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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내부로의 여행(1)|
시사종교 > 상세보기 | 2013-12-19 06:50:00
추천수 53
조회수   2,209

제목

지구 내부로의 여행(1)|

글쓴이

김도식 [가입일자 : 2013-04-08]
내용


내부 지구로의 여행 - 1부

A VOYAGE TO THE INNER WORLD

By Olaf Jansen

1908









From the Book "The Smoky God"

by Willis George Emerson









올라프 얀센 이야기

OLAF JANSEN'S STORY





























나의 이름은 올라프 얀센Olf Jansen이다. 나는 발틱 해Baltic Sea의 북쪽에 있는 보스니아 만Gulf of Bothnia의 동해안에 있는 울레보그Uleaborg의 한 작은 러시아 어촌에서 태어났지만 노르웨이 인이다.







나의 부모는 보스니아 만의 한 어선에 있었고, 1811년 10월 27일 내가 태어날 무렵, 울레보그의 이 러시아 어촌으로 보내졌다.







나의 아버지, 옌스 얀센Jens Jansen은 로포덴 섬Lofoden Islands 가까이에 있는 스칸디나비아 해안의 로드윅Rodwig에서 태어났지만, 결혼 후에 스톡홀름에 정착했는데, 나의 어머니 가족이 그 도시에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찍이 나는 책을 좋아하는 적성을 보여주었고, 9살 때 스톡홀름에 있는 사립학교에 보내졌으며, 14살이 되기까지 그 학교에 다녔다. 졸업 후에 나는 아버지와 함께 모든 그의 정기적인 고기잡이 여행에 따라다녔다.







나의 아버지는 키가 6피트 3인치(187cm)의 장신이었고 몸무게가 210파운드나 되는 전형적인 거친 노르웨이 인으로, 내가 알고 있는 어떤 다른 남자들보다 강인한 타입이었다. 그는 부드러운 작은 방식으로 여성의 온화함을 지니고 있었지만, 그의 결의와 의지력은 막강했다. 그의 의지는 패배를 인정하지 않았다.







나는 우리가 어부로서 마지막 여행이 된 여행을 떠났을 때 19살이었고, 그 여행은 세상에 주어질 이상한 이야기가 될 것이었는데 -- 그러나 내가 지구의 순례여행을 끝내기 전에는 나오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내가 살아있는 동안 그것이 발행된다는 사실을 허용하지 않을 터인데, 더 많은 수치와 감금과 고통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먼저, 나는 나를 구해준 포경선의 선장에 의해 철창에 갇혔는데, 그 이유는 다름 아닌 내가 나의 아버지와 나 자신에 의해 만들어진 경이로운 발견들에 대한 진실을 말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나의 이어질 고문의 끝이 아니었다.







4년 8개월의 잠적 후에 나는 스톡홀름에 도착했고, 나의 어머니가 한 해 전에 돌아가셨음을, 나의 부모가 남긴 재산이 내 어머니 가족의 소유가 되어있음을 알았으나, 그것은 어쨌든 내게 돌아왔다.







내가 나의 기억으로부터 우리 모험의 이야기와 나의 아버지의 끔찍한 죽음을 지워버릴 수 있었다면, 모든 것이 잘 되었을 것이다.







마침내 어느 날, 나는 유력한 성품의 소유자인 나의 삼촌 Gustaf Osterlind에게 자세히 그 이야기를 했고, 내가 그 이상한 나라로 다시 항해를 떠날 수 있도록 장비를 마련해줄 것을 재촉했다.







처음에 나는 그가 나의 계획을 좋아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는 관심을 갖는 듯 보였으며, 내가 어떤 공무원에게 가서 그에게 했던 대로 우리 여행과 발견의 이야기를 설명해주라고 초대했다. 내가 말을 끝내고, 어떤 서류들이 나의 삼촌에 의해 서명되었을 때, 나는 예고도 없이 체포되어 한 정신병원의 어둡고 무서운 감금상태로 끌려갔으며, 그때의 나의 절망감을 상상해보라. 그리고 나는 거기서 28년을 갇혀서 -- 길고 지루하고 끔찍한 고통의 해들을 보냈다!







나는 나의 온전함을 주장하고, 나의 감금에 대한 부당함을 제기하는 것을 결코 멈추지 않았다. 마침내 1862년 10월 17일, 나는 석방되었다. 나의 삼촌은 이미 죽었고, 나의 젊을 때 친구들은 이제 이방인들이 되었다. 실로, 그의 유일하게 알려진 기록이 정신병자인 50살이 넘은 한 남자는 친구가 없었다.







나는 생계로 무엇을 해야 할지 알지 못했으나, 본능적으로 많은 어선들이 정박해 있는 선창으로 발걸음을 돌렸고, 한 주일 안에 Yan Hansen이란 이름의 어부가 로포덴 섬으로 긴 고기잡이 여행을 떠날 때 그의 배를 탔다.







여기서 나의 초기 해들의 훈련이 가장 큰 유리한 점으로, 특히 나 자신을 유용하게 만들 수 있었다. 이것은 다른 출항의 시작에 지나지 않았으며, 나는 절약해서 몇 년 안에 나 자신의 쌍 돛배를 소유할 수 있었다. 그 후 27년 동안, 나는 어부로서 바다를 항해했는데, 5년은 다른 사람들을 위해 일했고, 마지막 22년은 나 자신을 위해 일했다.







이 모든 해들 동안 나는 가장 부지런히 책을 읽는 학생이었고, 또한 나의 사업에서 열심히 일하는 일꾼이었으며, 그러나 나는 나의 아버지와 나 자신에 의해 만들어진 발견들에 대한 이야기를 어느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는데 큰 주의를 기우렸다. 지금같이 시간이 많이 지난 때에도 나는 누군가 내가 쓰고 있는 일들과 내가 간직하고 있는 기록과 지도들을 보거나 알가 봐 두려워진다. 나의 지구상의 날들이 끝날 때, 나는 지도들과 기록들을 남길 것이고, 그것들이 밝혀져서 인류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정신병자들과의 나의 긴 감금에 대한 기억, 그리고 모든 무서운 고뇌와 고통들이 또 다른 위험을 감수하기에는 너무나 생생하게 살아있다.







1889년 나는 배들을 팔았고, 내가 남은 생애를 보낼 만큼 충분한 재산을 축적했음을 알았다. 그때 나는 미국으로 건너왔다.







십여 년 동안 나의 집은 일리노이 주, 바타비아Batavia 근처에 있었고, 거기서 나는 나의 서재를 위한 대부분의 책들을 모았는데, 비록 내가 스톡홀름으로부터 많은 책을 가져왔지만 말이다. 나중에 나는 로스앤젤레스로 왔는데, 여기에는 1901년 3월 4일에 도착했다. 그 날은 내가 잘 기억하는데, 그것이 맥킨리McKinley 대통령의 두 번째 취임식 날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 소박한 집을 샀고, 덩굴나무와 무화과나무로 둘러싸인 여기 내 자신의 사적 거처에서 우리가 발견했던 새로운 땅들에 대한 지도들과 그림들을 만들고, 나의 아버지와 내가 스톡홀름을 떠나 남극해에서 우리를 갈라놓은 그 비극적 사건이 있기까지 자세한 이야기를 글로 쓰기로 결심했다.







나는 우리가 1829년 4월 3일 우리의 돛을 단 어선으로 스톡홀름을 떠났던 것을 잘 기억하며, 고스랜드 섬Gothland Island을 왼쪽으로, 올란드 섬Oeland Island을 오른 쪽으로 하면서, 남쪽으로 행해를 떠났다. 며칠 후 우리는 샌호머 지점Sandhommar Point을 급회전하면서 덴마크와 스칸디나비아 해안을 가르는 소리를 통해 나아가는데 성공했다. 그러는 동안 우리는 크리스치안센Christiansand의 어촌에 들렀고, 거기서 이틀을 쉬었으며, 그런 다음 스칸디나비아를 돌아 서쪽으로 로포덴 섬을 향해 떠났다.







나의 아버지는 기분이 좋았는데, 우리의 마지막 어획물을 스칸디나비아 해안의 어촌에서 팔기보다 스톡홀름의 시장에서 팔아서 번 충분하고 만족스러운 수입 때문이었다. 그는 작년에 북쪽으로 항해 중에 프란즈 조셉 랜드Franz Joseph Land의 서쪽 해안에서 그가 발견했던 어떤 코끼리 상아들의 판매로 특히 기뻐했으며, 그는 이번에도 우리가 대구, 청어, 고등어, 연어 대신, 상아로 우리의 작은 돛단배를 가득 채울 만큼 다시 행운이 있었으면 하는 희망을 표현했다.







우리는 며칠간 쉬기 위해 위도 74도 40분에 있는 해머페스트Hammerfest에 들렀다. 여기서 우리는 한 주일 동안 머물면서, 여분의 식량과 여러 통의 식수를 준비했고, 그런 다음 스피츠버겐Spitzbergen으로 출항했다.







처음 며칠 동안 우리는 넓은 바다와 호의적인 바람을 만났고, 그런 다음 많은 얼음과 많은 빙산들을 만났다. 우리의 작은 돛단배보다 조금 더 큰 배라면 빙산들의 미로를 통해 가거나 겨우 열린 수로들을 빠져나가는 것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들 괴물 빙산들은 크리스탈 궁전들로, 거대한 성당들로, 환상적인 산맥들로 끝없이 연속해서 나타났으며, 근엄한 보초처럼, 움직일 수 없는 단단한 바위의 치솟은 절벽처럼 서있었고, 스핑크스처럼 조용히, 성마른 바다의 요동치는 파도들에 저항하는 듯 했다.







많은 좁은 곳들을 탈출하면서 우리는 6월 23일 스피츠버겐에 도착했고, 잠시 동안 위자드 만Wijade Bay에 정박했으며, 거기서 우리는 꽤 좋은 어획고를 달성했다. 그런 다음 우리는 닻을 들어 올렸고, 힌로펜 해협Hinlopen Strait을 통해 나갔으며, 노스이스트-랜드Northeast-Land의 해안선을 따라갔다.







강한 바람이 남서쪽에서 불었고, 나의 아버지는 우리가 그것을 이용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하면서, 프란츠 조셉 랜드로 가려고 했는데, 그곳에서 작년에 그는 스톡홀름에서 그처럼 큰 수입을 올려준 상아들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전에 결코 나는 그처럼 많은 바다 조류들을 본 적이 없는데, 그들은 너무나 수가 많아서 해안선의 바위들을 온통 덮었고 하늘을 어둡게 할 정도였다. 여러 날 동안 우리는 프란츠 조셉 랜드의 울퉁불퉁한 해안을 따라 항해했다. 마침내 우호적인 바람이 불어와서 우리가 웨스트코스트West Coast로 나갈 수 있게 해주었으며, 24시간을 항해한 후 우리는 한 아름다운 후미로 들어갔다.







그것이 그 머나먼 노스랜드Northland인지는 아무도 믿을 수 없을 것이다. 그 곳은 자라는 풀들로 녹색이었고, 그 장소가 1,2 에이커 밖에 되지 않았지만, 공기가 따뜻했고 고요했다. 바로 그 지점에서 걸프 스트림Gult Stream의 영향이 가장 심하게 느껴지는 듯 했다.







거기 동해안에는 많은 빙산들이 있었으나, 여기서 우리는 넓은 바다에 면해 있었다. 그런데 우리의 왼쪽으로 멀리 얼음 덩어리들이 있었고, 더 멀리 왼쪽으로 얼음이 낮은 산맥들처럼 나타나보였다. 우리들 앞에는, 곧장 북쪽으로 넓은 바다가 놓여있었다.







나의 아버지는 오딘과 토르Odin and Thor의 열렬한 신봉자였으며, 그들이 “북풍North Wind” 너머 먼 곳으로부터 온 신들이라고 자주 내게 얘기해주었다.







나의 아버지는 설명했는데, 더 멀리 북쪽으로 인간이 알아온 어느 곳보다 더 아름다운 땅이 있으며, 거기에는 “선택된Chosen” 자들이 거주하고 있다는 구전이 있다고 말했다.







나의 어린 상상력은 나의 선량한 아버지의 열정과 열의, 종교적 열기로 불이 붙었으며, 나는 소리쳤다. “왜 이 신의 나라로 가지 않는 거죠? 하늘은 맑고, 바람은 순조로우며, 바다가 열려 있잖아요.”







지금도 나는 그가 돌아서서 물었을 때 그의 얼굴에서 즐거운 놀람의 표정을 볼 수 있다. “아들아, 너는 나와 함께 인간이 모험해보지 못한 곳으로 가기를, 탐험하고 싶으냐?” 나는 확고하게 대답했다. “그럼요.” “그럼 좋아,” 그는 대답했다. “오딘Odin 신이 우리를 보호해주기를,” 그리고 재빨리 돛을 조절하고, 나침반을 들여다 본 다음, 정 북쪽으로 열린 수로를 통해 배를 돌렸으며, 그리하여 우리의 항해가 시작되었다.







태양은 수평선에 낮게 걸려 있었는데, 그때가 아직 이른 여름이었기 때문이었다. 실로 우리는 얼어붙는 밤이 다시 오기까지 우리 앞에 거의 4개월의 낮이 있었다.







우리의 작은 돛단배는 우리들처럼 모험을 향해 열렬히 달려갔다. 36시간 안에, 프란츠 조셉 랜드의 해안선의 최고봉의 모습이 사라졌다. 우리는 북동풍으로 북쪽으로 흐르는 강한 조류 속에 있는 듯 보였다. 우리의 오른쪽과 왼쪽으로 멀리 방산들이 있었으며, 그러나 우리의 작은 돛단배는 좁은 수로로 들어가 여러 수로들을 지나 넓은 바다로 나왔는데, 여기저기 수로들이 너무나 좁아 우리 배가 그처럼 작지 않았다면 우리가 결코 헤쳐 나갈 수 없었을 것이다.







3일째 우리는 하나의 섬에 도달했다. 그 해변은 바닷물에 씻겨있었다. 나의 아버지는 내려서 하루 동안 탐험하기로 결정했다. 이 새로운 땅에는 목재들이 없었으나, 북쪽 해안에서는 떠내려 온 나무들의 거대한 더미를 발견할 수 있었다. 어떤 나무들은 길이가 40피트(12m), 직경이 2피트(60cm)나 되었다.







이 섬의 해안선을 하루 동안 탐험한 후, 우리는 닻을 올리고 배를 넓은 바다의 북쪽으로 돌렸다. 나는 아버지도 나도 거의 30시간 동안 음식을 먹지 않았음을 기억했다. 아마 이것은 아무도 가보지 않았다고 나의 아버지가 말했던 더 먼 북해로 우리의 이상한 항해에 대한 흥분의 긴장 때문이었으리라. 활동적인 정신력은 육체적 필요성의 요구들을 무디게 만들었다.







우리가 예상했듯이 추위가 심해지는 대신, 날씨가 6주 전의 노르웨이 북쪽 해안의 해머페스트에 있을 때보다 더 따뜻하고 더 포근했다.







우리는 매우 배가 고픔을 둘 다 인정했고, 그래서 나는 식품 저장실로부터 푸짐한 음식을 준비했다. 우리가 식사를 즐겁게 한 후, 나는 아버지에게 잠이 올 것 같다고 말했는데, 심한 졸림을 느끼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 내가 망을 볼 거야,” 하고 그는 대답했다.







나는 그로부터 내가 얼마나 잤는지를 모르는데, 단지 돛단배의 격심한 요동으로 갑자기 깨어났음을 알았을 뿐이다. 놀랍게도, 나는 아버지가 곤히 잠들어 있음을 발견했다. 나는 힘차게 그에게 소리쳤고 그는 놀라 벌떡 일어났다. 실로 그가 즉시 난간을 잡지 않았더라면, 그는 분명 요동치는 파도 속으로 던져졌을 것이다.







격렬한 눈보라가 불고 있었다. 바람은 후미를 향해 매 순간 우리를 전복시킬 듯 위협하면서 우리의 돛단배를 무서운 속도로 밀고 있었다. 당황할 시간이 없었고, 돛은 즉시 내려져야 했다. 우리의 배는 격동 속에 몸부림쳤다. 우리가 알고 있던 몇 개의 빙산이 양쪽으로 서있었으며, 그러나 다행히도 수로는 북쪽으로 곧장 열려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그대로 계속될까? 우리들 앞에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수평선에 걸쳐 안개가 끼어있었는데, 바로 물 위에는 이집트의 밤처럼 검고, 위로 가면서 증기구름처럼 하얀 안개가 되었는데, 그것은 떨어지는 거대한 흰 눈송이들과 섞이면서 마침내 앞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것이 불안정한 빙산을 가리고 있는지, 달려오는 우리의 작은 돛단배를 받아쳐 물 밑으로 수장시킬런지, 아니면 하나의 북극의 안개 현상에 지나지 않는지, 그것을 분간할 방법이 없었다.







어떤 기적에 의해 우리가 완전한 파괴의 충돌을 피해왔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나는 우리의 작은 배가 마치 이음새들이 부사지고 있는 듯 삐걱거리며 신음했던 것을 기억한다. 그것은 마치 큰 소용돌이의 사나운 역류에 사로잡힌 듯 흔들리면서 앞뒤로 비틀거렸다.







다행히도 우리의 나침반은 대들보의 긴 나사못에 매여져 있었다. 그러나 우리 식량의 대부분이 나뒹굴면서 작은 짐칸의 갑판으로부터 휩쓸려 나갔고, 우리가 맨 처음 돛의 기둥에 우리 자신을 단단히 묶지 않았다면 우리는 질타하는 바다 속으로 휩쓸려 들어갔을 것이다.







성난 파도의 귀청이 터질 듯한 소리 위로 나는 아버지의 목소리를 들었다. “아들아, 용기를 내어라,” 그는 소리쳤다. “오딘은 물의 신이고, 용감한 자들의 친구이고, 그는 우리들과 함께 있다. 두려워하지 마라.”







나에게는 우리가 참혹한 죽음을 피해갈 가능성이 없는 듯이 보였다. 작은 돛단배에는 물이 가득 찼고, 눈은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빨리 내리고 있었으며, 파도는 흰 물보라를 맹렬히 뿌리면서 난간위로 넘실거렸다. 우리가 어느 순간, 떠다니는 얼음 덩어리에 곤두박질하게 될지는 알 수 없었다. 엄청난 파도가 우리를 파도의 산꼭대기로 들어 올렸다가 마치 우리의 고기잡이 배가 연약한 조개껍질인 듯 깊은 바다 골짜기로 내동댕이쳤다. 거대한 흰 모자를 쓴 파도들이 단단한 벽처럼 앞과 뒤에서 우리를 압박하고 있었다.







이 끔찍한 신경을 곤두세우는 시련은 그 이름 없는 긴장의 공포, 말할 수 없는 두려움의 고뇌와 함께 3시간 이상이나 계속되었고, 그 동안 우리는 격렬한 속도로 앞으로 밀려갔다. 그런 다음, 갑자기, 마치 그 광란의 호기가 점점 싫증이 낳는지, 바람이 그 노여움을 풀면서 차츰 시들기 시작했다.







마침내 우리는 완전한 고요 속에 있었다. 안개도 사라졌으며, 우리들 앞에는 얼음이 없는 수로가 아마 10 내지 15마일이나 넓게 펼쳐져 있었는데, 몇 개의 빙산이 우리 오른쪽에서 멀리 보였고, 왼쪽으로는 작은 섬들의 군도가 드문드문 보였다.







나는 아버지를 자세히 바라보면서 그가 말하기 전에는 조용히 있으리라고 결심했다. 지금 그는 허리로부터 로프를 풀고 있었고, 말 한 마디 없이 펌프를 작동시키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다행히 손상되지 않았으며, 폭풍의 광란 속에 퍼 담았던 물을 빼기 시작했다.







그는 마치 어망을 던지려는 듯 배의 돛을 조용히 펼쳤으며, 그런 다음 우리는 순풍이 올 때 맞을 준비가 됐다고 말했다. 그의 용기와 인내는 정말로 대단했다.







우리가 조사를 해보니 식량이 1/3도 안되게 남은 것을 알았으며, 우리는 물통들이 배가 격렬하게 떨어질 때 갑판으로부터 휩쓸려 나간 것을 발견하고는 경악했다.







물통 2개는 짐칸에 있었는데, 그러나 둘 다 비어 있었다. 우리는 상당한 음식이 있었으나 먹을 물이 없었다. 나는 즉시 우리 입장의 참담함을 깨달았다. 지금 나는 격심한 갈증에 사로잡혀 있었다. “참 딱하군,” 아버지가 말했다. “그러나 우리의 젖은 옷을 말리자, 우리가 완전히 젖었어. 아들아, 오딘 신을 믿어라. 희망을 버리지 말자.”







태양이 비스듬히 비치고 있었다, 마치 우리가 먼 북쪽 땅에 있다기보다 남쪽 위도에 있는 듯이. 해는 한 바퀴 돌고 있었는데, 그 궤도가 언제나 보였고, 매일 점점 더 높이 떠올랐으며, 자주 안개로 덮였는데, 그러나 언제나 마치 어떤 운명의 까다로운 눈처럼 구름 사이로 내다보았고, 신비로운 북쪽 땅을 수호하면서, 질투심으로 인간의 못된 장난을 주시하는 듯 했다. 우리의 오른쪽으로 멀리, 빙산의 프리즘으로 반사된 빛들이 아름다웠다. 그 반사는 석류석, 다이아몬드, 사파이어의 빛깔들을 내뿜었다. 무수한 색깔들과 모양들의 화려한 파노라마였으며, 그 아래에는 녹색을 띤 바다가, 위로는 보라색의 하늘을 볼 수 있었다.







북풍을 넘어서BEYOND THE NORTH WIND







나는 음식을 좀 가져오고, 짐칸으로부터 빈 물통 하나를 가져오면서, 바쁘게 움직이면서 갈증을 잊으려고 노력했다. 손과 얼굴을 씻으려는 목적으로 나는 난간 밖으로 물통에 물을 채웠다. 물이 나의 입술과 닿자 나는 깜짝 놀랐는데, 소금기가 없었다. 나는 그 발견으로 정말 놀랐다. 나는 숨이 넘어갈 듯 소리쳤다. “아버지, 물이, 물이, 먹을 수 있어요.” “올라프, 뭐라고?” 아버지는 급히 돌아보면서 소리쳤다. “네가 정말 이상해졌구나. 땅도 없는데, 네가 정신이 이상해 지나보군.” “맛보세요!” 나는 소리 질렀다.







그런 다음, 우리는 물이 실제로 민물이라는 것을, 최소한의 소금기도 없는, 심지어 소금의 맛을 의심할 수도 없는, 절대로 민물임을 발견했다.







그래서 우리는 2개의 남은 물통들을 채웠고, 나의 아버지는 그것이 오딘과 토르 신들로부터 자비로운 천상의 은혜라고 선언했다.







우리는 기쁨으로 들떠있었고, 그러나 배고픔이 우리의 참아온 단식을 끝내도록 만들었다. 우리가 넓은 바다에서 마실 물을 발견한 지금, 배가 결코 다녀본 적 없고 노 젓는 소리가 들린 적 없는 이 이상한 위도에서 우리가 예상할 수 없는 것은 무엇일가?







우리는 산들바람이 한가한 돛을 부풀게 만들기 시작할 때 배고픔을 겨우 달랬고, 나침반을 들여다보았을 때 우리는 북을 가리키는 침이 유리에 딱 달라붙은 것을 발견했다.







나의 놀라는 반응에 아버지가 말했다. “난 전에 이것에 대해 들은 적이 있어. 그것은 그들이 바늘의 침잠dipping of the needle이라고 부르는 거야.”







우리는 바늘이 유리로부터 떨어져 방해받지 않게 가리키라고, 나침반을 느슨하게 하고 그것을 바다 쪽으로 향하게 한 다음 직각으로 돌렸다. 그것은 마지못해 움직였으며, 술 취한 사람처럼 불안정하게 보였고, 마침내 하나의 방향을 가리켰다.







이것을 하기 전에 우리는 바람이 북서풍으로 북쪽으로 우리를 데리고 가고 있다고 생각했으나, 바늘이 자유로워진 다음 우리가 그것을 믿을 수 있다면, 우리가 북동풍으로 약간 북쪽으로 가고 있음을 발견했다. 그러나 우리의 진로는 항상 북쪽을 향했다.







바다는 고요하게 순조로웠고, 거의 파도가 없었으며, 바람은 산들거리고 즐거웠다. 태양의 빛은 우리를 비스듬히 비추면서 차분한 따뜻함을 주었다. 그리하여 시간이 하루하루 지나갔고, 우리 일지의 기록을 보았을 때 우리가 공해에서 폭풍을 만나 후 11일 동안 항해했음을 알았다.







철저한 검약으로 우리의 음식이 우리를 잘 지탱하게 해주었으나,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 우리의 물통 중 하나가 비어졌으며, 나의 아버지는 말했다. “물을 다시 채워야겠다.” 그러나 놀랍게도, 우리는 물이 지금은 노르웨이 해안의 로포덴 섬 지역에서처럼 소금기가 있음을 발견했다. 이것은 우리가 남아있는 물통을 극도로 아끼게 만들었다.







나는 오래 동안 잠을 청하는 나 자신을 발견했는데, 그것이 미지의 바다를 항해한다는 흥분의 체험으로 인한 것인지, 혹은 폭풍의 바다에서 우리 모험의 무섭게 긴장된 사건으로부터 긴장완화로 인한 것인지, 또는 음식의 부족으로 인한 것인지, 말할 수 없었다.







나는 작은 돛단배의 짐칸 쪽으로 자주 누웠고, 하늘의 푸른 돔으로 멀리 바라보았는데, 태양이 동쪽에서 멀리 빛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항상 머리 위에 있는 하나의 별을 보았다. 며칠 동안 내가 이 별을 바라보았을 때 그것은 항상 우리들 바로 위에 있었다.







때는 이제 우리 계산으로 8월 1일 경이었다. 태양이 하늘에 높이 떠 있었고, 너무나 밝아서 며칠 전에 나의 관심을 끌었던 하나의 외로운 별을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이 시기의 어느 날, 나의 아버지가 나를 깨워서 거의 수평선으로 우리들 앞에 멀리 있는 한 신기한 광경으로 나의 관심을 돌렸다. “저건 가짜 태양이야,” 그는 소리쳤다. “그것에 대해 읽은 적이 있어, 그것은 반사나 신기루라고 부르지. 그건 곧 사라질 거야.”







그러나 이 불그스레한 가짜 태양은, 우리가 생각한 대로 몇 시간 동안 사라지지 않았다. 우리가 그것이 내뿜는 빛을 의식하지 못하는 동안은, 매일 24시간 중 최소한 12시간 동안인데, 우리는 여전히 앞의 수평선을 넘어 가짜 태양의 광채의 위치를 찾을 수 없었다.







구름과 안개가 종종 거의, 그러나 전부는 아닌데 그 태양의 위치를 가렸다. 점차 그것은 우리가 다가가면서 뿌연 보라색 하늘의 수평선에서 더 높이 떠오르는 것처럼 보였다.







그것은 둥근 모양을 제외하고는 태양과 닮았다고 말할 수 없으며, 구름이나 바다의 안개로 가려지지 않을 때에는 뿌연 붉은 색의 구리의 모습을 가졌으며, 마치 저 너머 더 큰 빛을 반사하듯이, 빛나는 구름처럼 흰 빛으로 바뀌곤 했다.







우리는 의논에서 그 현상의 원인이 무엇이든, 그것이 우리 태양의 반사가 아니라, 다른 종류의 행성 - 하나의 현실 - 이라고 이 뿌연 용광로 색깔인 태양에 대한 합의에 마침내 도달했다. 이 후 곧 어느 날, 나는 심하게 졸림을 느꼈고, 편안하게 잠으로 떨어졌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은 듯, 금방 나는 아버지가 어깨를 힘차게 흔들면서 ”올라프, 깨어나, 섬이 보인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나는 벌떡 일어섰고, 오! 기쁨이 말할 수 없었다! 멀리, 그러나 바로 우리의 길 앞에, 바다로 삐죽이 나온 땅들이 있었다. 해안선이 눈이 닿는 멀리까지 우리의 오른쪽으로 뻗어있었다. 모래사장을 쭉 따라 파도가 거품으로 부서지면서 나갔다 들어오며, 단조로운 우렁찬 음조로 심해의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제방이 나무들과 풀들로 덮여있었다.







나는 이 발견으로 내가 느꼈던 환희의 기쁨을 표현할 수 없다. 나의 아버지는 키에 손을 얹고, 곧장 앞을 보면서 가만히 서 있었다. 그의 가슴은 오딘과 토르 신에 대한 은혜의 감사의 기도로 가득 차있었다.







그러는 동안 짐칸에 있던 그물을 바다로 던졌고, 우리는 줄어들던 식량에 물질적으로 보탬을 줄 몇 마리의 물고기를 잡았다.







또 다른 폭풍의 두려움으로 우리가 제 자리에 붙여놓았던 나침반은 아직도 북쪽을 가리키고 있었으며, 스톡홀름에서처럼 그 축을 돌고 있었다. 바늘의 눌림은 멈추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 수 있는가? 우리들의 항해의 많은 날들은 확실히 우리를 북극North Pole을 지나 멀리로 데려왔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바늘은 계속 북쪽을 가리키고 있었다. 우리는 매우 당황했는데, 확실히 우리의 방향이 지금은 남쪽이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해안선을 따라 3일간을 항해했으며, 그때 피요르드fjord의 입구, 광대한 강의 입구가 나타났다. 그것은 큰 만과 같아 보였고, 이곳으로 우리는 고기잡이 배를 돌렸으며, 방향은 남쪽의 약간 북동쪽이었다. 매 24시간 중 12시간 동안 우리를 밀어주는 성마른 바람의 도움으로, 우리는 내륙으로, 나중에 우리가 주민들로부터 히덱켈Hiddekel이라고 알게 된 거대한 강으로 계속 들어갔다.







우리는 그로부터 10일간 여행을 계속했고, 대양의 조수가 더 이상 영향을 미치지 않는, 물이 소금기가 없는 강으로, 깊은 내륙으로 들어왔음을 알았다.







그 발견은 우리의 남아있던 물통이 거의 비어갈 무렵 왔다. 우리는 급히 물통들을 채웠으며, 바람이 순조로울 때 강을 거슬러 위쪽으로 더욱 여행을 계속했다.







제방을 따라 수 마일에 이르는 큰 숲이 연안을 따라 펼쳐진 것을 볼 수 있었다. 나무들은 어마어마한 크기였다. 우리는 가까운 모래사장에 닻을 내린 다음 상륙했고, 매우 입맛에 맞고 배고픔을 달래주는 많은 너트들로 보상 받았으며, 그것은 우리의 남은 단조로운 식량으로부터 반가운 변화였다.







그것은 9월 초 무렵이었고, 우리가 스톡홀름을 떠난지 우리 계산으로 5개월 이상이 되었다. 갑자기 우리는 멀리서 들려오는 사람들의 노래 소리를 듣고 거의 정신 나간 듯 놀랐다. 그 후 곧 우리는 거대한 배가 강으로 미끄러지면서 우리를 향해 오는 것을 발견했다. 거기 탄 자들은 제방 여기저기로 에코가 울리는 하나의 힘찬 합창으로 노래를 부르고 있었고, 천명이 부르는 목소리로, 떨리는 멜로디로 전 우주를 채우려는 듯이 노래를 불렀다. 반주가 우리의 하프 같은 현악기로 연주되었다.







그것은 우리가 본 어느 배보다 큰 배였고, 다른 식으로 건조되어 있었다.







이 특별한 시간에 우리의 돛단배는 조용해졌고 연안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다. 강의 제방은 아름다운 모습으로 수백 피트(30m x ?)나 치솟은 매머드 나무들로 덮여 있었다. 우리는 분명히 내륙으로 뻗어있는 어떤 원시림 변두리에 있는 듯이 보였다.







광대한 배는 멈추었고, 거의 즉시 보트가 내려졌으며, 거대한 키의 여섯 남자들이 우리의 작은 고기잡이 돛단배로 노를 저어왔다. 그들은 우리에게 이상한 언어로 말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의 태도로부터 그들이 비우호적이 아님을 알았다. 그들은 자기들끼리 상당히 얘기했고, 마치 우리를 발견한 것이 신기한 발견을 한 것처럼, 그들 중 하나가 호탕하게 웃었다. 그들 중 하나가 우리의 나침반을 엿보았고, 그것이 우리 배의 다른 어느 부분보다 그들에게 더 관심이 있는 듯 보였다.







마침내 지도자가 우리가 우리 배를 떠나 그들의 배에 오르겠는가를 묻는 듯한 몸짓을 했다. “아들아, 넌 뭐라고 하겠니?” 하고 아버지가 물었다. “그들이 우리를 죽이는 이상이야 하겠는가.”







“그들은 친절한 성품인 거 같아요,” 나는 대답했다. “비록 대단한 거인들이긴 하지만! 그들은 왕국의 진압 부대의 선발된 6명이 틀림없어. 그들의 장대한 크기를 봐요.”







“우리는 끌려가기보다 자발적으로 가는 게 나아,” 아버지가 웃으면서 말했다. “어차피 그들은 분명 우리를 잡을 수 있을 테니까.” 그래서 그는 몸짓으로 우리가 그들과 같이 갈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알렸다.







몇 분 후에 우리는 그 배를 올랐고, 30십분 후에 우리의 작은 고기잡이 배가 이상한 고리에 의해 통째로 물에서 들어 올려 졌으며, 호기심으로 갑판 위에 놓여졌다.







우리들에게는 매머드와 같은 이 배에는 수백 명의 사람들이 타고 있었으며, 배는 “나즈The Naz”라는 이름을 가진 것으로, 나중에 그것이 “즐거움”, 더 정확하게는 “즐거운 소풍Pleasure Excusion”의 배를 의미함을 알게 되었다.







나의 아버지와 내가 배의 탑승원들로부터 호기심으로 관찰되었다면, 이 이상한 거인 종은 우리들에게 대등한 정도의 경이감을 주었다.







배 위에는 키가 완전히 12피트(3.6m)가 되지 않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그들은 모두 무성한 수염을 기르고 있었는데, 특히 길지는 않고 짧게 자른 듯 했다. 그들은 온화하고 아름다운 얼굴, 불그스름한 혈색의 특히 섬세한용모를 지니고 있었다. 일부의 머리와 수염은 검은 색이었고, 다른 이들은 모래 색이거나 노란 색이었다. 우리가 큰 배를 지휘하는 인물로 선장으로 생각한 이는 그의 다른 동료들보다 머리 하나가 완전히 더 컸다. 여자들은 평균적으로 10피트에서 11피트(3m-3.3m)였다. 그들의 이목구비는 특히 균형이 잡히고 세련된 반면, 그들의 얼굴은 건강한 빛으로 고조된 가장 고운 빛을 띠고 있었다.















남자들과 여자들은 우리가 좋은 가문의 표시로 생각하는 그 특유의 우아한 매너를 지닌 듯 보였고, 그들의 우람한 체격에도 불구하고, 그들 주위로 어색함을 나타내는 그 무엇도 없었다. 내가 19살 밖에 안 된 한 소년이었기 때문에, 틀림없이 내가 난장이로 보였으리라. 1.8미터 되는 아버지의 머리는 이 사람들의 허리 위를 넘지 못했다.







각각이 우리에게 예의를 나타내고 친절을 보이는데 다른 사람과 겨루는 듯 보였고, 그들이 나의 아버지와 내가 테이블에 앉도록 의자를 즉석에서 만들어주었을 때 모두들 밝게 웃었던 것을 나는 기억한다. 그들은 그들에게 특이하고도 아주 매력적인 고급스러운 의상을 입었다. 남자들은 비단과 새틴의 멋지게 수놓은 튜닉을 입고 허리에 벨트를 찼다. 그들은 짧은 바지와 고운 질감의 스타킹을 신었고, 그들의 발은 금 버클로 장식된 샌들을 신고 있었다. 우리는 금이 가장 흔한 금속으로 알려져 있음을, 그것이 장식에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음을 일찍이 알았다.







이상하게 들릴지 몰라도, 나의 아버지도 나도 우리의 안전에 대해 조금도 걱정을 느끼지 않았다. “우리는 우리들 자신의 땅으로 왔다.” 나의 아버지는 내게 말했다. “이것은 내 아버지와 내 할아버지가, 그리고 우리 종족의 많은 세대들을 통해 전해져온, 내가 들어온 이야기의 완성이야. 이것은 확실히 북풍 너머의 땅이야.”







우리가 그 그룹에게 큰 인상을 준 듯 했고, 우리는 그들 언어의 교육을 받을 목적으로 그들 중 한 사람인 쥴스 갈데아Jules Galdea와 그의 아내에게 특별히 맡겨졌으며, 우리들로서도 그들이 가르치는 것을 배우기를 열망했다.







선장의 명령으로, 배는 교묘하게 한 바퀴 돌아 강 위쪽으로 그 진로를 되돌리기 시작했다. 그 엔진은 소음이 없는 반면 매우 강력했다.







양쪽의 제방들과 나무들이 달리는 것처럼 보였다. 배의 속도는 가끔 내가 여기 미국에서조차 타 본 어느 기차보다 빨랐다. 그것은 훌륭했다.







그러는 동안 태양 빛이 사라졌으며, 그러나 우리는 이미 우리의 관심을 끌었던 불그스레한 태양에서 나오는 “그 내부의” 빛이 지금 우리들 앞에 멀리 있는 구름 언덕으로 흰 빛을 주고 있음을 발견했다. 그것은 말하자면 맑은 밤하늘에 두 개의 보름달보다 더 밝은 빛을 비추었다.







12시간 안에 이 흰 구름은 마치 기울어지듯 시야로부터 지나갈 것이고, 우리의 밤에 해당하는 12시간이 뒤따를 것이다. 우리는 이 이상한 사람들이 이 밤의 큰 구름을 숭배하는 자들임을 일찍이 알았다. 그것은 “내부 세계Inner World”의 “연기의 신The Smoky God”이었다.







배는 내가 지금 전기라고 알게 된 발광의 양식을 장착하고 있었지만, 내 아버지도 나 자신도 배를 운전하거나 부드러운 아름다운 빛을 유지하는 그 힘이 어디서 오는지 이해할 만큼 기계학에 조예가 없었다. 그것은 근래에 와서 우리 도시들의 거리들, 우리의 주택들, 사업장들을 밝히는 전등의 같은 목적에 답을 주었지만 말이다.







내가 기록했던 그 시기가 1829년 가을임을 기억해야 하는데, 지구의 “외부outside” 표면의 우리들은 당시에 소위 전기라는 것에 대해 아무 것도 몰랐다.







전기적으로 충전된 공기의 상태가 항구적인 동력원이었다. 나는 아버지와 내가 지구의 내부에서 여행했던 2년이 내 인생에서 가장 좋았다고 느낀다.







사건들에 대한 나의 설명을 재개하자면, 우리가 탔던 배가 우리가 그 배를 탄지 이틀이 지나서 도착했다. 나의 아버지는 그가 판단할 수 있는 최선으로, 우리가 바로 스톡홀름이나 런던 아래 있다고 말했다. 우리가 도착한 도시는 항구 어촌을 뜻하는 “제후Jehu”라고 부르는 곳이었다. 집들은 크고 아름답게 건축되었으며, 모양이 꽤 일관적이었으나 똑같지는 않았다. 사람들의 중요한 일은 농업처럼 보였다. 언덕 기슭들은 포도밭으로 덮여있었고, 계곡들은 곡식의 재배에 충당되었다.







나는 그처럼 많은 금이 진열된 것을 본 적이 없다. 그것은 모든 곳에 있었다. 문의 케이스들이 금 상감으로 꾸며졌고, 테이블들은 금의 합판으로 꾸며져 있었다. 공공건물들의 돔들이 금으로 덮여있었다. 음악의 대 전당들의 마감재에 금이 주로 일반적으로 사용되었다.







풀들이 왕성하게 자랐으며, 모든 종류의 과일들은 가장 특이한 향미를 지니고 있었다. 포도송이는 4-5피트(1.2-1.5m)나 되었고, 각각의 포도 알이 오렌지만 했으며, 사람 머리보다 큰 사과들은 지구의 “내부inside”의 모든 것의 경이로운 성장을 전형적으로 보여주었다.







캘리포니아의 거대한 미국 삼나무는 여기서 모든 방향으로 수십 마일이나 뻗어있는 거대한 숲의 나무들에 비교할 때 관목들에 지나지 않았다. 산기슭을 따라 많은 방향들에서 거대한 소떼들이 강에서의 우리 여행의 마지막 날 동안 보였다.







우리는 “에덴Eden”으로 부르는 도시에 대해 많이 얘기를 들었으며, 그러나 1년 동안은 전적으로 “제후”에 남아있었다. 그 시기가 끝날 무렵, 우리는 이 이상한 종족의 사람들의 언어를 꽤 익숙하게 말하는 법을 배웠다. 우리의 교사인 쥴스 갈데아와 그의 아내는 참으로 칭찬할만한 인내를 보여주었다.







하루는 “에덴”의 지도자로부터 한 사절이 우리를 보러 왔고, 이틀 동안 나의아버지와 나는 일련의 놀라운 질문들을 받았다. 그들은 우리가 어디서 왔는지, 어떤 종류의 사람들이 “바깥”에서 살고 있는지, 어떤 신God을 우리가 숭배하는지, 우리의 종교적 신념이 어떤지, 우리의 이상한 땅에 생활 방식이 어떤지, 그리고 수천의 다른 질문들을 알고 싶어 했다.







우리가 가져갔던 나침반은 특별한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나의 아버지와 나는 우리들끼리 나침반이 아직도 북쪽을 가리킨다는 사실에 대해 얘기했는데, 비록 우리가 지금 지구의 구멍의 곡선 또는 테두리를 넘어 항해했고, 지구의 껍질의 “안쪽” 표면에서 남쪽으로 멀리 와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리고 아버지와 나의 계산에 따르면, 내부에서 외부 표면까지의 두께가 약 300마일이 될 것이라고 알고 있다. 비교적으로 말해서, 그것은 계란 껍질보다 더 두껍지 않은데, 따라서 지구의 외부에 있는 것처럼 내부에도 같은 정도의 지각이 있는 것이다.







거대한 빛나는 구름 또는 불그스레한 불의 공은 - 아침과 저녁에는 불타는 빨간 색을, 한 낮에는 아름다운 흰 빛을 내는 “연기의 신the Smoky God”으로 - 외관상 내부 지구의 거대한 진공의 중심에 멈춰 있는 듯, 혹은 불변의 중력 법칙에 의해서거나, 반발적 대기의 힘으로 그 자리에 묶여 있는 듯 보인다. 나는 모든 방향에서 동등한 힘으로 당기거나 반발하는 알려진 힘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이 전기 구름, 혹은 중앙 발광체의 바탕, 신들gods의 자리는 검고 투명하지 않은데, “연기의 신”이 그 위에서 쉬는, 신성한 제단 혹은 큰 지지대의 바닥에 있는 듯 보이는 무수한 작은 구멍들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그리고 이들 많은 구멍들을 통해 나오는 빛들이 밤에 그 광채로 반짝이며 별들처럼 보이는데, 우리가 스톡홀름의 집에서 바라본 빛나는 별들과 같이 자연스럽지만 예외는 그것들이 더 크게 보인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연기의 신”은 매일 지구의 회전으로 동쪽에서 뜨고 서쪽으로 지는 것처럼 보이는데, 외부 표면에서 우리들의 태양이 하는 것과 같다. 현실적으로 “내부”의 사람들은 “연기의 신”이 그들의 제호바Jehovah의 왕관이고 정지되어 있다고 믿는다. 따라서 밤과 낮의 효과는 지구의 매일 회전에 의해서 생긴다.







나는 그 후 내부 세계의 사람들의 언어가 산스크리트Sanskrit와 많이 닮았다는 것을 발견했다.







내부 대륙의 정부의 중앙 권좌로부터 온 사자들에게 우리 자신에 대한 설명을 준 후, 나의 아버지는 조잡한 방식으로, 그들의 요청대로, 지구의 “외부” 표면에 대한 지도를, 땅과 바다의 구분을 보여주고, 각 대륙과 큰 섬들과 대양의 이름을 주는 지도들을 그렸으며, 우리는 유럽이나 미국에 있는 것과는 다른 운송수단으로 “에덴Eden”의 도시로 데려가졌다. 이 운송수단은 틀림없이 어떤 전기의 발명품이었다. 그것은 소음이 없고, 완전한 균형 속에서 단일 궤도를 달렸단. 여행은 아주 높은 속도로 이루어졌다. 우리는 언덕들과 골짜기들을 지났고, 계곡들을 지나 다시 가파른 산기슭을 따라, 우리가 철로를 만들듯이 땅을 평형하게 만들려는 어떤 시도도 없이 오르내리며 달렸다. 차 안의 좌석은 거대했으나 편안했고, 바닥에서 무척 높았다. 각 차량의 꼭대기에는 높이 장착된 나는 바퀴들이 옆으로 놓여 있었고, 아주 자동적으로 조절되기 때문에, 차의 속도가 증가할 때 이 나는 바퀴들의 속도가 기하학적으로 증가했다. 쥴스 갈데아는 차 꼭대기의 이 회전하는 선풍기 같은 바퀴들이 대기의 압력을, 혹은 일반적으로 중력의 의미로 이해되는 것을 소멸시킨다고, 그리고 이 힘이 소멸되거나 무로 만들어질 때 차가 단일 레일로부터 어느 쪽으로 떨어지지 않고 안전한데, 마치 그것이 진공 속에 있는 듯이 안전하다고 우리에게 설명했다. 그 급속한 회전에서 나는 바퀴들은 실제로 중력의 힘을, 혹은 대기압을, 혹은 땅 표면으로의 근접한 저항 점으로 모든 것을 낙하하게 만드는 어떤 잠재적 영향력을 소멸시킨다는 것이다.







왕실의 위용을 갖춘 넓은 홀 가운데서 우리가 마침내 모든 땅들의 지배자인 최고 사제Great High Priest 앞으로 데려가졌을 때, 나의 아버지와 나의 놀라움은 이루 표현할 수가 없었다. 그는 화려한 옷을 입고 있었고, 그 주위의 자들보다 훨씬 컸으며, 키가 14-15피트(4.2m-4.5m) 정도 되었다. 우리가 접견한 광대한 방은 영롱하게 빛나는 보석들이 여기저기 박힌 단단하고 두꺼운 금판들로 꾸며져 있는 듯 보였다.















에덴의 도시는 아름다운 계곡으로 보이는 곳에 위치해 있었고, 실제로는 내부 대륙Inner Continent의 가장 높은 고원 위에, 둘러싸고 있는 지역의 어느 곳보다 수천 피트나 더 높은 곳에 있었다. 그것은 내가 모든 나의 여행에서 보아온 것 중 가장 아름다운 장소였다. 이 높은 정원에는 모든 종류의 과실들, 덩굴들, 관목들, 나무들, 꽃들이 요란한 풍성함 속에 자라고 있었다.







이 에덴의 막강한 원천의 수원에 4대 강이 그 기원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들은 나눠지며 4대 방향으로 흘렀다. 이 장소는 주민들에 의해 “땅의 배꼽navel of the earth,” 혹은 시작, 혹은 “인간 종의 요람the cradle of the human race”이라고 불리어졌다. 강들의 이름들은 유프라테스Euphrates, 피손the Pison, 기혼the Gihon, 그리고 히데켈the Hiddekel이었다.







이 아름다운 궁전에서 우리를 기다리던 예기치 못한 것은 우리의 작은 고기잡이 배의 발견이었다. 그것이 1년 좀 더 전에 우리를 발견했던 사람들에 의해 배에 실어졌던 바로 그날, 물에서 들어 올린 것과 같은 완전한 모습으로 최고 사제 앞에 가져와져 있었다.







우리는 이 위대한 사제와 두 시간이 넘게 알현을 가졌으며, 그는 친절하고 사려 깊은 성품인 듯 했다. 그는 확실히 그의 사절들이 하지 못했던 문제들에 대해 많은 질문을 함으로써 직접 열띤 관심을 보여주었다.







인터뷰의 결론에서 그는 우리가 즐거운지, 우리가 그의 나라에 남기를 원하는지, 아니면 우리가 지구의 북쪽과 남쪽 입구를 둘러싼 얼음의 장애물들을 지나 성공적인 귀환 여행을 만드는 것이 가능해질 때 “외부” 세계로 돌아가기를 더 원하는지를 물었다.







나의 아버지는 대답했다. “나와 내 아들이 당신의 나라를 방문하고, 당신의 국민을 만나고, 당신들의 대학들과 음악 및 예술의 궁전들을, 당신들의 거대한 농장들을, 당신들의 훌륭한 목재의 숲들을 본 것은 말할 수 없는 즐거움이며, 우리가 이 즐거운 특권을 누린 다음, 우리는 지구의 ”외부“ 표면에 있는 우리의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나는 나가는 길이 가장 위험하기 때문에 당신들이 결코 돌아갈 수 없을 가봐 두렵습니다,” 하고 최고 사제가 대답했다. “그러나 당신들은 쥴스 갈데아의 에스코트를 받아 다른 지방들을 방문할 것이고, 모든 예의와 친절로 대우 받을 것입니다. 당신들이 돌아가는 항해를 할 준비가 될 때가 언제이든, 나는 여기 전시된 당신들의 배를 히데켈 강의 입구로 보낼 것이고, 우리는 당신들에게 제호바Jehovah의 속도를 기원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최고 사제, 대륙의 지배자와의 우리의 유일한 인터뷰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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