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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왕들을 위한 불교수행 / 금강승, 그 첫 제자들은 ? / 석가모니의 혈통
시사종교 > 상세보기 | 2010-11-27 22:53:52
추천수 29
조회수   3,262

제목

제왕들을 위한 불교수행 / 금강승, 그 첫 제자들은 ? / 석가모니의 혈통

글쓴이

김재용 [가입일자 : 2000-05-20]
내용
Related Link: http://cafe.naver.com/buddhapalmcafe/111



금강승 (밀교), 그 첫 제자들은?



오디야나의 인드라부티왕과 샴발라의 수찬드라왕



티베트의 대 불교학자 타라난타가 전하는 금강승 불교의 첫 전법과정을 살펴보자. 석가모니 부처님의 수제자들 중엔 소승이면서도 신통력을 얻은 수행자들이 많았다. 이들은 부처님이 전법을 위해 멀리 이동하시면, 법복을 날개삼아 하늘을 날아 뒤따라 가곤했다. 인도 서쪽에 있던 오디야나의 인드라부티왕은 부처님과 동갑이었다. 왕은 어느 날 하늘을 날아다니는 불교수행자들의 모습에 놀라 신하들에게 물었다. “새처럼 날고 있는 저 사람들이 누구이며, 어떻게 저것이 가능하단 말인가?”



“가비라국의 태자 싯달타가 출가해 성불한 뒤 많은 제자들을 배출했다는 소문을 미루어 짐작하건데, 저들은 필시 석가모니 부처님의 제자들일 것입니다“라는 게 신하들의 대답이었다.

“제자들의 능력이 저 정도라면, 그 스승의 경지는 말할 수도 없을 것 같다. 어떻게 하면, 부처님을 우리나라로 모셔다 짐도 수행할 수 있을까?”라고 왕이 다시 물었다.



“부처님은 전지전능한 분이시고, 부처님의 눈은 모든 것을 꿰뚫어 보실 수 있다합니다. 부처님의 방문을 지극한 정성으로 기원하시면, 폐하의 소원이 틀림없이 이루어질 것입니다.”신하들의 대답이었다. 인드라부티왕은 부처님의 왕림을 지극하게 기도했고, 왕사성에 머물며 이 기도를 듣고, 그 모습을 보신 부처님은 문수보살, 바즈라파니. 천신들 등 제자들과 함께 오디야나에 곁에 왕림해주셨다.



“나를 이곳에 초청한 이유를 말 하십시오” 라는 부처님에게 인드라부티 왕이 대답했다.

“저도 부처님과 같이 훌륭한 공덕과 지혜를 갖추기 위해 불교를 수행하고 싶습니다. 저에게도 제발 그 훌륭한 수행법을 하교(下敎)해 주십시오.”

“불교에서의 해탈과 성불은 모든 세속의 애착과 감각적 쾌락을 끊고 삼계(三戒)를 호지하며, 수행하기 전에는 불가능 합니다”가 부처님의 대답이었다.



인드라부티왕은 낮에는 절세미녀들인 5백 명의 왕비, 밤에는 다시 또 다른 5백 명의 왕비 등- 도합 일천 궁녀, 아니, 일천 왕비들의 시중을 받고 있는 처지였다. 왕은 한참 생각 끝에 다시 부처님께 호소했다.

“저는 일생을 호화로운 왕궁 속에서 살아왔습니다. 저는 숲 속이나 산사에서 수행하기엔 이미 너무 오랜 세속의 세련되고 편리한 생활에 익숙해 졌습니다. 이 단계에 와서 이 아름다운 왕비들과 궁중생활을 버리고 떠날 수 없습니다. 내생에 제가 똥을 먹고사는 개나 돼지, 여우로 환생하는 업보를 받는다 해도, 이생의 저는 제 왕국에 대한 책임을 저버릴 수 없고, 세속에 대한 애착과 감각적 쾌락을 끊고 출가할 수도 없습니다. 출가하지 않고 세속에 남아 있으면서도 성불하는 방법은 없습니까? 그 방법이 있다면, 혼신을 다해 열심히 수행 하겠습니다.”



돌연 석가모니 부처님을 따라왔던 머리깎은 아라한들의 모습이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거대한 만달라를 펼치시며, 그 동안 깊이 감춰두었던 금강승 불교를 왕에게 지도해주기로 결정했다. 이 가르침은 너무나 귀중하며, 위대한 보리심과 높은 지혜가 없는 사람들에게 맡기기에는 위험부담이 높은 길(道)이었다. 그러나 왕의 높은 보리심과 지혜 그리고 공덕은 금강승을 전수받을 자격이 있다고 판단하셨기에 그를 제자로 받아들인 것이다. 부처님은 소승의 제자들과 왕의 신하들의 눈에는 띄지 않는 방법으로 금강승을 왕에게 전수했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구히야사마자 부처님의 모습으로 나타나 왕에게 관정을 내리며, 인드라부티왕이 처음으로 전수받은 금강승 불교는 무상요가탄트라 가운데, 부계(父系) 탄트라, ‘비밀집회’(Guhyasamaja)탄트라였다. 또 모계(母系) 탄트라, ‘차크라삼바라’ (Chakrasamvara: 헤루카, 바즈라요기니)등도 수행해 깨달음을 얻은 왕은 결국 오디야나의 신하들, 국민들에게도 이 가르침을 펴, 수행시켰다. 그 결과 오디야나의 온 국민들은 물론, 모든 축생들과 미물들 까지 함께 대거 성불해, 불국정토로 올라갈 수 있었다.고 한다.



석가모니 부처님에게서 금강승을 전수받은 또 한명의 왕은 오디야나 근처 어딘가에 있는 것으로 알려진 샴발라의 수찬드라왕이다. 당시 부처님은 인도 영축산에서 반야경을 설하시다가, 동시에 남인도 다냐코타카 왕국으로 날아가 금강승을 설하셨다. 그곳은 정신수행의 전통이 무르익어가고 있었고, 수많은 구도자와 요기, 학자들이 많이 모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부처님은 이들에게 ‘칼라차크라’(Kalachakra, 時輪)를 전수하셨다. 높은 불심을 품고 금강승 수행의 꿈을 꾸어오던 샴발라의 찬드라바드라왕이 이때 인도 대륙을 남하하는 대장정의 구도여행을 감행해 법회에 참가한 것이다. 이렇게 해서, 금강승의 가르침은 북 인도를 통해 중앙아시아의 여러 나라로 전해졌다.



오디야나는 오늘의 아프니카니스탄 부근으로 추정된다. 그곳 바미안 계곡에는 세계 최고 최대의 석불이 남아있을 정도의 깊은 신심이 인드라부티왕 시절부터 심어져, 전 국민이 성불해 불국정토로 왕생했다고 전해져온다.



[출처] [본문스크랩] (바즈라다라 금강살타)



http://www.seoprise.com/board/view.php?uid=4602&table=forum1&start=1100



[자료]석가모니의 혈통

석가(사카)족은 현재 네팔(티벳남부) 포탈라카국 감자대왕의 후예로서 지금의 네팔 타리이지방 카필라국에 정착하였고 코살라국의 주인이 되었으며 카필라국의 수도난다(정반왕)는 마야부인에게서 석가를 낳았다.



영국의 사학자 <빈센트 스미스>에 의하면 석가족과 藁離族은 동쪽에서 이동했으며 몽골리안중에서 한민족을 형성한 고리족(코리족=치우족=묘족=고구려=부여=몽골)이 네팔지역에 이동한것으로 추정하는< 석존 몽고인설>을 주장하였다.



마야부인은 常盤大定의 석가모니전에 의하면 코리족(藁離族,九黎族=고리족=고구려=부여)이며 정반왕과 마야부인은 같은 종족이라고 했다.



따라서 석가모니의 진정한 모습은 그리이스의 화풍이 들어간 아테네식도 아니고 후에 전통을 이어간 아리안(현재의 이란 및 인도의 종족)계통의 심목고비가 아닌 몽고계 인것이 확실하다.



왜냐하면 현대 네팔에 샤카족이라 하여 석가모니의 후손들이 있는데 그들의 모습은 바로 우리의 모습과 같기 때문이다.

따라서 석가모니 생존시 10대 제자중에서 설법을 제일 뛰어나게 잘했다는< 부루나 다라미자 尊者>가 직접 그렸다는 초상화가 가장 신빙성 있어 보이는데 그 초상화를 기준으로 상호를 보게되면 굵은선 의 부드러운 적당한 곱슬 머리에 수염도 적당히 있고 이마나 안면의 선이 아주 서구도 아니고 우리 쪽의 몽골리언 모습에 가까운 티베트인들과 의 중간 형이며 어깨 골격도 넓고 강하며 석굴암의 부처님 정도의 비율의 골격에 인간적인 굴곡이 강한 아주 호남형으로 앞가슴도 적당히 넓게 벌어진 모습 등으로 보아 키도 약 1.87~1m90cm정도로 짐작되는 형상이다.

아래 그림이 부루나 존자가 생존의 석가모니를 그린 그림이다.





석가모니 초상화 (대영박물관 소재)



인도=아리안족(북부)+드라비다족(남부)

원래 1만년 전의 언어로써 한반도 사투리를 사용하며 인도 원주민들과 피가 섞여 혼혈족이 된 드라비다족(인도에 벼농사를 알려준 한반도 사람들.고대 한반도 사람들은 해양족들로 아시아와 유럽을 횡당했다.)이 인도의 토착민들이었는데, 중앙 아시아에서 내려온 아리랑족(역시 백인들과 피가 섞인고대 한국인들로 서양인들에게 고대 한국어를 전파하고 유럽문명을 발전시킨 주역.아리안족은 인도뿐만 아니라, 중동과 유럽으로도 이동하여 유럽문명을 발전시킨 주역이 되었다)에 의해 정복된 후, 동북아시아 샤먼계급을 1순위로 정하는 카스트 계급제도와 힌두교로 아리안족 우위의 지배구조를 형성했다. 아리안족의 침입으로 드라비다족은 남부지역으로 밀려난 것이다. 이러한 아리안족 우위제도에 대해 환국의 홍익인간이념에 입각한 불교사상으로 제동을 건 인물이 또한 동이족 석가모니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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