중앙 은행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국가 기관으로 속이고 있는 이 은행들은 화폐 창조권을 소유한 사유 기업이며, 영연방 주민들의 세금은 사실 국가에 납부하는 것이 아니라 왕실에게 납부하고 있습니다.

 


 

독일이 영국에 심은 스파이는 모두 영국을 위해 일하는 이중 간첩이었습니다. 해리 왕자가 나치 복장을 좋아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독립 작가 스티브 맥밀란의 조사에 의하면, 프린스 찰리 코버그 등 영국 왕실 색스 코버그 고타와 많은 유럽 왕족 인물들이 나치 제복을 입고, 히틀러와 함께 했습니다. ’에딘버러 공작’ 필립공은 나치의 ’Over-President’(상왕)였으며, 나치당의 실질적 지배자는 에딘버러 가문이었습니다. 에딘버러 가문의 상당수 여성들이 나치 고위직들과 결혼했습니다. 필립공의 여형제 소피 공주는 나치 공군 친위대장 크리스토프 폰 헤센 왕자와 결혼했습니다. 1935년 헤르만 괴링의 결혼식에 참석한 소피 공주는 "히틀러는 온화하고 매력적인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현 네덜란드 국왕 베아트리체의 친부 프린스 버나드는 직접 나치 SS 친위대 장교로 복무했으며, 증기 여객선 회사 함부르크-아메리카 라인을 통해 월 스트리트 자금을 독일로 보내는 역할을 해냈습니다. 네덜란드 작가 Annejet van der Zijl 에 의하면, 버나드가 나치당에 가입한 것은 1934년입니다. 물론 본인은 절대 부인하고 있습니다. 히틀러의 군수 공장 I.G. Farben 에서 일하기도 했으며, 이 회사의 많은 사람들이 전범으로 처벌되었지만 버나드는 처벌받지 않았습니다. 2차 대전 이후 버나드는 필립공과 함께 유럽 연합, NATO, Bilderberg 등의 창조 작업에 가담했습니다. 나치당은 '노블리스 오블리제'라는 기괴한 문구의 진정한 의미를 일깨워 주고 있습니다.

 

나치당 지도부가 유대인 시오니스트였었다는 것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나치당은 알레스터 크로울리(Aleister Crowley)가 이끌던 영국 프리메이슨 동방 템플러 기사단 O.T.O와 크립토 유대인 루돌프 폰 세보텐도르프(Rudolf von Sebottendorf) 남작이 이끌던 독일 프리메이슨 툴레 협회(Thule Gesellschaft)의 결합입니다. 크립토 유대인 시오니스트(Crypto Jews Zionists)와 앵글로 색슨 아틀란티스주의자(Anglo Saxon Atlanticists)의 결합입니다. 툴레(Thule)란 그리스 신화의 극북의 땅 즉 아틀란티스를 의미합니다. 나치는 메이슨 군대입니다. 현대판 십자군입니다. 

 

1919툴레의 회원들은 독일 노동자당을 만들었고, 1920년 히틀러는 국가 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  나치로 개명합니다2차 대전은 독일 정권을 탈취한 유러피안 아틀란티스주의자들이 유럽과 러시아를 공격한 것입니다. 나치의 목적은 독일을 꿀려앉히고, 러시아를 없앤 다음, 미국이 유럽을 장악하는 것입니다. 슬라브와 게르만을 동시에 박살낼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은 나치당이 전쟁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하지만 히틀러 프로젝트의 성공 덕분에 그들은 전쟁의 책임을 독일에게 씌울 수 있었습니다. 비밀리에 나치당을 설립한 후, 전쟁을 일으킨 범죄자를 응징하는 모양새를 만들면 구세주로 등장할 수 있습니다. 덕분에 미국이 구원자 메시아라는 이미지 창출에 성공했으며, 세계의 지배 국가가 될 수 있었고, 달러의 지배 체제가 획립되었으며, 유엔과 유럽 연합 그리고 이스라엘의 창조가 가능해졌습니다. 이것이 나치당이 창조된 이유이며, 당한 것은 유대인이 아니라 러시아입니다. 

 


Nazis were created by British Freemasonry to attack Russia not Jews.


영국의 지배 세력
 Aristotelian and Platonic cabals and cartels

 

 

 

 

 

 

홀로코스트와 WASP

 

19세기말이 될 때까지 시오니즘(Zionism)은 단지 몇몇 유대인 엘리트들만 동조했을 뿐, 순전히 백인 앵글로 색슨 청교도들(White Anglo Saxon Puritans, WASP)의 프로젝트였습니다. 토라(Torah, 히브리 바이블, 모세 5경)를 신화나 풍자로 해석할 뿐, 정치적 계획으로 해석하지 않는 당대의 랍비들은 이 운동을 매우 강하게 비난했습니다. 따라서 시오니즘에 관심이 없는 대다수 유대인들의 생각을 바꾸기 위한 이벤트들이 필요했습니다. 반유대주의와 홀로코스트를 선동한 것은 기독교 근본주의자, 크리스쳔 시오니스트, 에반젤리스트들이었습니다. 겉보기에는 끔찍하게 유대인들을 위하는 신앙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유대인들을 희생시켜 뉴 월드 천국을 얻으려는 WASP의 음모입니다. 

 

철저히 의도적으로 기획된 반유대주의는 "배척당하는 유럽에서 사느니 차라리 팔레스타인으로 가자"는 생각을 심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을 깊은 절망의 나락으로 몰았던 드레퓌스 사건 조차 이러한 의도에서 기획된 사건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유럽인들에게는 나치즘을 불러일으키고, 유대인들에게는 시오니즘을 불러일으키는 작업입니다. 유럽과 유대인들을 갈라놓는 ’Divide & Conquer 작업’입니다. 유럽인들과 유대인들에게 서로에 대한 깊은 증오심을 심는 작업입니다. 유대인들을 희생물로 이용해 프랑스와 독일간의 갈등을 유발하는 작업이었을 것입니다. 세계 대전을 창출하기 위한 사전 작업이었음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유대인들을 팔레스타인으로 집결시키려는 그들의 집중된 노력에도 불구하고 사막으로 가려하는 숫자는 너무 적었습니다. 국가를 세울 만한 충분한 숫자가 되지 못했습니다. 때문에 그들을 움직이게 할 수 있는 더 극적인 이벤트들이 필요했습니다. 크리스탈 나하트, 강제 수용소, 홀로코스트는 유럽에 남아 있다가는 살아남지 못한다는 공포심을 심기 위한 심리 작전이었습니다. "그렇게 구박했는데도 가지 않는단 말이야? 이스라엘에 관심이 없어? 그럼 어떻게 되는지 보여 주겠어!" 양떼를 움직이게 하는 기술은 바빌로니언 노예 몰이 기법(Babylonian Slave Driving Technique)니다. 양떼를 모는 것은 늑대입니다. 늑대가 물어뜯기 시작하면 겁먹은 양떼들이 움직이기 시작할 것입니다. 나치의 별명은 회색 늑대(Grey Wolves)였었고, 나치 벙커는 늑대 소굴(Wolfs Lair)로 불렸었습니다. 


유대인 희생자 600만이라는 숫자는 동정심을 최대화하기 위해 가공한 것이 분명합니다. 홀로코스트가 일어나기 20년전인 1915년부터 이미 뉴욕 타임스를 비롯한 서방 언론들은 유대인 600만이 위험에 처했다고 선동하고 있었습니다. 욕 타임스는 유대인 600만이 살해당할 것을 20년전에 미리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뉴욕 타임스에게 물어보아야 합니다. "느그들, 그걸 어떻게 미리 알았냐?" 



1915년 뉴욕 타임스, "6백만 유대인들에게 도움이 필요합니다!"

 

당시에는 볼셰비키 혁명을 노리고 있던 시점이었기 때문에 러시아의 유대인 학살이라는 프로파간다에 열중하고 있었습니다. 나치의 600만 유대인 학살이라는 프로파간다는 이미 러시아 정권 교체 작업에서 짜르의 600만 유대인 학살이라고 써먹었던 구호를 그대로 재사용한 것입니다. 짜르를 전복하기 위한 공산 혁명, 홀로코스트, 홀로도모르 등 굵직한 역사 사건들에서 "600만"이라는 숫자가 계속해서 등장하는 것은 우연일까? 

 

600만이라는 숫자가 계속 사용되는 이유는, "이스라엘이 세워지기 위해서는 유대인 600만을 신께 돌려보내야 한다"는 카발리스트들의 신앙 때문입니다. 홀로코스트 희생자 가족중의 한 명인 오소독스 랍비 마빈 안텔만은 이러한 것들이 모두 시오니스트들의 공작이라고 말합니다. 이미 18세기말 또는 19세기 중반부터 "이스라엘이 세워지기 위해서는 유대인 600만이 희생되어야 한다"는 토라의 계시가 엄청나게 돌아다니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2차 대전 직후에는 홀로코스트는 전혀 이슈가 아니었다고 합니다. 그 정도의 학살은 2차 대전에서 매우 흔한 일이었기 때문에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었지만,
 1977년부터 갑자기 언론, 출판물, 영화 등에서 홀로코스트를 떠들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대표적 안티 시오니스트인 영국 유대인 길라드 아츠몬 Gilad Atzmon 2016은 이렇게 말합니다.

 

"홀로코스트는 분명 2차 대전 당시 큰 이슈는 아니었다. 1977년까지도 그렇게 큰 이슈가 아니었다. 홀로코스트가 유명해진 것은, 1977년 이스라엘 수상 메나헴 베긴이 "홀로코스트를 잊어서는 안 됩니다!"라는 연설을 하고 나서부터다. 그 때부터 홀로코스트와 관련한 할리우드 영화와 TV 다큐멘타리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적십자사는 유대인, 공산주의자, 슬라브족, 집시, 부랑자들을 포함해 유럽 전체에서 나치의 강제 수용소 희생자가 약 30만 정도이며, 그 중에서 유대인은 약 20만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물론 20만이라는 숫자가 결코 적은 것은 아니지만, 그보다는 한국 전쟁과 월남전에서 제국의 네이팜탄 화염에 휩싸여 홀로코스트당한 사람들이 훨씬 많습니다. 오로지 헝가리인의 17%와 폴란드인의 21%만이 홀로코스트의 공식 버전을 신뢰하고 있다는 것은, 무언가 거대한 거짓말이 이 사건에 담겨있다고 보아야겠습니다. 

"언젠가 메시아가 오셔서 이스라엘을 수립하신다"는 오소독스들의 믿음과는 달리, 시오니스트들은 "메시아를 기다릴 수 없다. 그가 오실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행동해야 한다"는 철학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의 메시아는 그들의 적들을 모두 파괴할 것이며, 그의 이스라엘이 세계의 지배 국가로 올라서는 팍스 주다이카(Pax Judaica)가 구축될 것입니다. 하지만 오소독스들은 메시아가 오기 전에 이스라엘을 수립하려는 시오니즘의 계획에 동의하지 않았고, 사막으로 가려하지 않았습니다. 오소독스들은 "단군의 나라 부활"이나 또는 "발해 제국 영광의 부활"에 대한 열망과 비슷하게 들리는 시오니즘에 그다지 큰 매력을 느끼지 않았고, 유대 국가 수립에 대한 열망은 점점 엷어져 가고 있었습니다. 때문에 그들의 계획에 동의하지 않는 오소독스들을 극도로 혐오했던 시오니스트들은 동포들을 나치에게 밀고해 강제 수용소로 보내질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협조했습니다. 

 

새로이 수립될 이스라엘은 시오니즘에 동의하지 않는 나이브한 유대인들이 없는, 시오니즘의 열정으로 가득한 퓨리탄 스파르타 국가이어야만 했습니다. 팔레스타인으로 보낼 수 없는 사람들은 그냥 사라지는 편이 나았습니다. 선전 효과로라도 써먹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현재의 이스라엘은 메시아가 오기 전에 미리 창조된 것이기 때문에 오소독스는 물론 시오니즘의 교리에도 어긋납니다. 때문에 전세계의 반이스라엘 정서를 누르기 위해서는 메시아 창조를 서둘러야 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홀로코스트에 대한 이야기들은 트라우마에 기반한 세뇌 작업(Trauma Based Mind Kontrol Program)입니다. 몸서리치게 만드는 트라우마를 심기 위한 최고의 수법은 집단 학살입니다트라우마에 빠진 사람들은 조종하기 매우 쉽습니다. 고향땅을 찾고 싶어하는 강렬한 열망이 없는 유대인들에게 그 간절한 열망이 생기도록 만드는 방법은 무엇일까? 간단히 말해서 홀로코스트는 이스라엘에 관심이 없는 유대인들을 팔레스타인으로 몰기 위한 바빌로니안 노예 몰이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주데오-앵글로-아메리칸-프리메이슨 지배 계급들은 유대인들을 팔레스타인에 집결시키려는 그들의 계획을 히틀러에게 전했습니다. 히틀러는 영국 에이전트였습니다. 팔레스타인을 강점하고 아랍을 공격하기 위해서는 거주민이 필요합니다. "팔레스타인에 유대인 600만을 모을 수 있소?" ... "힘듭니다." 

 

홀로코스트가 없었다면 이스라엘의 창조는 불가능했습니다. 이 바빌로니언 노예 몰이 기법의 목적은 "멸종당하지 않으려면 팔레스타인으로 갈 수 밖에 없다"는 생존적 절박함을 주입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주신 땅을 찾으려는 간절한 종교적 신념에서 창조된 것이 아닙니다. 유대인들은 유대 국가로 알고 있을 수도 있지만, 이스라엘은 북아메리카에서 뉴 월드 창조에 성공했던 올리버 크롬웰 청교도 WASP의 2번째 뉴 월드입니다. 시오니즘은 유대인들의 고향땅 찾기 운동이 아니라, 1099년 십자군 원정 당시 수립되었던 루시퍼리안 템플러 기사단(Knights Templars)의 예루살렘 왕국과 솔로몬 신전 재건 계획’입니다.

 

마치 생존을 위한 절박성 때문에 또는 고향땅을 찾고 싶은 간절한 열망 때문에 탄생된 것처럼 비춰지게 만들려면, 유대인들로 하여금 스스로 이 땅에 집착하게 만들 어떤 계기가 필요합니다. 그들이 직접 들어가면 침략이지만, 유대인들을 보내면 고향땅 찾기 운동으로 비춰집니다. 그들 대신 정복 작업을 펼쳐줄 광신도 바보들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시오니즘이며, 반유대주의와 홀로코스트가 기획된 이유입니다. 유대인들은 고향땅을 마련해 준 제국과 로스차일드에게 열광하고 있지만, 자신들을 구해준 천사가 바로 그 재앙을 일으켰다는 것은 모르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범인이 구세주 메시아로 등장하는 것, 그것이 바로 루시퍼-사탄 신앙입니다. 

홀로코스트는 깊은 원한을 심는 작업이기도 합니다. 인류에 대한 깊은 적개심이 있어야 뉴 월드 오더의 사탄주의 아젠다에 동조할 것입니다. 그저 땅을 빼앗으려는 파충류적 본능에 의해 학살을 벌이는 이스라엘의 잔악한 행동들을 보면 깊이 맺힌 원한에 의해 광적인 행동을 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으며, 그것을 "신의 작업(Gods Work)"이라고 말합니다. 시오니스트들은 유대의 신을 사탄으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유대인들의 트라우마를 이용한 주데오-앵글로-아메리칸-프리메이슨 제국의 영토 확장 작업일 뿐입니다. 고난이 없다면 유대인들은 뉴 월드 오더 시오니즘에 매달리지 않을 것입니다. "제국의 식민지 개척 작업"을 감추고 "유대인들의 고향땅 찾기 운동"이라고 속이기 위해 반유대주의, 홀로코스트, 시오니즘 광신도들이 필요합니다. 그들이 최후의 전쟁, 아마겟돈의 전쟁, 휴거, 종말을 일으킬 촉매로까지 발전할 것인지 여부는 지켜봐야 할 것입니다.

 

반유대주의와 홀로코스트는 좀처럼 생각을 바꾸지 않으려하는 오소독스들을 시오니스트로 전환하는 작업이었습니다. 제국의 앞잡이로 쓰기 위해 강제 개종하는 작업입니다. 전세계에 흩어져 있는 유대인들을 제국의 요원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나치의 학살로부터 구해준 제국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형성되어야 합니다. 고향땅을 찾아준 제국과 공동 운명체라는 것을 느끼도록 만들어야 하며, 제국의 보호에 의존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어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아니라면 생존은 불가능하다"는 절박감이 있어야 합니다.

 

기존의 신들을 갈아치우길 원하는 루시퍼리안들에게는 그들의 앞잡이로 활약할 동조 세력이 필요합니다. 로마를 파괴하고 메시아를 갈아치우자는 그들의 아이디어에 가장 동조할 만한 사람들은 바로 유대인들입니다. "다 때려부수고 새로이 시작하자!"는 뉴 월드 오더의 유혹은 너무나 솔깃하게 들릴 것입니다. "뉴 월드에서는 너희들이 지배 계급이다! 너희들이 세상을 다스려라!"라는 말처럼 근사하게 들리는 말도 없을 것입니다. 지난 2천년 동안 기독교로 인해 고생한 유대인들의 강한 거부감을 뽑아 먹을 줄 알아야 합니다. 반유대주의와 홀로코스트는 점점 희석되어가고 있었던 그 거부감을 다시 불어넣는 작업이었습니다. 

 

반유대주의와 홀로코스트는 유대인들을 2개의 집단으로 쪼개는 "Divide & Conquer 작전"이기도 합니다. 쪼개고 싶은 민족이나 나라가 있다면, 학살 사건들을 일으키면 됩니다. 반드시 전쟁을 일으켜야 합니다. 그 민족은 저절로 분열할 것이며, 웬만해서는 다시 붙지 않습니다. 유대 사회 역시 오소독스와 시오니스트로 양분되어 있으며, 원래 오소독스가 절대 다수였으나 이스라엘이 세워지고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은 오히려 시오니스트가 다수입니다. 시오니즘으로 개종한 집단, 순종하는 집단에게 특혜를 준다면 그들은 미친듯이 뉴 월드 오더에 매달릴 것입니다. 반면 저항하는 집단은 철저히 탄압하면서 강력한 파시즘 체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시오니즘을 비판하는 유대인들은 해고, 투옥, 고문, 실종 등의 처벌을 받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을 팔레스타인으로 몰 때에는 반유대주의가 선동되었지만, 이제는 오히려 이스라엘의 확장과 그로 인한 학살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반유대주의자로 공격받고 있습니다. "나치와 유대인 학살"이라는 말은 수천 수만번을 떠들지만,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학살"을 말하면 가혹하게 처벌받습니다. 나치는 "억울한 희생자 불쌍한 유대인"이라는 정서를 성공적으로 창조했습니다. 홀로코스트는 미래의 비난을 흡수하기 위해 필요한 동정심을 동포의 학살을 통해 미리 창조해 놓는 사탄의 작업이었습니다. 


유대 사회의 지배 계급인 시오니스트들은 뉴 월드 오더에서 누릴 수 있는 그들의 특권에 대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히틀러를 너무도 좋아합니다. 홀로코스트 희생자들은 오소독스 기층민들이며, 지배 계급 부자 유대인들은 전혀 피해를 입지 않았습니다. 홀로코스트란 가난한 유대인들을 희생시키기 위해 유럽 영주들과 거부 유대인들이 공모한 사건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영화, 음악, 출판물, 광고 등 홀로코스트 산업에서 거대한 이득을 얻고 있습니다. 동포의 학살을 최대한 이용하고 있는 시오니스트들은 이스라엘의 범죄에 대한 비판이 나올 때마다 홀로코스트를 끄집어 냅니다. 유대인 지배 계급들은 지난 2천년 동안 이러한 방법으로 그들의 부를 유지해왔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주변국들을 공격하기 위해 창조된 전쟁 국가 스파르타입니다. 홀로코스트는 전세계의 유대인들을 팔레스타인으로 모으는 작업이었습니다. 계시록의 짐승(Beast 666)이 창조된 것입니다. 서로 반목하고 다투는 혼돈의 세상으로 아랍을 세분화하기 위한 Divide & Conquer 작전이기도 합니다. 이스라엘은 끊임없는 갈등을 일으키기 위한 불쏘시개이며, 아랍을 잘개 쪼개는 쐐기입니다. 그렇다면 그 땅에 묻혀있는 자원들은 온전히 제국의 수중으로 떨어집니다. 


영국의 홀로코스트와 강제 수용소
 

강력한 세뇌 작업 때문에 우리의 기억에는 온갖 험악한 짓을 벌인 것인 오로지 나치뿐이지만나치의 홀로코스트 이전에 영국의 홀로코스트가 있었습니다. 1942영국이 식량을 모두 수탈해가는 바람에 인도에는 심한 기근이 닥쳤습니다영국은 서벵갈오디샤비하르방글라데쉬 등지에서 나오는 모든 식량을 본국으로 쓸어갔으며때문에 영국 발표로는 최소 3백만 이상이 기아로 숨졌습니다문제는 그 해 인도 농사가 대풍작이었다는 것입니다식량은 넘쳐 흘렀었습니다. 1943~1944년 벵갈 기근 사태는 영국이 모든 식량을 가져갔기 때문에 발생했습니다.
 

식량 송출을 중단하고호주 밀을 수입해달라는 인도 총독의 요구에 대해 윈스턴 처칠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인도가 굶주리고 있다면간디는 어떻게 아직도 살아 있는가?" 벵갈 지역 총독도 도움을 요청했지만 이런 대답을 들었을 뿐입니다. "인도인들은 마치 토끼떼처럼 매우 빠르게 번식한다우리는 그 숫자를 줄여야 한다." 
 

벵갈 기근은 히틀러의 홀로코스트보다 더 규모가 큽니다히틀러가 유대인 6백만을 살해하는 데에는 12년이 걸렸지만영국은 1943년부터 1944년까지 불과 15개월 동안 3백만 이상을 죽음으로 몰았습니다하지만 인도측 조사로는 7백만 이상입니다물론 이것은 단 하나의 예에 불과합니다영국의 식민 지배 200년 동안 인도인 6천만 이상이 사망했습니다물론 이 수치도 영국의 발표이기 때문에 실제 수치는 1억을 훨씬 상회할 것입니다. 영국은 인도로부터 45조 달러 이상을 약탈했습니다.
 

나치보다 영국이 먼저 강제 수용소를 운영했던 것도 기억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우슈비츠보다는 영국의 강제 수용소가 더 참혹했습니다. 1877년 기아 사태는 1943~1944년 벵갈 기근과 같은 사건이었습니다영국이 모든 곡물을 수탈해갔기 때문에인도에는 먹을 것이 없었습니다유일하게 식량을 구할 곳은 영국이 설치한 강제 수용소 뿐이었습니다그나마 이 수용소들에서 하루에 받는 식량은 1인당 고작 16온스였습니다나치의 부헨발트 수용소에서 유대인들이 받았던 것보다 훨씬 적은 량입니다.


1억 6천 인도인을 학살한 영국, British empire killed 165 million Indians in 40 years

1845~1852년, 영국이 아일랜드의 감자를 모두 약탈해 가는 바람에 아일랜드인 2백만 이상이 기아로 숨진 아일랜드 대기근 (The Great Famine of Ireland) 사건도 있습니다.


슬라보코스트
 

수없이 많은 홀로코스트가 있지만, 오로지 유대인 홀로코스트만 집중 조명을 받고 있습니다. 끊임없이 '불쌍한 유대인' 시리즈가 등장합니다. 이스라엘이 비난을 받을 때마다 어김없이 홀로코스트가 등장하고, 동정심을 유발하기 위한 가증스런 프로파간다가 횡행합니다. 그러나 유대인 홀로코스트는 북아메리카 인디언 학살, 벵갈 기근, 2차 대전 슬라브 홀로코스트 등 전세계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홀로코스트에 비하면, 그야말로 조족지혈에 불과합니다.

2차 대전의 가장 큰 피해자는 러시아입니다. 러시아인 희생자는 2천 7백만이 넘습니다. 독일은 7백만입니다. 반면 미국은 40만, 영국은 45만입니다. 나치와의 전투는 거의 대부분 소련이 해냈습니다. 소위 자칭 연합군이 싸웠던 나치는 10개 사단에 불과했던 반면, 소련은 200개가 넘는 나치 사단과 싸웠습니다. 

 

하지만 언론, 출판물, 학계, 할리우드 영화에서는 절대 그러한 이야기들은 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유대인이 당한 것만 떠듭니다. 영화, 출판물, 인터넷 심지어 광고에서까지 "나치와 유대인 학살"이라는 프로파간다가 끊임없이 무한 융단 폭격되는 이유는 이스라엘의 범죄에 대한 비판을 잠재우려는 것 뿐만 아니라, 나치의 공격 목표가 유대인이 아니라 러시아였다는 것을 가리기 위한 것입니다.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도록 끊임없이 집요하게 홀로코스트를 물고 늘어집니다. 나치와 유대인 학살이라는 지능적이고도 악랄한 표현은 나치와 슬라브 학살로 바뀌어야 합니다. 홀로코스트가 아니라 슬라보코스트(Slavocaust)입니다. 


나치를 제압한 것은 미국이 아니라 소련입니다. 미국이 나치를 패퇴시켰다는 이야기들은 제국이 만들어낸 신화입니다. D-day 이벤트를 주도한 것도 미국이 아니라 영국입니다. 나치가 패한 곳은 노르망디가 아니라 동부 전선입니다. 2차 대전의 전세를 뒤엎은 결정적 장면은 쿠르스크 전투와 "스탈린그라드 전투"이며, 베를린에 깃발을 꽂은 것도 소련입니다. 때문에 마치 미국이 나치를 제압하고 유럽을 해방한 구세주인 것처럼 속이기 위한 가 필요했습니다. 종전 10개월전, 이미 전세가 기울고 나치의 승리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영국과 미국에게는 나치를 물리친 것이 자신들인 것처럼 비춰져야 하는 이벤트가 필요했습니다. 그 다음 언론에서 매일 떠들어대면, 대중의 뇌리에는 사실로 굳혀집니다. 노르망디 상륙 작전은 2차 대전의 결과에 전혀 아무 영향도 미치지 못한 작은 작전에 불과합니다. 

2차 대전의 본질은 히틀러로 하여금 유럽을 모두 장악하게 한 후에 유럽과 러시아를 서로 싸우게 만든 것이며, 양쪽이 모두 극도로 약화된 후 유로 아틀란티스 제국이 세계를 모두 집어먹는 작업입니다. 홀로코스트나 노르망디 같은 이야기들은 모든 비난을 히틀러에게 그리고 모든 공적을 제국에게 돌리는 속임수 작업입니다. 1941년, 나치가 소련을 공격하기 시작하자 미 상원의원 해리 트루먼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만약 독일이 이기고 있다면, 우리는 러시아를 도와야 합니다. 하지만 만약 러시아가 이기고 있다면, 우리는 독일을 도와야 합니다. 그들이 최대한 서로를 많이 죽이도록 해야 합니다." 


하지만 지금도 끊임없이 더러운 세뇌 작업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가장 악랄한 거짓말 중의 하나는 할리우드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입니다. "아이를 이미 충분히 바쳤으니 이제 그만 바쳐도 된다"는 바알(Baal)의 메시지가 휴머니즘으로 포장되고 있습니다. 바알/몰록은 아이가 부모의 소유가 아니며 국가의 소유라고 말합니다. 할리우드에서는 나치를 패망시키고 유럽을 구한 구세주가 미국인 것처럼 나오며, 세계는 그들에게 감사해야 한다는 무언의 메시지가 끊임없이 쏟아져 나옵니다. "우리가 지구를 구했다! 내가 구세주야! 내가 너희들을 구해주었어!"

 

인류의 집단 의식은 이러한 제국의 강력한 프로파간다에 의해 왜곡되고 있습니다. 종전 직후 1945년 여론 조사에서 나치 패망에 대한 소련과 미국의 공헌도는 각각 57%와 20%였지만, 2004년이 되자 거꾸로 뒤집혀 20%와 58%로 바뀌고 말았습니다. 



The Great Patriotic War of 1941-1945. Banner of Victory over Berlin, 1945

일본 관동군을 격파한 것도 붉은 군대입니다. 때문에 미국이 일본을 물리친 것처럼 비춰져야 할 필요성 때문에 그리고 38선을 강요하기 위한 압박의 수단으로 그리고 전세계에 대한 협박용으로 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이 떨어진 것도 기억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1945년 히로시마/나가사키 폭격 직후, 원폭 204발을 사용해 소련 도시 66곳을 핵공격하려던 계획도 있었습니다. 소련 뿐만 아니라 베를린, 프라하, 부다페스트, 바르샤바, 크림 반도 세바스토폴 등 동구권 국가들도 공격 목표였습니다. 1950년 한국 전쟁에서도 핵전쟁을 일으켜 한국과 중국을 초토화하려던 계획도 있었습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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