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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의 부활, 우크라이나 - 1
시사종교 > 상세보기 | 2015-06-09 00:25:20
추천수 33
조회수   4,790

제목

나치의 부활, 우크라이나 - 1

글쓴이

곽영철 [가입일자 : 2001-05-31]
내용

2014년, 우크라이나 수도 키에프에서 일어난 마이단 쿠데타는 유럽 연합과 NATO 가입을 거절한 야누코비치 정부를 전복하고 신정부를 출범시켰습니다. 이 사건을 두고 "푸틴의 야망이 원인"이라거나, "러시아의 침공"이라거나, "소치 올림픽이 끝나자마자 본색을 드러냈다"거나, 또는 "신정부는 민주 정부이다"라는 등 온갖 거짓말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소치 올림픽이 끝나자마자 행동을 개시한 것은 푸틴이 아니라 미국입니다. 언론이 감추고 있는 것은, 쿠데타에 성공한 우크라이나 신정부가 나치라는 것입니다. 놓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감추고 있습니다. 언론이 신정부를 찬양하는 이유는 그들이 나치이기 때문입니다.



오렌지 혁명 2.0 

1991년, 소비에트 연방이 해체되자 MI6, CIA, Mossad, 로스차일드, 록펠러가 곧바로 들어와 우크라이나의 과두지배자들과 연합을 멪고, 2차 대전 이후 줄곧 수면 아래 잠복하고 있었던 나치 세력들을 발굴해 
우크라이나 내셔널리스트 운동(Ukrainian Nationalist Movement)을 일으키기 시작합니다. 

2003, 꼭두각시 정권을 세우기 위한 미국의 작업이었던 "오렌지 혁명"에서 친러파 또는 중립파 빅토르 야누코비치를 물리친 빅토르 유췐코가 3대 대통령에 당선되었습니다
. 대표적인 반러 인사 빅토르 유췐코와 율리아 티모쉔코는 연립 정권을 구성했고, 유럽 연합과 NATO 가입을 조건으로 미국이 비밀히 지원하던 이 연립 정권은, 외세와 기득권층의 이익만 대변할 뿐, 서민의 삶은 더욱 악화되어 가기에 대중적 인기가 급락하였습니다.

서방과 과두지배자들에게만 유리한 정책을 펼치는 이들의 지지율이 급락한 것은 당연하며, 반사 이익을 얻은 빅토르 야누코비치가 티모쉔코와의 대결에서 승리하고 4대 대통령에 당선되었습니다. 그러나 야누코비치 또한 과두지배자들의 손 안에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었으며, 전임자들과 별다를 것 없이 과감한 경제 개혁과 사회 개혁을 추진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우크라이나의 상황은 대중들을 폭발 직전으로 몰고 갔으며, 야누코비치의 지지율도 폭락했습니다. 

미국은 호시탐탐 이러한 상황을 이용해 전복의 기회를 노리고 있었습니다
. 이러한 상황에서 야누코비치가 워싱턴과 유럽 연합의 제의를 거절하고 푸틴의 "유라시아 계획"쪽으로 기울자, 미국이 뿌려놓은 달러들이 우크라이나를 시끄럽게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오렌지 혁명 2.0'이 시작됩니다.

마이단 학살 Maidan Massacre

2013년 11월, 야누코비치 정부가 유럽 연합과 NATO 가입을 추진하지 않고 중립적 입장을 지키기로 하는 공식 발표를 한 후이에 반대하는 시위가 발발합니다
. 2014년 1월 22일, 시위자 2명이 키에프 경찰의 사격으로 사망하는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시위는 격화되어 가다가 2014. 2.18일부터 21일까지 4일 동안 수도 키에프의 마이단 독립 광장과 인스티투스카야 거리에서 약 1만 5천~2만명의 유럽 연합 지지자들이 시위를 벌입니다. 

이 최초의 시위대는 미 국무부와 조지 소로스의 시민 단체 USAID, NED, Freedom House, IRF (International Renaissance Foundation), Open Society Foundation, Democratic Transformation, International Republican Institute, National Democratic Institute for International Affairs, 알버트 아인쉬타인 연구소 등에서 동원된 직원들입니다
. 일부에서는 이 시위대들 사이에 일반적인 시민들로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많이 섞여 있다고 하였습니다.

2014년 2월, 마이단 시위는 매우 평화로웠으며 일반적 수준의 집회로 시작했습니다. 서방은 야누코비치에게 시위대를 건드리지 말 것을 강력 요구했고, 진압 경찰은 평화 시위를 보장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위를 폭발시키는 수법은 따로 있었습니다. 건물속에 숨어있던 "누군가"가 시위대와 폭동 진압 경찰 베르쿠트(Berkut)를 동시에 사격합니다. 현장에서 21명이 즉시 사망했으며, 베르쿠트가 대응 사격을 하는 총격전이 벌어졌습니다.

가장 격심했던 2 20일에도 "누군가"의 무차별 사격에 의해 시위는 극단으로 치달았습니다
. 방화 사태가 벌어지고 수십명이 화마를 입는 홀로코스트가 발생했습니다. 민간인 100여명과 경찰 20여명이 사망하고, 부상자 900명 정도가 발생했습니다. 2 21, 유혈 사태가 심각해지자 여당 불참 속에 야당은 대통령 탄핵안을 통과시켰습니다. 폴란드, 독일, 프랑스의 외상들은 협상을 유도하였지만, 신변의 위협을 느낀 야누코비치는 사임을 발표하고 러시아로 망명합니다.




























 

2013. 11. 21

유럽 연합 가입을 추진하지 않는 정부 발표에 반대하는 시위 발발

2013. 12. 17

러시아의 양보 : 150억 달러 우크라이나 국채 구입과 우크라이나로 판매되는 러시아 가스 가격 할인 결정

2014.  1. 16

시위 제한법 의회 통과

2014.  1. 22

키에프 경찰의 사격으로 시위자 2명 사망. 시위 확대

2014.  1. 25

야누코비치 대통령은 수상 등 정부 요직을 야당에 제안했으나 거절당함

2014.  1. 28

집시법 무효화 투표 가결. 수상과 내각 사퇴

2014.  1. 29

시위대가 점유한 건물에서의 퇴거를 조건으로 한 구류자 사면법 통과

2014.  2. 18

마이단 사태 발생. 마이단(Maidan) 광장과 인스티투스카야(Instituskaya) 거리에서 대규모 시위. 의문의 총격으로 시위 확산. 쿠데타를 반대하는 서우크라이나 갈리시아(Galicia) 지방은 자치 선언

2014.  2. 21

여당 불참속 대통령 탄핵안 통과. 야누코비치 사임 및 러시아로 망명

#EuroMaidan Revolution: 2014 Ukrainian Coup Timeline

 

평화 시위가 폭동으로 변한 이유는?

언론이 감추고 있는 것 중의 하나는 1.5만~2만명의 최초의 시위대가 특정 시점이 되어 해산할 듯한 기미가 보이자, 약 3천명의 강경한 시위대로 대치된 것입니다. 이 시위대는 Svoboda, All Ukrainian Union 
Fatherland, Right Sector, UDAR (Ukrainian Democratic Alliance for Reform) 등 친미 친유럽 자유주의 네오 나치 정당들의 조직원들입니다.

 

1. Svoboda : 올레 탸니보크(Oleh Tyahnybok)가 이끄는 반유대주의 극우 울트라 내셔널리스트(Far Right Ultra Nationalist) 정당이며, 나치의 외곽 조직으로 활약했었던 우크라이나 유격대(OUN-UPA)에 그 기원을 두고 있습니다. 원래 명칭은 우크라이나 국가사회주의당(Social National Party of Ukraine)이었으나, 나치의 냄새가 나는 이 명칭으로는 표를 얻기 힘들기에 2004년 Svoboda로 변경했습니다. 스보보다(Svoboda)의 뜻은 프리메이슨 나치들의 구호 자유(Freedom)입니다. 즉 자유당입니다. 


Nazis Wolfsangel Emblem : Social National Party of Ukraine


올레 탸니보크와 함께 Svoboda를 공동 설립한 안드레이 파루비(Andrey Parubiy)는 RNBOU (National Security and National Defense Committee = NSC) 실장을 지냈던 네오 나치 유대인 지도자입니다. 안드레이 파루비는 마이단 학살을 직접 지휘한 인물중의 하나로 지목되고 있으며, 쿠데타 성공 이후 국방 장관에 취임했습니다. 

 

반유대주의를 선동하는 세력들은 시오니스트 유대인들입니다. 올레 탸니보크 역시 어머니로부터 유대 혈통을 이어받은 시오니스트입니다. 탸니보크 스스로 우크라이나의 조직 범죄 대원들이 유대인들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2004년, 올레 탸니보크는 모스크바 및 유대인 마피아와 싸울 것을 요구했지만, 너무 과격한 선동은 그를 빅토르 유쉔코 정부로부터 쫓겨나게 만들었습니다2005년에는 우크라이나 지도자들에게 유대인 조직 범죄 멈추기라는 공개 편지를 보낸 적도 있을 정도로 반유대주의를 선동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를 지원하는 세력들은 서방과 연결되어 있는 아크메토프, 콜로모이스키 등 시오니스트 유대인 과두지배자들입니다

2012년, 스보보다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BBC의 보도도 있으며, 같은 해 유럽 연합은 "스보보다는 인종주의자, 반유대주의자, 외국인 혐오자"라는 결의안을 통과시킨 적도 있습니다. 반면 미국은 이들을 적극적으로 지원했으며, 올레 탸니보크는 이미 마이단 쿠데타 훨씬 이전부터 존 매케인, 빅토리아 뉴랜드 등과 가깝게 지내고 있었습니다. 이 네오 나치 시오니스트 유대인들의 활동 목적은 우크라이나를 러시아 공격용 핏불 테리어로 전환하는 것입니다 

 


Svoboda
 올레 탸니보크 "하일 히틀러!"  

2. 
All Ukrainian Union "Fatherland" : 시오니스트 유대인 프리메이슨 아스니 야체뉴크(Arseniy Yatsenyuk, 약칭 Yats)가 이끄는 유럽 연합-NATO 지지파 정당입니다. 전 지도자는 또 다른 아쉬케나지 유대인 율리아 티모쉔코였습니다. 우크라이나 프리메이슨 제2 마스터이며 워싱턴과 IMF를 대변하는 아스니 야체뉴크는 마이단 혁명 후 미 국무부의 작업에 의해 총리가 되었습니다. 

 


아스니 야체뉴크, 올레 탸니보크, 존 매케인 : "우리가 밀어줄테니 당신들이 정권을 맡으쇼. 한 판 크게 싸울 준비를 하세요."


3. 
Right Sector (Pravy Sektor) : 아쉬케나지 유대인 드미트로 야로쉬(Dmytro Yarosh)가 이끄는 파시스트 극우 정당으로 순수하지 않은, 바람직하지 않은(undesirable) 민족에 대한 인종 청소 작업(Ethnic Cleansing)을 펼쳤던 나치의 외곽 조직 UNA-UNSO의 후신입니다. "우크라이나 부호 대부분이 모두 유대인이라는 것이 놀랍다"는 발언과 함께 자신을 반유대주의자로 부르는 비판에 반발하고 있지만, 야로쉬의 Right Sector는 또 다른 네오 나치 그룹 Azov Battalion, Aidar Battalion과 함께 시오니스트 유대인 과두지배자 이고르 콜로모이스키의 지원을 받고 있습니다. 


Dmytro Yarosh, a leader of the Right Sector, addresses during a rally in central independence Square in Kiev February 21, 2014. "유대인을 없애야 합니다. 러시안도 없애야 합니다. 하부 인종들은 다 죽여야 합니다!"  


Right Sector는 반데라주의자(Banderites)들입니다. 2차 대전 당시 나치 친위대와 함께 1941 바비 야르 학살, 1941 오데사 학살, 1943 볼히니아 학살(일명 Bloody Sunday) 등의 사건들을 일으킨 우크라이나의 대표적 반유대주의 나치 협력자 스테판 반데라(Stepan Bandera)의 추종자들을 말합니다. 학살 희생자들은 팔레스타인으로 가려하지 않는 오소독스 유대인 뿐만 아니라 소련군 포로, 공산주의자,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 집시, 폴란드인, 루마니아인, 불가리아인 등이었습니다. 반데라주의자라는 표현은 네오 나치와 사실상 동의어이며, 주로 Right Sector  속한 우 네오 나치 그룹들을 지칭합니다.






1941 바비 야르 학살 "Right Sector" (Ukraine)


반데라는 1959년 KGB에 의해 암살되었다는 설이 있으며, 친미 자유주의자 3대 대통령 빅토르 유쉔코는 퇴임 직전 유럽 의회, 러시아, 폴란드 및 유대인들의 비난을 무릅쓰고, 반데라에게 명예 훈장을 수여하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후임인 빅토르 야누코비치가 반데라의 훈장을 취소했기 때문에 네오 나치들은 이를 갈고 있었습니다.


예루살렘 포스트 기사에 의하면, 네오 나치 대원들은 유대 혈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2014 우크라이나 마이단 사태는, 시오니스트 유대인 나치들이 미국의 이익을 위해 헌법에 의해 적법하게 선출된 대통령을 전복한 쿠데타 사건입니다. 우크라이나의 네오 나치들은 이스라엘에서 집중 군사 훈련을 받은 후에 다시 우크라이나에 심어졌습니다. 유대인을 없애자고 선동하는 나치들은 크립토 유대인들입니다. 홀로코스트는 원래 이스라엘을 얻길 원하는 시오니스트 유대인들이 동포 오소독스들을 살해한 사건이었습니다. "Nazis are Ashkenazi Zionist Crypto Jews!"



네오 나치 행진. 
"우리는 반데라! 자유 우크라이나 만세! 우리는 유럽으로 가야 합니다! 러시아 놈들은 죽여야지요." 


4. Ukrainian Democratic Alliance for Reform (UDAR) : 전직 권투선수 비탈리 클리치코(Vitali Klitschko)의 친유럽파 정당입니다. 클리치코는 아버지로부터 유대 혈통을 물려받았습니다.


비탈리 클리치코(왼쪽)와 존 매케인(가운데)

 

이 정당들은 친서방파, 친유럽파, 우크라이나 내셔널리스트들로 홍보되지만, 실제로는 네오 나치로 분류되는 친히틀러, 반유대주의, 반러시아 세력들이며, 놀라웁게도 이들은 모두가 유대인들입니다. 언론은 나치라는 것을 눈치채지 못하게 하기 위해 그들을 내셔널리스트로 칭하고 있습니다. 유대인과 슬라브족을 테러하기 위해 앵글로 아메리칸 제국에 의해 창조된 이 네오 나치 그룹들은, 조선인과 중국인을 테러하기 위해 일제에 의해 창조된 조선인 테러 그룹 간도 특설대와 그 의미가 같습니다. 제국이 2차 대전의 각종 학살 사건들에 직접적인 책임이 있는 시오니스트 유대인들(Zionist Jews)을 앞잡이로 이용하고 있습니다. MI6와 CIA의 자산으로 불리우는 이들은 마이탄 쿠데타 이후 연합 정권을 구성해 신연합 또는 유로 마이단으로 불립니다.


Maidan Snipers

사건 2개월 후, 신연합은 베르쿠트 경찰 3명을 "마이단 저격수"로 지목하고 체포했습니다. 그러나 3명 중 하급 대원 2명은 39명의 살인죄로 기소되었지만, 지대장 드미트리 사보트니크에게는 보석이 허가되었으며, 이후에는 행방 불명이 되었습니다.

 

신연합 유로 마이단 정부는 베르쿠트 경찰이 먼저 사격을 시작했으며, 야누코비치와 그의 특수 부대에게 모든 책임이 있다고 비난하였습니다. 쿠데타 이후 국방 장관에 취임한 신연합의 안드레이 파루비는, 사격의 범인이 러시아에서 보낸 저격수들임을 확신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신연합과 미국의 주장과는 달리, 2014년 3월 5일 누설된 에스토니아 외무장관 우르마스 파엣과 유럽 연합 외교 수석 캐시 애쉬튼 간의 통화는 사격의 범인이 신연합의 저격수들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르마스 파엣 : "경찰과 시민들을 살해한 것은 같은 저격수들이라는 것을 모든 증거가 보여주고 있습니다."

캐시 애쉬튼 : "아.. 예.."


우르마스 파엣 : "그녀가 보여준 몇몇 사진을 보았는데.. 모두 같아요.."

캐시 애쉬튼 : "아.. 예.."

우르마스 파엣 : "같은 종류의 총알이에요… 실제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조사하려 하지 않는 신연합이 놀랍습니다. 저격수의 배후는 야누코비치가 아니라, 신연합의 누군가라는 것이 확실해져 갑니다." 

통화의 확실성에 대해서 우르마스 파엣은 통화 내용이 맞다고 확인하였으며, 캐시 애쉬튼은 노 코멘트라고 하였습니다. 그녀는 우르마스 파엣의 폭로를 반기지 않는 것이 분명합니다. 미 국무부 역시 노 코멘트라고 하면서, 통화 내용을 누출한 러시아를 비난하였습니다. 통화 내용을 YouTube에 올린 것은 야누코비치 측 정보부 SBU (Security Service of Ukraine) 장교라고 알려졌습니다.  


야누코비치 정권의 치안 책임자였던 알렉산드르 야키멘코는 신연합의 안드레이 파루비와는 다르게 말합니다. "시위대가 둘러싸고 있던 필하모닉 홀에서 시위대와 경찰을 향해 동시 사격이 가해졌으며, 그 목적은 시위를 극렬하게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 신연합의 안드리 파루비가 당시 그 건물을 완전히 통제하고 있었다. 파루비는 FBI, CIA, 미군 특수 부대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인물이다. 미군 특수 부대가 모든 상황을 지휘했으며, 저격수 20여명은 유고 용병들이다.


마이단 시위에 참가한 야당 의원 안드리 쉐브첸코(Andriy Shevchenko)는 베르쿠트 부대장으로부터 긴급한 전화를 받았다고 밝혔습니다. "안드리! 누군가 우리 대원들을 쏘고 있어요! 음악 학교에서 쏘고 있습니다!" 이어서 몇 차례의 전화가 빗발쳤습니다. "3명이 다쳤습니다! 아니 5명입니다! 한 명은 사망했습니다!" 곧 이어 다시 걸려온 전화는; "안드리! 이제 우리도 뽑습니다.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겠습니다!" 



마이단 사태의 저격수를 인터뷰한 BBC 기사 
The Untold Story Of The Maidan Massacre 에서 저격수 중 한 명이었던 세르게이는, 시위대가 장악하고 있던 키에프 음악 학교와 우크라이나 호텔에서 시위대와 경찰을 향해 사격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나는 죽일려고 쏘진 않았다!"  


Operation Gladio

이러한 종류의 사건은 전형적인 NATO의 비밀 작전 Operation Gladio 이며, 저격수들은 신연합이 고용한 것입니다. 야누코비치 측에서 사격했다면 집권한 신연합은 이 사건에 대해서 맹공을 펼쳤을 것으로 예상할 수 있는데, 신연합은 오히려 사태가 빨리 잊혀지기를 바라는 듯 전혀 조사하지 않고 있습니다
.

 

영화 감독 올리버 스톤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간 CIA가 벌였던 이란, 베네주엘라, 칠레의 군사 혁명과 같은 사건이다. 저격수들은 시위대나 정부가 아닌 제3의 요소이며, 외부에서 주어진 것이다. 이 외부 요소에는 CIA의 지문이 너무 많이 묻어 있다. 신정부가 이 사건에 대해서 단 한명도 조사하지 않았다는게 사실인가? 1953년 모하마드 모사데그를 몰아낸 이란 쿠데타, 1973년 살바도르 아옌데(Salvador Allende)를 피노체트로 교체한 칠레 쿠데타 역시 CIA가 벌인 작업이다. 휴고 차베스를 몰아낸 2002년 베네주엘라 쿠데타도 원인을 알 수 없는 총격으로 인해서 시위가 극렬해졌던 경우로써, 마이단 사태와 똑같다.(엑슨 모빌과 BP를 내쫒고 석유 산업을 국영화한 민족 경제주의자 모하메드 모사데그와, 구리 산업을 국영화한 사회주의자 살바도르 아옌데는 런던과 워싱턴이 교체를 원하는 정권들이었다. 텍사스 석유 재벌 Koch Brothers는 베네주엘라 중유를 내놓지 않는 차베스 정권이 물러나길 원했다).

오타와 대학 이반 카차노프스키 교수의 detailed study가 키에프 학살을 심도있게 보고하고 있습니다.

로렌 모레는 버킹엄궁에서 최종 사격 명령이 나왔다고 주장합니다. 

2015년 한 해에만 우크라이나 사태를 취재하다 사망한 언론인은 8명이며, 조준된 사격으로 사망한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PRESS"라고 적힌 조끼가 타겟이 될 수 있다고 합니다
.

토론토의 국제 변호사 크리스토퍼 블랙은 저격수를 동원해 거대한 혼돈을 창조한 마이단 사태가 펜타곤 작전이라고 말합니다. 

NATO (North Atlantic Terrorist Organization)는 루시퍼 군단입니다
. 과거의 Nazis가 현재는 NATO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NAZI, NATO, NASA는 하나의 시리즈입니다.

 

 

 

 

 
국무부의 쿠데타

마이단 사태의 실무 지휘자는 미 국무부 유럽 담당 차관 빅토리아 뉴랜드(Victoria Nuland)입니다. 조지 W. 부쉬 정권의 "그림자 대통령" 딕 체니의 외교 담당 비서관 출신입니다. 50억 달러의 자금을 손에 쥐고 우크라이나로 넘어간 빅토리아 뉴랜드는 주 우크라이나 미국 대사 제프리 파이어트(Geoffrey Pyatt)와 CIA를 지휘하여 야당, 언론, 군부와 반정부 시민 단체들에 막대한 자금을 살포하고, 유럽 연합 가입을 요구하는 격렬한 소요 사태를 일으켰습니다.


마이단 시위대의 배후는 원래 미궁이었으나, 빅토리아 뉴랜드가 제프리 파이어트와 쿠데타를 모의하는 통화가 누출되었습니다. 빅토리아는 쿠데타 이후 어떤 꼭두각시를 세워야 하는지를 지시하고 있으며, 국무부가 모든 사태를 만들었다는 것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사생활이 복잡한 강경파 클리치코는 부적절하며 온건파 야체뉴크가 총리에 적당하다는 협의(Yats is the guy)를 하고 있으며, 국제적 명성이 있는 유엔측 인사가 건너 와서 지원하는 모양새를 만들어 주기를 바란다는 내용도 있습니다.

 

Nuland : 어떻게 보고 있습니까?

Pyatt : 제대로 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클리치코 건은 분명 선거에서는 복잡한 문제입니다. 특히 부총리 건은 더욱 그렇습니다. 그의 결혼 문제에 관해 적은 제 메모를 보셨잖아요? 그래서 그가 어디쯤 위치해야 하는지 서둘러서 보고 있습니다. 야체뉴크가 좋다는 뜻을 그에게 말씀하시는 것이 좋겠어요. 이 시나리오에서 야체뉴크가 어디에 가장 적당한지 잘 풀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Nuland : 좋아요. 클리치코는 정부로 가지 않는게 좋겠어요. 불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좋은 생각이 아닌 것 같습니다.

Pyatt : 예. 제 추측으로는.. 그를 정부에는 보내지 않는다는 취지에서.. 그냥 밖에다 두고 외부에서 정치를 하게 두는 것이.. 우리는 좀 더 온건한 사람이 이 작업을 계속 해 나가는 것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탸니보크와 그 그룹들이 문제긴 한데.. 야누코비치가 계속 계산하고 있었던 부분이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Nuland : 야체뉴크가 경제와 행정 경험이 있어서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해요. 야츠가 적임자입니다(Yats is the guy. 야츠가 딱입니다). 대신 그를 쓸려면, 클리치코와 탸니보크는 바깥에 있어야 해요. 야체뉴크는 일주일에 4번은 그들과 협의를 해야 합니다. 클리치코는 야체뉴크를 보조하는 역할이 좋다고 봅니다.

Pyatt : 예. 좋습니다. 우리가 그에게 말하기를 원하시나요?

Nuland : 제 이해로는 빅3끼리 회의를 해야 해요. 야체뉴크는 그런 맥락에서.. 3+1 협의 또는 당신까지 포함해서 3+2 협의가 되는 것이 좋겠어요.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 아닌가요?

Pyatt : 맞습니다. 그가 제안한 것인데, 제 생각에는 클리치코가 그간 우두머리를 해왔기 때문에 어느 회의에 가던 그는 자꾸 얘기를 할 겁니다. 그래서 제 생각에는 그한테 직접 말씀하셔서 그러지 못하게 하는 것이 좋다고 봅니다. 그게 상황을 빨리 진척시킬 수 있고, 그들이 모두 자리잡기 전에 우리를 숨기기에도 좋습니다.

Nuland : 오케이. 좋습니다. 그에게 가셔서 뭔가 말하고 싶은게 있는지 말하시는게 어떻겠어요?

Pyatt :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Nuland : 오케이. 한 가지 더. 제프. 오늘 아침에 제프 펠트만과 통화했을 때, 유엔에 로버트 세리라는 친구가 있다고 하더군요. 아침에 제가 쪽지 드렸었나요?

Pyatt : 네, 봤습니다.

Nuland : 세리하고
반기문 모두 세리가 월요일이나 화요일에 여기에 오는 것을 동의했다고 합니다. 이 일들을 연결하기에 매우 좋을 거예요. 유엔의 도움을 받는다는 것. 그리고 아시죠? Fuck the EU!

Pyatt : 네
. 그리고 협력을 강화할 수 있는 뭔가를 더 해야 합니다. 이 일들이 진행이 될수록 이걸 막으려고 러시아가 배후에서 뭔가 할 겁니다. 그리고 이제 이 것들이 다 드러나 있어요. 저는 왜 야누코비치가 착각했는지 아직도 생각중입니다. 게다가 아직도 말들이 많아요. 어쨌든 우리가 빨리 움직인다면… 클리치코를 잘 처리하겠습니다. 그리고 누군가 국제적 인사가 여기로 와서 이 일들을 빛낼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게 좋겠습니다 다른 문제는 야누코비치에게 손을 뻗는 건데, 내일 다시 그룹을 짜서 일이 잘 처리되도록 하겠습니다.

Nuland : 제프, 그 문제에 대해서 말인데요. 설리번(부통령 안보 보좌관)에게 다시 돌아오라고 전했어요. 당신한테는 바이든 부통령이 필요하다고 했어요. 아마 내일쯤 격려하는 말이 올 거예요. 그 때 상세한 보고도 하고요. 바이든이 원하는 겁니다.

Pyatt :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Read the chief architect of the Maidan 
Listen Victoria Nuland F*ck the E.U. 
Read 
Transcript of leaked Nuland-Pyatt call


이 통화의 누출 이후, 빅토리아 뉴랜드는 Lady of Fuck the EU 또는 Queen of Nulandistan 등의 별명을 얻었고, 그녀의 "Yats is the guy!"는 유명 Buzzword가 되었습니다. 유럽 연합 내부에는 러시아와의 갈등을 일으키려는 워싱턴과 유럽 연합 수뇌부의 기조에 동조하지 않는 사람들도 약간은 있기 때문에, 빅토리아 뉴랜드의 주문을 그대로 이행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것이 "Fuck the EU!" 발언의 원인일 것입니다.

빅토리아 뉴랜드의 본명은 빅토리아 누들만(Victoria Nudleman)입니다. 
새 땅을 의미하는 뉴랜드로 바꾼 것을 보면, 그들의 머리 속은 항상 땅을 빼앗기 위한 생각으로 가득하다는 것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시오니즘은 땅을 빼앗기 위한, 침략 전쟁을 정당화하기 위한 제국주의 이데올로기입니다. 

마이단 사태의 지휘자는 부통령 조 바이든입니다. 오바마, 힐러리 클린턴, 존 케리는 주로 아랍, 아프리카, 아시아 공략에 집중했고, 유럽 공략은 바이든이 분담했습니다. 마이단 사태 이후로 몇 년간 우크라이나의 실질적 대통령이었던 조 바이든은 우크라이나의
가스 산업 포획에 성공했습니다. 

 

 

 

 


Neo-Con Zionist Jews

마이단 사태의 관계자들은 미 국무장관 존 케리(John Kerry), 국무차관 빅토리아 뉴랜드(Victoria Nuland), 주 우크라이나 미국 대사 제프리 파이어트, 우크라이나 신임 대통령 페트로 포로쉔코(Petro Poroshenko), 신임 총리 아스니 야체뉴크, Yulia Tymoshenko, Igor Kolomoyski, Dmytro Firtash, 빅토르 핀추카 Victor Pinchuk, 취르키노프, 안드레이 파루비, 비탈리 클리치코, 올레 탸니보크, 드미트리 야로쉬 등 모두 유대인들입니다. 마이단 유혈 사태에서 전투를 벌였던 델타와 그의 부대 블루 헬멧까지도. 심지어 CNN 에 출현해 러시아와의 전쟁이 불가피함을 역설하는 뉴욕주 민주당 하원의원 Eliot Engel과 그를 인터뷰한 울프 블리처, 프로듀서 린다 로쓰, 보도국장 앤드류 모스, 사장 제프 주커가 모두 유대인입니다. 

혈통을 감추기 위해 부인의 이름을 빌린 
쵸콜렛 왕 포로쉔코 대통령은 유대인 과두지배자 중에서 선택되었습니다. 러시아와 해커 그룹 사이버 베르쿠트는 마이단 사태 직후 실시된 대통령 선거가 조작되었으며, 포로쉔코 대통령이 헌법에 의거해 적법하게 선임되지 않았다고 주장합니다. 포로쉔코는 글로벌리스트들과 유럽 연합 수뇌부에게 거의 완벽한 선택이었다고 볼 수 있으며, 우크라이나 국가 은행 위원회를 차지하고 우크라이나의 식민지화를 진행하는 IMF, 월 스트리트, 유럽 위원회 EC와 긴밀히 협력하고 있습니다.

마이단 신정부의 유대인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페트로 포로쉔코 대통령,  

튀르키노프, 

아스니 야체뉴크 총리,  

알렉산더 쉴라파크 재무장관,

안드리 파루비 국방장관,

블라디미르 그로이스만 부총리,

아르센 아바코프 내무장관,

세르게이 니슈크 문화부장관,

스테판 쿠비프 중앙은행 총재,

세르게이 파신스키 대통령 비서실장,

율리아 티모쉔코,

비탈리 클리치코 키에프 시장,

올레 탸니보크,

드미트리 야로쉬 국회의원,

이호르 콜로모이스키 드니프로페테로프스크 지사,

기타.


이 그림에 등장하는 모든 주요 인물이 "유대인 100%". 놀랍지 않습니까. 모든 관련자가 유대인일 확률은 복권 1등 당첨 확률보다 작을 것입니다. 빅토리아 뉴랜드의 남편 로버트 케이건은 PNAC (Project for the New American Century)을 설립한 CFR 회원으로, 새로운 진주만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던 9-11 공격 계획자 중의 한 명입니다. 열렬한 시오니스트 네오콘 유대인인 이들은 모두 미국과 이스라엘 이중 국적을 가지고 있으며, 미국의 모든 핵심 부분에 그들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국무부, 국방부, 재무부, 국세청 등이 모두 네오콘으로 가득 채워졌습니다. 

언론은 그들의 정체성을 철저히 숨기고 있지만, 그들은 모두 뉴 월드 오더 글로벌리즘의 시오니스트 유대인(Zionist Jews)입니다
. 우크라이나 사태는 이 국가를 시오니스트들로 가득찬 "제2의 이스라엘"로 만드는 작업입니다. 유대인들이 시오니즘에 환장하는 이유는, 이처럼 한 국가의 모든 부와 권력을 그들에게 쥐어 주기 때문일 것입니다. 가지고 싶은 것이 있다면, 그냥 죽이고 빼았으면 됩니다. 그 다음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세상은 그들을 찬양하기 바쁩니다. 시오니즘에 빠지지 않는다면 바보일 것입니다.

 

네오 나치를 심은 미국

신정부 인사의 상당수가 Azov Battalion, Svoboda, Right Sector 출신의 극우
네오 나치이며, 프랑스가 Azov Battalion 대원들을 모집하고 있습니다. 야체누크의 Fatherland가 대부분을 통제하고 있고, 탸니보크의 Svoboda는 주요 내각에 임명받지는 못했지만, (빅토리아 뉴랜드의 작업임이 분명하지만), Svoboda와 Right Sector의 인사들은 국방, 치안, 교육, 경제 분야를 장악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Guardian 이나 BBC와 같은 서방 언론 조차도 Azov Battalion 대원들이 네오 나치라는 것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순수한 인종의 중요성을 외치며, 섞여서는 안 된다고 주장합니다. 이 시오니스트 유대인들은 반유대주의와 반슬라브주의를 선동하고 있습니다. "유대인을 없애야 한다. 러시안도 없애야 한다. 푸틴은 러시아 유대인이다.

유대인 과두지배자 이고르 콜로모이스키가 지원하는 Aidar Battalion, Azov Battalion 등의 네오 나치 대원들은 잔인하고 살인적인 전략으로 국제 인권 연대로부터 비난받는 인물들입니다
. 그러나 신정부의 주요 일원들은 Azov Battalion과 같은 네오 나치들입니다. 내각은 Svoboda 와 Right Sector로 채워졌으며, 이들이 파시스트 UNA-UNSO의 전직 대원들이라는 건 두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두 네오 나치 조직의 요원들은 사실상 군, 경찰, 사법, 치안을 총괄하는 주요 위치를 장악했습니다. 2차 대전 당시 나치의 외곽 조직으로 협력했던 극단주의 우파 그룹 Right Sector의 드미트로 야로쉬는 참모 총장의 군사 고문과 국회의원이 되었습니다.

 






Neo Nazi Azov Battalion










 

히틀러가 이끄는 나치의 침공으로 2천 8백만 러시아인들이 희생당했습니다. 이 바르바로사 작전은 유대인과 폴란드인 학살로 악명높았던 Ukrainian Insurgent Army (the UPA)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우크라이나 정권을 탈취한 파시스트들이 바로 이들의 후예입니다. 


미군의 군사 훈련

2015년 5월 현재, 미군이 서우크라이나에 진입하여 네오 나치 민병대의
군사 훈련 교육을 하고 있습니다. 신정부는 정규군 이외에 Right Sector 등 수천의 네오 나치 대원들로 구성된 National Guard를 새로이 창설했습니다. 제2의 군대하겠습니다. 이것은 네오 나치 민병대들이 우크라이나 정규군의 합법적 군사 조직이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미군으로부터 특수 훈련을 받는 대원들은 우크라이나 정규군이 아니라, National Guard 대원들입니다. 로스차일드 카르텔의 사병 조직 친위대 SS (Schutz·staffel)와 돌격대 SA (Sturm·abteilung, Brownshirts)가 나치 정규군에 편입되었던 것과 같은 상황이며, 전체적인 모습이 2차 대전을 만들던 것과 흡사합니다. 친위대와 돌격대가 독일 시민들을 테러하면서 정부가 몰아가는 전쟁에 반대하지 못하도록 겁을 주었던 당시의 상황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습니다.

일부 평론가들은 신정부가 더러운 과거를 가진 사람들을 모으고 있다고 비판합니다. 이 네오 나치 그룹은 15개 친러 방송 채널을 모두 폐쇄했고, 우크라이나인, 러시아인, 타타르인 등 다양한 민족으로 구성되어 있는 우크라이나 내부의 민족간 갈등을 촉발하기 위한 여러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신정부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러시아어의 사용을 전 우크라이나에 걸쳐 금지한 것이며, ’애국심’이라는 구호와 함께 순수한 우크라이나를 만들기 위해 러시아인과 유대인을 몰아내야 한다고 조장합니다. 히틀러의 작업을 똑같이 반복하고 있습니다. 네오 나치들은 '알 카에다의 아버지' 즈비그뉴 브레진스키의 목표를 그대로 실천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러시아어의 말살, 슬라브족의 해체, 러시아라는 것 그 자체를 없애는 것입니다.

게다가 신정부는 공산주의와 나치즘을 배격한다고 발표합니다. 게다가 이제는 더 이상의 시위는 안 된다며, 시민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무장한 네오 나치 대원들이 활개치며 공포 분위기를 만들고 있습니다. Svoboda와 Right Sector 대원들은 길거리에서 행인들을 테러하고, 시나고그를 공격하고 있습니다. "유대인을 죽여라!" 또는 "유대인들을 몰아내자!"라고 외치며 유대교 회당을 테러하는 것은 시오니스트 유대인들입니다. 쿠데타 이전에는 민주, 자유, 인권을 외치던 이들이, 집권후에는 시민들을 겁박하고 있습니다. 2차 대전을 일으키기 위해 독일에서 일어났던 일들이, 80년이 지난 현재에 와서 우크라이나에서 그대로 재현되고 있습니다. 

유럽의 나치화


나치 극우파가 다시 비상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 "동쪽의 야만인들로부터 유럽을 구해야 한다"고 했던 괴벨스의 논리가 다시 등장하고 있습니다. 최근 들어 '히틀러의 재인식' 같은 운동들이 부쩍 늘어났는데, 우크라이나 사태와 같은 노림수를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히틀러가 독일을 구하기 위한 영웅이었다거나, 로스차일드의 유대 자본을 내쫓고 독일을 지켜내려 했다는 최근의 선전 선동들은 아마도 ADL (Anti Defamation Leugue)과 같은 나치의 후예들이 벌이는 작업으로 보입니다. 로스차일드를 내쫓은 것은 대중들을 속이기 위한 '쇼'였습니다. 


에즈라 파운드(Ezra Pound)는 나치의 전략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악명높은 그들의 기술중의 하나는 두 개의 거짓말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면 사람들은 둘 중에 어느 것이 진짜인지를 두고 격렬한 논쟁을 벌인다."

 

 

 

 


혼돈의 요원들 Agent of Chaos


이스라엘 신문 하레츠는 마이단 시위에 많은 유대인들이 참가했으며, 전 이스라엘군 베테랑 Delta가 이끄는 Blue Helmet 팀 40명이 Svoboda의 지시에 따라 저격수들과의 전투에서 맹활약했음을 보도하고 있습니다. 델타는 자신의 신분을 밝히기를 거부했으며, 순수한 의도에서 시위에 참가했음을 주장했습니다.

반유대주의의 선봉장인 네오나치 그룹 Svoboda와 협력한 이유에 대해 질문하자, Svoboda의 반유대주의는 과장된 면이 많으며, 네오나치 준동에 대한 러시아의 경고는 우크라이나 혁명을 불법화하려는 시도라고 폄하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나라가 아닌 이 곳에 와서 자신이 무얼 하고 있는지 의문을 가질 때도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블루 헬멧은 현재 해당 지역에서 경찰의 역할을 하고 있으며, 중상자들을 이스라엘 병원으로 후송하는 작업도 하고 있습니다. 델타는 블루 헬멧의 이러한 활약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그의 존재는 "마이단 혁명"의 숨은 의미를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에서 건너온 혼돈의 요원 델타 

마이단 사태 이후 유대인에 대한 폭력이 급증한 때문인지, 우크라이나 유대인들이 이스라엘로 이주하는 비율이 215% 급증했습니다. 샤를리 에브도 사건 이후 프랑스와 동유럽의 유대인들도 상당수가 이스라엘로 이주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외의 지역에서는 이스라엘로 이주하는 숫자는 오히려 약간씩 줄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의 ISIS
 

Mahdi Darius Nazemroaya의 글 The ISIL is in Ukraine: America’s "Agents of Chaos" Unleashed in Eurasia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IS 대원들이 우크라이나에 있다. 우크라이나는 코카서스와 유럽으로 들어가는 IS의 입구가 될 것이다. 2014. 9. 10일자 뉴스위크에 의하면, 우크라이나의 울트라 내셔널리스트들은 IS 스타일의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 아랍의 IS, 시리아 반군 FSA, 리비아 반군 LIFG, 예멘 공격에 나선 사우디 아라비아(이스라엘 전투기가 사우디 마크를 달고, 중성자탄을 폭격하고 있다), 체첸 분리주의자, 우크라이나의 네오 나치들이 모두 유라시아 포위 작전을 수행중이다. 이란, 러시아, 중국이 최종 목표이다. 창조적 혼돈을 창조하려는 이들은 모두 동일한 세력을 섬기고 있다. 최우선 목표는 테헤란이며, 그 다음은 모스크바가 될 것이다. 인도도 목표중의 하나이다.

"폴란드의 다큐멘타리 제작자 마르신 마몬은, IS가 우크라이나에 있다고 말한다. 마몬은 한 할리드(Khalid, 지도자)를 인터뷰했는데, 이 할리드는 자신의 형제들이 우크라이나에 있으며키에프의 거리나 또는 Left Bank로 알려진 드니프로강 동쪽 등지에서 활약하고 있다고 하였다. 이 형제들이 IS 등으로 불리는 와하비 단체들이며그들은 모든 대륙모든 나라에 있을 뿐 아니라, 우크라이나에서도 맹활약하고 있다고 하였다. 이들은 우크라이나 과두지배자들의 민병대라고도 하였다. 마몬은 유명한 체첸 분리주의자 이사 무나예프도 만났는데그들은 미국유럽 연합, NATO로부터 지원받고 있다고 하였다."

 

 

 

 

 

러시안 지역 공략

2014년 3월, 주민 대다수가 러시아 사람들인 오데사, 도네츠크, 루한스크 등 동우크라이나 지역에서는 마이단 쿠데타에 대항하는 친러 분리주의자들의 시위가 일어나고, 친러 민병대가 조직됩니다. 포로쉔코와 쿠데타 지도자들은 분리주의자들을 없애기 위해 '대테러 작전'이라는 이름 하에 우크라이나군과 Right Sector 등 네오 나치들로 구성된 진압 부대를 보냈습니다.

 

진짜 비극은 여기서부터인데, 유엔 조사에 의하면 친러 민병대와 우크라이나군의 교전으로 동부 전지역에서 민간인 포함 6,100명 이상이 사망했고, 난민 150만명이 발생하는 대혼란이 벌어졌습니다. 러시아로 탈출한 사람들만 100만명이 넘습니다. 잔류한 난민들은 임시 대피소에서 러시아에서 보내준 구호 물자로 연명하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군의 포격을 받은 루한스크 지역


오데사 학살


콜로모이스키가 보낸 Right Sector 대원들이 러시안 시위대에게 불을 지른 오데사 학살 사건에서는, 약 100명이 산 채로 불에 타는 홀로코스트의 희생자가 되었습니다. 이 사건에서도 마이단 사태와 마찬가지로 처음의 시위는 평화로웠으나, 저격수들이 미리 배치되어 시위대를 저격합니다. 시위대를 몰아 넣기 위해 계획하고 있던 지점은 무역 노조 건물이었습니다.

 

시위대가 무역 노조 건물 앞을 지나갈 때, 대기하고 있던 저격수들이 사격을 시작합니다. 시위대는 사방으로 흩어지고 정신이 없는 사이, 당황한 시위대에게 누군가 이렇게 외치는 소리가 들립니다. "여기 무역 노조 건물로 들어가면 안전합니다! 무역 노조!" 시위대는 황급히 무역 노조 건물로 뛰어들어가, 책상과 소파로 문을 막아 놓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스스로 막다른 골목으로 들어간 실수였습니다.

 

이어서 Right Sector 대원들이 따라 들어가 문을 두드리고, 간절한 목소리로 말합니다. "살려주세요. 나갈 수가 없습니다! 바깥에 총 든 사람들이 있어요. 너무 무섭습니다. 문 좀 열어주세요!" 안에 있던 사람들이 고민을 거듭한 끝에 문을 빼꼼히 열면, 열린 틈 사이로 총구를 들이 밀어 문을 닫지 못하게 합니다. 그 다음 문을 밀어 열어 젖힌 후 이렇게 말합니다. "너 러시안이지?" 이어서 화염병이 날아오고, 무차별 사격이 이어집니다. 시위대에 섞여 "무역 노조 건물로 들어갑시다!"라고 선동한 인물은 분명 Right Sector 대원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빨간 네모 : 임산부를 살해한 저격수


서방의 용병들

잔인함으로 악명 높은 미 국무부 용병 업체 Blackwater 가 보낸
엘리트 용병 400명, 동부 도네츠크 지역의 슬라비얀스크에서 신정부에 대항하는 친러 민병대를 진압하기 위한 군사 작전에 동원되고 있으며, CIA가 배후에 있다고 알려지고 있습니다
.

프랑스 사진 기자 제롬 세시니는 현장에서 얼굴을 맞대고 이들을 취재했는데, 이들은 말을 삼가고 있으며 이들의 억양과 행동으로 볼 때 미국에서 보낸 매우 잘 훈련된 용병들이라는 것을 95% 이상 확신한다고 하였습니다. 그 외에도 강한 서우크라이나 억양을 쓰거나, 코카서스, 체첸, 스웨덴에서 온 용병들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블랙워터는 
예수회 몰타의 기사단의 암살단(Death Squad)이며, 국무부의 하도급 계약에 의해 활동하고 있습니다
. 주로 전역한 미군 특수 부대원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블랙워터는 IS, 알 카에다 대원으로도 맹활약하고 있으며, 미국인이라는 서양인 IS 대원들이 바로 이들입니다. 블랙워터는 현재 Academi로 개명했습니다.

 

크림 반도 병합

푸틴은 2014년 5월 크림 반도의 향배를 결정하는 선거를 강행했고, 크림 반도의 러시아 편입이 압도적으로 결정되었습니다
. 찬성률은 96%. 러시아인이 많은 (60% 이상) 크림 반도인들은 쿠데타 이후 신정부가 어디로 가는지 알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우크라이나인들조차 러시아 편입을 찬성했습니다.

러시아인이 대다수인 도네츠크, 루한스크 지역도 주민 투표를 통해 자치 공화국을 선언했습니다. 도네츠크 공화국은 제일 먼저 중앙 은행을 국영화하여, 국제 금융 카르텔과 NATO의 분노를 샀습니다.

 

크림 반도를 재접수한 러시아는, 네오 나치와 연합한 소수 민족 타타르 방송 채널을 폐쇄했습니다.

 

2015년 2월, 벨라로시 수도 민스크에서 독일, 프랑스, 러시아, 우크라이나 4국 지도자들이 회동하여, 상대방에 대한 적대 행위 중단, 그리고 크림 반도와 도네츠크, 루한스크 지역의 독립 인정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스크 협약'을 맺고 휴전을 선언하였으나, 산발적인 내전은 계속되고 있으며, 민가에 우크라이나군의 포탄이 계속 떨어지는 등 계속해서 사망자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방은 크림 반도의 병합을 히틀러의 오스트리아 병합과 같은 성질의 것으로 묘사하지만, 1954년 후르시초프가 선물했던 크림 반도를 러시아가 다시 찾아간 것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크림과 동부 지역은 원래 러시아 영토였습니다. 주민 대다수가 러시안입니다. 상기 그림에서 청색 지역입니다. 이 지역은 압도적으로 아누코비치에게 투표하였습니다. 유로마이단 네오 나치 정권이 동부 지역을 공격하는 이유입니다.


1922년 혁명 직후, 블라디미르 레닌은 프롤레타리아의 비율을 맞추고 산업 경제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공업이 발달한 동부 지역을 우크라이나에 붙여 주었습니다. 우크라이나는 이렇다할 산업이 없는 농촌 경제였기 때문이었습니다또는 나폴레옹과 히틀러에 이은 3차 공격에 대비해 완충 지대(Buffer Zone)를 강화하려는 계획이었을 것입니다. 

 

이어서 1954년, 탈스탈린화와 친유럽 정책을 추구했던 후르시초프는 크림 반도를 우크라이나에 붙여 주었습니다. 물론 당시에는 소련의 해체를 예상하지 못했었을 겁니다. 후르시초프가 크림 반도를 선물했던 이유는 러시아의 흑해 장악권을 약화시키려는 서방의 요구에 굴복했기 때문이라는 이론이 있습니다. 스탈린의 갑작스런 사망(maybe murder by injection by Trotskyites)을 바라본 후르시초프는 약간의 긴장감을 느꼈을 수도 있습니다.



핵심은 크림 반도입니다. 크림 반도가 중요한 이유는 거기에 러시아의 흑해 함대있기 때문입니다. 중동으로 나오는 러시아의 출구를 틀어막고 흑해를 장악하기 위해서는, 크림 반도를 빼앗고 NATO 함대를 배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서방의 글로벌리스트들은 T 투르크메니스탄, A 아프가니스탄, P 파키스탄, I 인도를 연결하는 TAPI pipeline 을 완성하기 위해 카스피해와 흑해의 장악을 노리고 있습니다. 

 

타타르 SS 여단
 

1941년, 바바로사 작전(Operation Barbarossa)에 의해 소련이 침공당한 후, 크림 반도는 나치에 의해 점령되었습니다. 1944년, 나치는 스탈린의 붉은 군대와 싸우기 위해 타타르족 무슬림으로 구성된 친나치 민병대 크리미안 타타르 SS 여단(Crimean Tatar SS brigades)을 조직합니다. 친위대 SS를 그대로 따온 이름입니다.

 

서방은 붉은 군대에 의해 잔인하게 학살당한 무고한 시민들로 묘사하지만, 이 타타르 무슬림 민병대는 하지 아민 알 후세이니가 이끌던 와하비스트/살라피스트들의 무슬림 브러더후드들입니다. 놀라웁게도 이들은 아르메니아 대학살을 일으킨 영 턱스(Young Turks)의 후예들이며, 그 외에도 각종 유대인 학살 사건들을 저질렀습니다. 히틀러의 지시에 의해 붉은 군대의 빨치산 레지스땅스와 싸우기 위해 창조된 이 아랍 나치들은 현재는 이슬람 테러리스트로 불리우고 있습니다. 무자헤딘, 알 카에다, 탈레반, IS의 선배들입니다.

 


아랍 나치와 유럽 나치간 영수 회담: Haj Amin al-Husseini & Adolf Hitler on 28 November 1941 


Credit Jamala ‘Won’ Singing Paean to Tatar SS Nazis

크림 반도는 친독파와 친러파로 갈라졌고, 크림 반도의 러시안들이 산으로 들어가 빨치산 레지스땅스에 가입했습니다
. 뉘렘베르크 재판대에 선 육군 원수 에리히 폰 만슈타인(Erich von Manstein)은 '타타르 SS 여단'이 친위대로부터 직접 전투 지시를 받았다고 증언한 적도 있습니다.

 

1944년, 크림 반도를 탈환한 스탈린은 타타르 무슬림 24만명을 추방했지만, 나치와 아랍 나치 모두를 그대로 접수받은 CIA는 현재에도 철저히 비밀리에 그들을 관리하고 있습니다. 유럽 전역에서 나치의 후예들이 활발히 활동하는 이유는 MI6-CIA의 지원 때문이며, 그것이 오늘 날 마이단 쿠데타를 가능하게 한 원동력입니다. 이 나치들이 유럽 연합을 지키는 힘입니다.

 

팝 송 역시 유럽 전역을 나치화(Nazification)하려는 그들의 계획에 활용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2016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에서 우크라이나 출신의 자말라가 부른 "1944"가 우승했습니다. 그러나 이 우승은 순수한 예술적 차원에서 결정된 것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이 곡은 바로 크리미안 타타르 SS여단의 1944년 활약상을 추앙하는 곡이기 때문입니다. 유럽인들은 부지불식간에 나치 찬가를 흥얼거리고 있는 지도 모릅니다.

 

티모쉔코

한 때 콜로모이스키와 한 편이었던 전 총리 율리아 티모쉔코 또한 칼라쉬니코프와 함께 푸틴의 제거를 원하는 인물로 알려졌는데, 그녀의 통화가
 누출되었습니다.


"이제 총을 들어야 할 때이다. 러시안과 그들의 지도자를 죽여야 한다. 그들의 머리에 총알을 박고 싶다. 그들이 크림 반도를 가져가는 일은 없어야 한다.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전세계가 일어나도록 해야한다. 러시아에 불타고 남은 곳이 있어선 안 된다. 우크라이나에 사는 러시안 800만은 모두 핵으로 죽여야 한다."

티모쉔코는 통화의 사실 여부를 인정하였으나, "800만 러시안들을 핵으로 죽여야 한다"는 부분 만큼은 러시아가 덧붙인 조작이라고 하였습니다. 핵 무기 사용 발언에 진심이 담긴 건지는 알 수 없지만, 서방의 핵을 쓸 수도 있다는 무의식에서 튀어 나온 말로 보입니다. 물론 우크라이나는 핵이 없습니다. 1995년 러시아가 회수했습니다.

 

러시아가 크림 반도를 가져간 것에 대해 격분하고 있는 티모쉔코는 라자렌코-티모쉔코 계열 과두지배자의 대표격인 인물로서, 가스 공사 Naftogaz 와의 유착과 부패 등으로 110억 달러 이상을 끌어 모아 ‘가스 공주’란 별명을 갖고 있습니다. CNN, MSNBC, FOX 등 서방 언론에서 잔 다르크로 불려지는 등 호감가는 인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2011년, 횡령, 착복, 권력 남용 혐의로 7년형과 1억 8천만 달러의 벌금을 선고받고 복역하던 중, 마이단 혁명 직후 석방되었으며 벌금은 취소되었습니다. 야누코비치가 떠난 이제는 그녀의 세상입니다. 티모쉔코는 콜로모이스키와 마찬가지로 패밀리 비즈니스를 지키고 확장하기 위한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있는 유대인 과두지배자이며, 서방의 글로벌 엘리트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MH17 격추


2014년 7월 17일,
 친러 민병대(러시안 분리주의자, 러시아 반군)의 통제하에 있던 동우크라이나 도네츠크 지역에서 말레이시아 여객기 MH-17(Boeing 777-200ER)이 격추당하는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네덜란드인, 말레이지아인, 호주인 등 298명 승객 전원이 사망하였습니다.

 

서방은 즉각 러시안 거주 지역 돈바스(도네츠크, 루한스크)의 친러 민병대를 범인으로 지목합니다. 푸틴이 제공한 Buk-M1 지대공 미사일을 보유하고 있던 친러 민병대가, 우크라이나 전투기로 오인하였다는 것입니다. 돈바스에서 우크라이나군과 친러 민병대간의 전투가 극한으로 치닫고 있었으며, 우크라이나의 전투기, 수송기 10기 정도가 이미 격추당한 상황이었습니다사고 직후 YouTube에는 실수를 인정하는 듯한 친러 민병대원들간의 무전 대화가 담긴 동영상이 올라왔습니다.


"방금 뭐 하나 떨어뜨렸어.."
"뭐라고? 전투기야?"
"뭔지 잘 모르니깐 확인해 달라고!"
"이런 젠장. 그거 여객기야!"

이것을 근거로 CNN을 비롯한 서방 언론들은 러시아에 대한 대대적 공세를 가했으며, 러시아의 도움 없이 민병대 자력으로는 여객기를 격추할 수 없다고 공격했습니다. 푸틴은 악마가 되었고, 러시아에게 경제 제재가 부과되었습니다. 미국, 유럽 연합, NATO는 러시아 고립 작전을 구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고가 일어나자마자 동영상이 너무도 재빠르게 포스팅된 것이 의아하며, 조사가 시작되기도 전에, 또한 블랙박스가 회수되기도 전에, 푸틴의 범행이며 전쟁을 해야할지도 모른다고 주장하는 서방 언론의 앵무새 같은 일치된 반응은 놀랍습니다. MH-17은 항로를 이탈해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10기 이상의 군용기가 이미 격추당한, 도네츠크로 날아가고 있었습니다. 여객기가 300마일이나 항로를 벗어나 위험 지역 상공을 상당 기간 비행한 이유와, 관제 센터의 제재가 없었던 이유는 의문입니다. 


항로 이탈? MH 17 Two years on: What really happened and why


너무도 재빠르게 올라온 동영상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친러 민병대원들간의 대화를 담은 YouTube 영상의 메타 파일을 분석하여 제작 일자를 검토한 결과, 격추 하루 전 7월 16일에 이미 만들어진 것이었습니다. 격추를 인정하는 친러 민병대원들의 대화는 실제로는 네오 나치 대원들의 연기였었음을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당시 우크라이나 보리스폴 공항에서 MH-17을 모니터링하고 있던 스페인 관제사 까를로스는, 사고 직후 키에프가 범인이라고 주장하는 트윗을 올렸으나, 그의 계정은 즉시 삭제당했습니다. 까를로스는 사고 당시 우크라이나 전투기들이 관제 화면에 나타났었다고 주장했습니다. 4km 뒤에서 쫓아가던 SU-25 전투기 2기가 MH-17을 격추했으며, 관제 기록을 압수한 우크라이나 당국이 친러 민병대 소행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군의 수호이 SU-25 전투기 또는 지대공 미사일이 범인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러시아가 공개한 레이다와 위성 자료에 의하면, 우크라이나 전투기가 MH-17의 3~5 km 근처에서 비행하고 있었습니다. 안드레이 카르토폴로프 중장은 사고 현장 근처 로소토브 공항의 관제 영상 기록에서 전투기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으며, R-60 공대공 미사일을 장착하고 있었고 5~12 km 거리에서 공격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당시 미국 정찰 위성이 동우크라이나 상공에 있었기 때문에 관련 자료가 있을 것이라며 미국측 자료의 공개를 요구했으며, 우크라이나의 Buk-M1 지대공 미사일이 사고 당일 사고 지역 근처로 이동된 것도 위성 자료에서 확인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서방 언론이 보도하지 않는 것은, 당시 우크라이나의 Buk-M1 미사일 발사대 27개가 사고 직전 현장 근처에 배치된 것입니다.


Daily Mail 기사는 이 사고를 "푸틴을 암살하려는 의도에서 실행된 우크라이나의 범행"으로 보고 있다는 러시아 일각의 시각을 보도하고 있습니다.


러시아 신문 Komsomolskaya Pravda〉의 2014년 12월 5일자 보도는 "푸틴에 대한 암살 시도"라는 그 동안의 주장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사고 관련자들의 구체적인 실명을 거론하고 있습니다. 여객기가 항로를 벗어나 위험 지역 상공을 비행한 것은 드니프로페트로프스크 공항의 "잘못된" 또는 "의도된" 관제 때문이며, 당시 여객기를 통제하고 있던 관제사는 안나 페트렌코라고 밝혔습니다. 격추범은 우크라이나 공군 299 비행대의 수호이 SU-25 전투기의 30mm 캐논포였으며, 격추 직후 조종사 드미트로 야카수츠 중령과 관제사 안나 페트렌코는 행방불명이 되었습니다. 첫 조사를 받기도 전에 두 사람은 두바이로 향했으며, 이후의 소재는 알 수 없다고 합니다. 항공 사고와 관련되어 관제사가 사라진 것은 역사상 처음있는 일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어서 보도하기를, 마이단 쿠데타 이후 동우크라이나 드니프로페트로프스크 지사가 된 푸틴의 숙적 유대인 재벌 콜로모이스키가, 당시 월드컵 관람과 BRICS 회담 후에 브라질에서 회항하던 푸틴의 비행 정보를 입수했고, Plane-1의 격추를 지시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 푸틴의 일류신 IL-96은 갑자기 경로를 바꾸었고, 동일 지점에 있던 보잉기와 실루엣이 비슷해 실수했다는 것입니다. 두 비행기의 경로가 X자로 교차하고 있기에 이 주장이 맞을 수도 있지만, 약 30분의 시간차가 나는 것도 고려해야 할 것입니다. 푸틴의 전용기는 근처의 비행기와 ID를 바꿔치기해서 그 비행기로 미사일을 향하게 하는 ID 교란 기술(spoofing technology)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푸틴이 과연 위험 지역 상공을 비행했을 지는 의문입니다.


푸틴의 전용기와 말레이 여객기


2014년 12월 22일
Komsomolskaya Pravda는 또 다른 보도를 하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드니프로페트로프 공군 기지에서 근무했던 한 우크라이나 공군 정비사의 인터뷰를 게재했는데, 이 정비사는 당시 격추 사고 1시간 전 자신의 기지에서 전투기 3기가 이륙하는 모습을 보았다고 말했습니다. 전투기들 중 1기는 R-60 공대공 미사일을 장착하고 있었으며, 장착되어 있던 미사일이 없는 채로 귀환했다고 밝혔습니다. 귀환하지 않은 나머지 2기는 격추당한 것으로 보이며, 귀환에 성공한 조종사는 블라디슬라프 볼로쉰 대위라고 밝혔습니다. 

 

격추당한 동료들 때문인지 볼로쉰 대위는 매우 겁에 질린 모습이었으며, 놀란 그가 보잉기를 전투기로 착각했었을 수 있다고 덧붙혔습니다. 육안으로 식별이 불가능한 거리에서 공격했을 거라고도 하였습니다. 친러 반군들은 비행기를 보유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공대공 미사일을 장착하고 출격할 이유는 없었다고 덧붙였습니다. 전투기에서 내리던 볼로신 대위가 정비사에게 건넨 첫 마디는 "다른 비행기야" 였다고 합니다.

우크라이나 당국은 볼로쉰 대위가 실존하기는 하지만, 사고 당일에는 비행하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러시아의 군사 전문가 알렉산드르 시로코라드는, 우크라이나 전투기의 캐논포 공격에 이어 미사일까지 맞았다고 주장합니다. 최소 2대 이상의 우크라이나 전투기가 발사한 30mm 대전차 캐논 로켓이 조종석을 공격하여 조종사들은 즉시 사망했으며, 이어서 우크라이나 측에서 발사한 Buk 지대공 미사일이 여객기를 공중 분해했다고 합니다. 이 미사일은 콜로모이스키의 사병 조직에서 발사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Buk 미사일은 친러 반군 뿐만 아니라 우크라이나 군도 보유하고 있으며, 사고 당시 양측의 미사일이 10 km를 사이에 두고 배치되어 있었습니다.
 


조종석 잔해 : 30mm 캐논포탄에 피격?


러시아 국방부는 미사일 노즐 파편에 적혀있는 일련 번호를 검토한 결과, MH-17을 격추한 미사일은 1986년 제작되었으며 현재 우크라이나군이 소유하고 있다고 발표했습니다.

마이단 사태 직후 러시아로 망명한 우크라이나 정보부 SBU 바실리 프로조로프 중령은, 격추 사건을 지휘한 것은 포로쉔코 대통령과 영국과 호주의 비밀 정보부였으며, 네덜란드 당국이 진실을 은폐했다고 폭로했습니다. MH-17 격추 사건은 007 작전이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여객기 폭파는 전쟁의 명분을 창출하기 위한 정보 기관의 가장 중요한 공작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콜로모이스키


YouTube에는 사고와 관련된 콜로모이스키의 대화 장면이 담긴 한 동영상이 있습니다. 그는 지인과의 통화에서, 실수로 다른 비행기를 맞췄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초보자가 복잡한 기계를 다루는 과정에서 일어난 해프닝으로 규정하였으며, "자신은 아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보잉 있잖아, 보잉… 그거 어떻게 된 거요?"

"무슨 뜻이야?"

"음… 음… 포로쉔코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습니까?"


"궁금해 할 것 없어. 그것은 사고였어. 아무도 떨어뜨릴려고 한 사람은 없었어."

"당신네 사람들이 했다고 하던데…"

"그만해! 무슨 소리 하는 거야! ........... 크하하하…..... 어떻게 알았지? 하나 떨어뜨릴려고 했는데, 그만 다른게 맞았어. 하하하. 하하하. 그냥 평범한 거야. 그렇게까지 나쁜 것은 아니라고. 보잉한테는 미안해. 희생자들한테도... 하지만 그런건 하찮은 일이라는 걸 알잖아? 초보자가 너무 어려운 것을 만지다가 그만 이런 쓰레기 같은 결과가 나왔어... 하하하.."

"그러니까 우리가 한 것이 맞아요?"

"대체적으로는… 하지만… 다른 팀이 있었어…"

이 영상은 MH-17 격추 사건이 서방의 주장과는 반대로 쿠데타 세력의 소행임이 분명해졌기 때문에, 수습 작전을 위해 등장한 것이 분명합니다고의가 아닌 실수였으며, 콜로모이스키의 책임이 아니라고 속이기 위한 목적에서 등장했을 것입니다. 또는 다른 과두지배자들에게 밀리지 않기 위해서 "나도 한 건 했어. 나도 인정해 줘"라는 뜻일지도 모릅니다. 또는 콜로모이스키에게 책임을 떠넘기기 위한 누군가의 공작일 수도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항상 비난의 화살을 대신 맞으면서 그들의 존재 가치를 인정받아 왔습니다. 또는 격추의 범인이 미사일이라는 확신을 주기 위해서였을 수도 있습니다. 미사일이 아니라, 원격 조종에 의한 추락이라고 말하는 분석도 있습니다. 



콜로모이스키의 사병 조직 : 포로쉔코의 공격에 대비해 바리케이드를 치고 있다. ukrnafta-kolomoysky-poroshenko-barricade/
 

러시아 혐오증 창조


베이징에서 열린 아시아 태평양 경제 협력체 정상 회의에서 푸틴을 만난 호주 수상 토니 애벗은, 명백한 증거를 가지고 있다면서 푸틴을 압박했습니다. 토니 애벗은, 1988년 이란-이라크 전쟁 말미 승객 248명이 타고 있던 이란 여객기 Iranian Airbus 655가 이란 전투기로 오인(?)한 미해군 순양함 USS 빈센느에 의해 격추된 사건을 언급했습니다. 많은 전문가들은 이 사건이 3차 대전을 일으키기 위한 미국의 도발이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조지 H. W. 부쉬는 "절대 사과하지 않겠습니다. 무엇이 사실인지는 관심없습니다."라고 했었지만, 결국 미국은 이를 사과하고 1억 3천만 달러의 배상을 한 전례가 있습니다. 토니 애벗은 러시아도 선례에 따라 즉각 사과하고 합당한 배상을 해야한다고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푸틴을 비난하던 네덜란드가 갑자기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은 특정한 짐작을 하게 만듭니다. 서방은 이제 더 이상 보도하지 않습니다. 가짜 뉴스 융단 폭격 후에 슬그머니 빠지는 것이 언론의 수법입니다. 대중의 기억 속에는 시끄럽게 떠들던 헤드라인만 남아있으면 됩니다. 네덜란드가 주도하는 합동 조사 위원회에는 네덜란드, 벨기에, 호주, 우크라이나가 참여하고 있으며, 러시아와 말레이지아의 참여는 거부되었습니다. 용의자 중의 하나인 우크라이나는 참여하고 있고, 피해자인 말레이시아가 참여하지 못하는 것은 매우 이상합니다.


이 조사팀은 내부 규약을 정했는데, 참여 국가 중 하나라도 반대하면 조사 내용을 공개할 수 없다는 내용이 있으며, 조사 결과를 공개하라는 시민 단체들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입을 다물고 있습니다. 말레이시아는 즉각적인 참여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예비 보고서에는 외부의 충격에 의해 추락했다는 내용만 있고, 누구의 소행인지는 밝히질 않고 있습니다. 최종 보고서는 2015년 여름에 발표되기로 예정되어 있습니다.


복수 또는 경고


말레이지아의 마하티르 총리는 러시아가 MH-17을 격추하지 않았으며, 이 사건은 처음부터 러시아에게 뒤집어 씌우기 위해 설계된 서방의 공작이라고 말합니다.

말레이지아는 넉 달 만에 2회의 여객기 사고를 당했습니다. MH-17 사고 넉 달 전 2014년 3월 27일, 승객 239명을 태운 
말레이 항공 MH-370이 남인도양 상공에서 실종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마이단 사태가 시작되던 바로 그 시점입니다. MH-370 여객기 실종 사건에 이어서 단기간에 연속 2회의 여객기 사고가 일어난 것은 우연으로 볼 수 없다 합니다. MH-370은 9-11 유형의 비행기 충돌 공격으로 오인한
미군의 사격으로 격추당했다는 설도 있습니다.

말레이 항공이 선택된 이유는, 이스라엘을 인정하는 대신 팔레스타인을 독립 국가로 인정하려 하는 말레이지아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보낸 것이라는 관측이 있습니다.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전범 위원회(재판소)가 이스라엘을 팔레스타인에 대한 대량 학살 전범으로 판결한 것에 대한 복수라는 것입니다. 게다가 말레이시아는 러시아와의 외교 관계를 새로이 하려던 참이었고, 중국을 포위하기 위한 비밀 군사 기지들을 설치하려는 미국의 요구를 거절하고 있었습니다. 말레이지아는 호시탐탐 정권 교체를 노리는 나라입니다. 나지브 라작 총리는 워싱턴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고 있습니다. 그들의 요구를 수용할 정권으로 교체하기 위해 재앙이 기획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사탄의 계시


마이단 사태 이후 IMF는 우크라이나를 식민지화하는데 성공했습니다마이단 쿠데타 직전이었던 2014년 1월 14일, IMF 총재 크리스틴 라가르드는 기자 회견을 열어 카발라의 수점(Numerology)에서 사용되는 이상한 숫자를 열거하면서, 어떤 이벤트가 일어날 것임을 예고하였습니다. 무언가 주술을 걸고 있는 듯 합니다. 


"2014년에 우리가 기대하는 것이 무엇인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시키는 대로 합니다여기에서 잠깐 여러분들의 수점 기술이 어느 정도 되는지 알아보겠습니다. 매직 세븐 아시죠? 7이라는 숫자를 눈여겨 봐야 합니다. 2014에서 0을 빼고, 14를 2로 나누면 7이 됩니다. 2014년은 마법의 해입니다. 2014년은 1차 대전 발발 100주년이며, 1944년 IMF를 탄생시킨 브레튼 우즈 회담 70주년입니다. 베를린 장벽 해체 25주년이며, 2008년 경제 위기 7주년입니다. 아직도 경제 위기에서 고통받고 있습니다. 지난 7년 동안 우리 경제는 매우 약했습니다. 때문에 앞으로 7년간 우리 경제는 매우 강해야 합니다. IMF도 무언가 해야할 것 같습니다."

수점이란 숫자로 보는 점을 의미하는데, 예를 들면 2014=2+0+1+4=7와 같은 것입니다. 25는 2와 5로 분해되고, 2+5=7이 됩니다. 때문에 7과 관련된 어떤 이벤트가 일어날 것임을 계시하는 것 같습니다. 크리스틴은 계속 7을 거론하면서 매직 세븐을 강조합니다. 카발라를 아는 깨달은 사람들만이 알아 들을 수 있습니다.


"Magic 7!" IMF 총재 글로벌리스트 유대인 Christine Lagarde


사고일인
2014년 7월 17일 또는 MH-17의 17을 의미하는 것이거나, 사고 기종 보잉 777의 7을 의미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사고 비행기의 번호 17과 격추된 날짜 17이 묘하게 일치합니다. 사고기는 1997년 처녀 비행을 했으며, 17년후에 사고를 당했습니다. 1996년 추락한 TWA-800 여객기 역시 추락일이 7월 17일이었습니다. TWA-800 추락의 공식 버전은 엔진 폭발이지만, 많은 목격자들은 미사일의 존재를 말하고 있습니다. 볼셰비키가 짜르 가족을 몰살한 날도 7월 17일입니다토라에 계시된 제7안식년(Shimita)을 의미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또는 새로운 전세계적 경제 체제의 출발을 의미한다고 보는 해석도 있습니다. 재앙을 통해 3차 대전을 일으킨 다음, 새로운 화폐 체제로 가겠다는 메시지일 수도 있습니다. 물론 이런 해석은 너무 간단히 본 것일 수도 있으며, 실제와는 전혀 맞지 않는 엉뚱한 해석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무언가를 암시한 것만은 분명합니다. 퀴즈를 맞춰보라는 뜻이었습니다. 혹시 여객기 격추는 뉴 월드를 얻기 위해 제물을 바치는 카발라 제식은 아니었을까?

 

카발리스트들은 희생될 제물들에게 미리 암시를 주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9-11 공격에도 수많은 암시가 있었고, 케네디 암살이나 이라크 침공과 같은 사건들의 일정들은 항상 히브류 달력에 의한 수점을 보아서 길일을 정했었습니다. "그렇게 많은 암시를 주었는데도 못 알아 듣다니 참 어리석은 존재들"이라면서 키득거릴 것입니다. 암시를 하는 그녀의 태도는 아주 능글맞고 당당합니다. 노예들에게 지시하는 주인 마님의 모습입니다. 사탄이 세상을 압도하고 있는 현실을 보여주는 한 단면입니다.

 

IMF 총재의 메시지는 마이단 사태 계획을 예고하는 것이거나, IMF와 World Bank에 도전하는 BRICS 은행 설립 무산을 위한 모종의 작전을 기획하고 있다는 뜻으로 볼 수도 있고, 또는 2014년 7월에 푸틴의 제거 작전이 실행될 것이라는 뜻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1차 대전 발발 100주년을 맞아, 3차 대전을 시작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KAL-007

MH-17 사건은 1983년 KE-007 격추 사건을 연상케 합니다. 1983년 9월 1일, 뉴욕에서 앵커리지를 경유하여 서울로 들어오던 보잉 747 기종 대한항공 KE-007 (이하 KAL-007)이 사할린 상공에서 소련 전투기에 의해 격추되었고, 탑승자 269명 전원이 사망한 사건입니다. 서방 언론들은 "아무 이유없이 살인을 저지른 야만인" 또는 "악마의 제국"이라는 대공세를 펼쳤고, 뉴스위크는 "하늘의 살인"이라는 글로 소련을 맹폭했습니다. 대한민국에서는 소련을 맹비난하는 규탄 대회가 열렸습니다. 세계는 다시 핵전쟁의 위기로 치달았습니다. 하지만 이 사건은 1960년 소련 영공을 침범했다가 우랄 산맥에서 격추당한 U-2 정찰기 격추 사건과 비슷한 점이 있습니다.


언론이 말하지 않는 것 중의 하나는, KAL-007이 원래의 항로를 500km 이상 이탈해 캄차카 반도 상공을 지나왔다는 것입니다. 소련 영공에 들어간 것입니다. 캄차카 반도의 페트로파블롭스크-캄차츠키에는 러시아 해군의 태평양 함대 기지가 있습니다. 블라디보스토크의 태평양 함대 본부 다음으로 중요한 기지입니다. 또한 근처의 빌류친스크에는 전략 핵 미사일을 탑재한 잠수함 29척을 포함해 원자력 잠수함 90척이 배치되어 있었던 잠수함 기지가 있습니다. 태평양의 군사적 세력 균형을 맞추기 위해 소련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태평양 함대입니다. 

언론이 말하지 않는 또 하나는, KAL-007 근처에 미국 정찰기 US RC-135가 동시에 비행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당대 최첨단의 정찰기로 평가받는 RC-135는 KAL-007이 캄차카 반도 상공을 지나가기 직전 태평양 함대 기지 상공을 지나갔습니다. 보잉 747을 개조한 이 정찰기는 KAL-007과 그 실루엣이 똑같아 어둠 속에서는 구분되지 않습니다.


언론이 말하지 않는 또 하나는, KAL-007이 항공기 식별을 위한 항공등과 트랜스폰더를 꺼놓았다는 것입니다. 항공법 위반입니다. 침입자를 강제 착륙시키기 위해 출격한 수호이 SU-15 전투기는, 정체 불명의 검은 물체에게 수차례 연락을 시도했지만 응답은 없었습니다. KAL-007은 모든 유리창을 내려 바깥으로 빛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했으며, 수호이의 교신에 일절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KAL기가 소련 영공으로 돌진한 이유는 수수께끼입니다. 항로 이탈의 원인이 기장의 실수인지 또는 자동 항법 장치의 고장인지 여부는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가장 암담한 시나리오는 항로 이탈을 지시받은 것입니다. 정찰기의 격추 가능성에 대비해 미사일을 대신 맞을 비행기가 필요했었을 수도 있습니다.

 

수호이는 계속 연락을 시도했지만 끝까지 응답하지 않았습니다. 깜깜한 밤 중에 여객기인지의 여부를 육안으로 판별하기는 불가능했습니다. 레이다는 깜빡거리지만 식별은 되지 않았습니다. 교신에도 응답하지 않는 것을 보면, 시커먼 물체는 적국 정찰기가 틀림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소련 당국은 빌류친스크의 잠수함 기지가 촬영된 것으로 생각했고, 적국 정찰기로 판단되는 검은 물체는 태평양 함대 본부가 있는 블라디보스토크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적국 정찰기가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하기 직전 격추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항로 이탈? Washington Lied Evidence Proves USSR Downed KE007 Plane by Accident

 

소련은 미국보다 먼저 블랙 박스 회수에 성공했지만, 당시에는 미국이 창조한 게릴라 그룹 무자헤딘과 아프가니스탄 10년 전쟁을 치루고 있던 극한 냉전의 와중이었습니다. 유리 안드로포프 서기장의 데탕트 제안을 거절하기 위해서는 상대를 악의 제국(Evil Empire)으로 몰아붙일 이벤트가 필요했었을 것입니다. 최대한 전쟁을 끌어 상대를 완전 소모시켜야 합니다.

 

결국 소련이 해체되고 데탕트 모드가 형성된 1992년, 러시아 정부는 모든 정보를 대한민국 정부에게 인계했고, 국제 민간 항공 기구 ICAO (The International Civil Aviation Organization)는 "항로를 이탈해 영공을 침범한 파일럿 실수"로 결론내렸습니다. 하지만 대한항공 여객기는 빠져나간 미국 정찰기 대신 미사일을 맞았을 수도 있습니다. 이 비행기의 번호에 007이라는 흑마술사의 번호(영국 정보부 설립자 존 디의 번호)가 붙어있는 것도 매우 꺼림칙합니다.

 

KAL-007 사건 5년전이었던 1978년 4월 20일, 파리에서 앵커리지를 거쳐 서울로 들어오는 대한항공 902편이 갑자기 항로를 180° 틀어 소련의 무르만스크로 돌진하다가 강제 착륙당한 사건도 있습니다. 그런데 무르만스크에는 소련 해군의 북방함대가 있다는 것이 또한 묘한 점입니다.

 

이러한 사건들을 종합해 보면, 미국의 군사 정보 당국은 대한항공 여객기를 꾸준히 소련 영공으로 밀어넣고 있었다는 것을 충분히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정밀 카메라를 장착하고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방공 태세를 시험해 보기 위한 의도도 분명 있었을 것입니다. 사고를 기다렸을 수도 있습니다. 사고가 일어난 사례는 빙산의 일각일 것입니다. 

 

전 CIA 정보 분석관 레이 맥거번은 MH-17 사건이 KAL-007 사건의 속편으로 보인다고 말합니다. KAL기의 비극을 재현하기 위한 시도였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번에도 미사일 발사를 유인했지만, 미끼를 물지 않았기 때문에 스스로 격추할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치열한 전쟁의 와중에서 정당성의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을 악마로 몰아붙이기 위한 가짜 깃발 테러 공격(False Flag Terror Attack)이 필요합니다.

 

바락 오바마가 MH-17을 폭파한 이유는, 러시아에 대한 경제 제재를 반대하는 유럽 9개국의 반발을 누를 수 있는 명분이 필요했기 때문이었습니다.



 

 

 

 

 

NATO의 동진

반면 미국과 서방은 구 바르샤바 조약 기구 가맹국들 즉 NATO에 가입하지 않은 국가들에 미군과 NATO군을 전진 배치하는 명분을 얻었습니다. 구 소련 연방이던 발틱 3국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와 몰도비아, 루마니아, 불가리아 등 러시아를 둘러싼 국가들과 흑해 연안에서 미군과 NATO군이 대규모 군사 훈련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유럽쪽에서는 NATO군이 완전히 러시아를 감쌌으며, 아시아쪽도 거의 완성 단계입니다. 오키나와 기지를 강정 마을로 이전하는 작업을 하고 있고, 자위대의 행동 반경을 수정하고 있으며, 미사일 배치를 압박하는 등 남북 긴장을 조성하려고 노력중이며, 남중국해에서도 "항해의 자유"를 떠들며 중국의 신경을 긁고 있습니다. 남중국해는 에너지 반입 경로이므로 중국에게 절대적인 지역입니다.

 

반면 독일, 체코 등에서는 행진하는 미군 장갑차에게 시민들이 계란을 던지는 일이 발생하였고, 체코 정부는 시민들이 미군에게 일절 반응하지 못하도록 강경 대응하였습니다. 체코 정부와 주 체코 미국 대사간에도 러시아 문제에 대해서 티격태격 입씨름이 벌어졌습니다. 러시아와 NATO의 완충지대가 없어졌습니다. 이 완충 지대가 바로 전쟁을 하기에 적당한 장소인데 이것마저 없어졌습니다.

 

러시아도 본격적인 대응에 나섰는데, 전략핵 폭격기가 미국 경계를 들락거리면서 상대를 살피고 있습니다. 소련 해체 이후 폐쇄하였었던 초음속 폭격기 T-160 "백조"의 생산 라인을 부활시켰습니다. 흑해로 몰려든 NATO군에 대항해 크림 반도의 병력 증강도 서두르고 있습니다.

중국은 흑해로 군함을 보내 러시아와 합동 훈련을 하고 있으며, 시진핑 주석은 붉은 광장에서 열린 2차 대전 승전 기념 70주년 군사 퍼레이드에 참석해 양국의 공조를 과시했습니다. 마이단 쿠데타는 노골적으로 속내를 드러낸 셈이 되었으며, 러시아와 중국을 갈라 놓으려다가 오히려 양국 관계가 더욱 가까워졌습니다. 반면 서방의 지도자들은 크림 반도를 침공한 러시아를 축하할 수 없다며, 기념 행사에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비밀 선전 포고


2014년 12월, 미 의회는 Resolution 758을 통과시켜 3억 5천만 달러 상당의 치명적 무기들을 키에프 정권에 지원할 것을 오바마에게 촉구하였습니다. 상원 의원 존 메케인은 우크라이나를 무장시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반면 상원의원 론 폴, 빅토리아 뉴랜드가 50억 달러를 가지고 일으킨 쿠데타가 사태의 원인이며,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증거가 없다면서, 의회의 결의안 통과를 네오콘의 전쟁 선포라고 비난하였습니다. 오타와 대학의 미셸 초수도프스키는 수억 인구의 희생을 불러올 수도 있는 선전 포고가 국민의 동의를 구하지 않은채, 언론의 취재조차 없이 이루어졌다고 비난했습니다.


프랑스는 러사아의 크림 반도 병합 이후 취해진 미국과 유럽 연합의 대러 제재의 일환으로, 러시아에 판매키로 하였던 12억 유로 상당의 미스트랄급 헬기 항모 세바스토폴호와 블라디보스톡호의 판매를 취소하여 러시아를 자극하고 있습니다. 러시아와 유럽이 군사적인 면에서까지 서로 협력하는 관계는 글로벌 엘리트들에게는 용납될 수 없는 일일 겁니다. 미 의회 결의안 통과가 이루어진 다음 날, 프랑스 대통령 올랑드는 푸틴을 긴급히 만나, 그간의 상황을 해명하고 비밀 메시지를 보냈다고 합니다.

비밀 메시지란 MH 17 여객기를 격추시킨 미사일은 푸틴의 비행기를 목표로 했었다는 것과, 오바마 정권이 러시아에게 비난의 화살이 향하게 할 가짜 깃발 공격(False Flag Terror Attack)을 계획하고 있으며, 이것으로 인하여 궁지에 몰린 러시아는 화를 참지 못하고 공격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첩보를 프랑스 정보부가 입수했다는 것이었습니다.

푸틴이 급작스레 S-400 트라이엄프와 Pantsir-S1 지대공 미사일을 모스크바에 배치한 것은 이 회동 직후였습니다. 올랑드의 메시지는 푸틴의 병력 증강을 유도하여 러시아가 전쟁을 하려 한다는 이미지를 만들려는 서방의 공작일 수도 있습니다. 푸틴을 흥분시키려는 심리 작전일수도 있습니다. 서방 언론들은 미사일 배치를 특필하면서 러시아가 전쟁을 의도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습니다.

보리스 넴쏘프 Boris Nemtsov

2015년 1월 27일, 러시아의 전 부총리 보리스 넴쏘프의 암살 사건이 일어납니다
. 보리스 넴쏘프는 러시아의 대표적인 반푸틴 정치인이며, 영국 정보부 MI6로부터 지원받고 있는 외세의 인물로 알려져 있는 인물입니다. 러시아의 모든 부문에 걸쳐 MI6-CIA 축으로부터 지원받고 있는 제5열 요원들이 무수하게 분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아무런 증거가 없는데도, 서방 언론은 푸틴의 작업으로 공격했습니다. 그러나 일촉즉발의 민감한 상황에서 푸틴의 지능 지수가 두 자릿수도 되지 않는 한 그런 우둔한 짓을 할 것 같은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자신의 소행이 드러나는 암살이란 아마추어들이나 하는 일일 겁니다.


오히려 보리스 넴쏘프 암살 사건 직후 우크라이나에서는 미심쩍은 사망 사건들이 일어났으나, 언론에서는 절대 보도되지 않습니다. 희생자들의 공통점은 키에프 신정부에 비판적이며, 러시아와 공조해야 한다고 주장하던 사람들이라는 점입니다. 희생자들은 모두 자살로 처리되었습니다.

 

1월 29일 : 정치인 Aleksey Kolesnik, 목매 자살

2월 24일 : 정치인 Stanislav Melnik, 저격 암살

2월 25일 : 멜리토폴 시장 Sergey Valter, 목매 자살

2월 26일 : 멜리토폴 부경찰청장 Aleksandr Bordyuga, 사체로 발견

2월 28일 : 정치인 Mikhail Chechetov, 아파트 창문에서 추락사

3월   9일 : 정치인 Stanislav Melnik, 저격 암살

3월 12일 : 정치인 Oleksandr Peklushenko, 저격 암살

3월 22일 : 전직 검사 Serhiy Melnychuk, 아파트 창문에서 추락사

4월 13일 : 언론인 Sergei Sukhobok, 저격 암살

4월 15일 : 정치인 Oleg Kalashnikov, 저격 암살

4월 16일 : 언론인 Oles Buzyna, 저격 암살

- 2편으로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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