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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은 그 자체의 무시무시한 아름다움을 갖고 있다 / 펌
시사종교 > 상세보기 | 2011-09-27 23:21:08
추천수 27
조회수   2,125

제목

성은 그 자체의 무시무시한 아름다움을 갖고 있다 / 펌

글쓴이

김재용 [가입일자 : 2000-05-20]
내용
Related Link: http://blog.naver.com/zoolook4/90039655323



성은 그 자체의 무시무시한 아름다움을 갖고 있다 .







성(性)이 죽음과 밀접한 관련되어 있다면 , 자발적 독신(Spontaneous Celibracy)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 성(性)은 죽음보다는 출생에 더욱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 . 출생은 성에서 비롯된다 . 출생은 성적인 현상이다 . 그러므로 성은 부산물로서 죽음과도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 .



출생이 성에서 비롯되므로 , 죽음도 성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 독신으로 , 브라흐마챠리야(Brahmacharya)로 머물러 있으면 , 즉 성을 초월하면 , 절대로 죽지 않는 불멸의 존재가 된다는 넌센스의 사상은 동양에서 생겨난 것이다 . 그것이 어리석은 것이다 . 왜냐하면 죽음은 미래에 일어날 그 무엇이 아니라 , 죽음은 출생과 함께 이미 생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



죽음을 피할 수는 없다 . 성을 탐닉할 수도 있고 , 독신을 즐길 수도 있지만 , 그것은 아무런 차이도 초래하지 않는다 . 죽음은 네가 육체를 갖는 순간 일어난다 . 네가 자궁으로 들어가는 순간 , 죽음은 이미 일어나는 것이다 . 너의 삶의 시계는 대게 70년이나 80년 정도 갈 수 있는데 , 그 기간은 수많은 요인에 의해 변화한다 . 그러나 네 시계는 그 정도를 넘을 수 없다 . 네가 어떻게 살든 커다란 차이가 생기지 않는다 . 죽음은 지금도 일어나고 있다 . 죽음은 피할 수 없는 것이다 .







질문자는 물었다 . 성이 죽음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면 , 자발적 독신은 무엇입니까 ? 출생과 죽음 둘다 성에 관계되지만 , 중요한 것은 독신자가 됨으로써 죽음을 초월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 죽음은 출생시 이미 일어났다 . 죽음을 초월하는 길은 없다 . 이미 일어난 일이므로 계속 일어날 것이다 . 문제는 죽음이 전개되는 시간이 다 . 너는 순간순간 , 죽음을 향해 돌진하고 있다 . 죽음을 피하기 위해서라면 , 독신자가 되려고 하지말라 . 독신자가 되려하는 것 자체가 또한 두려움이기 때문이다 .



독신자가 되려하는 자는 죽음을 두려워하며 , 죽음을 두려워하는 자는 절대로 죽음이 무엇인지 절대로 알 수 없다 . 그는 죽음이 없는 상태(Deathless-ness)가 무엇인지 절대로 알 수 없다 . 그러므로 두려워하지 말라 . 또한 독신이란 오직 자발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 그것은 자발적일 수 밖에 없다 . 너는 자발적 독신의 의미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 독신은 자발적일 수 밖에 없으며 다른 종류의 독신이란 있을 수 없다 . 독신이 자발적이지 않을 때 그것은 독신이 아니다 .



너는 독신을 강요할 수 있으며 성욕을 총제할 수 있다 . 그러나 그것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 또한 너는 독신이 될 수 없을 것이며 , 더욱더 성적으로 되어갈 것이다 . 성이 너의 전 존재로 확산될 것이며 너의 무의식의 일부가 되어 버릴 것이다 . 그리하여 그것이 네 꿈을 움직이고 , 꿈의 동기가 되고 , 환상이 될 것이다 .







사실 독신이 되기 전보다도 더욱 성적으로 될 것이다 . 너는 더욱 많이 성에 대해 생각할 것이며 , 그 생각들을 거듭거듭 억눌려야 할 것이다 . 그러나 승리는 완전한 것이 되지 못할 것이며 한번 억눌렸던 것은 다시 억눌려야 할 것이다 . 강요나 폭력에 의해서 , 성을 파괴할 수 있는 길은 없다 . 성을 통제하거나 훈련시키려고 노력하는 자들은 세상을 매우 도색적으로 만든다 . 소위 성자라 불리우는 자들은 매우 도색적인 심성을 갖고 있다 .



그의 머리에 창문을 내거나 , 구멍을 뚫을 수 있다면 , 그 속에서는 오직 성과 춘화(Pornography)만을 볼 수 있을 것이다 . 그럴 수밖에 없다 . 그것은 당연한 일이다 . 절대로 너 자신에게 독신을 강요하지 말라 .



성욕이 무엇인지 이해하도록 하라 . 그 속 깊이 침잠하라 . 성은 그 자체의 무시무시한 아름다움을 갖고 있다 . 성은 삶의 가장 심오한 신비 중의 하나이다 . 삶은 성으로부터 나온다 . 그러므로 성은 위대한 신비일 수밖에 없다 .



성은 죄가 아니다 . 억압이 죄이다 . 성은 매우 자연스럽고 자발적인 것이다 . 너는 성을 얻기 위해서 아무것도 한 일이 없다 . 성은 타고나는 것이며 존재의 일부이다 . 성을 비난하지 말라 . 성을 판단하지 말라 . 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 성과 싸우지 말라 .







그저 성으로 더욱더 파고들라 . ㅡ 더욱더 명상적으로 , 성의 핵심을 깨닫도록 성이 깊은 고요 속에서 , 깊은 수용 속에서 일어나게 하라 . 네가 성적인 오르가즘의 핵심을 꿰뚫는다면 , 너에게서 성적인 유혹이 사라지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 그리고 너의 에너지는 더 높은 수준으로 올라갈 것이다 .



너는 더 많이 사랑할 것이고 더 적게 성적으로 될 것이다 . 이것은 자발적으로 일어나는 것이다 . 나는 사랑을 더 많이 하라고 말하는 있는 것이 아니다 . 성의 신비 속으로 깊이 들어가면 , 성으로부터 사랑이 자연스럽게 생겨난다 . 그때 더 많이 사랑하게 될 것이며 , 성욕은 점점 줄어들 것이다 . 그리하여 어느 날 , 맑은 사랑의 불꽃만이 타오르고 , 성의 연기는 모두 사라져 버릴 것이다 .



성의 조야한 에너지는 더욱 섬세한 향기로 , 사랑의 향기로 변화할 것이다 . 사랑 속으로 깊이 침잠하라 . 사랑 속으로 깊이 침잠하면 , 사랑의 핵심에 도달할 것이다 . 그리고 그 순간 기도가 우러나올 것이다 . 기도 역시 자발적인 것이다 .



성에서는 너는 육체와 더욱 긴밀히 관련되지만 ,



사랑에서는 정신과 긴밀히 관련되며 ,



기도 속에서 너는 돌연히 영혼과 관련된다 .



이것이 성의 씨앗 속에 숨겨져 있는 세 가지 가능성이다 .



성이 사랑 속에서 사라져 버리고 ,



사랑이 기도 속에서 사라져 버릴 때 , 거기 자발적 독신이 있다 .



자발적 독신의 인도말은 매우 아름답다 .

그것은 브라흐마챠리야(Brahmacharya)이다 .

이 단어는 문자 그대로 [ 신과 같이 사는 것 ]을 의미한다 .



에너지 전체가 기도일 뿐이며 , 에너지 전체가 은총이며 축복이다 .







그는 절대적으로 신성이다 . 나는 성이 신성하지 않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



성은 씨앗이다 . 사랑은 나무이며 , 기도는 꽃이다 .



기도는 성 에너지로부터 나온다 . 너는 성 에너지에게 감사해야 하며 , 존경해야 할 것이다 . 모든 것이 성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므로 , 성은 존경받아야 한다 . 삶은 성에서 나왔으며 , 죽음 역시 성에서 나올 것이다 . 사랑과 기도와 신 역시 성에서 나온다 .



성은 너의 전 운명의 청사진을 갖고 잇다 . 성이란 나에게는 단순한 성이 아니고 , 성은 모든 것이다 . 그러므로 네가 처음부터 반대하는 태도를 취하면 너는 삶의 여정을 전부 체험할 수 없다 . 또한 너는 맹목적이고도 패배가 확실한 사움에 휘말리게 된다 .



너는 성 에너지를 이길 수 없다 . 성 에너지는 신이 숨겨져 있고 , 사랑과 기도가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 어떻게 네가 성 에너지를 이길 수 있단 말인가 ? 너는 매우 작고 , 성 에너지는 우주적이다 .



존재하는 만물은 성 에너지로 가득 차 있다 . 그러나 지금까지 [ 성 ]이라는 단어는 지나치게 비난을 받아 왔다 . 그것을 진흙 구덩이에서 건져내어 정결하게 해야 한다 . 그 주위에 사원이 세워져야 한다 . 기억하라 . 독신은 오직 자발적인 것일 뿐 , 다른 종류의 독신이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 독신이란 통제나 훈련이 아니다 . 독신은 너의 에너지와 그 가능성에 대한 깨달음이다 .







ㅡ OSHO RAJNEESH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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