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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이 근본 이다 日 本 / 펌
시사종교 > 상세보기 | 2012-04-21 10:59:43
추천수 16
조회수   1,649

제목

태양이 근본 이다 日 本 / 펌

글쓴이

김재용 [가입일자 : 2000-05-20]
내용
Related Link: http://hiramid.kr/bbs/board.php

삶과 죽음에 대하여





생명의 기본원칙







수세기에 걸쳐 인간은 일련의 세포덩어리로부터 생명의 기본원칙들을 찾으려고 애써 왔다. 그럴바에야 차라리 산소를 잡으러 바다에 그물을 던지는 게 나을런지도 모르겠다. 이는 시각화 되어진 것에서 비롯되는 물질 진동의 파장을 찾으려는 노력으로부터 생겨난 오류가 될 뿐이다.



“물질적인” “물질”의 위치와 입자에 기초한 계산일뿐이라면, 보르텍스(소용돌이)와 그리드(격자)가 어디에 존재하는냐 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당연히 그렇듯이 진동이란 그런 것이 아니다—그렇지만 지구상의 계산에 따르자면 그런 것이다. 지구에서는 반쯤 완성된 방정식이란 그 어떤 식으로도 제대로 다루어지지 않는다.



만약 인간이 창조의 “전체로서의 하나”인 ‘생각(Idea)’이자,

존재하는 그 자체로서의 ‘앎’을 다루지 않는다면, 인간은 그 어떤 전체로서의 해결책도 구해내지 못하게 된다.





물질적인 것 속에는



생명이 없다, 그 속에는 죽음도 없다,



왜냐하면 물질은 단지 ‘움직임’일 뿐이기 때문이다.

움직임은 시작하고, 끝나고, 다시 시작된다.



하지만 생명은 불멸이다.

거기에는 시작도 없다. 거기에는 끝도 없다. 따라서 생명은 죽을 수도 없다.





오랫동안 인간은 자신의 육체가 자신에게,

그 육체가 해당되는 당사자에게,

바로 그 대상에게 속하는 것이라고 믿어왔다.



그러나 인간의 육체는 단지 ‘움직임’일 뿐이다.



그것은 어떤 ‘객체’도 가질 수가 없다.



하나님(신)은 인간 속에 거한다.





바로 그 ‘사람’,



인간 속에 있는 바로 그 ‘존재’는



불멸인 것이다.



인간 속에 있는 생명은 그 인간 속에 있는 하나님이기도 한 것이다. 자연 속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창조-소멸-재창조되듯이,



인간의 육체는 삶-죽음-환생의 시퀀스를 통해 생명을 표현해 내는 방식으로



그 속에 있는 하나님을 현현시키게 된다.





인간의 육체는 ‘창조’의 ‘하나’로서, ‘전체’인 ‘생각’의 일부분을 이룬다.



모든 창조물은 바로 이 ‘하나의 생각’의 표현이자, 각각 그 부분과 부분들로 되어 있는 전체에 대한 ‘일부들’일 뿐인 것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생각의 모든 부분들에게 영원히 반복되는 육체를 주어,

자신이 생각하는 바로 된, 분리된 빛의 파동 사이클 속에서, 자신의 생각을 구현해 내게 되는 것이다.



각 사이클의 절반은 그런 생각을 구현해 낼 수 있는 형태 속에 ‘생각’ 자체를 담아내어, 그것을 활성화시켜 그것이 형태를 띤 채 생성되어지는 데 할애된다.



사이클의 나머지 절반은, 그러한 반복되는 육체활동 과정에서 새로운 반복을 준비할 수 있도록, 그 근원의 빛 속에서 휴식을 취하게 만드는 데, ‘생각’을 펼쳐내는 것에 할애되는 것이다.





빛 속에서의 휴식상태로 돌아가는 것이 죽음은 아닌 것이다. 이것은 향후 갱신된 육체된 속에서 생명을 다시 구현해 내기 위한 재탄생의 목적을 위한 삶으로 되돌아가는 것일 뿐이다.





당신들은 한 인간이 자신의 육체를 부분적으로 새롭게 갱신하기 위해 잠이 들었을 때, 그가 죽었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제 나름의 목적성을 띠고 임무를 수행해 온 신체의 일부분들(세포들)이 소멸하고 새로운 것들로 대체된 육체를 가진 채, 그가 다시 깨어날 것이라는 점을 당신들은 잘 알고 있다.







인간의 육체 전체가 허물을 벗고 새로운 것으로 교체될 때에는, 이에 부응할만큼, 그는 보다 긴 잠 속에서 휴식을 취해야만 하는 것이다.





인간의 육체 전체가 허물을 벗고 새로운 것으로 교체될 때에는,



이에 부응할만큼, 그는 보다 긴 잠 속에서 휴식을 취해야만 하는 것이다.





인간의 육체는



움직임 속에 있는 빛의 패턴화된 파동일 뿐이다.



파동이 대양의 고요 속으로 사라질지라도, 이는 이내 곧 다시 생겨난다.







대양 역시 창조의 ‘생각’의 일부인 것이다.



파도가 대양이 가진 힘에 대한 ‘생각’을 구현해 낼지라도,

대양의 진정한 ‘힘’와 ‘생각’은,



그것이 파도를 통해 표현되든지 그렇지 않든지를 떠나서,



대양의 ‘고요’ 속에 이미 존재하는 것이다.







마치 지렛대의 ‘움직임’이 고정되어져 있는 받침대에서 생겨나듯,



대양으로부터 생겨나는 폭풍우는 바로 그 고요로부터 생겨나는 것이다. 모든 움직임은 고요로부터 생겨나는 ‘두 방향으로의 확장’인 것이다.



당신들은 대양이 고요 속에 평온한 상태로 있다고 해서 대양이 죽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당신들은, 대양이 움직임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려는 충분히 강한 의도를 갖게 되었을 때, 또 다시 파도의 움직임을 통해 자신의 힘을 보여줄 것이라는 점을 잘 알기 때문이다.





빛의 파동은 인간의 육체에 일시적인 형태를 줄 뿐이지, 인간의 육체를 생성해 주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빛의 파동이 ‘인간’인 것도 아니고, ‘인간의 생각’인 것도 아니다.



인간의 ‘육체’는 태양의 부성 및 모성의 빛으로 된 다른 파동들의 확장이며,



인간의 생각은 태양에 중심을 둔 정지된 빛 속에 존재한다.





인간은 항존하는 빛이기에



결코 죽을 수도 없으며, 그는 모든 곳에 존재한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육체 역시 불멸의 인간을 구현하기에 죽을 수 없으며,



불멸의 인간은 항상 자신을 구현시킬 육체를 갖게 된다.







지구로부터 확장되어지는 이 인간의 육체는 하늘과 땅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하지만 지구의 인간들에게는 사라지는 것처럼 느껴질지라도

이것이 존재하기를 멈춘 것은 아닌데,



왜냐하면 이 육체의 패턴은 반복을 위해 늘 기록되어져 온 것으로서, 그것은 여전히 존재하며, 다시 나타나게 ‘될’ 것이다.



인간의 ‘감각들’은 사라짐으로부터 다시 나타남에 이르는,

인간의 육체적 여행상에서의 이 휴식의 사이클에 맞춰지지 않으나, 인간의 ‘앎’은 전체 사이클 모두에 걸친 이해에 이르게 되고,



인간은 자신 속에 하나님이 있음을 알 때,



자신의 육체의 영원한 반복성에 대해서도 알 수 있게 된다.







물이 수증기나 가스처럼 감각을 통해서 감지할 수 없는 것 속으로 사라졌을 때,

당신들은 그 물들이 자신들의 여행 사이클을 마쳤을 때 다시 물로서 나타날 것이라는 점을 알고 있다.



인간이 자신 속에 있는 빛을 알게 되었을 때, 그는 ‘전체로서 하나인 생각’의 일부분으로서 자신이, 자신의 창조주를 구현해 내는 목적을 완수하기 위해 영겁의 세월에 걸쳐 다시 돌아올 것이라는 점도 분명히 알게 될 것이다.



이러한 목적은 한번의 삶의 사이클을 통해서 완수되어질 수는 없고,



심지어 천만번의 환생의 열배에 이르는



사이클들의 반복을 통해서도 완수되지 못한다.





인간은 이제 겨우 인간의 생각을 당신들의 행성 위에 표현해내기 시작했을 뿐이다.



인간은 아직 갈길이 멀고, 마치 밤의 어둠 속으로 사라졌던 빛이,

바로 그 어둠 속으로부터 다시 나타나 낮의 빛을 만들어 내듯이,



인간이 자신의 구현을 위해 필요로 하는 육체는 분명코 자신에게 다시 되돌려질 것이다.







‘죽음’ 이후에는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결코 밝혀진 적이 없는 미스테리이기도 한 “죽은 후 당신은 어디로 가는가”와 같은 질문에 대해서는 분명 이해할 수 있을만한 답변이 주어져야 한다. 추상적인 개념이나 이론들로는 충분치 않을 것이다. 자연의 과정들은 간단하면서도 모두가 다 똑같다. 사라지게 되는 어느 한가지에게 발생하는 일은 모든 다른 것들에게도 발생한다. 이러한 자연의 과정 속에 예외란 존재하지 않는다.





당신들 태양계 속에 있는 모든 것들은



태양으로부터 왔고, 태양으로 돌아가게 된다.





인간이 찾고자 하는 ‘생명의 기원’은 태양 속에 있다.



인간의 생각도 태양 속에 있다. 마찬가지로 ‘모든 것들’의 ‘모든 생각들’도 태양 속에 있으며, 형태를 갖춘 채 태어나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태양의 확장을 통하여 각각의 생각들이 낳아지기에 알맞은 조건들이 형성되면, 극성을 띤 약동하는 빛이 모든 생각들을 형태를 띤 것으로 생성해 내게 된다.





“자연 속의 모든 것은



‘하나의 빛’의 정지된 지점으로부터의 움직이는 확장인 것이다.”





당신들의 태양계에 있는 태양의 중심에는



정지된 빛의 지점이 존재하고,



그 곳으로부터 전체 태양계의 모든 것들은

나선형으로 빛을 방사하게 되고,

또 그 지점을 향해 이 모든 것들은,



또 다른 환생의 사이클을 위해, 나선형으로 끌리는 인력의 작용을 받게 되는 것이다.



태양은 당신들 태양계의 씨앗으로서,



태양계 전체의 모든 생각의 구현들이 그곳으로부터 확장되며,

또 이렇게 구현된 바들은 그곳으로 다시 되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움직임’은 ‘생각’을 구현해 내는 것이 유일한 목적이다. 모든 생각들은 그 씨앗 속에서의 고요의 상태로부터 생겨난다. 생각은 이 씨앗으로부터 펼쳐지고, 이 씨앗 속으로 다시 접혀들어간다. 그러므로, 움직임이란 하나의 지점으로부터, 그리고 또 그 지점을 향한, 두 방향의 확장-수축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다만 확장을 인식하게 되는 느낌만을 갖게 될 뿐이다. 또한 이 때, 이러한 확장을 무효로 만들어 버리는, 동시적으로 발생하는 수축은 느끼지도 못하게 되는 것이다.





우주 공간 전체에 존재하는 모든 태양들은,



‘모든 곳에 존재하는 빛’의 정지된 지점들에 의해 중심이 잡혀 있고,

그러한 지점들로부터 모든 생각들은 확장되고, 다시 이 모든 생각들은 그 곳으로 되돌아간다.



태양들은 생각의 씨앗들이다. 이러한 씨앗들로부터 모든 형태들이 생겨난다. 모든 형태들은 또한 이들 씨앗들로 되돌아간다.



지구는 바로 그러한 목적 속에서 태양으로부터 확장되어진 것이다. 유기체적 생명체는 하나님의 ‘전체로서 하나인 생각’의 일부분이다. 비록 유기체적 생명체에 대한 생각은 태양 속에 있을 지라도, 유기체적 생명체는 태양 안에서는 형체를 띤 채 표현되어질 수 없다. 지구상에 나타나는 모든 것들은 생각의 형태로서, 씨앗 속에 그러한 생각의 개념이 존재하듯, 태양 속에 생각 그 자체가 존재하는 것이다.



이 씨앗은 부성의 빛이고,

이 빛은, 자신의 생각을, 인간으로 또 다른 창조물들로, 즉 유기체적인 형태를 띤 대상들을 통해 인간의 생각을 담아낼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식은 행성들, 곧 자기 자식들이 있는 먼 공간으로 확장된다.





각각의 태양들은 하나의 도가니들로서,

자신의 자식들, 즉 행성들을 탄생시키고,



그들이 충분히 식도록 배치시켜

태양 속에서는 형태를 갖지 못하는 하나님의 생각들이



태양의 확장 속에서는 형태를 가질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창조의 씨앗







창조주는 자신의 빛의 씨앗들을 온 우주공간을 가로질러 흩어 뿌려서,



자신이 상상하는 바에 따른 형상대로 창조물들이 생겨날 수 있도록 낳고 부양하게 만든다.



각각의 태양들의 정지된 중심에는 하나님의 상상의 산물들이 탄생하도록 만들어 주는 모든 생각들이 존재하지만,



이들 태양들의 빛의 하나됨 속에는



어떤 형체도 존재하지 않고 비어있을 뿐이다.



비록 모든 생각의 패턴은 그 속에 들어 있지만,



모든 씨앗들은 형태가 없고 비어 있다.





광물 세계, 식물 세계, 그리고 동물 세계에 관한 생각들이 연속적으로 펼쳐져서 인간이 태양 속에 있는 자신의 씨앗으로부터 발현되어질 여정이 준비되어질 수 있기 이전에, 각각의 빛나는 태양들 속의 하나됨은 분리되어져야 하고, 냉각된 행성들로 확장되어져야만 한다.





지구 상의 모든 생각의 표현들은 마찬가지로 태양 속에도 있으며, 이러한 생각들은 그 구현을 위하여 지구로 확장되어져야만 하는 것이다. 산맥과 대양들이 태양속에 있을 뿐만 아니라, 그 밖의 모든 것들, 새로 태어나는 아기의 울음소리, 산사태에서 생겨나는 굉음 또는 도시의 거리에서 생겨나는 소음들 까지도 다 태양 속에 존재한다.



이러한 모든 것들은 빛이며, 그러한 빛의 표현들은 ‘하나의 빛’의 분리와 확장을 통하여, 그 하나의 빛이 ‘하나임’을 표현해 내게 되는 두가지 방식을 통해서 가능해진다.





아주 오래전 당신들의 행성은 태양으로부터 충분히 멀어져서, 물에 관한 생각이 한 쌍의 상반된 형태 속에서 표현되어질 수 있게 되었고, 유기체적 생명체들이 아주 낮은 수준에서 생겨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생명체들은 서서히 복잡화되어 인간의 생각이 ‘하나의 세포에 의해서가 아닌’, 우주의 부성-모성 빛이 상호교환적 박동 속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빛 자체의 극화를 통해서 구현되기 시작했다.





모든 것들에 대한 ‘생각’은



‘하나’의 정지된 ‘빛’ 속에 항상 존재하는 것이다.



모든 생각들의 표현은, 창조주의 두가지 욕망을 표현하는,

흰 태양들과

그 태양들을 둘러싸고 있는 검은 우주공간이라는 두가지의 빛들로 확장되어진다.





창조주의 욕망의 표현은, 이 태양들과 우주공간이 만들어 내는 상반된 두가지의 빛, 즉 흰 빛과 검은 빛간의 상호교환에 따른 전기적 작용-반작용의 시퀀스를 통해서 구현된다. 바로 이러한 상호교환이 정지되어져 있는 생각의 씨앗을, 그러한 생각이 형태를 갖는 쪽으로 전개되어질 수 있도록 극화시키는 것이다.





‘극화시킨다’함은 ‘정지상태’를,

대치를 이루는 약동하는 ‘확장들’로 분리시킴을 의미한다. 이것은 고정된 받침대로부터 지렛대를 확장시켜, 바로 그 고정된 지렛대 속에 들어 있는 생각의 표현을 움직임 속에 구현시키는 것에 비유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방식 속에서, 어머니 지구라는 자궁은 태양으로부터 확장된 ‘인간의 생각’의 씨앗들을 수태하게 되고, 이러한 인간의 첫번째 세포는 어머니 지구로부터 하늘 방향으로 새롭게 펼쳐지며 아버지의 다시 접혀들어가는 빛쪽을 향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모성의 빛의, 바로 이 첫번째 박동은 하나님의 생각을 패턴화된 형태로 낳는 것으로서, 이것은 박동 사이클의 음성적 절반(negative half)에 해당하는 검은 빛이기도 한 것이다.



하늘을 향해 뻗어나가는 모성의 빛의 전개는 확장의 검은 빛인 것이다.

검은 빛은, 백열하는 것으로 표현되는 빛의 양성적인 생각의 음성적 패턴이다.





달리 말하자면,



검은 빛은... 확장되어진, 또는 전개되어진 흰 빛인 것이다.



역으로, 흰색의 백열하는 빛은... 응축된, 또는 접혀들어간 검은 빛인 것이다.





이것이 바로, 형체를 띤 대상들에게 형체가 없는 생각을 건네주는 자연의 방식인 것이다.



양성적인 부성의 빛은, 인간이 “성장”이라고 부르는 주기적인 파동 맥박들 속에서, 음성적인 모성의 빛의 전개를 다시 감아들이게 된다. 하지만 성장이란 단지 시간과 공간이라는, 상상의 삼차원적인 스크린 위에 투영되어지는, 생각의 전개의 시계열적 패턴으로서, 움직이는 그림에 불과한 것이다. 이것은, 전기적 감각을 가진 물질적인 형태의 멀티패턴적(multi-patterned) 육체 속에, 창조주가 ‘자신의 전체로서 하나인 생각’을 전기적으로 기록하는 방식인 것이다.







육체의 삶과 죽음







삶과 죽음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 우선 당신들은 자연의 전개과정들에 대해서 더 많은 것을 알아야만 하는데, 특히 당신들의 육체 및 영혼(Spirit)에 관련된 전개과정들에 대해서 알아야만 한다.





바로 이 영혼 안에서 육체는 동기화되고, 또 이 영혼 속에 당신들의 끝없이 변해가는 개성들이 영구히 기록되어지기도 한다. “죽은 다음에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이해할려면, 당신들은, 당신들에게 육체를 주었다가 다시 이를 되가져 간 뒤, 새로운 육체를 주는 방식을 통해 자연의 반복의 법칙을 이행해 나가는 자연의 전개과정들에 대해서 보다 철저히 이해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인간의 전기적 감각을 띤 육체는,



바로 그 육체가 구현하는 ‘불멸의 인간’ 자체가 아니다.



인간의 육체는 인간들이 자신의 삶과 자신의 존재를 귀착시키게 되는 개별적인 것이 아니다. 인간의 육체는 그 용도에 맞게 갖추어진 한 벌의 도구로서,

행성과 태양으로부터 빌려온 몇가지 화학적 물질들의 복합체에 지나지 않는다.





육체가 사라졌다고 해서,



그 육체 속에 살던 개인이 죽은 것이 아니다.



인간의 육체는 출현, 소멸, 그리고 재출현의 반복적인 사이클 속에서,



형태없는 상태로부터



형태있는 상태로 나타나는 것일 뿐이다.







모든 창조물들은 그 ‘근원’에 있어서는,

하나의 ‘생각’들로서 형태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이들은 이를 구현하고자 하는 욕망을 통하여 ‘형태를 띤’ 생각으로 전개되어지는 것이다.



바로 이 형태없는 상태로부터의 출현의 과정, 그리고 그러한 상태의 반복이,

그 시초 이래로, 인간의 육체 속에서 계속되어지는 것이다.





모든 창조물들의 모든 육체들은, 그들의 전체 사이클들에 걸쳐서, 안쪽이 바깥쪽으로, 바깥쪽이 안쪽으로 변하는 식으로 영구적으로 변하게 된다. 사이클의 작은 부분동안, 육체들은 인간 감각의 범위 안에 머물지만, 사이클의 더 큰 부분동안에 이들은 그러한 범주 밖에 놓이는 것이다. 전체 사이클에 걸쳐서 단 한 순간도, 창조물들이, 육체가 없는 상태이거나 혹은 패턴화된 육체의 기록상태가 없는 상태에 머물지는 않는다. 이 패턴화된 육체의 기록상태로부터 새로운 육체가, 그 패턴화된 기록들에 맞게끔 다시 튀어나오게 되는 것이다.







각각의 들숨과 날숨의 사이클은, 이미 존재하는 패턴화된 기록으로부터 이 새로워진 육체의 형태를 구현시켜 나가게 된다.



인간들이 죽음이라 부르는 것은,



이 끝없는 전개 과정상에서, 당사자의 새로운 생의 사이클의 반복을 위해



되감겨 들어가는 과정에 해당하는 것이다.







자연은 각각의 육체들이 행하는 모든 행동과 모든 욕망들을 다 기록하는데, 헬륨, 네온, 크립톤, 아르곤 및 기타의 물질들로 구성된 “불활성 가스”라 불리우는 이 우주적 요소들 속에, 모든 의식적 욕망과 개개의 영혼들이 갖는 모든 생각들이 다 기록되게 된다. 이러한 우주적 요소들이 물질적인 요소들과 결합되지는 않지만, 이것들은 하나님의 기록 시스템의 기본이 되는 것으로서, 이를 통하여 모든 창조물들이 갖는 개별적인 생각과 행동들은, 그들의 목적이 달성될 때까지, 태양으로부터 지구상에서의 반복의 중심점들(창조물들)에 걸쳐, ‘씨앗-확장’ 시스템의 근거로서, 그러한 기록 요소들 속에 축적되는 것이다.





자연 속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목적성을 띠며,



그 어떤 것도 단 한 번의 생애 사이클을 통해서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지는 못한다.





자연은 자신의 빛의 파동들이 만들어 내는 시간 차원들을 증대시켜서,



인간의 감각 범위 너머로 확장되어져 온 형태들의 패턴화된 기록들이,

인간들의 감각 범위 안으로 들어올 수 있게 한 다음, 다시 그 감각범위를 넘어서는 사이클의 나머지 절반 속으로 그들이 사라질 때까지, 이러한 시간 차원들을 세분화시키는 것이다.







인간의 개성







인간들이 “죽음 속으로 사라진 후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와 같은 문제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갖게 되는 가장 큰 어려움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 자신들의 불멸성에 대한 이해 부족에 기인한다. 만약 한 인간의 육체가, 보이지는 않으나 불멸인 자아, 영혼 또는 개체성에 의해 중심잡히지 않는다면, 시각화되어진, 즉 보이는 육체는 아무 소용이 없다.







인간은, 개인으로서 자기 자신에 대한 인식을 갖고 있긴 하지만, 무엇이 자신의 개성을 구성하는지에 대한 개념이 모호한 상태에 있다. 인간의 개성이란, 부지불식간에 그 당사자가, 자신의 불멸의 자아가 누구인지(무엇인지)에 대해 스스로 해석하는 바에 해당하는 것이다.



자아, 또는 영혼(Soul)은 결코 변하지 않으며,



결코 나타나거나 사라지는 것이 아니지만,





그 개성은, 자신의 불멸의 자아가 누구인지(무엇인지)에 대해 스스로 해석하는 바에 해당하는 개념이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것에 맞춰서,

영구적으로 끝없이 변하는 것이다.



모든 인간은 자기 자신 속에 있는 자아의 빛에 대해 서서히 알게 되고,

그의 개성은,

자신 속에 중심을 잡고 있는

이 전지(全知: omniscience)의 증대되는 앎으로 향하게 되며,

이러한 과정을 통한 끝없는 고양(uplift) 속에서 변화해 나가는 것이다.







우주적 자아의 빛에 대한 보다 더 큰 앎에 이르게 될 때,

인간은 서서히 자신의 개성을 잃게 되고

그러한 우주적 자아에 보다 더 근접하게 된다.





한 인간이



자기자신 속에 계신 하나님에 대해서 완전히 알게 되었을 때,



지구라는 당신들의 행성에서의 연극은 끝나게 되며,



그의 목적은 성취되었기에, 그 개별적인 인간은 존재를 멈추게 된다.





그는 물질 속에서의 삶의 표현은 잃지만,



빛 속에서의 영원한 삶을 찾게 된다.







그 어떤 죽음도 없다 !







Gyeorgos Ceres Hatonn, 게오르고스 세레스 하톤





피닉스 저널 제 31권, “God said : Let there be Light, and Creation became”, Pleiades Connection Vol. II. 제 16장, pp. 175-180.





http://www.phoenixarchives.com/Journals/Published.php



[출처] 세상을 둘러 보세요. 그리고 사랑하세요. ^^ - http://hiramid.kr/bbs/board.php?bo_table=5_3&wr_id=10







생 명 의 書





전지한 지성적인



태양 중심의



불꽃이 있다.





무한하고 신적인



이 태양의 중심불꽃에서



발하는 빛은.. 만물속에 침투해 있다.



이사실은 부인할수 없다.





만물속에 침투해 있는



이 태양 중심의불꽃은



무한한 만물의 근원이다.









---------





아직 저도 다 못 읽었읍니다만~~





일체 유심조



법성 원융 무이상



색즉시공



태극- 음양원리



태양이.. 근본이다 대일여래 --- 日 本







이런 내용이 담겨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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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용님께서 2010-10-27 21:19:35에 쓰신 내용입니다

: RAMTHA

: 스티븐 리 웨인버그 박사 엮음

: 이상무, 송호봉 옮김

:

:

: 당신 안에 있는 하느님께

:

: 이 책을 바친다

:

:

:

: 1. 머리말

: 2. 나는 람타이다.

: 3. 당신들이 내 백성이었을 때

: 4. 하느님은 누구인가

: 5. 하느님을 보라

: 6. 삶 뒤에 또 삶

: 7. 죽음과 초탈

: 8. 창조와 진화

: 9. 천사보다 더 높은

: 10. 찿을 수 있는 하느님

: 11. 사랑이라는 선물

: 12. 오직 진실만을

: 13. 삶에 법칙은 없다-111

: 14. 삶의 목적-123

: 15. 잊혀진 신성-133

: 16. 환생-144

: 17. 앎의 과학

: 18. 닫힌 마음

: 19. 마음 열기

: 20. 경험의 가치

: 21. 어느 갠 날 아침

:

:

:

:

: 1. 머리말

:

:

:

: 인간이 자신의 신성함을 깨닫는 것 이외에

:

:

: 다른 구원의 길은 없다.

:

:

: 당신들은 그것을 실현하는 씨앗이다.

:

:

:

: 나는 람타이다. 지구라고 부르는 이 대지 위에 오래 전에 살았던 독존적 존재이다. 지구에 살았을 때 나는 죽지 않았다. 나는 초탈했을 따름이다. 마음의 힘을 이용하고 내 몸을 생명의 보이지 않는 차원으로 가지고 가는 법을 터득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나는 무한한 자유와 무한한 기쁨, 무한한 생명의 존재를 깨달을 수 있었다. 이 지상에 살면서 나를 따랐던 이들도 또한 초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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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이제 보이지 않는 형제들과 함께 인류를 사랑하는 모임의 일원이 되어 있다. 우리는 당신의 형제로서 당신의 기도와 명상을 듣고 당신이 이리저리 움직이는 것을 주시하고 있다. 우리는 지구상에서 인간으로 태어나 살았었고 당신들이 알고 있는 실망과 슬픔, 기쁨, 그 모든 것을 경험했다. 이미 우리는 존재의 더 위대한 상태를 실현하기 위한, 인간의 경험 한계를 통달하고 초월하는 것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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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당신이 매우 소중하며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라는 것을 당신들에게 알리러 왔다. 당신을 통하여 흐르는 생명과 당신들 모두에게 와 닿는 생각은 당신이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상관없이 하느님이라고 하는 지성 자체이며 생명의 힘이다. 이것이 우리를 함께 묶어 주는 근본이다. 이 지구상에 있는 이들은 물론 당신이 볼 수 없는 저 세상에 있는 모든 이를 다 묶을 수 있는 근본이다.

:

: 내가 여기에 온 이유는 당신들 대부분이 아주 오랫동안 잊고 지내온 유산이 있다는 것을 깨우쳐 주기 위함이다. 나는 당신들에게 더 고매한 안목을 틔워주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이다. 그것을 통해 당신은 만물의 근원인 이른바 하느님으로부터 사랑과 지원을 받아온 실로 신성한 불멸의 존재라는 것을 논리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오로지 당신이 자신의 고귀한 지성으로 당신 삶의 모든 현실을 창조하여 왔고, 또한 당신이 원하는 어떤 실체라도 창조하여 경험해 볼 수 있는 선택권을 당신 자신이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데 도움을 주려고 이곳에 왔다.

:

: 역사를 돌이켜보면 많은 다른 이들도 당신들에게 왔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여러 가지 다른 방법으로 당신의 위대함과 힘, 생명의 영원성을 깨우쳐 주려고 하였다. 당신은 왕이었고, 정복자였으며, 노예였고, 영웅이었으며, 순교자였고, 스승이었고, 안내자였으며, 친구였고, 철학자였다. 이 모든 것은 지식을 얻는 방편으로 취해졌던 것이다. 그리고 때때로 우리들은 당신들이 스스로를 파멸하지 않도록 당신들의 관심사에 개입하기도 하였다. 그것은 당신들이 많은 경험을 쌓으며 기쁨을 늘려 나가는 진화를 하기 위한 터전을 이 생이 계속 마련해 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당신들은 도움을 주려고 손을 내민 그들을 하나하나 쫓아냈다. 쫓아내지 않았을 경우에는 그들의 형상을 따라서 조상(彫像)을 만들고 받들었다. 그리고 당신들의 취향에 따라 그들의 말을 왜곡하고 변형하였다. 그들의 가르침을 활용하는 대신에 많은 사람들이 결국엔 가르침을 섬기게 되었다.

:

: 나를 섬기는 일이 없도록 나는 몸을 가지고 오지 않았다. 대신에 내가 이 지구에 살았을 때, 내 사랑스런 딸이었던 실체를 통해서 당신들과 대화를 하기로 하였다. 내 딸은 내가 그녀의 육체를 사용할 수 있도록 기꺼이 허락하였다. 그녀는 나라는 근본과 연결되는 순수한 채널 역주 : 채널링은 다음과 같이 정의된다.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관념을 표출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아닌 실체나 원천으로부터 전달되는 사념을 글이나 말로써 다시 창출하는 것 - C. Ruechert의 『A Channeling Handbook』에서

: 일 뿐이다. 내가 당신들과 얘기를 할 때면, 그녀는 몸 안에 있지 않는다. 그녀의 영혼과 영성은 완전히 몸을 떠나 버리는 것이다.

:

: 나는 당신의 대지에 변화의 바람을 일으키려고 한다. 나 자신과 또 나와 함께 있는 이들은 인류로 하여금 장엄한 이벤트를 준비하게 하고 있다. 이것은 이미 시작되었다. 이 위대하고 눈부신 일을 스스로 목격함으로써, 인간은 자신을 활짝 열어, 지식과 사랑이 흘러 들어오게 할 것이다. 그리하여 이 지구상의 온 인류를 하나로 묶어 주려고 한다.

: 왜 이러한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그것은 당신이 사랑 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 사랑은 당신이 생각할 수 있는 어떠한 사랑보다도 더 큰 것이다. 인간을 어둠 속에 가둔 채 자유를 앗아가고, 사람들을 분열시키며, 사랑하는 사람 사이에 증오를 일으키고 국가간에 전쟁을 일으키던 그러한 지식보다 더 위대한 지식을 가지고 살 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그와 같은 과거를 끝낼 때가 된 것이다. 인간이 이 지상에서 생존하기 위해 비천하게 사는 것을 끝내고 자신의 신성함과 존재의 영원함을 깨닫고 살아갈 때가 되었다.

: 이제 곧 그러한 날이 올 것이다. 당신의 사랑하는 형제인 경이로운 실체들이 위대한 지식을 이 지상에 펼칠 것이다. 그날이 되면 과학이 과거 어느 때보다도 더 위대한 꽃을 피울 것이다. 이제 다가오는 시대는 하느님의 시대다. 때맞추어 시간의 가치가 서서히 변화하면서 이 시대가 도래할 것이다. 다가오는 시대에는 질병도 고통도 증오도 전쟁도 더 이상 이 지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 더 이상 나이라든가 죽음이라는 것은 없다. 오로지 계속되는 생명만이 있을 뿐이다. 이러한 일들은 지식과 이해, 그리고 심오한 사랑을 통해서 모든 이들의 삶에 나타나게 될 것이다.

: 인간이 자신의 신성함을 깨닫는 것 이외에 다른 구원의 길은 없다. 당신들은 그것을 실현하는 씨앗이다. 각자가 자신의 가치와 생명의 영원함을 깨달음으로써, 당신은 그것을 하나하나 무한한 사고와 무한한 자유, 무한한 사랑의 의식에 더할 것이다. 무엇을 생각하든지, 무엇을 깨닫게 되든지, 어느 곳에서나 의식을 고양하고 확장한다. 당신이 이해한 바 그대로 살아간다면, 그리고 자신의 뚜렷한 목표를 따라 오로지 그것만을 따라 살아간다면, 지금까지 주변에서 보아온 그 어떤 것보다 더 위대한 사고방식과 더 위대한 이해, 더 뚜렷한 삶의 가치를 지닌 존재를 사람들이 당신에게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 이러한 시대는 당신이 지나온 역사 중에서 가장 위대하다. 비록 어려운 도전의 시간들일지라도, 이 시대가 당신에게 가져다줄 충족을 얻기 위하여 당신은 이 시간에 이곳에 있기로 선택하였다. 당신들 모두는 살아가는 동안에 하느님을 알게 될 것이라고 오래 전에 약속 받았다. 많은 생을 살았어도 당신은 자신이 하느님을 알도록 허용하지 않았다. 이번 생에 이르러서 당신들 대부분은 진실로 그러한 기회를 가지게 될 것이다. 당신들은 이곳에 위대한 왕국이 일어서는 것을 볼 것이며, 지금까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문명이 실현될 것이다. 새로운 바람이 불어올 것이다. 사랑과 평화, 존재의 기쁨이 우주의 에메랄드이자 하느님의 집인 이 축복 받은 장소를 영광되게 할 것이다.

: 내 말들을 깊이 숙고하라. 이 말들을 당신 존재 안에 허용하라. 이렇게 할 때, 생각이 더해지고, 느낌이 깊어지며, 순간이 이어져, 당신은 당신의 위대함과 당신의 힘과 당신의 영광을 다시 이해하게 될 것이다.

:

: 2. 나는 람타이다

:

: 나는 정복자 람이었다.

: 나는 이제 람이자 신이다.

: 나는 야만인이었으되

: 삼라만상의 가장 단순하고도 근원적인 면을 깨달아

: 신이 되었다.

: 내가 당신들에게 가르치는 것은 내가 배운 것이다.

:

: 나는 람타 역주 : 사람의 이름에 ‘타’를 붙이는 것은 인도의 전통이다.

: 이다. ‘람’이라는 말은 내가 살았던 시대의 고대어로 신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나는 힌두인의 위대한 람 역주 : 인도의 고대 서사시 문학으로 『라마야나』가 있으며 이 중에서 『발미키 라마야나』가 유명하다. 여기에 나오는 람은 왕자로 태어나 영웅적인 삶을 살고 나중에 신이 되는 이야기의 주인공으로서 본서의 람과는 다른 인물이다. 다만, 라마야나 중에서 과거에 람이라는 이름을 가진 영웅적인 인물이 실존했다는 기록이 있다.

: 이었다. 여자의 자궁에서 태어난 인간으로서 나는 맨 처음 이 지상에서부터 천상에 이른 인간의 자손이기 때문이다. 나는 초탈하는 법을 터득했다. 누구에게서도 배우지 않고, 하느님은 만물에 살아 있다는 그 심오한 진리를 이해함으로써 가능하였다. 나도 한 인간으로서 증오하고 멸시하고 죽이고 정복했으며 지배했다. 그리고 깨달음에 이르렀다.

: 나는 이 세상에 알려진 최초의 정복자였다. 처음 징벌을 시작한 이후 63년 동안 계속하였고 알려진 전 세계의 4분의 3을 점령하였다. 그러나 나의 가장 큰 승리는 나 자신에 대한 것이었다. 나 자신을 사랑하고 모든 생명을 포용하는 것을 배우고 난 뒤에, 나는 바람처럼 영원으로 초탈하였다.

: 나는 인더스라 부르는 산의 동북쪽에서 내 백성들이 보고 있는 가운데 초탈하였다. 내 백성은 그때 200만 명을 넘었으며, 레무리아 역주 : 호주의 북쪽 동경 150°부근에서 서경 100°근처까지 걸쳐 태평양 상에 있었다는 전설상의 고대 대륙.

: 인과 이오니아인, 아틀라시아에서 망명해온 종족들이 혼합되어 있었다. 아틀라시아는 아틀란티스 역주 : 대서양상에 있었다는 고대의 대륙. 남쪽과 북쪽의 큰 두 대륙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자연의 힘을 잘못 사용하여 대양 속에 가라앉았다고 전해진다. 매우 발달된 문명이 있었으며, 멸망할 당시에 남아있던 문명의 일부가 이집트와 중남미에 전해져서 인류 고대문명의 시초가 되었다고 한다. 지금의 남미 브라질은 그때에 바다였으며 이곳을 통하여 레무리아와 아틀란티스 사이에 왕래가 있었다고 한다.

: 를 말한다. 지금의 인도와 네팔, 티베트, 그리고 몽고 남부 사람들이 내 백성의 자손들이다.

:

: 이 지구상에서 나는 단 한 번의 생을 살았다. 지금의 시간으로 계산하면 35,000년 전의 일이다. 내가 태어났던 곳은 남반 아틀라시아의 가장 큰 항구도시인 오나이의 빈민가였다. 레무리아에서 그곳으로 망명해 온 불행한 민족의 한 사람으로 태어났다. 대홍수가 아틀라시아 대륙을 삼켜 버리기 전인 '최후의 일백년'이라는 기간중에 나는 아틀라시아에서 태어났다. 그때에 아틀라시아는 지극히 발달된 문명국이었으며, 과학적인 이해력을 지닌 그들의 이지(理智)는 위대한 것이었다. 그들의 과학은 당신들이 지금껏 축적해 놓은 것보다도 더 위대한 것이었다. 아틀라시아인은 빛의 원리를 이해하고 사용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들은 빛을 순수한 에너지로 바꿀 수 있었고, 빛으로 움직이는 우주선이 있었다. 다른 항성계에 있는 실체와 상호통신을 하고 그들로부터 발전된 과학을 받아들였다. 아틀라시아인은 기술에 너무 몰입했기 때문에, 그들의 이지를 숭배하였다. 그래서 과학기술이 아틀라시아인의 종교가 되었다.

: 레무리아인들은 아틀라시아인과 많이 달랐다. 그들의 사회체계는 생각으로 통하는 교신에 근거를 두고 세워져 있었다. 기술이 많이 발전되어 있지는 않았으나 영적으로는 대단히 진보해 있었다. 내 선조들은 보이지 않는 가치에 대해 깊은 지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달의 저편에 있는, 별들의 저편에 있는 것을 숭배했다. 그들은 확실하게 인지할 수 없는 근본, 즉 미지의 하느님이라고 하는 힘을 사랑하였다. 레무리아인들이 이러한 하느님만 섬겼기 때문에, 아틀라시아인들은 그들을 멸시하였다. 왜냐하면 그들은 무엇이든지 '과학적인 것'이 아니면 하찮게 여겼으므로.

:

: 내가 조그만 소년이었을 때 삶은 매우 힘들고 궁핍했다. 한 순간에 아틀라시아인들은 그들의 기술을 모두 잃어버렸던 것이다. 북 아틀라시아에 있던 과학센터가 오래 전에 파괴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빛으로 이동하는 실험을 하던 중에, 지금 금성의 대기처럼 지구를 두껍게 감싸고 있는 구름막을 뚫어 버리게 되었다. 구름막을 뚫었을 때 많은 물이 쏟아졌고, 얼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해서 레무리아의 대부분과 아틀라시아의 북쪽 지역이 깊은 대양 밑으로 가라앉게 되었다. 그리하여 레무리아인과 북쪽 아틀라시아인이 아틀라시아의 남쪽으로 모여들게 된 것이다.

: 북쪽에서 기술을 잃어버리게 되자 남쪽의 삶은 점점 원시상태로 되어갔다. 아틀라시아 전체가 완전히 가라앉기 전 일백 년 동안에 아틀라시아 최남단은 폭군들의 지배하에 황폐해졌고, 그들은 무지막지한 법으로 백성들을 다스리고 있었다. 그 폭군들의 지긋지긋한 법에 의하면, 레무리아인들은 지구의 오물로 간주되었고 길가의 개만도 못한 취급을 받았다.

: 상상을 해보라. 그자들이 침을 뱉고 오줌을 누고 해도, 그것이 눈물로 씻기게 내버려둘 수밖에 없는 그 처지를, 길거리에 다니는 개보다도 더 굶주린 뱃속의 고통을 없애기 위해 무엇이든지 저지를 수 있는 그러한 삶이었다.

: 오나이 대로에서 아이들이 폭행을 당하고 여자들이 구타와 강간을 당하는 일은 예사였다. 아트라시아인이 길에서 굶주린 레무리아인을 지나칠 때면 자스민과 장미향이 묻은 수건으로 코를 잡고 지나갔다. 우리를 냄새나고 더러운 것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야말로 '무가치하고 영혼도 없는 이지의 낭비'에 불과하다고 간주되었다. 가스나 빛과 같은 것들을 과학적으로 이해할 지적인 소양이 없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농장에서 일하는 노예로 전락하게 되었다.

: 그러한 삶을 안고 내가 이 지상에 태어났다. 그것이 나의 시대였다. 나에게 무슨 꿈이 있었겠는가? 인간의 이지가 오만하고 어리석은 때에 태어나서.

:

: 내가 내 생부를 모른다고 해서 모친을 욕하지 않았다. 우리의 생부가 서로 다르다고 해서 내 형제들을 비난하지도 않았다. 그렇게 가난했어도 내 모친을 원망하지도 않았다.

: 어렸을 때 나는 모친이 길거리로 끌려 나가 그녀의 사랑스러움을 약탈당하는 것을 목격했다. 모친이 끌려갔다 오고 나서 아이가 어머니 뱃속에서 자라는 것을 지켜보았다. 모친이 흐느끼는 것을 보았다. 이 '약소의 땅'에서 우리처럼 고통을 받은 아이가 또 있었겠는가?

: 모친은 혼자서 그 아이를 낳기에는 너무 허약했기 때문에, 누이를 낳는 것을 내가 도왔다. 나는 길거리에서 먹을 것을 구걸하고, 개를 죽이거나 야생 조수를 잡았으며, 늦은 저녁이면 지주의 집에서 쌀을 훔쳤다. 내 발이 매우 빨랐던 덕분이다. 모친의 배를 채워서 어리디 어린 누이에게 젖을 먹일 수 있게 했다.

: 사랑하는 모친이 죽었어도 내 누이를 탓할 수는 없었다. 내 누이가 모친의 모든 힘을 빨아가 버렸고, 누이마저도 설사를 하면서, 몸에 생기가 모두 빠져나가 생명을 잃었다.

: 나무를 모아 놓고 모친과 누이의 시체를 그 위에 올려놓았다. 불을 지피기 위해 밤까지 기다렸다. 나는 사랑하는 모친과 누이를 위해 기도를 올렸다. 그리고는 장작에 재빠르게 불을 붙였다. 시체타는 냄새가 아틀라시아인들을 방해해서는 안되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비위를 거슬리면, 아틀라시아인들은 시체를 하이에나가 뜯어먹게 사막에 내다버리곤 했다.

: 모친과 누이가 타는 것을 보면서 아틀라시아인에 대한 증오가 내 존재 안에서 끓어올랐다. 그것은 독사의 맹독과 같은 것이었다. 비록 어린아이였지만.

: 화염에서 나는 냄새와 그을음이 계곡 전체로 퍼져 나가고 있을 때에 우리 민족이 믿는 미지의 하느님에 대해 생각했다. 나는 이 위대한 하느님의 부당함을 이해할 수 없었다. 우리 민족을 괴롭히는 그 괴물들을 왜 만들었는지 알 수 없었다. 무엇 때문에 모친과 누이는 그토록 비참하게 죽어야 했는가?

: 나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 미지의 하느님을 비난하지 않았다. 우리 민족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그를 비난하지 않았다. 모친과 누이의 죽음 때문에 그를 비난하지도 않았다. 그를 비난한 것이 아니라 그를 증오했다!

: 나는 홀로 남았다. 내 다른 동생은 태수에 의해 끌려가 나중에 페르시아라 부르는 땅으로 보내어지고 그곳에서 노예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동생은 태수의 즐거움과 아랫도리의 만족을 위해 학대받았다.

: 뼈만 앙상하게 남은 열네 살짜리 어린 소년으로서 나는 이루 말할 수 없는 비통함에 허덕이고 있었다. 그래서 내 조상들이 섬겨온 미지의 하느님과 싸우기로 작정하였다. 그것이 나에게는 죽을 값어치가 있는 유일한 것이었다. 죽기로 작정하였다. 그러나 명예롭게 죽기로 했다. 사람 손에 죽는 것은 명예롭지 못한 일이라고 여겼다.

: 나는 먼 지평선까지 뻗쳐 있는 거대하고 신비로운 산을 바라보았다. 하느님이 있다면 그곳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땅을 지배하는 자들이 우리 위에서 군림하는 것처럼 모든 것의 위인 그곳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 생각에 내가 그곳에 올라갈 수만 있다면, 미지의 하느님을 만날 수 있을 것이고, 우리 민족을 부당하게 대우해 온 데 대해 내가 얼마나 그를 증오하는지를 분명히 알려줄 수 있을 것 같았다.

: 오두막집을 떠나 그 높은 산으로 향하였다. 수많은 날이 걸렸다. 그 동안에 메뚜기와 개미로 배를 채웠다. 그 산에 도착한 뒤에, 구름 위에까지 올라갔다. 미지의 하느님과 싸움을 벌이려고 하얀 산정에 올랐다. 그를 부르며 소리쳤다. "나는 인간이다. 그런데 왜 나는 인간으로서 가치가 없는 것인가?" 나는 그에게 얼굴을 보이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그는 나를 무시했다.

: 나는 무릎에 얼굴을 묻은 채 가슴 깊이 울고 있었다. 눈물이 하얗게 얼어붙을 때까지 그렇게 있었다. 이윽고 내가 위를 쳐다보았을 때, 한 경이로운 여성이 보검을 들고 내 앞에 서 있었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오! 람, 영성에 상처 입은 이여, 네 기도를 들었다. 이 검을 가지고 너 자신을 정복하거라." 눈 깜짝하는 사이에 그녀는 사라져 버렸다.

: 나 자신을 정복하라고? 칼날을 돌려서 내 목을 벨 수는 없었다. 내 팔은 손잡이까지 닿지 않았다! 그러나 그 보검이 영예로운 것임을 알 수 있었다. 혹심한 추위에도 떨리지 않았고 오히려 따뜻한 기운이 느껴졌다. 내 눈물이 흘러내린 곳을 다시 쳐다보았을 때 향기롭고 아름다운 꽃이 피어 있었다. 그것이 희망의 꽃임을 깨달았다.

:

: 그 보검을 들고 산을 내려왔다. 힌두인들에게 그 날은 람의 기적의 나로 기록되었다. 한 소년이 산에 올라가서, 성인이 되어 내려왔다. 몸이 더 이상 연약하지도 않으며, 모든 면에서 틀을 갖춘 사람이 되었다. 환한 빛이 주위에 빛나고 몸보다도 더 긴 칼을 들고 있었다. 그 당시에는 내가 좀 둔감한 편이었다고 생각된다. 왜 그 경이로운 보검이 그렇게 가볍게 느껴지는지 의문을 가지지 않았으니까. 그 칼은 너무나 커서 아홉 손으로 잡아야 칼자루를 다 잡을 수 있는 것이었다.

:

: .

: .

: .

:

:

: 중략

:

:

:

: 어느 갠 날 아침

: 새벽이 오기 전에 침대에 혼자 누워

: 주위가 너무 조용하여 그 조용함마저도 들리는 것 같은 그 순간에

: 당신은 꿈이 아닌 꿈에서 깨어나게 될 것이다.

:

: 어두운 방에서 눈을 뜨고, 침상에서 일어나

: 한 줄기 빛이 새어 들어오는 창문으로 걸어간다.

: 아직 아침 이슬이 문지방에 맺혀 있는 그때에

: 창문을 통하여 아침의 그 희미한 어둠을 뚫고

: 장엄하고 밝은 빛을 준비하는 하늘을 응시한다.

:

: 밝게 빛나는 작은 보석이 영원이라는 휘장을 두르고

: 어둠을 배경으로 반짝거리고 있는 아름다움을 쳐다보면서

: 달이 하늘을 가로지르는 여정을 끝마치고

: 이제 더 장엄한 밝음을 기다리며

: 지평선 위에 조용히 앉아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

: 당신 홀로,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느낌에 전율하면서

: 생명이 깨어나는 고요를 지켜보며 앉아 있다.

: 곧이어 당신처럼 그 이른 아침에게 인사하려고

: 새들이 숲 속에서 재잘거리기 시작하는 소리를 듣는다.

: 희망과 기쁨을 노래하는 달콤하고 부드러운 새소리를 들으면서

: 당신은 먼 지평선을 쳐다보려고 동쪽으로 시야를 돌린다.

: 외롭게 서 있는 자줏빛 산등성이가 눈에 들어온다.

:

: 산은 생명의 파수꾼처럼, 높고 조용하며 그리고 강한 모습으로

: 투명한 광채 배경으로 장밋빛으로 어슴푸레 드러난다.

: 지평선으로 조용히 여행을 떠난 구름은 새벽을 약속하는 황금빛으로 물든다.

: 단순하게 존재하는 이 모든 광휘로움과 하나가 되어

: 당신은 아무 것도 듣지 못한다.

: 지평선에서 영광의 불꽃을 이글거리며

: 곧 드러날 장엄한 광경을 기다리는 동안

: 쿵쿵 뛰는 당신의 심장박동 소리 외에는.

:

: 밤의 장막이 아침의 빛 속으로 천천히 사라지면서

: 별빛은 점점 더 희미해지고, 달은 마술을 부리는 것처럼

: 그 자신의 아름다움을 밝아오는 새벽에게 물려준다.

: 그 순간의 아름다움과 환희에 취해 있을 때, 당신은 이것을 깨닫는다.

: 그 아침이 지속하지 않는다면

: 당신이 느끼는 두려움, 걱정, 꿈과 환영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

: 그 순간 이글거리는 보석 같은 광채가

: 금박을 입힌 산 뒤에서 솟아오르며 나타나

: 안개 낀 계곡을 희망의 빛줄기 같은 황금 막대로 뚫고 지나간다.

: 위대한 라가 높이, 높이 올라가면

: 하늘은 푸른색에서 엷은 자줏빛으로, 장밋빛에서 오렌지색

: 그리고 붉은 색으로 불탄다.

: 새들은 더 크게 노래하며 날기 시작한다.

: 어김없이 찾아온 아침이 경이롭게 숨쉬면서 온 세상이 깨어난다.

:

: 항상 보아왔던 이 장엄한 광경을 비켜보는 동안

: 이러한 경이로운 느낌이 당신 존재를 엄습하고

: 당신은 자신이 실로 라의 생명이라는 깨달음으로 소리칠 것이다.

: 나는 먼 지평선 위로 솟아오르는 강하고 조용한 생명의 파수꾼이다.

: 나는 깨어나는 새벽의 색깔이고, 숲을 이루는 나뭇가지의 움직임이며, 창가에 내려앉은 이슬방울이고

: 기쁨에 겨워 지저귀는 아침 새의 달콤하고 부드러운 노래이다라고.

:

: 그리고 이후에 당신이 맞이하는 새벽은

: 마침 유아독존인 하느님을 보는 것처럼 보게 될 것이다.

: 그리고 삼라만상의 위엄과 아름다움에 사로잡히게 될 것이다.

: 왜냐하면, 당신은 이제 빛과 힘

: 그리고 이 힘의 지속성과 하나이기 때문이다.

: 이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 진리를 배운다는 것과 그것이 되는 것은 전혀 다른 것이다.

: 그러나 당신이 거의 기대하지 않은 순간에

: 당신은 하늘에 펼쳐지는 이 광휘로움을 보기 위해 일어날 것이다.

: 어느 갠 날 아침에.

:

: 그 때는 온갖 말, 혼란, 분노, 자아거부

: 하느님에 대한 복잡한 이해, 탐구, 수많은 책 그리고 스승 따위는

: 조용히 종말을 고할 것이다.

: 심오한 깨달음을 통하여...

: 말로 설명할 수 없는

:

:

: 당신의 아침이 다가온다.

:

: 나의 아침이 그랬던 것처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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