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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방에 상관없이 사랑에 진실하라 / Oshio
시사종교 > 상세보기 | 2010-10-20 22:00:00
추천수 12
조회수   2,413

제목

상대방에 상관없이 사랑에 진실하라 / Oshio

글쓴이

김재용 [가입일자 : 2000-05-20]
내용
Related Link: http://www.flowerrain.com/tantra_board/2395

동양에서는 오직 한 사람과 사랑의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해 왔습니다, 요즈음

서양에서는 사람들이 하나의 관계에서

또 다른 관계로 부유하며 떠돌고 있습니다,

어떤 관계를 선호하십니까?





나는 사랑을 선호한다.

상대방에 상관없이 사랑에 진실하라, 상대방이 이 사람에서 저

사람으로 바뀌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는 그것이 진살한

사랑인가이다.



만약 한 남자나 한 여자와 살면서 그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죄를 짓는 것이다, 만약 누군가와 결혼을 했는데 그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렇지만 그 사람과 계속 같이 살면서 섹스를

한다면, 그것은 사랑에 대해 죄를 짓는 일이다.



우리는 사회적인 안정과 편안함, 형식적인 겉치레 때문에 사랑을

거스르는 결정을 내린다, 그것은 마치 그대가 나가서 어떤 여자를

강간하는 것과 같다.



여자를 강간하는 것은 죄악이다, 그대는 그 여자를 사랑하지 않고,

그 여자도 그대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대가 어떤 여자와

함께 살면서 그 여자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똑같은 일이 일어난다,

그것은 사회적으로 용인된다 뿐이지 강간이나 마찬가지다, 그대는

사랑에 반대되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동양에서처럼 한 여자와 평생을 살아갈 수도 있다, 아

무것도 잘못되지 않았다, 여전히 진실하게 사랑한다면, 한 사람과

평생을 사는 일은 가장 아름다운 일 중 하나이다, 친밀감이 성숙해

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99퍼센트의 경우 사랑이 남아 있을 가능성이 없다, 그저

함께 사는 것이다, 오랫동안 함께 살다보면 사랑은 아니지만 다른

종류의 관계가 싹트고 자라난다, 그것을 사랑이라고 오해하지

말라.



그러나 평생 한 사람을 사랑하고 같이 사는 게 가능하다면, 커다

란 친밀감이 자라날 것이고, 사랑은 점점 더 깊은 차원이 될 것

이다, 자주 상대를 바꾸는 사람에게는 가능하지 않은 경험이다.



나무를 이쪽 저쪽으로 옮겨 심으면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것과 같

다, 뿌리를 자라게 하려면 나무를 한군데 가만 놔두어야 한다, 그러

면 뿌리는 더 깊이 내리고 나무는 더 튼튼해진다.



친밀감은 좋은 것이며 한 사람에게 헌신하는 것은 아름답다, 그

러나 필수적인 것은 사랑이다, 만약 나무가 토양이 좋지 않은 돌밭

에 뿌리를 내려 죽어간다면, 차라리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게 낫다,

그런 경우에는 한군데에 그냥 두어야 한다고 주장하지 말라, 인생

에 대해 진실해져라, 나무를 베어내라, 그렇지 않으면 이제는 인생

을 거역하는 것이 된다.



서양 사람들은 상대를 바꾸며 너무 많은 관계를 가진다, 사랑은

두 가지 방식으로 죽어간다, 동양에서는 사람들이 변화를 두려워하

기 때문이고, 서양에서는 한 사람과 너무 오래 동안 지내는 것을 두

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자신을 내맡기게 될까봐 두려워한다, 서약이나 헌신이

되기 전에 상대를 바꿔야 하기에 자유스럽게 흘러다니는 것이다,

그래서 자유의 이름을 내건 방탕함이 만연하고, 사랑은 황폐해져

거의 말라죽을 지경이 되었다.



사랑은 양방향으로 고통받고 있다, 동양 사람들은 안정과 편안함과

형식적인 겉치레에 매달리고, 서양에서는 에고의 자유와 분방함에

매달린다, 그러나 사랑은 두 가지 방식으로 고통 당한다.



나는 사랑의 편이다, 동양이건 서양이건 그대가 어느 사회에 속

해 있거나 나는 상관하지 않는다, 나는 어느 사회에도 속하지 않는

다, 나는 사랑을 선호한다.



항상 기억하라, 사랑하는 관계라면 무조건 좋다, 그 안에 사랑이

남아 있다면, 가능한 한 깊이 전념하라, 그 안에서 가능한 한 총체

적으로 머물러라, 그 관계 속으로 흡수되어라, 그러면 사랑은 그대

를 변화시킬 것이다.



사랑이 없다면 관계를 바꿔라, 그러나 변화에 집착해서는 안 된다,

그것을 습관화시키지 말라, 이삼 년 만에 한 번씩 자동차를 바꾸듯,

관계를 자동적으로 바꾸지 말라.



새로운 자동차 모델이 나왔는데, 어떻게 해야 하냐고? 자동차를 바

꿔야 할 것이다, 갑자기 새로운 여자와 만났다, 그러나 그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그 여자가 그 여자이고, 그 남자가 그 남자이다, 사람마다의 차이

라는 것은 부수적인 문제이다, 왜냐하면 결국 에너지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여성적인 에너지는 모두 여성적이다, 한 여자 속에 모든

여자가 들어 있고, 한 남자 속에 모든 남자가 들어 있다.



개인마다의 차이는 매우 표면적인 것이다, 코가 좀 길거나 짧고,

머리가 금발이냐 갈색이냐의 차이다, 표면적인 사소한 차이점이다,

깊이 들어가면, 여성 에너지와 남성 에너지의 문제이다, 그러므로

사랑이 있다면 그 관계를 고수하라, 자랄 기회를 주어라, 그러나

사랑이 없다면 사랑 없는 관계에 고착되기 전에 상대를 바꿔라.



한 젊은 부인이 사제에게 피임약 사용에 대해 고해 성사를 했다.

“피임약을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사제가 말했다, “그것은 신의 법

을 거스르는 것입니다, 물을 한 잔 마시세요.“



“관계를 갖기 전이요, 후요?” 그 부인이 물었다.

“관계를 갖는 대신이요!” 사제가 대답했다.



그대는 나에게 동양식을 따를 것인가 서양식을 따를 것인가 묻는

다, 어느 쪽도 아니다, 신성한 길을 따라라, 신성한 길이란 무엇인

가?



사랑에 진실한 것이다, 사랑이 존재하면 모든 것은 용인된다, 사랑

이 없으면 아무것도 용인되지 않는다, 만약 아내를 사랑하지 않는

다면, 그 여자에게 손끝 하나 대지 말라, 인권을 침해하는 행위이다,

사랑하지 않는 여자와 함께 잠자지 말라, 가장 궁극적인 법인 사랑

의 법을 위반하는 일이다, 오직 사랑하고 있을 때만 모든 것이 용인

된다.



누군가 히포의 어거스틴에게 물었다. “저는 교육을 잘 받은 사람

입니다, 그런데 경전이나 위대한 신학 책들을 읽을 수가 없습니다,

저에게 간단한 교혼을 주십시오, 저는 매우 어리석고 기억력이 좋

지 않으니, 저에게 요점만 말씀해 주시면, 그것을 기억하고 따르겠

습니다.“



어거스틴은 위대한 철학자이며 성자였기에 훌륭한 설교를 하곤

했으나, 아무도 그에게 그냥 요점만 가르쳐 달라고 하지는 않았다,

그는 눈을 감고 몇 시간 동안 명상에 잠겼다, 그러자 그 남자는

다시 말했다.



“제발 당신이 깨달은 것을 말씀해 주셔야 제가 갈 수 있습니다,

저는 벌써 여러 시간을 기다렸으니까요.“



어거스틴은 말했다. “저는 단지 이 말밖에는 떠오르지 않습니다,

사랑하십시오, 그러면 모든 것이 당신에게 허용될 것입니다, 그냥

사랑하십시오.“



예수는 “신은 사랑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그대에게 사

랑은 신이라고 말하고 싶다, 신에 관한 모든 것을 잊어라, 사랑이

대신할 것이다, 사랑으로 함께 움직일 수 있을 만큼 용감해져라, 다

른 아무 고려도 필요 없다, 사랑을 염두에 두면, 모든 것이 가능해

질 것이다.



우선 사랑하지 않는 남자나 여자와 함께 지내지 말라, 일시적인

기분이나 욕망에 의해 움직이지 말라, 한 사람에게 헌신하고자 하

는 욕망이 그대 안에 있는지를 알아내라, 그대는 누군가와 깊이 접

촉할 수 있을 정도로 성숙했는가? 그러한 접촉은 그대의 인생을 바

꿀 수 있다.



누군가와 접촉할 때는 진실하게 하라, 연인에게 숨기는 것이 없

도록 하라, 진실해라, 그대가 써왔던 가면을 모두 벗어라, 진실해져

라, 맨몸으로 그대의 심장을 보여 주어라, 두 연인 사이에는 비밀이

있어서는 안 된다.



비밀이 있다면 사랑이 아니다, 모든 비밀을 던져 버려라, 비밀을 갖

는 것은 정치적인 일이다, 사랑은 그래서는 안 된다, 아무것도 숨겨

서는 안 된다, 가슴속에 솟아오르는 모든 것을 연인에게 투명하게

보여주어야 한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투명한 존재가 되어야 한다,

서서히 상대방을 통하여 더 높은 경지의 합일로 나아가는 것을 느낄

것이다.



외부에서 한 여자를 만나 그 여자를 사랑하고 그 여자의 존재에

자신을 헌신하고 몰입하는 것으로, 자기 내면에 있는 여성을 만나

기 시작한다, 혹은 자기 내면에 있는 남성을 만나기 시작한다, 외부

에서 만난 여자는 내면의 여성에게로 가는 통로이다, 외부에서 만

난 남자 또한 내면의 남성을 만나기 위한 통로이다.



진정한 오르가즘은 그대 내면에 있는 남자와 여자가 만날 때 일

어난다, 반은 남자이고 반은 여자인 시바의 상을 보았을 것이다, 모

든 남자는 반은 남자이고 반은 여자이다, 모든 여자의 반은 남자이

고 반은 여자이다,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



존재의 반은 아버지로부터, 나머지 반은 어머니로부터 받았기 때문

에 모든 사람은 양쪽을 다 가지고 있다, 내면의 오르가즘, 내면의

만남, 내면의 합일이 필요하다.



그러나 내면의 합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내면의 여성을 반응하게

만드는 외부의 여자가 필요하다, 그 여자는 내면의 존재를 흔들어

잠들어 있는 내면의 여성을 일깨운다, 내면의 남성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관계가 오랜 시간 계속되는 게 더 좋다, 내면의 여성이

깨어나려면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치고 빠지는 서양식의 관계에

서는 내면의 남성이나 여성이 깨어날 시간을 충분히 갖지 못한다.



한 여자에 의해 동요가 일어나려고 하면 그 여자가 가버린다, 그리

고 다른 파장을 가진 여자가 나타난다, 끊임없이 여자나 남자를 바

꾸다 보면, 신경증 환자가 되어버린다.



너무 많은 것들과 너무 많은 소리들이 존재의 내면으로 들어와 서로

다른 여러 파장으로 그대를 혼란스럽게 만들기 때문이다, 내면의

여성을 찾기 어려울 것이다, 게다가 변화에 너무 중독되어 버릴 가능

성도 있다, 변화를 즐기기 시작하면 길을 잃는다.



외부에서 만나는 여자는 내면의 여성으로 통하는 길이며, 외부에

서 만나는 남자는 내면의 남성으로 통하는 길이다, 이것은 궁극적

인 요가이며, 그대 내면에서 궁극적으로 신비로운 합일이 일어나는

길이다.



그렇게 되면 그대는 모든 여자와 모든 남자로부터 자유로워진다,

남성다움과 여성다움에서도 자유로워진다, 갑자기 그 모든 것을

초월하여 어느 쪽도 아닌 사람이 된다, 이것이 바로 브라마차리야,

즉 초월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그대는 다시 순수한 상태로 돌아

간다, 그대의 본성이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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