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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에서 만난 예수의 흔적 / 펌
시사종교 > 상세보기 | 2010-11-19 19:22:35
추천수 20
조회수   3,463

제목

히말라야에서 만난 예수의 흔적 / 펌

글쓴이

김재용 [가입일자 : 2000-05-20]
내용
Related Link: http://www.flowerrain.com/64436

히말라야에서 만난 예수의 흔적



http://www.flowerrain.com/64436





- 산상수훈 등 몇 페이지만 제외하곤 길거리 잡지 책만도 못한 성경...



권력과 거짓에만 관여하는 바티칸이 진실해졌으면...



바티칸은 19세기 니콜라이 노토비치가 티벳과 인도에서 가지고 온 예수의 기록 등



그네들이 가지고 있는 도서도 공개를 했으면 합니다.



또한 도마복음을 필두로 20세기 이후 계속해서 발견되고 있는 복음서들의 내용이 과학적 증명이 이루어지고



그 내용이 공개되어 예수님의 진정한 가르침이 빛을 봤으면 하는 바램이 간절합니다.



아울러 인도에 있는 모세의 무덤도 증명이 되었으면 합니다.





이번에는 논란이 되고 있는 예수의 무덤과 행적에 대한 동영상을 올리고자 합니다.



정확히 기억나질 않네요...BBC 다큐였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오쇼 라즈니쉬가 강의한 "도마복음"책을 추천해 드립니다. 부처님의 사진도 같이 올려 봅니다.







“나는 모든 것들 위에 비치는 빛이다. 나는 모든 것이다.

나로부터 모든 것이 나왔고 모든 것이 나에게로 돌아온다.

나무토막을 쪼개 보라. 내가 그곳에 있다.

돌을 들추어 보라. 그러면 그곳에서 너희는 나를 발견할 것이다.”



“이 말씀을 이해하는 자는 죽지 않으리라.”



- 예수-



석가모니가 41세 되시던 해의 모습을 그의 제자 부루나 존자가 그린 진영.

붓다의 여러 영정 가운데 가장 신빙성이 잇는 것으로 추정되는 이 그림은 19세기 영국의 고고학자들이



중국에서 발견하여 영국으로 가져갔다. 현재 영국의 대영박물관에 소장되어 잇으며, 영국의 국보로 지정되어 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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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내용출처: 네이버 지식IN & Handosa & blog.daum.net/ysoon7h







"로마 제국 초기.



로마의 속국으로 전락한 유대 왕국에서 태어난 예수는 (로마 병사인 판델라가 마리아를 강간하여 예수를 낳았다는 말이 있고



실제로 독일에서는 판델라의 묘비까지 발견 되었습니다.) 13세가 되어 헤브라이 관습에 따라 아내를 맞이해야 될 즈음



많은 신분 높은 이들이 그를 사위로 맞이 하기를 원했는데 이것은 어려서부터 그의 총명함이 눈에 띄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현재 인디아의 오릿사주(州)에 있던 나라의 왕족인 라반나가 유대 왕실의 제례에 참례하러 왔다가



예수의 총명함을 보고 인디아에 유학할 것을 권유합니다.



라반나의 권유에 마음이 끌린 예수는 부모에게서 은밀히 나와 상인들을 따라 인디아의 신드지방으로 오게 됩니다.



그후 10년 동안 인디아와 네팔, 티베트에서 팔리어(語)와 산스크리트어를 익히고,



열심히 종교와 각종 학문을 공부하는데 처음에는 브라만교(힌두교의 뿌리)에 속하였으나



나중에는 붓다(불타=부처) 샤키야무니(석가모니=고카마 싯다르타)의 교리에 눈을 뜨게 되고



그의 평등사상을 받아들여 불교에 귀의하고 승려가 되어 '이사(Issa)'라는 법명을 사용합니다.



그리고 24세 때 페르시아를 경유하여 귀국하던 중



자신이 태어날 때 찾아온 조로아스터교 사제 '홀', '룬', '메루'의 3인의 동방박사와 재회합니다.



집에 돌아온 예수는 오래지 않아 다시 아테네로 건너가 '아폴로'라고 하는 성자와 대화를 나누며



소크라테스를 근원으로 하는 그리시아의 정신세계에 깊은 관심을 갖기도 합니다.



25세가 된 예수는 이집트로 건너가 형제단이라는 성자들의 모임에 입회해 활동하며



최고의 칭호인 크리스토스(그리스도=기름 부음을 받은 자)라는 법명을 수여 받게 됩니다.



그리고 30세가 된 예수는 비로소 고향으로 다시 돌아와 신의 복음을 전파하기에 이릅니다. "



위의 이야기는



1887년 러시아의 언론인 니콜라이 노토비치가 인디아와 티베트를 여행하던 중



라마교 승려에게서 예수의 13세에서 24세까지의 인디아 행적을 담은 불경인 <이사전(傳)>을 보고



고사본(古寫本)들을 입수하여 불어판으로 <알려지지 않은 예수의 생애-聖 이사의 일대기>를 출판함으로써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만든 이후 수십명의 사람들이 인디아와 티베트를 방문하여



이를 확인하여 왔던 바 이를 종합하여 1984년 엘리자베스 C. 프로펫트가 발간한 <예수의 잃어버린 세월>의 줄거리입니다.







1887년 가을,



러시아의 역사학자인 니콜라이 노토비치는 인도 북부의 캐시미르 지방에서 한 라마승을 만났다.



노토비치는 라마승의 얘기에서 예수와 비슷한 인물에 대한 기록들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는 인도 여행을 통해 그 기록들을 확인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결국 라다크의 수도 레흐에 있는, 당시 가장 이름 높은 사원인 헤미스에 도착했다.



노토비치는 라마승과의 대화를 통해 예수의 생애와 놀라울 정도로



비슷한 신비로운 예언자 이사에 대한 기록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낙마 사고로 치료를 받던 노토비치는 헤미스의 주지승이 보내온 두 권의 책을 접하게 된다.



여기에 십대의 예수로 추정되는 인물이 인도 지방을 여행한 사실들이 기록되어 있었다.



이를 근거로 '예수는 십자가에서 죽지 않았다.'라는 주장을 펼친 이들은



신약성서와 불경에 비슷한 내용이 많은 이유가 위의 이야기처럼



예수가 원래 인디아와 티베트에서 공부한 불교승려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또한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아카식 레코드를 이용한 기록이므로



언젠가는 과학의 발전에 의해 증명되리라고 보는 '보병궁 복음서'의 내용을 덧붙여 봅니다.





『보병궁 복음서』에 의하면,



"예수가 인도에 가게 된 동기는 인도의 오릿사주의 왕족인 라반나가



유대의 제례에 참석했다가 총명한 예수를 보고 인도로 데려간 것으로 되어 있으며,



그 당시 예수는 12살이었고, 인도의 쟈간나스 사원에 승려로 들어갔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당시 인도의 최고가는 명의(名醫) 우도라카의 제자가 되어 자연의 법칙을 배우고



치료법을 배우며 베다 및 불경을 공부한다.



그러나 인간의 절대평등을 주장하던 예수는



인도의 카스트제도를 파괴한다는 명목으로 승려들의 정죄에 걸려,



죽음을 피해 라마스의 도움으로 네팔로 피신하였다.



그 뒤 성인 피자빠찌의 소개로 밀교(密敎)의 대성자인 멩그스테에게 찾아가서 제자가 된다.



여기서 이 절에 소장되어 있던



수많은 고전(古典)의 필사본을 그의 도움을 받아 직접 읽었으며



이 곳을 떠날 때 광명의 부처라는 찬사를 받은 예수는 고향으로 향하는 길에



24년 전에 자신을 찾아준 동방박사 3인의 마기교 승려를 찾아 뵈었다.



이윽고 요단강을 건너 집으로 돌아온 예수는 어머니의 애정어린 환대를 받지만 다른 가족들로부터는 환대를 받지 못한다.



어머니 마리아와 여동생 미리암에게만 지난 날 구도의 과정에서 겪었던 사연많은 얘기를 들려주었다.



그리고 희랍으로 떠났다.



희랍의 교사 중에서 아폴로라는 성자와 함께 교사들을 가르치며 희랍의 정신세계를 들었다.



25세에 다시 이집트 조안에 가서 ‘헬리오폴리스’(해의 도시)로 가서



성자들의 모임인 형제단이라는 신전에 입회하기를 원하여 허락을 받았다.



여기서 6단계의 시험을



진실과 용기로 극복하고 거룩한



스승의 제자가 되어 애굽 밀교의 비밀, 생사의 문제, 또한 태양계 바깥의 비밀을 배웠다.



그리고 사자의 방에서 일을 마친 뒤에 ‘보랏빛 방’에서 일곱 번째의 시험을 이겨내어 ‘그리스도’라는 법명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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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슈리나가르의 칸자르(Khanjar) 지역의 안지마르(Anzimar) 마을에는 예수의 무덤이 있다.



예수 무덤.성모 마리아(Maria)의 무덤은 캐시미르 지역의 경계에 한가롭게 자리잡은 마리(Mari)라는 조그만 마을에 있다.



빛의 시대인 디지털 시대를 맞이하여 이제 모든 정보가 샅샅이 드러나고 있다.

예수는 십자가 부활 사건이 끝나고, 그 후에 어디로 갔을까?

예수는 시리아 다마스커스에서 2년간 살다가, 다시 성모 마리아, 동생 토마 등을 데리고 인도 캐시미르 지방으로 갔다.



성모 마리아는 예수가 38세 되던 해에 사망했고,



예수는 인도에서 115세가 되어 자연사 했으며,



예수(Jesus)의 무덤은 인도 슈리나가르의 칸자르(Khanjar) 지역의 안지마르(Anzimar) 마을에 있다.



묘지 앞에 로자발(Rozabal)이라고 쓰여져 있는데,



로자발(Rozabal)은 라우자 발(Rauza Bal)의 준 말이며, 라우자(Rauza)는 예언자의 무덤이란 뜻이다.



그 건물은 정사각형이며,그 건물에 덧붙혀진 조그마한 현관을 통해 들어갈 수 있다.



실제 묘실로 들어가는 통로 위에는 유즈 아사프(예수)가 수세기 전 캐시미르 골짜기로 들어왔으며,



그의 일생은 진리를 찾는 탐구에 바쳐졌다고 설명하는 글이 새겨져 있다.



성모 마리아(Maria)의 무덤은 캐시미르 지역의 경계에 한가롭게 자리잡은 마리(Mari)라는 조그만 마을에 있다.



이 무덤은 마이 마리다 아스탄(Mai Mari da Asthan)이라고 불리는데,



성모 마리아의 마지막 휴식처라는 뜻이다.



여러분에게 생소 하겠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무덤을 소개 하겠습니다.



예수는 십자가 상에서 죽지 않고, 살아남아서 인도로 도망을 했습니다.

그는 인도 북부 스리나가르의 구도시 한 복판에서 지금도 잠자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탈출한 예수님은



그의 어머니 마리아와 제자 토마스를 데리고, 이란, 아프가니스탄을 거쳐서 인도 북부의 캐시미르에 닿았습니다.



그곳에서도 예수는 정신적인 지도자로 지냈으며, 결혼하여 자녀도 가졌습니다.



그는 80세가 넘어서 눈을 감았으며,그의 무덤은 후에 이슬람 식으로 꾸며 졌습니다.



왜냐하면, 이슬람에서도 예수는 성인이기 때문이죠.



현재, 스리나가르의 구시가에 가면 작은 광장이 있고,



정육점 옆의 골목으로 들어가면 예수의 무덤이 초록색으로 된 건물안에 있습니다.



그곳에서 예수의 무덤을 물으면, 아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이슬람식의 이름인 '유즈 아사프(Youza Asouph)라고 해야 현지인들이 이해 합니다.



예수가 인도에서 죽었다는 증거로써,



인도 남부 마드라스에 가시면 초기 교회당시에 예수와 함께 인도에 왔던 토마스가 전도한,



신자들이 400만명이나 살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로마 카톨릭이나 동방정교, 또는 콥트교, 영지주의와 하등의 관계가 없습니다.



자세한 정보는 홀거 케르스텐이 쓴,'인도에서의 예수의 생애'라는 책에 잘 나와 있으며,



저는 이 책에 나온 '니콜라이 노토비치'가 1887년에 여행했던 길을 따라서 여행을 했었지요.



러시아의 역사가이자 고전학자인 니콜라이 노토비치가 보고 들은 것은 전부 사실이더군요.





"가사 상태의 예수는 그 곳에서 수일 동안 치료를 받은 후 마침내 깨어나 소생했다.



그 후 예수는 박해를 피해 어머니 마리아와 그의 추종자를 동행하고 인도 캐시미르 지방으로 이주하여,



그 지역을 중심으로 수십 년 동안 신앙운동을 펼치고



적어도 80세 내지 120세까지 살다가



슈리나가르에 묻혔다고 한다."



(인도에서의 예수의 생애』 참고)







여러 가지 증거들







이상이 독일인 신학자 케르스텐이 주장한 핵심 요지이다.



그는 이에 관해 인도에 전해 오는 숱한 이야기와 여러 문헌들 그리고



캐시미르 지방에 있는 예수의 무덤과 어머니 마리아의 무덤 등을 증거로 제시하고 있다.



이 중 대표적인 것은 캐시미르 인근 슈리나가르에 있는 유즈 아사프 곧 예수의 무덤이다.



당시 예수는 인도에서 ‘유즈 아사프(Yuz Asaf)’라는 이름으로 불렸다고 하는데,



이는 ‘정화된 사람들의 지도자’라는 뜻이다.



당시 인도에는 이슬람, 불교, 힌두교 등이 공존하고 있었으며,



예수 또한 ‘예수, 이사, 유즈 아사프’ 등의 여러 이름으로 불려졌다.



이슬람권에서는 통상 예수를 이사(Issa)라 부른다.



예언자 유즈 아사프(예수)의 묘지는 오늘날 슈리나가르의 구도시 칸자르(Khanjar) 지역의 안지마르(Anzimar)에 있다.



후에 묘지 주위에 세워진 건물은 라우자 발(Rauza Bal)의 준말인 로자발(Rozabal)이라 한다.



라우자(Rauza)는 예언자의 무덤이라는 뜻이다.



묘실로 들어가는 통로 위에는 유즈 아사프가 수세기 전 캐시미르 골짜기로 들어 왔으며,



그의 일생은 진리를 찾는 탐구에 바쳐졌다고 설명하는 글이 새겨져 있다.



안쪽의 묘실에는 두 개의 긴 돌이 있는데 두꺼운 천으로 덮인 나무 울타리로 둘러싸여 있다.



큰 묘석은 유즈 아사프의 것이며,



작은 것은 이슬람의 성인인 시에드 나시르-우드-딘(Syed Nasir-ud-Din)의 묘석인데



그는 15세기에 여기에 묻혔다.(『인도에서의 예수의 생애』, 284쪽)







또한 홀거 케르스텐은 예수의 어머니인 마리아의 무덤이 현재의 파키스탄 지역에 있다고 주장한다.



탁실라에서 동편으로 70km 떨어진 ‘마리(Mari)’라는 조그만 마을―캐시미르의 경계에



한가롭게 자리잡은 산 속의 휴양지. 현재는 파키스탄에 속해 있다―에 오랜 옛날부터 무덤이 있었다.



그것은 ‘마리아 아스탄(Mai Mari da Asthan)’ 이라고 불리는데



그 뜻은 ‘성모 마리아의 마지막 휴식처’라는 뜻이다.(『인도에서의 예수의 생애』, 257쪽)



예수가 인도에 살며 활동했던 행적은, BCE 5세기부터 CE 17세기에 이르기까지



여러 종교문헌에서 끊임없이 인용되어 온 힌두족의 오래된 이야기 선집(選集)인



[출처] 히말라야에서 만난 예수의 흔적 (바즈라다라 금강살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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