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페이지로 시작페이지로
즐겨찾기추가 즐겨찾기추가
로그인 회원가입 | 아이디찾기 | 비밀번호찾기 | 장바구니 모바일모드
홈으로 와싸다닷컴 시사종교분쟁 상세보기

트위터로 보내기 미투데이로 보내기 요즘으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전진교 "왕중양"(王重陽, 1112-1170) / 용문파 - 구처기 / 김용의 영웅문
시사종교 > 상세보기 | 2011-10-18 09:12:01
추천수 38
조회수   4,058

제목

전진교 "왕중양"(王重陽, 1112-1170) / 용문파 - 구처기 / 김용의 영웅문

글쓴이

김재용 [가입일자 : 2000-05-20]
내용
Related Link: http://cafe.naver.com/sundomaster/3487

용문파의 역사







서기, 1115 년, 중국, 동북부 지역에, 왕조를 세운, 금(金)나라의 태조(太祖)는, 빠른 속도로, 세력을 넓혀 나갔다...



이 시기에, 송(宋)나라는, "휘종"이, 재위하고 있을 때였다...



송나라의 휘종은, 거란이, 947 년에 점령한, 강북의 연운16주를, 회복하기 위해, 금나라와 연합하여, 요나라를 협공했다...



그러나, 송나라가, 겨우, 북경 부근의 6주를 차지한 반면, 금나라는 계속 남진하여, 1126년에는, 오히려, 송나라의 수도인, 개봉을 빼앗는다...



1142년, 휘종의 아홉번째 아들인, 강왕(康王), 곧, 남송(南宋)의 고종은, 건안에, 수도를 잡고, 금나라와 화의를 맺는다...



결국, 강북 지방이, 금나라의 지배를, 받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 무렵, 몽고의 세력이, 강해지기 시작하면서, 금나라는, 힘을 잃어가기 시작하였다...



이를 틈타, 송나라가, 금나라를 공격하기도 하였지만, 또 패배하여, 남송은, 더욱, 세력이 약화되었다...



한편, 몽고는, 세력을 계속 확장하여, 결국, 1234년에 금나라를, 1279년에 남송을 정복하였다...



이로써, 중국 전체를 장악한, 새로운 정복 왕조가, 출현하게 되었다...









개조인, "왕중양" 으로 부터, 제6대 대종사인, "윤지평"까지 이어지는 시기의 전진교는, 이와 같은, 역사적 배경 위에서 활동하였다...



왕조간의 역사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시기는, 송(宋), 금(金), 원(遼), 몽고(元)간의 전쟁이, 끊임없이 이어지던 시기였다...



따라서, 도시와 농촌, 명문가의 사람과 농민을 막론하고, 모든 사람들이, 전쟁의 폐허 속에서, 고통을 받고 있었다...



또, 계속되는 전쟁으로, 국가의 재정은, 갈수록 악화되고 있었다...



결국, 정부는, 힘이 약해져, 치안이 어렵게 되고, 백성들은,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도적이 되기도 했다...



이런 위기 상황은, 도교 교단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쳤다...









전진교의 역사는, 개조인, "왕중양"(王重陽, 1112-1170)으로 부터 시작한다...



왕중양은, 송말, 휘종때인, 1112년에 출생한 사람이다...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것으로 알려진 그는, 어려서 책 읽기를 좋아했고, 유학을 배우며, 과거에 급제하기를 원했다...



그러나, 1138년, 그는, 뜻을 바꾸어, 무과에 급제하였다...



이 때, 그의 나이가, 27 세 였다...



그러나, 고원한 뜻을 품었으면서도, 오래도록, 낮은 관직만을 역임하며, 자신의 꿈을, 이루지 못한 채, 장년에 접어든 그는, 점차, 술로 좌절을 달래며, 기인의 행색을 하고는, 스스로를, 왕해풍(王害風 = 왕 미치광이)이라고 부른다...



유년기부터, 청년 시기까지, "왕중양"의 삶은, 유학을 공부하여, 과거에 급제하고, 세상에 이름을 알리려는, 당시, 지식인들의 삶과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그의 이러한 성장 배경은, 후에, 사상적으로, 심도 깊은, "삼교합일"을, 주창할 수 있을 만한, 학문적 기반을 제공하는, 근거가 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또, 세속적 성공에, 실패한 그가, 좌절의 나날을 보낸 것은, 그를, 세속적 성공의 관심으로부터, 벗어나게끔 했다...



관직을 그만 두고, 자포자기의 상태에 빠져있던, 왕중양은, 48세가 되던 해인, 1159년에,

감하진(甘河鎭)에서, 이인(異人)을 만나, "진결"을, 전수받았다고 한다...



"전진교"는, 이 사건을, "감하우선"(甘河遇仙) 사건이라고, 교단의 역사에, 기록하고 있다...



이 때, 그가 만난 이인(異人)에 대해서는, 후에, 왕중양의 제자들인, "마단양", "담장진", "왕옥양" 에 의해, "여동빈" 이라고, 주장되고 있다...



감하진에서, 이인(異人)을 만난, 이 사건 뒤, 왕중양은, 1161년, 남시촌(南時村)에, 굴을 파서, "활사인묘"(活死人墓)라고, 이름을 붙인 후, 그 안에서, 수행에 들어갔다...



2년 후인, 1163년, "금단"(金丹)을 이룬 그는, 갑자기, 그 동굴을 메우고, 암자를 짓고, 다시, 수행에 들어갔다...



왕중양의 이 시기의 제자는, "이영양"(李靈陽), 화덕근(和德瑾), 사처후(史處厚),

엄처상(嚴處常), 조포연(趙抱淵) 등으로, 제자의 수는, 아직, 많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1167년, 4월 26일, 그는, 다시, 그 암자를 태우고, 산동(山東)반도로 가서, 1170년 사망할 때 까지, 전교를 한다...



이 시기에, 왕중양이, 전교한 내용은, 우선, 그가, 교단을 세운 취지를, 적은 것으로 보이는, 그의 "입교십오론"(立敎十五論)을 통해, 자세하게, 알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입교십오론(立敎十五論)의 내용을, 요약하여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住庵: 출가자는 모두 암자에 살아야 한다.



動과 靜의 中道를 얻어야 한다.



그런 뒤에 常을 지킬 수 있고 분수를 편안하게 여길 수 있을 것이니 이것이 편안함에 거처하는 방법이다.









2. 雲遊: 雲遊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 보통 여행은 마음이 어지러워지고 氣가 쇠할 뿐이니 이는 허망한 雲遊이다.



둘째, 性命을 찾아서 玄妙한 것을 구하여 물으며 험하고 높은 산에 올라 훌륭한 스승을 찾아가는 것이다.



만약 한 句라도 서로 통하는 것이 있으면 곧 원만한 빛이 안으로부터 나와 生死의 큰 일을 깨달아 全眞의 대장부가 될 것이니 이것이 참된 雲遊이다.









3. 學書: 책을 보는 방법은 글자에 얽매여 눈을 어지럽혀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책을 보아 의미(意)를 파악했으면, 책을 놓아 두고 다시 이치(理)를 탐구한다.



이치를 파악했으면 다시 이치를 버리고 목적(趣)을 탐구한다.



목적을 얻을 수 있다면 거두어 마음에 간직할 수 있을 것이니, 오래되면 精誠스럽게 되고 自然스럽게 되어 心光이 넘치고 智神이 솟아나 통하지 않는 것이 없고 해결하지 못할 것이 없을 것이다.



이 경지에 이르면 거두어들여 길러야지 날뛰어서는 안된다.



性命을 잃을 염려가 있기 때문이다.



책을 많이 읽는 것은 무익하다.











4. 論合藥: 도를 배우는 사람도 약에 통달해야 한다.



단 약에 집착해서는 안된다.











5. 論蓋造: 암자는 몸만 가릴 정도여야지 화려하게 꾸며서는 안된다.











6. 論合道伴: 道伴은 高明한 사람을 택해야 한다.











7. 論打坐: 타좌란 말이나 몸을 端雅하게 한 채 눈이나 감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는 거짓된 타좌(假坐)이다.



참된 타좌(眞坐)란 하루 종일 行住坐臥하는 모든 행위와 動靜의 사이에서 마음이 泰山처럼 요동하지 않는 것이며, 눈, 귀, 입, 코 등으로 外景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이 때 조금이라도 動靜을 [나누어] 생각하면 靜坐라고 이름할 수 없다.



이와 같이 하는 자는 비록 몸은 속세에 있더라도 이름은 仙位에 열거되어 있을 것이다.











8. 論降心: 마음에는 定心과 亂心이 있다.



亂心은 속히 제거해야만 하는 것이다.



常처럼 잠잠해서 그 마음이 움직이지 않으며, 어슴프레하고 默默하며, 만물의 영향을 받지 않으며, 어둑어둑하면서도 그윽하고, 안팎의 구별이 없으면서도 실낱같은 想念도 없는 것, 이것이 定心이다.











9. 論鍊性: 性을 다스리는 것은 거문고를 조율하는 것과 같다.



너무 팽팽하게 하면 끊어지고 너무 느슨하게 하면 소리가 울리지 않는다.



팽팽함과 느슨함의 中을 얻는다면 거문고를 조율할 수 있다.



또 劒을 주조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강철이 많으면 부러지고 주석이 많으면 구부러진다.



강철과 주석의 中을 얻는다면 검을 주조할 수 있다.



性을 단련하는 것도 이 두 법칙을 본받는다면 자연히 오묘해질 것이다.











10. 論匹配五氣: 五氣가 中宮에 모이고 三元이 정수리 위에 모이면 靑龍이 붉은 雲霧를 뿜어내고 白虎가 새 모양의 연기(鳥煙)를 토해내니 萬神이 나열되고 모든 것이 조화롭게 흐른다.



丹砂가 빛을 내고 鉛汞이 엉겨 맑아지니 몸은 우선 인간계를 향해 의탁해 있지만 神은 이미 천상계를 노닐고 있다.











11. 論混性命: 性은 神이고 命은 氣이다.



性이 命을 만나면 마치 날짐승이 바람을 만나 가볍게 날 듯 힘을 적게 쓰고도 쉽게 이룬다.



{陰符經}에서 "날짐승이 제어하는 것은 氣에 있다"고 한 것이 이것이다.



眞을 닦는 士는 이에 참여해야 하지만 下士에게 누설해서는 안된다.



神明이 벌을 내리기 때문이다.



性命은 수행의 근본이니 삼가 견고하게 단련해야 한다.











12. 論聖道: 聖스러운 道에 들어가는 것은 모름지기 뜻(志)을 고단하게 해야 하니 여러 해에 걸쳐 功을 쌓고 行을 쌓은 高明한 士와 賢達한 부류의 사람이라야 비로소 성스러운 도에 들어갈 수 있다.



몸은 한 방 안에 있을지라도 性은 천지에 가득 차서 온 하늘의 성스러운 무리들이 묵묵히 보호해주고 잡아주며 가없는 仙君들이 은은하게 둘러싸고 있으니 이름은 紫府에 모여 있으며 지위는 仙階에 열거되어 있고 몸은 우선 속세에 의탁해 있지만 마음은 이미 사물의 바깥에 밝혀져 있도다.











13. 論超三界: 欲界, 色界, 無色界를 三界라고 한다.



마음에 생각이 없으면 욕계를 넘고, 마음이 모든 경계를 여의면 색계를 넘으며, 空見에 집착하지 않으면 무색계를 초월한다.



이 삼계를 넘으면 神은 仙聖의 마을에 거주하고 性은 玉淸의 경계에 있게 된다.











14. 論養神之法: 法身은 무형의 相이다.



空하지 않으며 있지도(有) 않고, 前後, 高下, 長短이 없어서 쓰면 통하지 않는 것이 없고 숨기면 어둡고 묵묵해서 자취가 없다.



만약 이 도를 얻었다면 바로 기를(養) 수 있으니 기름이 많으면 功이 많을 것이요, 기름이 적으면 공이 적을 것이다.



귀의하기를 원해서도 안되고 속세에 연연해서도 안되니 가고 머무름은 스스로 그러하기 때문이다.











15. 論離凡世: 속세를 떠난다는 것은 몸이 떠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떠남을 말하는 것이다.



몸은 연뿌리와 같고 마음은 연꽃과 같으니 뿌리는 진흙탕에 있지만 꽃은 虛空에 있는 것이다.



도를 얻은 사람은 몸은 凡世에 있지만 마음은 성스러운 경계에 있다.



지금의 사람들은 길이 죽지 않고자 하지만 凡世를 떠나는 것은 크게 어리석으며 道理에 통달하지 못한 것이다.













*** 전진칠자(全眞七子) ***







"왕중양"이, 비록, 섬서 지역에서, "도"(道)를 얻기는 했지만, 그의 본격적인 전도는, 산동에서, 빛을 발했다...



그는, 산동에서, "성명쌍수" 중심의 내단 수행법을 전파하면서, "마단양", "담장진", "유장생", "구장춘", "윤지평", "왕옥양", "손불이" 등의 "칠진"을, 만나게 된다...



그러나, 산동 전파가 시작된지, 불과, 3년 만인, 1170년, 정월 사일, "왕중양"은, 장문직을, "마단양"에게 넘겨주며, "우화등선" 하였다...



이후, 전진교는, 마단양(1170-1183), 담장진(1183-1185), 유장생(1185-1203),

구장춘(1203-1227), 윤지평(1227-1238)에게로, 잇달아 계승되었다...



"왕중양"의 수제자였던, "마단양"(1123-1183)은, 왕중양이, 산동 전교를 시작한 후, 가장 먼저 만난, 제자이다...



그는, 부호의 자제로, 상당한 학문과 문학적 능력을, 갖고 있었다...



1167년, 왕중양은, 마단양의 집 후원에, 암자를 짓고, "전진"(全眞)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전진(全眞) 이라는 이름은, 이 때, 처음 나왔다...



"마단양"의 "부인"이었던, "손불이"(1119-1182)는, 처음에는, 마단양의 선도입문를, 반대했으나, 후에는, 자신도, 선도수련을 하여, 칠진의 한 사람으로, 불리우게 되었다...





"담장진"(1123-1185)은, "전진칠자"(全眞七子)중에서, 신분이, 가장 낮았지만, 입도 후에는, 왕중양의 신임을 얻었다...



그는, 일찍이, 중풍으로 고생을 했는데, 대정7년(1167)에, 왕중양이, 병을, 고쳐 주었다고 한다...



그는, 마단양 사후에, 장문인의 지위를, 이어 받았으며, 전진교 "남무파"(南無派)의 시조가 되었다...







"유장생"(劉長生, 1147-1203)은, 조부와 부친이, 모두, 무관(武官)으로, 그가, "윤지평"에게, 칼을 가지고, 가르침을 주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그 자신도, 검술에, 능통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는, 담장진의 뒤를 이어, 대종사의 직을 맡았는데, "윤지평"이, "북유록"에서, 그가, 전진교단을 맡아, 관리하던 시기를, 무위(無爲)와 유위(有爲)가 절반, 즉, 도교 본래의 무위를 지키는 것과 입세 수행이, 절반이었다고 평가한 것으로 보아, 그는, 마단양보다는, 유교에 대해, 더 긍정적인 사상을, 가졌던 것으로 생각된다...  









"태고"(太古, 1140-1212)는, 원래, "음양학"과 "주역"에, 능통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대정7년,(1167) 거리에서, 돈을 받고 점을 쳐주다가, 왕중양을 만났다...



그런데, 전진교 문헌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그의 이름인, 태고(太古)는, 왕중양에게 받은, 도호(道號)가 아니라, 섬서성, 어떤 산에서, 어느 노인의 지시에 따라,

개명한 자(字) 이다...







"왕옥량"(王玉陽, 1142-1217)은, 그의 어머니가, 도교를 믿어, 어려서 부터, 그러한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대정8년(1168)에, 곤륜산(崑崙山) 연하동(煙霞洞) 에서, 왕중양을 따라 입도하였고, 그의 어머니도 역시, 출가하여, 수도했다고 전해진다...









"구장춘"(丘長春, 1148-1227)은, 칠진 중에서, 가장 나이가 어렸다...



왕중양은, 마단양에게, 아직, 도를 깨닫지 못한, 구장춘을, 돌볼 것을 명한 바 있다...



그는, 대정8년, 19세의 나이로, 곤륜산 연하동에서, 수행을 하고 있던, 왕중양을 찾아와, 입도하였다...



구장춘은, 유장생의 사후에, 장문직을 계승하였다...



그는, 1220년, "징기스 칸"을 만나, 전진교가, 발전하는 기반을, 마련하였다...







"왕중양"에 의해 제창되고, 이후, 초기 전진교의 대종사들에게서, 계속, 그 전통을 이어가는 전진교의 특징은, 수행법에 있어서, "성명쌍수"를 중심으로 하는, "내단 심성수행법" 을 주장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개조인, 왕중양과 마찬가지로, 그 이후, 전진교를 이끌어 나간, 제자들 또한, 그 시대의 교양인으로서, 사상적 기반이, 풍부한 사람들이었다...



왕중양의 제자들은, 각각, 자신들의 사상을, 형성해 나갔다...



왕중양의 칠진(七眞) 중에서, 가장 젊었던, "구장춘"(丘長春)은, 1203년, 유장생이 죽은 후, 전진교의 대종사직을 계승하였다...



그리고, 그는, 전진교의 교파 중,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현재까지, 그 맥을 이어오고 있는, "용문파" 를 개창했다...







"용문파"는, "도가"(道家)를 중심으로, "유가"(儒家)와 "불가"(佛家)의 사상을 포괄하는, "유불선 합일"의 원칙을, 계승하였다...



특히, "구장춘"은, 1220년, "징기스칸" 과의 만남을 통해, 전진교가, 크게 발전하는 기반을 마련하였다...



이후의 전진교가, 제5대 대종사, 구장춘 이후, 尹志平, 李志常, 張志敬, 王志坦, 祁志誠 등 계속, 구장춘의 제자들이, 장문직을, 계승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시기의 전진교는, 용문파의 사상이, 주류를 이루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전진교 대종사가, 구장춘 이후, 용문파를 중심으로, 계승되었다는 것은, 이 시기의 전진교가, 용문파를 중심으로, 발전하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 예로, 징기스칸과 용문파 장문인인, "구장춘 진인"의 대담을 실어본다...





"上께서 기뻐하시며, 머물러 있게 하신 뒤, 물으시기를,



"眞人께서, 멀리서부터 오셨으니, 어떤 長生藥을 가지고, 朕을 도우려 하는고?"

라고 하셨다.



스승(구장춘)께서 말씀하시길,



"삶을 保衛하는 道는, 갖고 있지만, 長生藥은 없습니다" 라고 하셨다.



上께서, 그 진실함을 嘉祥하게 여기셔서, 御幄의 東편에, 천막 두 개를 설치하여, 머물게 하셨다.



구장춘진인이, 징기스칸을 만난 목적은, 당시, 전쟁으로 고통받던 민중들을, 구제하는 목적이었던 것이다.



그의 "衛生의 道"란, 임금 개인의 생명만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백성의 삶까지도, 위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징기스 칸은, 구장춘이, 燕京으로 돌아올 때까지, 많은 대화를 나누었는데, 이 때, 구장춘이, 징기스 칸에게 한 이야기는, 하늘을 공경하고, 백성을 사랑할 것, 마음을 깨끗이 하고, 욕심을 적게 할 것, 無爲 淸靜, 살인의 不可, 불효와 색욕의 禁制 등인 것을 보면, 구장춘의 西行 목적은, 더욱 분명해 진다.



즉, 그는, 전진교의 사상을, 징기스 칸에게 전하여, 민중의 구원을, 도모하려 했던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구장춘이, 징기스 칸을 만난 이후, 용문파는, 급속하게 발전하여, 구장춘은, 大神仙이라는 칭호를 받으며, 중국 전체의 도교를, 관장하게 되었다.





------------



도교단정파원류(道敎丹鼎派源流)◀



1.원시진인(元始眞人)



2.복희(伏羲)-광성자(廣成子)-신농(神農)-황제(黃帝)



3.노자(老子)





1)관윤자(關尹子;茅山派)-원이상(袁李相)-진희이(陳希夷)

소강절(邵康節)-천용진인(天龍眞人)



2)하상공(河上公)



3)열자(列子),장자(莊子)

4)청성장인(靑城장人;靑城派)

5)남악진인(南嶽眞人;南嶽派)-禪道雙修

6)장도릉(張道陵;天師道派,正一符록派)



4.두광정(杜光庭)-도은거(陶隱居)-회남자(淮南子)-포박자(抱朴子)

위백양(魏伯陽)



5.무극진인(無極眞人)

6.종리권진인(鍾離權眞人)





7.여동빈(呂洞賓)



1)방중파(房中派)-팽조(彭祖)

2)삼풍파(三豊派)-장삼풍(張三豊)

3)청성파(淸城派)-청성장인-장선(張仙)-이팔백(李八百)

4)삼봉파(三峰派)-장삼봉





5)오류파(梧柳派)-오충허(伍沖虛)-유화양(柳華陽)



6)서파(西派)-이함허(李涵虛)

7)동파(東派)-유잠허(陸潛虛)-전금선(傳金銓)

8)중파(中派)-윤진인사제(尹眞人師弟)-이도순(李道純)

유오원(劉悟元)



9)남파(南派)-유해섬(劉海蟾)

장자양(張紫陽),석행림(石杏林),설도과(薛道光),진이환(陳泥丸)

백옥섬(白玉蟾)-오조(五祖),유영년(劉永年),팽학림(彭鶴林)-七祖





10)북파(北派;全眞派)-왕중양 @@@@@@@@@@@@@@@@@@@@



(王陽明),구장춘처기(邱長春處機)

유장생호기(劉長生號機),담장진처단(譚長眞處端),마단양처옥

(馬丹陽處鈺),왕옥양처일(王玉陽處一),사광육태고(사廣陸太古)

손정정불이(孫靖靜不二,女眞)-七眞











▶동국도맥(東國道脈)◀



1.정양진인(正陽眞人;鍾離權)





1)최승우(崔承佑)-최치원(崔致遠),이청(李淸)



2)김가기(金可紀)





3)승자혜(僧慈惠)-명법(明法)

4)석현준(釋玄俊;尸解仙)







2.의상대사(義相大師)





1)태백산노인(太白山老人)

2)권진인(權眞人)

3)남궁두(南宮斗),조전흘(趙傳흘)





3.자혜(慈惠;신라,승려)





1)명오(明悟;승려)-권청(權淸;승려)-계현(게賢;고려)



2)김시습(金時習;승려)

3)윤군평(尹君平;參同契,龍虎秘旨)-곽치허(郭致虛)-한무외(韓無畏)



4)홍유손(洪裕孫;天遁劍法,練魔訣)-박묘관(朴妙觀)-장도관(張道觀)



5)정희랑(鄭希良;玉函記,內丹之法)-승대주(僧大珠)-박지화(朴枝華) 정염-정석





6)그외 서경덕(徐敬德),장세미(張世美;승려),이지함(李之함)

곽재우(郭再佑),강귀천(姜貴千), 정두(鄭斗)등

추천스크랩소스보기 목록
  • 광고문의 결제관련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