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최초의 fm 라디오 제품 생산은 부청 공단에 있던 한국 도시바 하청 업체에서 1971년도 시작 되었지요.
그 당시는 rf 중폭단에 게르마늄 tr이 사용되었고
저도 땜쟁이로 줄창 밤샘 야간근무를 하면서 산더미처럼 솥아지는 제보 라인 불량 수리를 했었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p.c.b 부품 자동화 삽인이 안 된 시절이라서 일일이 여공들이 손으로 삽입을 했는데..소위 誤揷(오삽) 불량이 많았습니다.
부품은 거반 일본서 수입되었구요
1973년 지나서 일본 ift coil 업체가( 수미다,도교 코일,미즈미 코일) 한국에서 제조하면서 부품 품질이 급격히 좋아져서 불량도 줄어 들어습니다.
그 당시 fm if 단 mpx 단 조정을 위하여 일본 메구로 측정기가 사용되었구요 그 계측기에 달린것이 바로 fm loop 안테나였습니다.
다만 제조라인 공간 확보를 위하여 일본인들이 축소 지향적으로 작게 만들고 ..부족한 파장 길이 값은 c matching하여서 실드룸 안에서는 사용이 가능하지만 실제 fm 튜너용으로 사용하기에는 쫌 부족합니다.
그 이후는 일본 기업들이 fm 표준 신호 방송기기를 만들었고 1973년 이후에는 제조 라인에서 메구로 fm 신호 발생 측정기가 제조 라인에서 사라졌지요

1979년도 대한민국 최초의 고급 레시버 제조시 별 기술도 없는 제가 담당을 했었습니다만
지금 본 모델을 미국서도 아나로그 튜너 중 명기 대열에 올라 섰습니다.
이 모델 제조시는 부품 삽입 자동화가 이루어 졌었구요
튜너 다이알 판넬도 정정기 처리가 이루어졌고 부품 품질이 매우 좋아서 튜너 제조시 불량도 학연히 줄어들었습니다.
대한민국 오디오 맨들이 사용하시는 아나로그 튜너 중에 유럽에서 제조 된 것 말고는 거반 국산 ift가 삽입된 제품입니다.
그 당시 한국에서 radio r rf 단에 사용되는 각종 coil 제조 업에 종사하는 여공들이 무려 3천명 전후로 ..즉 매일 3천명이 반자동 기기로 ift 나 osc coil을 제조해도 물량을 따라 갈 수 없을 정도로 fm Radio 수요가 전세계적으로 폭팔을 했던 시절입니다.
제조는 한국이 아가씨들이 , 기술과 품질 관리는 일본인들이 담당 했지요.
즉 한국 전자 산업은 일본이 전진 기지를 대만으로 선택하지 않고 한국으로 한 덕분입니다.
그런대 일부 한국인들은 한국 전자 산업에 일본이 도움 준것은 없다고 순 어거지 논리를 펼치지만
그건 100% 틀린 주장입니다.
어주자 ...땜쟁이 일기 중..일부 발쵀.